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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을 활용하는 1000가지 방법-137화 (137/229)
  • 137화 관문의 저편(4)

    영원의 영역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무한의 우주와도 같았다.

    “여기가 영원의 영역…….”

    조커는 혼자서 빈 공간에 있었다.

    이곳에 있는 수많은 성장의 갈림길 중에서 조커는 자신만이 도달할 수 있는 길에 도달했다.

    그것은 본체가 죽어서 분신이 남았을 적에 이뤄졌다.

    ‘본체는 죽었으나 분신체는 살아 있는 상태.’

    어린 시절부터 삶과 죽음의 사이에서 살아왔다.

    지금 그는 불완전한 죽음 상태였다.

    본체가 죽어서야 그는 진정으로 ‘살아 있지도 죽어 있지도 않은 자’가 되었다.

    발현 조건은 ‘불완전한 죽음’이었다.

    본체는 죽었으나 분신체가 살아 있기에 조건을 충족시켰다.

    영원의 영역.

    <삶과 죽음의 경계선>

    조커는 자신의 길을 찾았고 진정한 힘을 깨우쳤다.

    분신체만 남은 조커는 새로운 오오라를 느꼈다.

    이전과는 전혀 다른 기운이었는데 서서히 응축되더니 어떤 형태로 변해 갔다.

    “이건…….”

    짙은 보랏빛의 갈기처럼 원형으로 퍼져 나간 아우라가 몸에 감돌았다.

    “조커?”

    곁에서 지켜보던 에어리스와 이소민은 조커가 발휘하는 보랏빛 갈기의 아우라를 바라봤다.

    번쩍이면서 빛나는 창살 같은 기세가 뻗어 나갔는데, 분신 조커는 온몸에 오오라가 차오르는 듯한 격한 기운을 느꼈다.

    건너편 관문의 문지기가 발휘하는 오오라에 맞먹는 기세였다.

    저벅저벅.

    조커의 발걸음이 앞으로 나아갔다.

    거대한 낫을 어깨에 멘 문지기 역시 조커에 맞서듯이 걸어왔다.

    조커 대 문지기.

    <삶과 죽음의 경계선>

    유일무이한 수식언을 터득한 조커의 걸어가는 길마다 불길이 일렁이며, 아우라의 기세가 강하게 서렸다.

    “죽음으로서 도달했다.”

    분신체 조커는 양손에 든 단검을 들고 당당하게 다가왔다.

    순간적으로 다리에 힘을 주자 조커가 걷던 대지 주변이 일렁거렸다.

    그리고 땅이 무너지는 듯한 충격파가 터지면서 그 반동의 힘으로 달려들었다.

    쌍단검 대 거대 낫.

    조커와 문지기가 정면에서 격렬하게 맞붙었다.

    “우와아아아!”

    이소민은 두 팔을 들어 쏟아지는 충격파를 견뎌 냈다.

    에어리스도 대검을 들어 휘몰아치는 파편을 막아냈다.

    “엄청난 기세야.”

    조커가 발휘하는 힘은 이전과 다른 파괴력을 드러냈다.

    이소민이 보기에 과거보다 수십 배는 더 강력한 것 같았다.

    “저 둘한테 휩쓸렸다가는 뼈도 못 추리겠어.”

    “조심해야겠어요.”

    에어리스도 고개를 끄덕였다.

    조커와 문지기가 무아지경의 경지에서 싸우고 있었기에, 둘은 저 흐름에 휩싸이는 대신 멀리서 지켜볼 따름이었다.

    조커는 단검을 쉴 새 없이 휘두르며 문지기를 몰아붙였다.

    “다시 돌아왔나?”

    문지기는 거대 낫을 휘두르며 조커의 재등장을 경계했다.

    검은 눈동자 속에 있는 무수한 초점들이 조커를 살피려고 하나 이번에는 달랐다.

    조커는 상대의 능력을 눈치챘는지 문지기의 시야에 온전히 잡히지 않게 좌우로 계속 움직였다.

    “같은 수법은 통하지 않아.”

    문지기의 검은 눈동자는 원래 녀석의 것이 아니었다.

    만들어진 안구였다.

    -검은 눈의 시선.

    시야에 들어오는 상대의 행동을 3초 먼저 알 수 있다.

    미래시를 가진 눈이었다.

    이 눈이 있으면 상대의 움직임을 3초 먼저 읽을 수 있었다.

    1초로도 얼마든지 적의 목을 벨 수 있는 문지기에게 3초라는 시간은 천금과도 같았다.

    이 능력이 있기에 문지기는 어떤 적이라도 여유롭게 압도할 수 있었다.

    ‘시야에 걸리지 않는다.’

    이미 문지기와 하루 내내 겨뤘던 터라, 조커는 그의 눈에 있는 능력을 어렴풋이 눈치챘다.

