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을 활용하는 1000가지 방법-141화 (141/229)
  • 141화 굴레에 들어선 자(2)

    복귀한 후로 한 달이 흘렀다.

    복귀했을 때 차원문이 아닌 낯선 관문의 등장으로 정부 요원들은 비상이 걸렸었다.

    “후우, 숨 돌릴 틈도 없군.”

    사무실에 도착한 M은 중절모와 코트를 벗어 옷걸이에 걸어 두었다.

    현재 그는 전력 분석 담당으로 물론 보급과 장비 확보까지 전반적인 모든 것을 점검했다.

    겉옷을 벗은 M은 곧바로 컴퓨터 앞에 앉아 작업에 들어갔다.

    “저 관문이 열리면 생존이 걸린 승부가 시작된다는 건데…….”

    돌아온 유진하는 관문에 대한 정보를 알려 줬다.

    S등급 이상의 공간.

    다른 세상까지 신화와 전설이 알려질 정도로 위명을 떨치는 세계들이 다른 공간을 시험한다.

    “자만심에 빠진 신적인 존재들이 벌이는 게임이라는 거군.”

    저 높은 곳에 있는 신화적인 존재들은 복종을 원했다.

    S등급 이상의 공간을 가진 그들은 자신들을 신이라 일컫기도 했다.

    -우리에게 복종하고 따르라. 아니면 시험에 도전해서 승리하거나 소멸되고 말지니.

    신적인 존재들은 일종의 여흥이자 유희처럼 즐길 터였다.

    그들에게 얽힌 수많은 공간들은 시험을 통해 서로 협력하고 배신하면서, 최고의 자리로 올라가려는 게임을 벌일 것이고.

    시험에 도전하다 소멸하거나.

    그들에게 복종하기를.

    신적인 존재들은 둘 중 하나의 선택을 강요했다.

    “골치 아픈 일이군.”

    한숨이 나온 M은 잠시 하던 일을 멈추고 커피 한 잔을 따랐다.

    쪼르륵.

    뜨거운 물을 머그컵에 따랐다.

    알싸한 커피 향이 입가에 들어와서 피로감을 녹여 줬다.

    “시험이라…….”

    수없이 많은 공간들은 서로 필요에 따라 정복하거나 침탈당했다.

    마치 중세의 유럽처럼 힘의 논리로 이끌어지는 세계와 같았다.

    커피를 한 모금 마신 M은 창밖을 잠시 바라봤다.

    어쩌면 이곳에 곧 재앙이 찾아올 수도 있었다.

    “일단 해 보는 거지.”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아 보고서 작업에 들어갔다.

    키보드를 두드리는 손이 빠르게 움직였다.

    -전력 분석.

    전투력.

    M은 전투력 부분에서 큰 노력을 기울였으나 상황은 녹록지 않았다.

    “결사대 멤버가 최정예인데 많이 빠져 버렸어.”

    전투 팀에서 가장 강한 인원은 유진하, 에어리스, 조커였다.

    삼대장이라고 할 수 있는 그들이 핵심인데 조커가 죽어 버렸다.

    “에이스는 다른 공간에 갔고.”

    알카트로스 조직과 다른 공간으로 넘어간 에이스는 새로운 공간의 주인이 되어 독립했다.

    지원 요청을 했으나 그가 받아들일지는 미지수였다.

    “남은 멤버는… 괴도 알파와 이소민, 그리고 D와 J 자매, 간부 중에는 C정도…….”

    최대로 모아 봐도 이게 한계였다.

    전투가 가능한 병력을 모을 시간이 부족했다.

    “새로 뽑은 요원들이나 일반 프리랜서는 꽤 되지만 이들은 실전 경험이 부족하다.”

    그나마 문명이 발전한 덕분에 카드와 장비의 자체 생산이 가능해졌다.

    그걸로 무장하긴 했으나 경험이 부족하고 무기의 질도 아직은 떨어지는 편이었다.

    “후우.”

    한숨이 나오는 상황이었다.

    관문 너머에서 어떤 시험이 올지 모르나 생존이 걸린 과제라는 건 분명했다.

    결사대 멤버였던 조커와 에이스가 빠진 현재 전력은 솔직히 이전보다 약해졌다는 평가가 적절했다.

