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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을 활용하는 1000가지 방법-146화 (146/229)

146화 섬멸전(2)

전초전이 마무리되었으나 일행은 전부 이곳에 대기했다.

14일 안에 거인들이 언제 다시 관문을 넘어 공격할지 알 수 없기 때문이었다.

“아이스커피 먹고 싶은 사람?”

이소민이 양손에 주렁주렁 테이크아웃 커피를 들고 사람들에게 다가갔다.

쉬고 있는 사람들에게 음식이나 커피를 배달하며 도와주고 있었다.

“이소민 언니, 저요.”

“에어리스 한 잔.”

커피를 건네받은 에어리스는 빨대를 찾았다.

이소민은 얼른 품에서 빨대를 이리저리 찾았다.

“그런데 언니 혼자서 바쁘게 움직이네요.”

“오늘은 내가 별로 한 게 없으니까 이거라도 해야지.”

이소민은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멤버였다.

활약이 없으면 눈치껏 자기 몫을 찾아서 해내는 편이었고 방어 진지 보완이나 장비 정비, 부상자 치료까지 어디든 합류했다.

“가만히 있느니 지금은 커피 심부름이라도 하는 편이 낫지. 뭐.”

항상 긍정적인 이소민답게 어떤 일이든 유쾌하게 받아들였다.

얼른 빨대를 하나 찾아서 에어리스에게 내밀었다.

쪼르륵.

빨대를 콕 꽂아서 시원한 아이스아메리카노를 마시자 에어리스는 그제야 긴장했던 마음을 시원하게 풀수 있었다.

두 사람이 한창 얘기를 나누며 즐겁게 분위기를 푸는 동안, 멀리서 혼자 앉은 항우는 창을 손질하며 다음 전투를 준비하고 있었다.

언제라도 대비 태세를 갖추어 두는 무장다운 자세였다.

“저기.”

“응?”

그런 항우에게 이소민이 다가가 커피를 스윽 내밀었다.

“이게 뭐지?”

“아이스커피예요.”

“아이…스 커…피?”

낯선 물건을 받은 항우는 처음으로 당황한 티를 냈다.

손에 들어온 조그만 컵에는 빨대가 꽂혔는데 아무래도 낯설었다.

그런 항우의 반응을 이소민은 재미있다는 듯 계속 쳐다봤다.

“커피는 잘 몰라요?”

“아니, 들어는 봤다.”

“어디서요?”

“사후 세계에서 지켜봤지. 그곳에는 죽은 자들이 계속 들어오니까.”

죽은 항우는 많은 영웅들과 사후 세계에서 교류를 나누었다.

무려 2천 년을 그렇게 지내는 동안 많은 것을 들어서 아는 게 제법 많았다.

“아, 그럼 커피에 대해서는 알고 있는 거네요?”

“듣기는 했지…….”

“이 커피가 살아나서 처음 마시는 음식이라고 할 수 있는 거네요.”

“음식이라.”

사후 세계에 2천 년을 있었던 항우에게는 음식이란 말 자체가 참으로 낯설었다.

손에 든 거무튀튀한 커피도 실물은 처음 봤다.

“…따뜻한 차는 없나?”

“이게 차잖아요.”

“아니, 서양식 말고. 그리고 내가 먹던 차는 항상 따뜻했다.”

“의외로 까칠하시네.”

고대 시대에는 술도 뜨겁게 데워 먹었기에 차가운 커피는 영 낯설었다.

“그냥 먹어 봐요. 일부러 달콤한 커피로 가져왔다고요.”

“…그러지.”

마지못해 커피를 받은 항우는 빨대가 영 신경 쓰였다.

왠지 서초패왕이라 불리던 자신이 빨대로 쭉 빨아 먹는 건 채신머리가 없다고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아하, 그게 좀 어색하구나.”

눈치 빠른 이소민이 얼른 저쪽에 있는 에어리스를 불렀다.

“에어리스, 잠깐 와 봐!”

“네!”

얼른 달려온 에어리스가 마치 시범 조교처럼 빨대로 빨아 먹는 시범을 보였다.

