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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을 활용하는 1000가지 방법-145화 (145/229)
  • 145화 섬멸전(1)

    성운전 1회전.

    상대 거인과의 첫 격돌에서 3점을 획득하여 전초전을 유리하게 마무리했다.

    망토를 휘날리며 나타난 항우.

    쌍단검을 움켜쥔 조커.

    빛의 오오라를 머금은 유진하.

    부활한 사람들은 전력의 핵심이 되었다.

    “진하!”

    멀리서 지켜보던 에어리스가 반가운 목소리로 불렀다.

    이곳에 침입한 거인들이 모두 사라지며 첫 전투가 승전으로 끝났으나, 부서진 건물과 잔해 속에서 살아남은 사람만이 존재했다.

    “에어리스…….”

    밝은 빛줄기를 머금으며 지표면에 내려온 유진하는 모두가 무사한 걸 확인하고 안도했다.

    “다행이야. 플랜A부터 D까지 계획대로 되었어.”

    유진하의 대전략.

    처음에 본인을 희생해서 1점을 얻어 내고 그 귀중한 1점을 활용해서 불리한 상황을 뒤집는다.

    1점부터 시작된 기적이었다.

    “모두가 무사해서 다행이야.”

    유진하는 비로소 환하게 웃었다.

    에어리스가 달려와서는 기쁨과 슬픔이 뒤섞인 눈망울로 바라봤다.

    “이거 기뻐해야 하는 건데. 아까 너무 슬프고 당황하던 터라 지금 어떻게 웃어야 할지 모르겠어요.”

    에어리스는 웃을 듯 울 듯 미묘한 표정이 되었고 이소민 역시 비슷한 얼굴이 되었다.

    “유진하, 이 녀석아. 그렇게 혼자서 놀라게 할 거면 미리 말이라도 해 주던가.”

    초전은 그야말로 지옥에 가까웠고 승산이 없는 싸움이었다.

    그래서 그 상황을 반전시킬 카드를 반드시 찾아야 했다.

    “죄송해요. 특수 룰을 듣자마자 전언으로 마스터와 전략을 주고받기 바빴거든요.”

    하늘에서 비가 한 방울씩 조금씩 내렸다.

    추적추적 내리는 빗줄기 속에서 모두가 들끓었던 마음을 서서히 진정시켰다.

    모든 것이 원래대로 돌아온 지금은 기쁨의 비로 받아들였다.

    “다들 믿어 줘서 고마워요.”

    유진하는 아련한 눈빛을 머금으며 잠시 그 자리에 있었다.

    전장의 먼지와 부서진 파편이 빗물에 씻기며 내려앉았다.

    “조금 시원해졌네요.”

    유진하는 빗방울을 맞으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아직 전투는 끝나지 않았고, 이 싸움은 전초전에 불과했다.

    저쪽 관문에서 넘어온 자는 거인 한 명에 불과했기에 진짜 전투는 이제부터가 시작이었다.

    “흠흠.”

    항우가 헛기침을 하면서 곁눈질로 분위기를 살폈다.

    세 사람이 모인 분위기에 끼어들기 어색했는지 서초패왕이라 불리던 그도 눈치를 봤다.

    “셋이서 그렇게 있으니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아니, 그런 거 아니에요.”

    유진하는 재빨리 에어리스와 이소민에게서 한 걸음 떨어졌다.

    “제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서 만났잖아요. 그래서 너무 다행이라고 여긴 거예요.”

    “그렇다고 해 두지.”

    커다란 몸집의 항우는 창을 움켜쥐고 있었는데 굳이 세 사람 사이에 끼지 않겠다는 듯이 물끄러미 떨어져서 바라볼 뿐이었다.

    “하여튼 날 다시 부활시켜 준 보답은 잊지 않으마.”

    “앞으로 큰 활약을 기대할게요.”

    우리 성운이 가진 인적 자원은 충분했다.

    마스터는 인간의 가능성을 믿고 자유롭게 성장할 수 있도록 기나긴 시간 동안 다른 성운의 간섭이나 침략을 막아 주었다.

    그 결과 뛰어난 영웅들이 탄생할 수 있었고 그들의 영혼을 사후 세계에 보관함으로 미래를 준비했다.

    “흐음, 확실히 대단한 전투력이시더군요.”

    백가면을 벗은 조커가 다가왔다.

    조커는 항우가 일격에 거인 넷을 갈라 버리는 그 실력을 똑똑히 지켜봤다.

    살아생전 괴물 같은 무력을 떨치며 세상에 이름을 드날린 항우는 사후 세계에서도 끝없이 수련한 괴물이었다.

    우리 성운이 가진 비장의 힘은 바로 이 ‘영웅’이라 불리는 인적 자원이었다.

    “자네들의 활약은 지켜봤네. 이 새로운 싸움에서 인류는 사용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다 사용해야 할 거야.”

