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9화 관문의 저편(6)
에어리스는 쌍둥이처럼 닮은 그녀를 언니라고 불렀다.
이름은 레다.
유성하의 곁에 있는 그녀는… 유진하의 옆에 있는 자신과 모든 것이 닮았다.
“언니?”
온몸에 강한 오오라를 머금은 레다는 몸을 띄워 하늘로 높이 올라갔다.
“…….”
그녀는 에어리스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에어리스에게 전하지 못한 진심이 있었으나, 지금은 한가로이 이야기를 나눌 때가 아니었다.
곧 다가올 위기를 생각하면 1분 1초가 아쉬웠다.
“…아직 제대로 성장하지 못했어.”
“네?”
‘나는 당신이에요.’
그때, 레다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
쌍둥이라는 뜻이었을까.
레다는 에어리스가 얼마나 성장했는지 확인하려고 찾아온 거였다.
에어리스는 아직 완전한 기억을 되찾지 못했다.
오로지 레다를 통해서 자신의 기억을 하나씩 깨우쳐 가야 했다.
“당신은 내 언니가 맞나요?”
“…….”
짙은 눈꺼풀을 깜빡거리던 레다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의 눈망울에는 측은함과 연민의 감정이 있었다.
“우리는 쌍둥이자리에서 태어난 존재야.”
“쌍둥이자리?”
레다의 고유 특성이 개화됐다.
영원의 영역.
<별자리에서 탄생한 자>
여기서 의미하는 별자리는 쌍둥이자리를 뜻했다.
레다는 언니였고 에어리스보다 먼저 태어난 덕분에 <별자리에서 탄생한 자>라는 고유 특성을 얻었다.
“쌍둥이 별자리…….”
언니와 동생은 하나의 별자리에서 함께 태어난 운명이었다.
레다는 놀라운 소식을 전했다.
“어떤 기적이 있었고 우리는 거기서 태어났어.”
하늘에 떠오른 채로 양손을 가지런히 모은 레다는 금발의 머릿결을 휘날리며 아우라를 모아 갔다.
레다의 특성.
<별자리에서 태어난 자>가 발현되며 쌍둥이자리가 배후에 나타났다.
거대한 별자리의 형체가 아우라의 기운을 머금은 채로 하늘을 뒤덮으며 빛났다.
“저는…….”
에어리스는 고개를 들어 하늘에 있는 레다를 바라보며 한 손을 가슴 높이에 두었다.
몰아치는 바람 속에 금발의 머릿결이 어지러이 흔들렸다.
하늘에 뜬 레다는 별자리의 후광을 뒤에 둔 채 고고한 자세로 양팔을 벌렸다.
“시간이 없어. 지금 네가 도달하지 못한 경지가 있어.”
압도적인 아우라를 뿜어내는 레다였으나 여유로운 기색은 아니었다.
이곳에서 무언가 일어나고 있었다.
진동이 강하게 발산되었다.
엄청난 충격파로 인해 이소민은 비틀거렸고, 유진하는 겨우 자세를 바로잡았다.
건너편에 있는 유성하가 발휘하는 기운이 대지를 뒤흔든 것이다.
“형?”
흩날리는 머리카락 속에서 유성하의 눈빛이 유진하를 차분히 응시했다.
“쌍둥이 별자리에서 태어난 두 명 중 한 명을 너에게 맡긴 거다.”
에어리스와 레다.
유성하와 유진하.
넷은 서로 얽힌 운명이었다.
“에어리스를 맡겼다고?”
처음 듣는 충격적인 말에 유진하는 얼음처럼 굳어 버렸다.
형을 찾아 헤매다가 에어리스와 처음으로 만났던 날.
궤짝 속에 잠들어 있던 에어리스가 원래 형과 함께하던 전우이자 동료였다는 그 말.
오랜만에 만난 형은 중대한 사실을 알려 줬다.
‘쌍둥이 별자리에서 태어난 자.’
‘유성하와 유진하.’
마침내 진실이 알려졌다.
쿠궁.
갑자기 사방에서 진동이 발생했다.
아까와는 차원이 틀린 지표면 전체가 뒤틀리는 듯한 충격이 전해졌고,
하늘과 지면.
어디서든 원형의 송곳 자국처럼 시공간 차원이 뚫려 가는 모습이 펼쳐졌다.
동시다발적으로 셀 수 없이 많은 통로가 열리고 있었고, 무려 1000개가 넘는 차원문이 생성되었다.
“역시…….”
유성하는 짧은 한숨을 내쉬면서 중얼거렸다.
“내 특성의 부작용이다.”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유성하의 전신에서 기운이 발현됐다.
오오라를 초월한 그 기세는 아우라 형상이 되어 유성하의 배후에 나타났다.
영원의 영역.
<회귀의 굴레에 들어선 자>
유성하의 배후에 발현된 아우라는 무수한 톱니바퀴가 뒤얽힌 형상으로 나타났다.
톱니바퀴는 끼릭끼릭 움직이면서 아귀를 서로 맞춰 가거나 공전하듯이 주위를 빙빙 돌았다.
