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4화 전초전(3)
-1점으로 사람을 살릴 수 있다.
그 규칙으로 부활한 거인 5명을 압도할 수 있는 최후의 희망이 될 자를 선택해야 했다.
마스터는 굳은 얼굴로 마침내 결정을 내렸는지 주먹을 굳게 쥐었다.
미리 염두에 두고 지정했던 한 사람이었다.
“…선택했다.”
-특수 룰이 발동되었습니다.
-획득한 1점을 사용해서 한 명을 부활시켰습니다.
반경의 도시는 이미 폐허에 가깝게 변해 버린 뒤였고, 거인들은 마치 세계를 멸망시키려는 사도처럼 울부짖었다.
두렵고 공포가 담긴 괴성이 사방을 지배하고 있었다.
그 순간.
한 사람의 목소리가 마치 고함을 가르듯이 짧게 들렸다.
“나를 살렸군.”
특유의 차분하면서도 내려앉은 목소리가 모두의 귓가에 들려왔다.
그는 이미 전투 장소에 나타났는데 아무도 그의 위치를 찾지 못했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면 에어리스는 멀리 보이는 저편을 향해 손가락을 가리켰다.
“저기에 있어요.”
에어리스의 손가락이 가리킨 곳은 거인의 어깨였고, 그곳에는 한 사람이 한쪽 무릎을 꿇고 쌍단검을 손에 쥔 채로 대기하고 있었다.
“당신은… 조커?!”
그랬다.
마스터가 살리기로 결정한 사람은 유진하가 아니라 조커였다.
플랜A가 유진하의 희생과 결전 병기의 가동으로 거인 1명과 승부를 결정짓는 목표였다면 플랜B는 조커의 부활을 시작점으로 잡았다.
“…유진하의 선택이었어.”
마스터는 이 결정을 내리면서도 끝까지 고민하고 번뇌하며 망설이다가 이내 결정을 내렸다.
전략을 수립한 유진하가 반드시 이렇게 하라고 했기에 그 말을 믿고 따랐다.
물론 고심에 고심을 거듭했지만.
“나를 살렸다는 거지.”
조커는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백가면을 다시 썼다.
가면에는 그림이 새겨졌는데, 기존의 피에로 문양에서 칼과 공을 가지고 양손 저글링을 하는 피에로의 형태로 바뀌었다.
“그럼 상대해 볼까.”
전투태세에 들어간 조커는 거인의 어깨에 있었다.
낯선 존재를 느낀 거인의 눈동자가 서서히 움직이더니 자신의 어깨에 올라간 조커를 발견했다.
마치 벌레가 하나 있다는 듯한 눈빛으로 조커를 바라봤다.
“결판을 내 볼까?”
조커는 손등에 새겨진 쌍단검의 문양을 발현했다.
붉은빛이 온몸을 휘감더니 서서히 단계를 높여 나갔고 매서운 기세로 거인의 어깨에 강렬한 아우라를 폭발시켰다.
죽음에서 돌아온 조커.
그는 이미 영원의 영역에서 한계를 넘어 고유 특성까지 깨달은 터였다.
관문의 문지기와 대결.
그 전투에서 죽기 직전에 발휘한 분신으로 자신의 특성을 개화했다.
<삶과 죽음의 경계선>
죽었으나 살아 있는 자라는 고유 특성을 얻었다.
“이거였구나.”
멀리서 벙커로 향하던 마스터는 조커가 발휘하는 아우라를 목격하고 유진하의 의도를 그제야 알아차렸다.
“현재 아우라까지 발휘할 수 있는 사람은 조커가 유일하니까.”
아직 유진하와 에어리스조차 도달하지 못한 경지였다.
거인과 일대일로 맞설 수 있는 아우라를 가진 조커가 플랜B에서 유일한 희망이었다.
“좋다. 받아 주지.”
죽음에서 돌아온 조커는 숨을 한 번 크게 내쉬더니 시원한 공기를 느끼면서 살아 있다는 감정을 느꼈다.
동시에 전장에서 느껴지는 자욱한 먼지와 파편, 긴장감도 입가에 빨아들였다.
“내 몫을 해야지.”
조커는 곧바로 자신을 노려보던 거인의 눈동자에 주목했다.
순식간에 달려들어 거인의 눈동자에 단검을 찔러 넣었다.
“크아아아악!”
불의의 일격으로 눈을 공격당한 거인은 고통스러운 듯이 고개를 휘청거렸다.
녀석의 자세가 무너진 틈에 조커는 잠시 공중에 떴다.
“우리를 우습게 봤다면 대가는 죽음으로 받아 가지.”
거인 역시 <하늘을 가린 태산의 기세> 아우라를 발현했으나, 조커도 이미 같은 경지의 아우라에 도달한 상태였다.
매서운 눈매를 머금은 조커에게 비틀거리는 거인의 자세가 먹잇감처럼 보였다.
콰악!