    ‘조커의 죽음은 큰 타격이었다.’

    유진하와 에어리스 두 명이 짊어진 부담은 상상 이상으로 컸다.

    M은 보고서의 마지막을 적지 않았다.

    솔직하게 적을 자신이 없었다.

    빈 커피 잔이 남았다.

    시간은 하염없이 부족했고 다가오는 그날이 서서히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 * *

    “여기서 만나네?”

    호텔 옥상의 로비에는 푸른 머리카락에, 어린 외모를 가진 마스터가 있었다.

    마스터가 편한 자세로 옥상 너머의 도시를 바라봤다.

    바로 옆에는 긴 생머리를 휘날리는 D가 태도를 든 채로 호위를 맡고 있었다.

    “유진하가 오려나?”

    “약속하면 지키는 녀석이니까요.”

    D는 차분하게 대답했다.

    “관문 너머의 세계가 열린다면 어떻게 될까?”

    “…….”

    마스터의 물음에 D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누구도 알지 못하는 미지의 영역이었기에 답을 말할 수가 없었다.

    과연 정답이 있을까.

    D는 머릿속에 떠오른 회의적인 생각을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제가 조금 늦었나요?”

    오색찬란한 빛이 화려하게 나타나며 양팔을 벌린 유진하가 하늘의 빛을 머금은 채 공중에서 내려왔다.

    “유진하, 딱 맞췄네.”

    “약속한 시간이잖아요.”

    “너는 어차피 빛의 속도로 움직이면 순식간이잖아. 금방 오겠지.”

    마스터는 장난스럽게 웃었다.

    빛은 초속 30만 킬로로, 1초에 지구를 7바퀴 반 돌 수 있다.

    유진하가 마음만 먹으면 순식간에 어디든지 도착할 수 있다는 거다.

    “한 달이 거의 다 됐네. 내일이면 관문이 열리려나?”

    “벌써 그렇게 되었네요.”

    “그건 그런데…….”

    빛나는 형체가 된 유진하는 똑바로 쳐다보기 힘들었다.

    마스터는 눈이 부셔서 팔을 들어 얼굴을 가렸다.

    “너무 밝아. 눈부셔.”

    “아, 그랬나요?”

    유진하가 전신에 감도는 빛을 거두려고 하자, 마스터가 두 손을 흔들며 만류했다.

    “괜찮아. 그렇게 빛나는 것도 좋은데 뭘.”

    나름의 대비책을 가지고 있었다.

    선글라스였다.

    “짜잔!”

    마스터와 D는 동시에 선글라스를 꼈다.

    이제 편하게 유진하를 바라볼 수 있었다.

    “유진하를 만나려면 필수 아이템이니까 당연히 준비했지.”

    “하하하.”

    유진하는 어색하게 웃었다.

    마스터와의 재회는 오랜만이었는데도 즐거운 기분이 들었다.

    이소민에 버금가는 활기참이 느껴져서 마음이 편했는데, 마스터와 D가 함께 선글라스를 낀 모습도 어딘가 우스꽝스러워서 괜스레 웃음이 나왔다.

    “이제 본론으로 들어갈까?”

    선글라스를 낀 마스터는 해맑게 웃었다.

    “이 싸움 우리에게 승산이 있어?”

    “…….”

    마스터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복종하거나 시험에 응하거나 하라고 그랬지.”

    “그래요.”

    “관문에 손을 대고 공간의 주인이 복종하겠다고 선언하면 그렇게 끝나는 거라고 그랬지.”

    “…….”

    유진하는 알고 있었다.

    마스터는 모두의 운명이 걸린 선택을 해야 했다.

    복종하면 산다.

    하지만 신적인 존재들에게 자유를 빼앗긴다.

    “승산은 알 수 없어요. 희생할 수도 있고요.”

    “그래?”

    “하지만 최선을 다할 생각이에요.”

    결과를 예단할 수 없는 승부였다.

    전략에서 피나는 준비를 했으나 시험은 만만치 않은 난관일 터였다.

    “형을 만났다고 들었어. 유성하라고 그랬지?”

    “네, 만났어요. 지금 얘기도 형이 알려 준 거고요.”

    유진하는 형과의 재회까지는 숨기지 않았다.

