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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을 활용하는 1000가지 방법-142화 (142/229)

142화 전초전(1)

모두의 머릿속에 진동처럼 커다란 목소리가 들렸다.

마치 절대 벗어날 수 없는 굴레처럼 세뇌하듯이 진중한 음성이었다.

-첫 번째 시험. 1회전.

-당신들은 <성운전>에 최초로 진입한 신생 성운입니다.

당신들은 아직 증명되지 않은 미지의 세력에 불과합니다.

이제 첫선을 보이는 당신들은 최초의 공간전에서 두각을 드러내야 합니다.

생존을 위해서.

살아남기 위해서.

자신들의 가치를 증명하십시오.

-성공 목표.

상대 성운도 당신들과 같은 운명입니다.

성운끼리 대결을 벌여 살아남으십시오.

-규칙.

상대의 이성체를 죽이면 플러스 점수를 얻습니다.

한 명당 1점을 획득합니다.

종료 시점 높은 점수를 얻은 쪽이나, 상대 성운을 절멸시키는 쪽이 승리합니다.

-특수 룰.

획득한 1점으로 자신이 소속된 성운의 이성체를 한 명 살릴 수 있습니다.

-제한 시간.

14일.

-보상.

생존자 전원에게 업적이 내려집니다.

-패배.

1회전에서 패배한 성운은 소멸합니다.

똑같은 과제가 모두에게 전달되었다.

다들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성운전>에 대한 안내를 듣자 낯빛이 새파랗게 변해 버렸다.

이미 1회전은 시작됐다.

“이게 시험인가?”

열린 관문에서 광활한 빛이 발휘되더니 거대한 존재가 서서히 형체를 드러냈다.

최고층 빌딩만큼 거대한 크기의 육체를 가진 존재가 팔다리를 드러내며 나타났다.

거인이었다.

“이게 우리의 상대?!”

유진하는 관문에서 나타난 거인을 확인하고 그가 발휘하는 아우라를 느꼈다.

오오라를 넘어선 아우라.

이것은 레벨6 영원의 영역을 넘어 고유 특성까지 개화한 단계였다.

유성하의 고유 특성.

<회귀의 굴레에 들어선 자>

레다의 고유 특성.

<별자리에서 태어난 자>

유진하와 에어리스를 비롯해 저 단계에 도달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유일한 한 명이 있었다.

죽으면서 분신을 발동시켜서 <삶과 죽음의 경계선>을 깨달은 조커였다.

하지만 조커는 죽었고 이 자리에 없었다.

“물러서요!”

유진하는 빛을 전신에 모아서 거인에게 다가갔다.

이 싸움을 이기려면 상대 성운을 절멸시키거나 상대 성운보다 높은 점수를 얻어야 했다.

문제는 규칙이었다.

-상대의 이성체를 죽이면 플러스 점수를 얻습니다.

-한 명당 1점.

-획득한 1점으로 자신이 속한 성운의 이성체를 하나 살릴 수 있습니다.

죽은 자를 살릴 수 있다는 규칙이었다.

저쪽 성운은 거인 1명을 보냈고, 우리는 1000명의 정예 병력을 배치했다.

만약에 거인이 인간 1000명을 모두 죽인다면?

녀석은 1000점을 얻게 되고 순식간에 1000명의 거인을 되살려서 등장시킬 수 있다.

‘우리가 병력을 잃을수록 저쪽은 숫자가 늘어난다.’

1회전의 규칙은 숫자가 많은 편이 불리했다.

우리 인구는 수십억이 넘으니 모두 전멸해 버리면 상대는 그만큼 인구를 회복할 것이다.

-병력을 헛되이 잃으면 크게 불리해진다.

-정예로만 싸워야 한다.

상대 성운에서 겨우 한 명의 거인을 보낸 것도 이런 이유일 터이다.

저 거인은 우리 공간의 실력을 떠보기 위한 정찰대가 분명했다.

“전원 물러나세요.”

유진하는 작전을 바꿔서 1000명의 병력을 물리기로 했다.

무의미한 희생은 적들의 숫자가 늘어나는 결과로 되돌아온다.

즉, 에어리스와 이소민 같은 결사대 최정예 소수 인원이 주축이 되어서 싸워야 했다.

“그렇다면…….”

전신에 빛의 오오라를 모은 유진하는 요원들이 안전지대로 퇴각할 때까지 시간을 벌어 주기로 했다.

레벨6 영원의 영역에 도달한 유진하는 빛의 속도를 머금어 섬광처럼 거인의 온몸을 몰아쳤다.

광속으로 치솟은 빛줄기가 거인을 농락하듯이 공략을 시작했다.

‘속도에서 앞선다.’

유진하는 혼자서 거인과 격돌했다.

상대는 한 명이고 정찰대에 불과했기에 인간들에게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크크크.”

거인은 사방에서 몰아치는 빛의 오오라를 가만히 내려다봤다.

그저 반딧불이가 돌격하는 수준에 불과하다는 듯이 가소롭다는 미소와 함께 커다란 주먹을 움켜쥐었다.