“이게 내 특성이다.”
“형의 특성?”
유진하는 반문했다.
형과의 재회가 너무나 반가웠으나 지금은 환영할 분위기가 아니었다.
쌍둥이자리의 에어리스와 레다.
두 사람과 형의 인연.
그리고 지금.
영원의 영역에서 형의 특성인 <회귀의 굴레에 들어선 자>까지.
뒤얽힌 넝쿨처럼 복잡하게 사건이 이어지고 있었다.
“저 차원문들은 3분 안에 열린다.”
형은 사방에서 뚫리는 차원문을 보면서 말을 재촉했다.
저 많은 차원 통로로 무언가 들어온다는 소리였다.
숙적?
아니면 침입자?
정체를 알 수 없었다.
“유진하, 똑똑히 들어라. 나는 마지막에 너를 보내고 죽지 않았다.”
유진하는 유성하와 함께 첫 번째 공략전을 나섰다.
그날이 모든 것의 시작이었다.
형은 <던전을 활용하는 1000가지 방법>이라는 책을 유진하에게 암기시켰고, 페이지가 너절해질 때까지 마르고 닳도록 외우고 나서야 참가할 수 있었다.
그렇게 기다렸던 첫 공략전에 나섰으나 그날의 여정은 곧 악몽이 되었다.
“괴물들의 함정에 빠졌고. 원정에 나온 형의 동료들도 전부 잃었어.”
잊고 싶은 기억이었다.
형은 자신을 희생시켜서 동생을 내보냈고, 유진하만 혼자서 살아 돌아왔다.
그날의 기억은 유진하에게 트라우마처럼 깊은 상처로 남아 수많은 던전을 헤매게 했다.
그런데 형이 죽은 것이 아니었다니.
“나는 괴물들 천지에서 처절한 혈전을 벌였다. 온몸이 부서지고 만신창이가 되었지만 나는 녀석들을 모두 처리하고 살아남았지.”
유진하는 형의 생사를 확인하려 모든 공간을 찾아 헤맸고 그렇게 1년을 보냈다.
재회할 날이 오리라고 믿어왔는데 결국 오늘 이렇게 맞이했다.
“가까스로 살아남았지만 나는 죽기 직전이었다. 기적이 없는 한, 그렇게 죽을 운명이었지.”
유성하는 차분한 눈빛을 머금은 채로 고개를 한 차례 끄덕였다.
형이 살아 있는 1년 동안 유진하가 수없는 공간을 찾아 헤맸듯이, 형도 지옥 같은 공간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으려고 애를 쓴 것이다.
“레다가 나를 구해 줬다.”
하늘에서 형형한 기세를 발휘하는 레다가 보였다.
배후에 별자리를 발현시킨 아우라가 여전히 강력한 기세로 하늘을 뒤덮고 있었다.
“레다는 쌍둥이였다. 에어리스라고 이름 붙인 그녀 역시 같이 있었지.”
에어리스는 자신을 일컫는 소리가 들리자 당황한 얼굴로 머뭇거렸다.
그렇게 찾고 싶었던 과거가 유진하의 형과 연결되었을 줄이야.
상상도 못한 일이었다.
“레다와 에어리스는 자신들을 별자리에서 탄생한 존재라고 밝혔다. 나는 반신반의했지만 그들의 말이 진실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유성하가 고개를 들어 하늘에 있는 레다를 쳐다봤다.
공중에 있는 레다 역시 가만히 아래를 내려다봤다.
잠시 짧은 침묵이 흘렀으나 그들에게 사연이 있음은 분명했다.
“레다는 내가 가진 특성이 필요하다고 그랬다.”
유진하는 바로 떠올렸다.
유성하의 특성은 스스로 알려 준 그것이었다.
영원의 영역.
<회귀의 굴레에 들어선 자>
“이 특성이 있으면 나는 언제라도 내가 존재하는 시간대에 되돌아갈 수 있다.”
유성하의 특성은 ‘회귀자’였다.
그 말을 듣자 유진하는 우리 공간의 주인인 마스터가 해 줬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사람은 가능성이 있다. 어떤 능력이든 성장할 잠재력이 있어.’
인간들은 각자 고유의 능력이 있고 그 능력을 개화시킬 잠재력이 존재했다.
그리고 그중에는 귀한 재능도 있었다.
<회귀의 굴레에 들어선 자>는 귀한 재능 중에서도 특별한 재능이었다.
“레다와 에어리스가 형의 특성을 원했다고?”
“그래.”
에어리스는 가만히 귀를 기울였다.
유진하와 유성하.
두 사람과의 과거는 곧 자신의 이야기이기도 했다.
“왜 그런 거지?”
“앞으로 벌어질 일 때문이다.”
유성하는 짧게 대답했다.
3분은 모든 얘기를 나누기에 부족한 시간이었다.
“유진하, 앞으로 우리 공간은 큰 시험을 맞이하게 된다.”
“시험?”
“관문이 생겼다는 건. 그 시작을 의미하지.”
유진하는 관문을 떠올렸다.