쪼르륵.

“자, 이렇게 하면 되는 겁니다.”

“흐음…….”

이소민이 계속 쳐다보며 압박하기에 항우는 어쩔 수 없이 마시기로 했다.

쪼르륵.

빨대로 마시자 달콤한 향이 입가에 번져 갔다.

처음 느껴 보는 달착지근한 맛에 약간 어색하기도 했지만 이내 단맛에 매료되었다.

“으음, 생각보다 좋군.”

“그렇죠?”

“다음에는 따뜻한 걸로.”

“알겠어요.”

항우의 말을 들은 이소민은 표정이 점점 밝아졌다.

서초패왕이라 불릴 정도로 격정적이며 압도적인 무력을 앞세우던 맹장이었는데 의외로 섬세하고 독단적이지 않았다.

“생각했던 거와는 다르네요?”

“어떤 거 말이지?”

“서초패왕이라고 해서 굉장히 우락부락할 줄 알았거든요.”

항우의 외모는 미남형이었다.

검은 긴 머리에 평소에는 차가워도 전투에 들어가면 뜨겁게 불타오르는 눈동자를 가졌다.

패왕이라 불리던 사람답게 포부가 당당하니 가만히 있어도 느껴지는 매력이 있었다.

“과거의 일이다. 예전의 실수는 두고두고 곱씹으며 반성했지.”

예전의 항우와 지금의 항우는 달랐다.

그에게서 느껴지는 뜨거운 맹장의 기운과 차가운 용장의 기운이 모두 느껴졌다.

물론 은덕이 많은 덕장의 느낌까지는 아니었지만.

“천하를 건 싸움에서 나의 초나라가 망하고 한나라의 시대가 시작됐다. 그 한나라도 나중에 망해서 삼국 시대가 시작되었지.”

항우는 쓸쓸하게 자신의 뒷얘기를 읊어 나갔다.

에어리스와 이소민은 눈만 동그랗게 뜬 채로 항우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었다.

“천하라는 것은 영원하지 않았다. 그걸 사후 세계에서 지켜보며 어쩐지 많은 걸 느낄 수 있었지.”

쪼르륵.

에어리스와 이소민이 동시에 빨대로 쭉 커피를 빨아 마셨다.

“이소민 언니, 다음에는 바닐라 라떼로 먹어 볼게요.”

“그걸로 챙겨 줄게.”

관심 없다는 듯이 자기 말을 흘려서 들은 두 사람을 보면서 항우는 어이가 없었으나 이내 그러려니 마음먹었다.

‘지나간 과거일 뿐이었으니까.’

에어리스와 이소민이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항우 본인도 오랜만의 삶에서 느껴지는 여유를 잠시 누리기로 했다.

쪼르륵.

세 사람은 나란히 서서 커피를 함께 마셨다.

그 모습이 마치 전초전의 승리를 즐기는 가벼운 만찬처럼 보였다.

“평소라면 따뜻한 술 한 잔에 상다리가 휘어지도록 음식을 내왔을 건데…….”

“아직 끝난 싸움이 아니잖아요. 지금은 이걸로 만족하고 나중에 끝내주는 파티를 같이 즐기자고요.”

“하하, 기대하지.”

항우와 이소민은 가벼운 대화를 주고받으며 훗날을 기약했다.

커피를 마저 마신 에어리스는 잠시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봤다.

불어오는 바람이 주는 선선한 느낌을 간직했다.

항우가 입을 열었다.

“에어리스라고 그랬나?”

“아, 네.”

“그 커다란 대검이 인상적인데 남은 시간 동안에 서로 간단한 검술 대련이라도 할까?”

“네, 정말 감사해요.”

에어리스는 어깨에 멘 대검을 꺼내어 천하의 항우와 대련하기로 했다.

무신이라 불리던 자와 대련을 하게 되자 긴장감과 기대감이 동시에 들었다.

옆에서 지켜보던 이소민은 커피를 마저 마시고 자리에서 일어나 슬쩍 피했다.