일격.

단 한 번 주먹으로 내리쳤다.

쿠웅!

가공할 파괴력이 대지를 뭉개 버리듯이 부쉈다.

빛에 휩싸여 날아가는 유진하였지만 반경에 퍼지는 충격파 자체를 받아 낼 수는 없었다.

결국 사방의 대지를 완전히 날려 버리는 위력에 휩쓸리고 말았다.

쿠구궁!

마치 운석이 내리치는 듯한 위력이 퍼지자 누구도 제대로 서 있지 못했다.

다들 정신이 뒤흔들리는 충격을 받았고, 거대한 진동이 오래도록 몸에 맴돌았다.

이 일격으로 인간들의 정예 병력은 대다수가 전의를 잃었다.

“진하!”

대검으로 충격파를 막던 에어리스가 크게 소리쳤다.

부서진 파편과 먼지가 완전히 시야를 가리는 바람에 유진하의 자취가 보이지 않았다.

“에어리스! 아직 끝난 거 아니야!”

이소민이 크게 소리쳤다.

동시에 2파가 다시 몰아쳤다.

마치 거대한 핵 폭격처럼 진동파는 연이어 터져 나왔고, 남아 있는 사람들은 자신의 오오라를 집중시켜서 방어해야 했다.

“크윽!”

심장에 이식한 코어를 동력으로 삼은 이소민은 그동안 에너지 운용을 연습했고 큰 진전을 보여 왔다.

레벨5 초월화 단계에서는 능숙하게 적응할 수 있을 정도로.

“저기!”

2파의 충격파가 불어와서 파편들을 일순간 날려 버리자 두 사람의 눈에 쓰러진 무언가 보였다.

유진하였다.

“진하!”

에어리스가 서둘러 달려와 유진하의 상태를 살폈다.

거인의 일격을 가장 가까이서 맞은 터라 충격을 크게 입었다.

온몸에 타박상을 입고 나뒹굴었지만 다행히 숨을 쉬고 있었다.

“다행이에요.”

에어리스가 안도하려는 즈음.

일격을 날린 거인이 크게 포효하고 있었다.

그 음성은 마치 짐승과도 같았고 이성체라고 볼 수 없을 만한 굉음이 하늘에서 울려 퍼졌다.

“쳇! 저게 우리를 얕보는 건가?”

이소민은 본능적으로 거인의 행동에 대해서 위화감을 느꼈다.

정말 긴장되는 승부였다면 녀석도 최선을 다할 터인데 주먹을 내리친 후에 승리를 향한 포효를 토해냈다.

그것도 이미 이긴 것처럼.

혼자 관문을 넘어왔음에도 인간을 보면서 약하다고 여기는 게 분명했다.

“혼자서 충분히 우리를 이길 수 있다는 거냐…….”

거인의 함성은 아무도 막지 못했다.

모두가 기겁한 채로 저 괴이한 공포가 지나가기를 기다릴 따름이었다.

“크으으으.”

기세를 올린 거인은 한 발자국을 내디뎠다.

그가 내미는 한 걸음은 멸망으로 가는 계단과 비슷했고 아무도 막지 못했다.

거인이 웃었다.

녀석의 아우라는 이미 영원의 영역에서 하나의 고유 특성에 들어선 증표를 발휘했다.

<하늘을 가린 태산의 기세>

몸집만큼 강해지는 특성.

자신의 무게와 완력에 비례해서 위력을 폭발적으로 증강시키는 능력이었다.

녀석은 우리의 공간을 지배하려는 듯이 우렁찬 함성으로 공간을 물들이고 있었다.

‘형은 이런 결과를 예측해서 그렇게 말했던 걸까?’

유진하는 비틀거리면서 자세를 추슬렀다.

유성하가 관문을 열지 말라고 경고하면서 말했던 한 달 뒤의 성운전부터는 전멸할 수도 있다는 것이 떠올랐다.

<회귀의 굴레에 들어선 자>

회귀자였던 형은 이 과정을 전부 알고 있었으리라.

유성하는 헤어지기 직전까지 유진하의 가정 교사를 자청했고, 호신용 단검술을 가르쳐 주거나 강해지는 방법을 가르쳤다.

<던전을 활용하는 1000가지 방법.>

항상 외우라고 강요했던 그 책에는 비밀이 숨겨져 있었다.

그 비밀은 출판된 1권이 완결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던전을 활용하는 1000가지 방법.

저자 유성하.

1권의 부제는 <던전에서 살아남는 법>

2권의 부제는 <성운전에서 살아남는 법>.

“전부 외워라.”

유성하는 유진하에게 책의 모든 내용을 외우라고 시켰다.

1권에는 형이 실제로 겪은 위급한 사례가 나열되어 있었고, 그에 대한 대처법을 적어 놔서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공략전의 정석으로 평가받는 명작이었다.

2권은 숨겨진 책이었다.

유성하가 그동안 겪은 모든 회귀의 과정을 기록한 회고록일 터였다.

그 책은 누구에게도 주지 않았다.