조커는 거인의 심장 부근에 칼날을 박아 버렸다.
“크아아아아!!”
거인이 더 고통스럽게 울부짖었으나 조커의 귓가에는 아무런 감흥조차 남지 않았다.
녀석의 심장을 찌른 후에 조커는 몸을 빙글 돌리면서 아크로바틱한 피에로 공연가처럼 움직였다.
거인이 가공할 괴물이라면 천부적인 전투 센스를 가진 조커 역시 괴수에 가까웠다.
<삶과 죽음의 경계선>
이 특성은 완벽한 분신을 소환하는 능력이었다.
물론 키리나의 단검이 있어서 분신 능력을 예전부터 활용할 수 있었으나 아우라 능력은 차원이 달랐다.
일단 아우라 특성을 개방하면 오오라가 강해지며 힘과 속력이 급상승한다.
심지어 자신만의 업적에 도달한 자격으로 새로운 특성이 개화되는데, <삶과 죽음의 경계선>은 완전한 분신을 소환하는 힘을 지녔다.
-본체와 분신이 동급화된다.
본체과 분신이 같은 존재가 된다는 소리였다.
예전에는 본체가 죽으면 분신이 3일 안에 사라지고 말았는데 이제는 같은 존재가 되었다.
본체와 분신의 동일화.
본체가 분신이고, 분신이 본체이다.
거인의 심장을 꿰뚫은 조커는 분신을 발휘했다.
갓 소환된 분신은 비틀거리는 거인을 향해서 단검을 내밀어서 거인의 목덜미를 잘라 버렸다.
-1점을 획득하였습니다.
조커는 분신과 함께 지면에 내려와서 목이 잘려 쓰러져 가는 거인을 바라봤다.
영원의 영역.
특성 개화.
<삶과 죽음의 경계선>은 본체와 동일한 분신을 소환하는 능력이었기에 1인이 아니라 2인이 되는 효과를 얻는다.
‘즉, 조커를 살리면 한 사람이 아니라 두 사람을 살리는 것과 같다.’
유진하는 이 사실을 알고 플랜B에서 자신보다 조커를 먼저 부활시키라고 요청했다.
거인 하나를 단숨에 고꾸라뜨리는 조커의 전투력을 보면서 마스터는 감탄의 탄성과 동시에 서늘한 긴장감을 느꼈다.
“강해. 그래서 위험한 거고…….”
전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한 명의 거인을 쓰러뜨렸으나 아직 거인 4명이 남아 있었다.
“흐음.”
조커가 분신체와 함께 가공할 위력을 뿜어냈음에도, 상대 거인 4명은 당황하지 않고 조커를 상대했다.
거인들은 제대로 호흡을 맞추어서 조커를 상대로 무수한 주먹질을 지면에 내리꽂았다.
콰과과광!
엄청난 파열음과 진동파가 파멸적인 위력을 발휘했다.
여덟 개의 팔이 내리찍는 연계에 조커와 분신체는 회피에 급급했다.
“4대2는 확실히 불리하군.”
백가면을 쓴 조커는 지면을 아예 가루로 만들어 버리는 거인들의 연타를 가까스로 피해 갔다.
하지만 그때였다.
-획득한 1점을 사용해서 한 명을 부활시켰습니다.
마스터는 방금 조커가 거인 한 명을 죽여서 얻은 1점을 다시 소모했다.
첫 번째로 조커를 살려 냈다면 두 번째로 살리는 사람 역시 대단히 중요했다.
“플랜C…….”
마스터는 다음 계획을 떠올렸다.
이번에 살릴 사람 역시 유진하가 미리 결정했는데 마스터조차 전혀 예상치 못한 자였다.
-특수 룰.
1점마다 소속된 성운의 이성체를 하나 살릴 수 있습니다.
“성운의 이성체…….”
이 조건은 굉장히 광범위했다.
성운의 이성체를 살릴 수 있다는 조건인데 성운에 소속만 되어 있다면 부활에 대한 별다른 제한이 없었다.
범위와 한계가 불분명한.
사실상 무제한 부활이었다.
“지금 선택할 사람은…….”
마스터는 이미 유진하에게 다음 전략도 들은 터였다.
성운전은 해당 공간이 가진 모든 전력과 자원을 쏟아부어서 싸우는 전면전이었다.
국가의 생산력과 인구, 자원까지 모두 발휘하는 총력전 개념과 비슷했다.
“우리가 가진 역사적인 인적 자원을 살려 낼 수 있다.”
마스터는 부활자를 선택했다.
그는 이미 거인들의 전장에 다시 나타났다.
하늘에는 갑옷을 챙겨 입고 거대한 창을 손에 든 자가 있었다.
바람결에 망토를 휘날리며 역사상 최강의 무용을 가진 무장을 소환했다.
“항우…….”
패왕의 명칭을 받은 최초의 인물.
그의 무력은 동서양을 통틀어도 손에 꼽을 정도였다.