    성운전은 이제 1회전이었다.

    그것도 전초전만 마무리된 상황이었고.

    게다가 성운전에 승리한다고 끝이 아니었다.

    성운전을 만든 신좌들을 처리하지 않으면 우승한다고 해도 제 2의 성운전에 참가하게 될 테니까.

    “하하, 그렇다면 일단 승전보는 나중이겠군.”

    항우는 크게 웃음을 터트리더니 거대한 몸집의 자신에 비해 훨씬 체구가 작은 유진하의 어깨를 쑥 끌어안았다.

    “이 작은 친구가 천재적인 책사였다니 미처 몰랐어. 덕분에 모두가 반격의 기회를 잡았다.”

    “아, 네. 감사합니다.”

    “마치 아부를 보는 듯 출중한 지략이었어. 앞으로도 잘 부탁하겠다.”

    서초패왕 항우가 우람한 덩치에 맞지 않게 세심한 격려를 해 주자 유진하는 얼떨떨한 표정이 되었다.

    범증은 항우의 가장 유명한 책사였고 아버지처럼 모시던 사람이었다.

    마지막에 사이가 틀어지며 범증을 버린 것이 항우를 초한쟁패에서 몰락하게 만들었다.

    “앞으로 어떻게 할 거냐?”

    항우가 묻자 유진하는 고심할 여지도 없다 듯이 다음 단계를 설명했다.

    “현재 스코어는 3 대 0이에요. 우리가 앞서고 있는 거죠.”

    “그렇지.”

    “승리 조건에는 상대 성운을 절멸시키는 것도 있지만, 1점만 앞서도 상대를 이길 수 있어요.”

    “점수제라…….”

    항우의 옆에서 팔짱을 끼고 지켜보던 조커도 귀를 기울였다.

    현재 우리 성운은 3점을 얻었으니 2점을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었다.

    “그럼 2점은 써도 된다는 건가.”

    “2명을 더 살릴 수 있다는 거군.”

    “맞아요.”

    특수 룰에 따라 조커와 항우, 유진하에 이어서 추가로 두 사람을 더 살릴 수 있었다.

    누구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다음 전투의 모습이 달라진다.

    “누구를 되살릴 거지?”

    “…….”

    유진하는 잠시 고민에 잠겼다.

    영웅급 인물들은 각자 대단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는데 사후 세계에 보냄으로 이를 분류할 수 있었다.

    영웅 중에는 무력이 뛰어난 전투형과 전략이 출중한 두뇌형이 있었다.

    전투형과 두뇌형 외에 아군의 힘을 올려 주는 지원형, 함정에 능숙한 모략형도 있었기에 현재 가장 필요한 사람을 고심해서 선택해야 했다.

    유진하는 서두르지 않고 잠시 생각할 시간을 갖기로 했다.

    “전초전을 유리하게 끝냈기에 바로 역습을 갈 수도 있지만 저쪽에서 추가 공격이 오지 않고 있어요. 우리도 잠시 추스르면서 정비해도 괜찮을 거예요.”

    “그런가? 하지만 기세를 이어 완벽한 승리를 쟁취하는 것도 좋지.”

    항우는 온몸에 기운을 끌어올려서 전투 의지를 강렬하게 드러냈다.

    과연 무신.

    손에 거대한 창을 든 채로 <역발산기개세>를 발산하니 누가 덤비더라도 부숴 버릴 것 같은 기세가 느껴졌다.

    항우의 일화 중 3만으로 수십만을 깨 버린 거록대전과 팽성대전은 아직까지도 회자되고 있었다.

    전투가 벌어질 때 항우가 지휘하면 휘하 병력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다.

    <역발산기개세>

    본인의 무력은 최상으로 증가하며, 범위 내의 아군의 능력도 비약적으로 상승한다.

    무시무시한 위엄을 갖춘 항우의 기세 덕분에 모두가 힘을 갖추게 되었다.

    “역시 패왕다우시네요.”

    유진하가 최초로 선택한 인류 최강의 군신.

    단독 전투에서 그를 맞설 자는 많지 않았기에 거인과의 대전에서도 반드시 활약하리라고 여겼다.

    “기세를 이어 가도 좋지만 제가 생각한 계책이 있어요.”

    “흐음, 그래?”

    항우는 더는 고집을 부리지 않고 손에 든 거대한 창을 내려놓았다.

    창은 내려놓았으나 무장한 갑옷은 그대로 두어서 혹시나 모를 일에 대비하며 언제라도 싸울 태세를 유지했다.

    “범증의 말을 듣지 않고 결국 초한쟁패에서 패배했지. 이번에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

    전장은 단순히 무력만으로 이길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을 몰랐기에 항우는 범증을 버렸고 천하를 건 전쟁에서 패하고 말았다.