    형이 전한 말은 모두에게 전하는 경고였기에 마스터와 결사대 멤버들에게도 알려야 한다고 여겼다.

    다만, 모든 사실을 알리지는 않았다.

    형의 회귀 특성과 레다의 정체는 아직 알릴 때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마스터는 고심했다.

    “시험에 응하거나. 아니면 복종하거나… 그랬다는 거지.”

    공간의 주인은 대표가 되어 선택권을 가졌다.

    때문에 모든 사안을 검토하고 하나하나 해결해야 했다.

    “내일 관문이 열립니다.”

    관문이 열리는 날.

    시험이 시작하는 시점은 바로 내일이었다.

    “노력한 보람이 있으면 좋겠다.”

    마스터는 솔직한 마음을 토로했다.

    복종하지 않는다.

    시험에 도전하겠다고 선언했다.

    이 공간의 주인으로서 인간을 비롯한 생명체들이 진화하며 문명을 만들어 가는 과정을 즐겁게 지켜봤다.

    그런 나날이 이어지기를 바랐다.

    “전원 집결이야.”

    마침내 마스터는 총동원령을 내렸다.

    어쩌면 굉장히 넓은 세상에서 별의 부스러기가 될 수도 있는 결정이었다.

    그 긴장되는 하루.

    서서히 다가오는 멸망의 진혼곡을 승리의 찬가로 바꾸기로 했다.

    “싸워 보자.”

    마스터와 유진하, 그리고 D.

    옥상에 모인 세 사람은 도시의 풍경을 바라보며 지평선 너머까지 바라봤다.

    아름답게 뻗어나가는 세상을 본 그들은 결의를 다지기 시작했다.

    * * *

    지옥의 풍경이 새겨진 관문은 정부 요원들이 지키고 있었다.

    그래서 관문 근처에는 검은 양복과 선글라스를 입은 사람들만 있었고, 반경에 있는 일반 시민들은 이미 대피를 시킨 상태였다.

    복잡하고 정신없는 현장에서 살짝 떨어진 이소민은 벤치에 앉아 커피 한 잔을 손에 들고 마셨다.

    버릇처럼 커피 한 잔을 마시면서 마음을 가다듬는 중이었다.

    쪼르륵.

    빨대를 타고 넘어오는 커피 맛이 감미로웠다.

    “맛있다.”

    아이스커피를 마시던 이소민은 입안에 가득 향긋한 풍미를 머금었다.

    “이소민 언니는 여유가 있는 거 같아요.”

    에어리스도 빨대로 아이스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두 사람은 나란히 벤치에 앉아서 다가올 시험을 대비했다.

    “어떤 일이든지 반드시 이겨야지.”

    “그래야 해요.”

    두 사람은 유성하와 레다를 직접 만났다.

    앞으로 다가올 싸움의 스케일이 어느 수준인지도 목격했다.

    하늘과 대지가 뒤틀리는 결전 속에서 조커의 죽음도 보았다.

    그 생각만으로 아직까지 어깨가 파르르 떨릴 지경이었다.

    전멸 혹은 생존.

    관문이 열리면 모두에게 닥칠 운명은 격렬한 사투일 거라고 여겼다.

    에어리스는 벤치 옆에 세워둔 대검을 잠시 바라봤다.

    버스터 슬레이어Ⅱ.

    첫 여정을 함께한 대검과 운명을 가르는 사투를 벌이게 되었다.

    “진하…….”

    새로운 만남이 있을 때마다 중요한 변화를 맞이하곤 했다.

    유진하와의 첫 만남.

    쌍둥이 언니 레다와 첫 만남.

    이제는 새로운 흐름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다들 준비됐지?”

    유진하가 멀리서 걸어왔다.

    이번 작전의 핵심을 맡아서 모두를 이끌 리더였다.

    “이번 전투에서는 모두가 꼭 해내야 할 일이 있어.”

    유진하는 전략의 세세한 과정을 전부 살피느라 상당히 바빴다.

    바쁜 와중에도 멤버들의 배치와 새로 준비한 전략 무기를 세세하게 검토했다.

    앞으로 1시간이 남았다.

    관문이 열리면 시험이 바로 시작될 터였다.

    “하늘이 맑구나.”

    쪼르륵.

    커피를 마시던 이소민은 문득 고개를 들어 푸른 하늘을 바라봤다.