“하하, 그럼 둘이서 수고하세요. 나는 아직 커피 배달이 남아서…….”

부서진 폐허와 관문 앞에서 에어리스와 항우가 검술 대련을 시작했다.

대검의 에어리스.

거대한 창의 항우.

두 사람이 맞붙자 사방에 거대한 충격파가 터져 나갔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요원들은 화려한 그들의 실력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에어리스의 검술은 서초패왕 항우를 상대로 전혀 물러섬이 없었다.

“모처럼 좋은 구경이군요.”

건너편 건물의 옥상에는 조커와 괴도가 함께 있었다.

그 둘은 잠시 쉬면서 전체적인 전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조커, 당신도 저 대련에 끼고 싶을 거 같은데요?”

“흥미는 있지만 괜히 끼어들었다가는 분위기를 깨는 거지.”

“아마 대련보다는 실전을 원해서? 그런 건가요?”

눈치 빠른 괴도가 조커의 진의를 바로 알아차렸다.

조커 역시 전투에 일가견이 있었기에 항우와의 대련이 탐나기는 했다.

하지만 본심은 전투에서 드러나는 법이다.

“조커, 당신은 목숨을 건 싸움을 원하는 스타일이죠. 아마 대련을 하다가 죽어라 싸우게 될까 봐 자제하는 건가요?”

“…….”

조커는 대답하지 않았다.

침묵은 긍정이라는 말이 있는데 조커에게 딱 들어맞는 관용 어구였다.

“과연 지력에서 유진하 다음가는 사람답다고 할까. 괴도로 있기에는 아까워.”

“흐음, 저는 그 유진하 다음간다는 그 표현이 영 마음에 안 드는군요.”

괴도와 조커는 악인들의 원정대부터 시작해서 결사대로 이어져 현재까지 함께한 멤버였다.

서로가 적이기도 하고 아군이기도 했는데 어느새 이렇게 편하게 얘기를 주고받을 관계가 되었다.

“유진하가 리더라서 그런 거겠지.”

조커는 순순히 인정했다.

유진하의 첫인상은 눈빛만 빛날 뿐 왜소하고 약해 보였다.

하지만 유진하는 총명하면서도 잠재력이 뛰어난 리더에 가까웠다.

특유의 지략과 한계를 넘어서는 전투를 벌여 가며 누구보다 빠르게 성장했으니까.

“모든 면에서 강해지고 있죠. 지략은 물론 전투력과 모두를 아우르는 리더십까지 말입니다.”

괴도는 유진하를 동료이자 라이벌, 리더로서 인정했다.

그래도 한 분야만큼은 그를 능가하고 싶었다.

“유진하만 강해지는 모습을 얌전히 지켜볼 생각은 없습니다.”

괴도는 손아귀에 코어 하나를 소환해서 들었다.

무한 동력원에 해당하는 코어는 괴도가 가진 새로운 힘이었다.

“플랜D는 여전히 저에게 맡겨졌습니다.”

“이제는 내가 살아났으니 거기까지 갈 일은 없을 거야.”

“후후, 그러다 또 죽을 수도 있습니다. 확신은 금물이죠.”

조커와 괴도는 가벼운 농담을 주고받으며 앞으로의 일전을 준비했다.

첫날 강렬했던 전초전이 마무리되고 지평선 너머로부터 밤이 서서히 찾아왔다.

* * *

“밤이 되었네요.”

밤하늘에 뜬 별을 보면서 유진하는 한마디를 중얼거렸다.

호텔 옥상은 예전과 달리 부서진 구석이 군데군데 남아 있었다.

전초전에서 거인들과 격전을 벌인 터라 충격파가 여기까지 퍼진 탓이었다.

“일단은 살아 있다는 거네.”

푸른 머리의 마스터는 밤바람을 맞이하면서 옥상에 나타났다.

약간 으슬으슬한 날씨 탓인지 팔짱을 끼고서도 온몸을 가늘게 떨던 마스터는 유진하의 곁에 다가왔다.

“오늘은 아슬아슬했어. 지켜보는데도 심장이 떨렸네.”