    아마 사후 세계에서 2천 년 동안 실패의 원인을 곱씹은 듯했다.

    “좋다, 천재 책사에게 작전을 맡기고 지금은 승리의 기쁨을 느끼도록 하지.”

    항우는 특유의 배포가 있었고 다시 살아난 이상 의욕적으로 삶을 즐기려는 듯했다.

    저만한 무력을 가진 사람이 동료로 있으니 든든했다.

    물론 지시를 잘 따를 때만 그럴 테지만.

    “상대가 들어와도 관문에서 올 테니까 괜찮아요.”

    유진하는 서두르지 않았다.

    전초전의 승리를 이어서 무리한 역습을 감행하기보다는 대비 태세를 갖추기로 했다.

    전장에는 유진하, 에어리스, 이소민을 비롯해 조커와 항우까지 모였다.

    “후우, 다행이다.”

    현장의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던 마스터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부활한 3명을 필두로 1회전의 전초전에서 불리했던 싸움을 극적으로 역전하여 승리했다.

    “사실 플랜D도 있었는데 거기까지는 안 갔다.”

    “그런가요?”

    괴도와 요원 D가 마스터를 호위하듯 같이 있었다.

    휘날리는 검은 망토를 두른 괴도는 사태를 지켜보고 있었다.

    실제로 유진하가 준비한 최후의 방안이 플랜D였는데 괴도가 주력으로 나서는 최후 전략이었다.

    다행히 그 단계를 쓸 최악의 상황으로 가지는 않았다.

    “1회전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저쪽은 겨우 거인 1명만 넘어왔을 뿐이죠.”

    괴도의 지적은 옳았다.

    저들은 겨우 한 명을 보냈을 뿐인데 우리는 최정예 병력이 모여서 가까스로 방어해 냈을 따름이었다.

    항우의 의견과 달리 유진하가 서두르지 않은 이유도 우리 쪽의 전력이 부족하다는 현실 때문이었고, 마스터도 같은 생각을 가졌다.

    “우리의 주력은 조커와 항우야. 유진하와 에어리스는 지원하는 정도고.”

    이기긴 했으나 여전히 상대 성운과의 전력 차는 상당했다.

    남은 14일 중에서 첫날 전초전을 시작한 정도이기에 주력전은 수일 내로 다시 벌어질 터였다.

    “다음 준비는 잘해야겠습니다.”

    D도 태도(太刀)를 손에 쥔 채 긴장한 눈빛으로 전선을 바라봤다.

    관문은 양쪽이 연결된 통로였다.

    1회전은 이 관문을 넘어가서 상대 성운을 공격하느냐 아니면 넘어오는 적을 막아 내느냐의 싸움이었다.

    현재 점수는 3:0

    전초전의 승리 덕분에 점수는 3점을 앞서고 있었고, 암담했던 때보다는 훨씬 나아진 상태였다.

    “빨리 재정비를 시작하자.”

    마스터는 모두에게 명령을 내렸다.

    전투태세를 다시 가다듬고 사망한 요원들을 수습하는 일이 남았으며 전선을 다시 복구해야 했다.

    D를 비롯한 요원들은 빠르게 현장에 합류해서 다음 전투를 대비하기 시작했다.

    그때, 마스터는 한 사람을 맞이했다.

    “유진하?”

    유진하가 빛의 오오라를 머금고 마스터에게 다가왔다.

    이번 전초전에서 자신을 희생시켜서 조커를 부활시키는 전략을 시도했다.

    목숨을 버리고 목숨을 얻는다.

    과감하면서 치명적인 전략이었고 덕분에 전초전의 승리를 쟁취했다.

    유진하의 전략이 가져온 승리였다.

    “우리는 녀석보다 3점을 앞서고 있어요. 우리가 관문을 넘어가는 것보다 여기서 방어하는 편이 훨씬 유리할 겁니다.”

    유진하는 다음 전략을 구상했다.

    본격적인 1회전의 승부는 이제부터 시작이었고 앞으로의 작전이 승패를 가를 터였다.

    “일단 2점을 사용해서 두 사람을 더 부르려고 해요.”

    “두 명을 더?”

    “꼭 필요한 사람이 있어요.”

    현재 3점을 확보했기에 2점을 사용해도 1점을 앞서는 상황이었다.

    유진하는 고심 끝에 2점을 소모해서 두 사람을 더 부활시키기로 결정했다.

    “누구를 원해?”

    마스터가 묻자 유진하는 차분한 얼굴로 그 두 명을 알려줬다.

    긴 세월 문명을 이뤄온 역사 중에서 가장 필요한 영웅이었다.

    승부의 향방을 바꿀 게임 체인저가 필요했다.

    “부활할 사람은…….”

    유진하는 두 사람의 이름을 하나씩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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