    잠시 후면 이곳에서 볼 수 없을 평온한 세상을 눈동자에 가득 담아 두고 싶었다.

    “자, 이제 준비됐어.”

    마시던 커피를 쓰레기통에 버린 이소민이 벤치에서 일어났다.

    그리곤 전투 의지를 강하게 다지면서 천천히 기세를 발휘했다.

    “이소민 누나, 지금 괜히 기운을 낭비할 필요 없어요.”

    “아아, 긴장한 거 아니야. 그냥 가볍게 연습하는 거라고.”

    이소민은 전혀 떨지 않으면서도 쾌활하게 웃었다.

    처음 유진하를 만났을 적만 해도 초보였던 그녀는 이제 아홉 명의 결사대의 멤버에 들어갈 만큼 성장했다.

    코어를 이식 받아 무한한 동력원까지 얻은 지금, 당당히 주요 전력으로 참가했다.

    “누나는 잘할 거라고 믿어요.”

    “나만 믿으라고. 걱정 하나도 안 해도 돼.”

    당당한 이소민을 본 유진하는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에어리스 역시 커피를 다 마시고 옆에 세워둔 대검을 들었다.

    “진하, 저도 최선을 다할게요.”

    “믿을게.”

    에어리스는 긴장한 눈빛을 머금었으면서도 전신은 이미 전투에 들어가듯이 기합이 들어갔다.

    너무 힘이 들어간 모습을 보이자 이소민이 에어리스의 등을 팡팡 쳐 주었다.

    “에어리스, 너무 기합이 들어갔잖아!”

    “아, 그런가요?”

    “힘을 팍팍 빼. 괜히 에너지 낭비하지 말고.”

    이소민은 에어리스의 팔다리를 연신 주물러주며 긴장감을 풀어 주려고 애썼다.

    “바쁘신 것 같은데 제가 도와드릴까요?”

    괴도 알파는 어느새 나타났다.

    대범하게 예고장을 보내서 경찰과 요원을 따돌리며 당당하게 귀중품을 훔치던 괴도였다.

    그는 항상 자신감이 넘쳤다.

    “괴도?”

    “마드모아젤 에어리스, 오랜만입니다.”

    “아아, 저는 좀…….”

    괴도의 말을 들은 에어리스는 부끄러워져서 얼굴이 붉어졌다.

    괴도 특유의 예의와 격식을 차린 말투가 왠지 좀 부끄러운 탓이었다.

    “제가 가벼운 마술을 보여 드리죠. 아직 시간이 남았으니까요.”

    하얀 가면으로 눈을 가린 괴도는 가벼운 마술을 선보였다.

    “하하.”

    화려한 손놀림 후 날아가는 비둘기를 보면서 이소민은 무안한 듯이 딱딱하게 웃으며 화답했다.

    괴도는 나름의 매너와 특유의 유머러스함으로 에어리스와 이소민에게 밝은 기운을 주었다.

    “에어리스, 우리도 준비하자.”

    “아, 네.”

    이소민이 에어리스의 손목을 잡아서 확 끌어갔다.

    나름 재밌게 하려고 노력했던 괴도는 혼자 남았고, 방금 하늘로 날아갔던 비둘기가 돌아와 어깨에 머물렀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두 사람은 제가 반드시 지킬 테니…….”

    괴도는 기사도를 가지고 있었다.

    앞으로 벌어질 이 시험에서도 자신의 태도와 자세를 지키려고 들었다.

    햇살이 내려오고 바람이 불어오며 긴장되는 한 시간이 지나갔다.

    쿠구궁!

    관문이 마침내 그 두꺼웠던 문을 좌우로 펼치듯이 열렸다.

    시험이 시작된다는 신호였다.

    아홉 명의 결사대 멤버 중 남은 사람들이 주축이 되어 시험에 맞서기로 했다.

    마침내 관문이 열렸고, 메시지가 모두에게 발송되었다.

    -당신은 복종하지 않는 선택을 했습니다.

    그 대가로 시험에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이 공간의 생존과 종말은 당신들의 실력과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최선의 결과와 최악의 결과. 둘 중 하나의 결과로 운명이 결정지어질 것입니다.

    ……

    -성운전의 첫 번째 시험이 시작됩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