유진하에게도…….

‘왜 주지 않았을까.’

그 이유는 알지 못했다.

회귀자가 된 대가로 유성하는 끝없이 자신의 흔적과 싸우는 굴레에 빠져 버렸다.

영원한 싸움이었다.

2권을 주었다면 더 순조롭게 유진하가 성장하지 않았을까.

에어리스 역시 강해지는 길을 더 빨리 깨우치지 않았을까.

“1회전에서 이렇게 궁지에 몰릴 걸 알면서도…….”

유성하는 알려 주지 않았다.

어째서 자신의 겪은, 어쩌면 미래일 수 있는 상황을 숨겼던 걸까.

그런 고민을 하기에 앞서 당장은 눈앞의 거인과 맞서야 했다.

“진하, 괜찮아요?”

“움직일 만 해.”

다행히 부상은 심각하지 않았다.

유진하는 에어리스에게 부축을 받아 자세를 추슬렀다.

한편, 공포에 빠진 요원들 중에서 M은 거인에 대한 정보 분석을 시작했다.

‘공격의 위력은 막강하나 빠르지 않다.’

‘고유 특성을 지닌 자.’

저 한 명의 거인이 인간들의 정예 병력을 압도하고도 남을 힘을 가졌다.

<하늘을 가린 태산의 기세>

무게와 완력에 따라 폭발적으로 증강하는 특성은 거인의 저 커다란 육체에 어울리는 시너지 효과였다.

저기에 버틸 힘은 우리에게 없었다.

“후우.”

유진하 말대로 병력을 대피시키지 않았다면, 벌써 희생자가 대거 나와서 성운전 규칙에 따라 그만큼 거인들의 수가 더 늘어났을 터였다.

“진하, 반격할 수 있을까요?”

에어리스도 상대와의 격차를 인식했다.

거인의 속도는 느린 편이지만 주먹에서 내리꽂는 광범위한 파괴력이 가공할 위력을 발휘했다.

빛의 오오라를 머금은 유진하조차 직격이 아닌 충격파만으로도 날아갈 지경이었다.

“기다려야 해.”

거인의 기세는 막강하나 정면에서 맞서기에는 불가능했다.

아직은 때가 아니었다.

형이 알려 주지 않은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을 터였다.

그렇기에…….

유진하는 자신의 판단과 동료들의 힘을 믿기로 했다.

“지금은 첫 번째 성운전이고 이 전투는 시작에 불과해.”

“진하, 방법이 있을까요?”

“아직은 몰라. 하지만…….”

잠깐 말끝을 흐렸다.

모든 일에는 항상 미약하지만 가능성이 존재하고 아주 작은 실마리에서 타개책이 나오는 법이었다.

유진하는 성운전의 규칙을 머릿속에 다시 떠올렸다.

한 번 들었지만 전부 기억하고 있었다.

‘놓쳤던 부분이 있을까?’

처음부터 곰곰이 기억을 떠올리며 고심하던 유진하는 이내 한 가지 가능성을 떠올렸다.

“어쩌면 방법이 있을 수도…….”

“진하?”

에어리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고심에 잠긴 유진하는 하나의 문구에서 지금까지의 모든 세계관을 이해해 가기 시작했다.

“이 성운전이 세상을 관통하는 거대 흐름 중에 하나라면…….”

거인이 발산한 제3파가 다가왔다.

이소민과 에어리스는 오오라를 발휘하며 그 충격파를 받아 냈고, 그 틈에 유진하는 계속 자신의 생각을 이어 갔다.

“신화적이고 전설적인 공간들이 전부 모인 대우주적 성운이라면… 이것이 그들에게 하나의 여흥이자 게임이라면…….”

“진하, 녀석이 다가와요!”

거인은 유진하 일행이 버티는 모습을 발견하고 서서히 반응을 보였다.

이곳에서 그와 맞설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존재들이라는 걸 빠르게 깨달은 거였다.

“신적인 존재들이 있기에 그 이상한 제안이 있었던 거야.”

“네?”

에어리스는 고개를 돌려 유진하를 바라봤다.

이상한 제안?

유진하는 계속 떠오른 조각 같은 생각을 이어 갔다.

퍼즐 조각을 모아 하나의 거대한 그림을 맞추듯이.

생각의 조각이 모여 서서히 완성된 세계를 맞추어 갔다.

“우리에게 ‘복종’하라고 요구했던 이유도 반드시 있을 거야.”

유진하는 하나의 결론에 도달했다.

온몸의 오오라를 모아 마지막이라는 마음으로 빛의 힘을 발휘했다.

“녀석들이 하라는 대로 하면 안 되는 이유가 있을 거야. 형은 나에게 그걸 말하고 싶었던 거야.”

2권을 주지 않은 이유.

형은 유진하에게 다른 말을 하고 싶었던 거였다.

유진하가 눈빛을 빛냈다.

“게임의 규칙에서 이길 방법을 찾아내고 녀석들의 법칙을 깨뜨려야만 해. 그들에게 굴복하거나 복종하지 않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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