마스터 역시 서초패왕이라 불리던 항우의 능력을 눈앞에서 직접 목격한 적이 있었다.
초나라와 한나라가 천하의 주인을 가리고자 중원의 전쟁을 벌이던 때였다.
기원전 206년에 초한쟁패 시절에 항우는 무신으로 역사에 이름을 남겼다.
“…다시 전장인가.”
항우는 30대 초반의 젊은 나이로 부활했다.
우리 성운은 긴 역사만큼 수많은 영웅들을 배출한 저력이 있었다.
인간들은 자유롭게 행동했기에 그만큼 서로 간에 다툼이 있어 전쟁이 항상 따랐다.
덕분에 기라성 같은 전쟁 영웅들이 즐비할 수 있었고.
“거인들과의 성운전이라…….”
서초패왕 항우는 이미 자세한 상황을 알고 있었다.
지성체란 육신과 영혼이 함께 있는 존재였는데, 죽은 자는 영혼이 사후 세계로 넘어가서 현실로 돌아올 수 없었다.
마스터가 최초에 설계한 우리 공간의 법칙이었다.
“언젠가 미래를 위해서 인적 자원인 영혼을 모아 둔 거지. 이런 날이 오지 않고 평안해지기를 바랐지만 말이야.”
푸른 머리를 휘날리던 마스터는 팔짱을 낀 채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죽은 자의 영혼을 모아 둔 사후 세계는 당연히 인간들이 알 수 없는 지하에 위치했다.
사후 세계가 지하 세계라 불린 이유였다.
인간들은 아무도 모르도록 몰래 깊은 지하에 숨겨 놨는데, 눈치 빠른 유진하가 이미 알아차리고 마스터에게 죽은 영웅의 부활을 요청했다.
플랜 C였다.
“대단한 녀석이야.”
마스터는 세상을 결코 만만하게 만들지 않았다.
훗날의 성운전을 예상하고 인적 자원을 낭비하지 않기 위해, 훌륭한 영웅들의 영혼을 사후 세계라는 체계를 만들어 모아 두고 있었다.
물론 영혼이 된 이들은 영웅급 영혼답게 사후 세계에서도 스스로 전투와 전략에서 극적인 발전을 거쳐 왔다.
항우를 비롯해 유명한 영웅들은 지하의 사후 세계에서 서로 함께 단련해 왔고 실력을 갈고닦았다.
“첫 성운전의 상대가 거인인가.”
항우는 큰 키에 검은 머리를 휘날렸고 외모는 미남에 가까웠다.
차가운 눈빛과 날렵한 콧등 그리고 굳게 다문 입술은 그의 성격을 알 수 있게 했다.
“오랜만에 살아서 맞이하는 전투로군.”
항우는 옆에 있는 창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마스터와 공간의 운명을 비롯해 그 후에 벌어지는 성운전의 결전까지 사후 세계에서 지켜봤기에 상황을 알고 있었다.
“흐으읍!”
항우의 전신에 강렬한 아우라가 퍼져 나갔다.
세상에 널리 알려진 그 힘은 강렬한 기세가 되어 하늘을 뒤덮어 갔다.
<역발산기개세>
힘은 산을 뽑을 만하고 기운은 세상을 덮을 만하다.
항우의 아우라는 영원의 영역에서도 최정상급에 해당하는 파괴력을 가졌다.
무신이라 불리던 서초패왕 항우.
<역발산기개세>의 특성을 발휘하여 하늘에서 단 한 번의 일격을 내려쳤다.
시공간을 갈라 버리는 위력이었다.
단 한 번의 일격에 찍힌 4명의 거인은 순식간에 갈라지고 가루가 되어 사라졌다.
쿠구구구궁.
엄청난 파열음이 터져 나가면서 지면에는 강렬한 기세가 퍼졌다.
그곳에는 창을 쥔 항우가 혼자 고고한 자세로 서 있었다.
“역시 대단하구나.”
마스터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항우 같은 영웅은 비장의 무기와도 같았다.
아끼던 그들을 꺼내어 성운전에 들어선이상 더는 물러날 수 없었다.
살아남기 위해서.
마스터가 구상한 세계와 유진하가 기획한 전략이 시너지를 발휘했다.
-4점을 획득했습니다.
우리 공간에 쳐들어온 거인들을 모조리 궤멸했다.
선발대로 보낸 거인 덕분에 인간들은 충분한 점수를 얻었다.
4 대 0
유리하게 앞서 나가고 있는 상황에서 마스터는 1점을 다시 소모했다.
-특수 룰이 발동되었습니다.
-획득한 1점을 사용해서 한 명을 부활시켰습니다.
이번에 선택한 사람은 기다렸던 그였다.
광활한 빛을 머금고 등장한 인물.
이 모든 작전을 구상하고 위기의 상황을 뒤집어 반전시킨 전략가.
최고 수준의 지략가로 성장한 자.
오색찬란한 빛을 머금으며 나타난 부활자는 유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