절대 열리지 않았던 그 관문은 새로운 시험을 위한 준비하는 과정이었고, 유성하는 이 시험을 잘 알고 있었다.
미리 알고 있다.
회귀자 특성이라면 시험의 내용도 알 수 있을 것이다.
“형은 이미 겪은 거구나. 회귀를 통해서…….”
“…그래.”
회귀자 특성을 보유한 유성하는 앞으로의 시험을 미리 알고 있었다.
모든 인간이 처하게 될 난관을 먼저 아는 거였다.
“그 시험은 우리보다 높은 세계에서 내리는 거다. 우리는 항상 패배했어.”
“…졌다는 건가요?”
“그래.”
유성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살아남은 사람은요?”
“…전멸이었다.”
유성하는 담담하게 얘기했다.
앞으로 벌어질 미래는 모두에게 종말이라는 현실만 있었다.
“레다는 그 결과를 막기 위해서 내가 가진 특성에 기대를 걸었어.”
“회귀군요.”
“그래, 다시 시간대를 되돌려서 처음부터 시작할 수도 있으니까.”
<회귀의 굴레에 들어선 자>
유성하의 특성은 실패에서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 낸다.
형은 그래서 회귀할 수밖에 없었던 거였다.
“레다는 앞으로 벌어질 시험을 통과하길 원했다.”
“통과한다는 건요?”
“살아남아서 가장 높은 곳에 도달하는 거지.”
이전에 마스터에게 듣기로는 S등급의 공간도 존재한다고 그랬다.
그곳은 신화로 알려진 세계였고, 그들의 이야기는 다른 공간까지 전해지고 있었다.
올림푸스와 아스가르드.
심지어 동양의 신화까지.
모두가 실존하고 존재했다.
‘모든 공간을 넘어서서 최고로 높은 자리에 닿는다.’
시험의 끝이 그러했다.
“신화 급의 존재들을 넘어서겠다는 거구나.”
유진하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것이 이 시험에 처한 모두가 겪은 운명이야.”
유성하는 차분하게 중얼거렸다.
형의 말을 이해한 유진하는 지금까지 벌인 공략전과 방어전이 저 최정상의 신화적인 존재들에게는 변방의 사소한 분쟁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결국 관문의 시험이야말로 모두가 앞으로 겪을 진정한 고난이었다.
“그들은 복종을 원한다. 아니면 시험에 도전하다가 결국 소멸하거나…….”
유성하는 감정을 싣지 않고 메마른 목소리로 대답했다.
수많은 공간의 소멸과 절망.
별의 부스러기처럼 사라져 가는 모든 존재를 보면서 형은 끝없이 시간을 돌려 회귀했을 터였다.
‘멸망을 막기 위해서.’
곳곳에 무수히 열리는 차원문의 개방 시간은 1분도 채 남지 않았다.
사태를 파악한 유진하가 크게 소리쳤다.
“그럼 지금까지는……”
“모조리 실패했다. 나는 계속 회귀하면서 시간을 되돌려야 했지.”
“…….”
회귀의 굴레에 빠진 형.
그것은 되돌아가는 시간의 감옥에 빠진 것이었다.
하지만…….
유성하는 아직 진정한 공포와 절망을 말하지 않았다.
이 싸움의 본질과 끝나지 않는 영원한 세상의 근원에 대해서…….
“진하…….”
옆에서 듣던 에어리스는 자신의 이야기를 원했다.
간절한 바람을 토로했다.
“저에 대해서도 알고 싶어요. 왜 저는 언니와 떨어져서 있었던 건가요? 왜 기억을 잃은 거죠?”
유성하와 레다가 힘을 합쳐서 시험을 통과한다는 이야기대로라면, 왜 에어리스 혼자 기억을 잃은 채로 궤짝 속에 갇혀 있어야 했을까.
왜 저들과 이별한 채로 기억을 잃어야 했을까.
그 대답은 쌍둥이 언니인 레다가 알고 있었지만 3분이 지났다.
레다는 짧게 말을 끊었다.
“이야기는 다음에…….”
“네?”
“지금 시작됐어.”
에어리스가 머뭇거릴 즈음.
아직 열려서는 안 되는 관문을 놔두고 무수한 차원문이 새롭게 생성되었다.
하늘과 땅이 비명을 지르듯이 무섭게 진동했다.
“열린다…….”
사방을 에워싼 차원문들이 서서히 열리기 시작했다.
유진하와 에어리스, 이소민은 잔뜩 긴장한 채로 다가올 위험을 인식했다.
“이게 내가 받은 회귀의 대가이자 결과물이다.”
유성하는 입술을 깨물었다.
무수한 차원문은 회귀자가 받는 대가이자 빚처럼 무거운 굴레였다.
아우라의 형체로 등장한 거대한 톱니바퀴가 마치 어깨를 짓누르는 듯한 제약이었다.
<회귀의 굴레에 들어선 자>
회귀 특성이 가진 제약과 대가.
그 모든 것들이 차원문들을 통해 밀물처럼 들어오고 있었다.
그것은 회귀자 자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