“…그러네요.”

1회전의 첫날.

상대 성운이 보낸 거인 한 명에게 전멸당할 뻔했다.

그들이 보낸 단 하나의 정찰병에게 정예 병력이 녹아 버릴 만한 위기를 경험한 것이다.

“13일이 남았어.”

“맞아요.”

1회전은 상대 성운과의 전멸전이었다.

우리가 살아남거나 상대라 멸망하거나.

잔혹한 결말만이 남는 전투였다.

한숨을 내쉬며 마스터는 오들오들 떨었다.

“전초전에서 3 대 0으로 우리가 앞서고 있어.”

“그것도 알고 있어요.”

첫 전투에서 얻은 이득이 있었다.

앞으로 이 점수를 유지만해도 우리는 이길 수 있었다.

“정찰병 거인 하나에 우리는 전력이라…….”

“앞으로 삭제는 그쪽도 정예로 오겠죠.”

정예 대 정예로 맞붙는다면 과연 우리에게 승산은 있을지 의문이 남았다.

앞으로의 전략은 선택 하나하나에 모두의 운명이 걸려있었다.

“2점을 어떻게 사용하느냐가 중요한 거죠.”

유진하는 본론으로 들어갔다.

“사후 세계에 영웅들을 모아 놓은 아이디어는 참 좋았어요.”

“아, 그래?”

유진하의 칭찬을 받자 마스터는 얼굴이 활짝 펴졌다.

지하의 사후 세계에 영웅들을 차곡차곡 모아 놓은 덕분에 이번 전투에서 극적인 희망을 가질 수 있었다.

마스터가 설계한 우리 공간은 의외로 세세한 점에서 정교한 구석이 많았다.

“성운전은 나도 알고 있었으니까. 처음 빅뱅으로 우주가 만들어지고 태양과 지구가 생성되었지 그리고 나는 생명체가 태어나기를 기다렸어.”

“수십억 년이네요, 마스터의 나이처럼?”

“윽!”

마스터는 나이 공격을 받자 잠시 멈칫했다가 이내 다시 할 말을 이어 갔다.

“언젠가는 지성이 있는 인간이 태어날 거고. 더 시간이 흘러 차원문도 연결될 거라고 생각했어.”

“성운전을 미리 대비한 거군요.”

“그래, 사후 세계를 미리 준비하지 않았다면 영웅들의 영혼은 우주 너머 허공을 헤매다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을 테니까.”

생존 의지를 이어 가지 못한 생명체는 혼자 외로이 우주를 헤매다 무의미한 공허함에 존재 가치를 잃고 사라진다.

죽은 자가 살아갈 의지를 갖는다니. 어떻게 보면 앞뒤가 맞지 않는 소리이긴 했다.

영혼은 정신체라서 스스로 무너지면 완전히 소멸하기에, 반드시 그들을 모아 두고 생존 의지를 주어야 했다.

‘언젠가 당신들의 힘이 필요하다.’

마스터는 그렇게 약속했고, 현재 그 말은 현실이 되었다.

“지하의 사후 세계에서 영혼들이 서로 생존 의지를 가지기를 바랐어.”

마스터의 생각은 정확했다.

덕분에 긴 세월을 버틴 이 공간은 신적인 존재들과 맞설 최소한의 인적 자원을 확보할 수 있었다.

“2점으로 소모해서 두 사람을 되살리겠어요.”

유진하는 마스터에게 귓속말로 누구를 살릴지 알려줬다.

한 사람은 서양.

나머지는 동양.

무장, 지장, 덕장 등등.

역사를 떨친 영웅 중에서 현재 가장 필요한 두 사람을 골랐다.

-획득한 2점을 사용해서 두 명을 부활시켰습니다.

어두운 밤하늘 아래에서 새롭게 부활한 두 사람이 별빛처럼 내려왔다.

한 명은 천년 제국의 성벽을 지은 황제였다.

다른 한 명은 전장의 바람까지 바꿀 수 있는 천재적 지략가.

두 사람이 부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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