    <삶과 죽음의 경계선>

    경지를 깨달은 지금은 전투력과 속력이 비약적으로 상승했다.

    그래서 문지기의 시야에서 벗어나며 공격할 수 있었다.

    카앙!

    쌍단검이 미친 듯이 흔들리며 문지기를 몰아쳤다.

    문지기는 거대 낫으로 그 위력을 받아 내다가 서서히 밀리기 시작했다.

    “죽은 자의 분신 주제에…….”

    문지기는 짧은 말을 토해 내며 분노를 느꼈다.

    삶과 죽음에 걸친 존재.

    완전한 소멸 상태로 보내 주어야 했다.

    <영겁의 세월을 지키는 자.>

    문지기가 중얼거렸다.

    조커는 순간적으로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마치 주문처럼 지껄인 문지기의 그 말 한마디에 분위기가 삽시간에 바뀌었다.

    문지기는 수십억 년을 사는 동안 관문을 지켜 왔고, 영원의 영역에서 자신만의 경지에 도달했다.

    파아아!

    문지기가 발산하는 오오라의 흐름이 바뀌면서, 검푸른 아우라가 창살처럼 삐죽 솟아올라 그를 둘러쌌다.

    조커가 발현한 보랏빛 아우라의 원형체에 맞서듯이 검푸른 아우라의 원형체가 문지기에 감돌았다.

    “이것이 나의 수식언이다.”

    <영겁의 세월을 지키는 자>

    더 차갑게 서리는 오오라를 느끼며 관문의 문지기는 미래시의 검은 눈빛으로 조커를 노려봤다.

    영원의 영역에 도달한 자 중에서도 최초로 전인미답의 경지에 도달하는 자만이 수식언 칭호를 얻어 강해질 수 있었다.

    자신만의 가능성을 깨우쳐야 했는데, 조커와 문지기는 그 경지에 도달한 자였다.

    <삶과 죽음의 경계선>

    <영겁의 세월을 지키는 자>

    그들은 정면에서 격돌했고, 충격파가 발생하며 진공처럼 공간을 만들었다.

    둘은 충격파로 발생한 차단된 곳에서 둘만의 격전을 벌이게 되었다.

    “에어리스…….”

    빛의 오오라가 나타났다.

    문지기에게 일격을 맞았던 유진하가 돌아왔으나 저 전투에 끼어들 틈은 없었다.

    “진하…….”

    에어리스 역시 걱정스러운 듯이 조커와 문지기가 벌이는 대결을 지켜보고만 있었다.

    발을 동동 구를 뿐.

    저 강렬한 흐름에 들어가지 못하고 대검을 내려놓았다.

    “저기에 잘못 들어갔다가는 흔적도 없이 사라질 거야. 어쩔 수 없어.”

    유진하도 단언했다.

    그들만의 세력권에서 벌어지던 조커와 문지기의 전투는 격렬한 충격파를 사방으로 발산시켰다.

    멀리 떨어진 곳까지 영향력을 발휘했으며, 전류 같은 파동이 와서 간간이 막아 낼 정도였다.

    충격파를 팔로 쳐 내던 이소민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나비가 폭풍우에 달려들었다가는 날개가 찢어질 거야.”

    죽은 조커가 분신체로 사생결단을 내는 중이었다.

    쌍단검이 마치 용틀임처럼 변화무쌍하게 문지기를 몰아붙였다.

    “후후.”

    천부적인 전투 재능을 지닌 조커는 싸우면서 상대의 장단점과 버릇까지 알 수 있었다.

    그에게 전투란 상대와의 대화이자 호흡이었으니까.

    “이제 알겠어.”

    조커는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문지기는 관문에 얽매인 존재였고, 까마귀 가면을 쓰며 수십억 년을 넘게 살아남았다.

    “관문에 얽매인 네 생각이 무엇인지 알았어.”

    “뭐라고?”

    관문의 문지기는 거대 낫을 잠시 거두더니 검은 눈동자를 번뜩였다.

    조커는 하던 말을 계속 이어갔다.

    “<영겁의 세월을 지키는 자>라고? 너는 관문에 얽매여서 살아가는 껍데기에 불과해.”

    “누구도 혼자 존재할 수 없다.”

    “존재를 말하는 게 아니야. 네가 족쇄처럼 얽매였다는 거지.”

    “…….”

    조커의 말이 정곡을 찔렀다.

    문지기는 순간 얼음처럼 굳어 버렸고 검은 눈만 번뜩였다.

    “너는 문지기다. 말 그대로 관문에 묶여서 살아가는 자야. 관문이 없으면 네 존재 가치는 끝이지.”

    흘러내리는 머리카락을 쓸어내리던 조커는 웃음소리를 흘려보냈다.

    “수십억 년을 살았다고? 너는 이 관문을 지키는 대가로 영생을 보장받은 거다.”

    “…….”

    “공간의 주인이 되거나 신이 되지 못하고 관문에 얽매이는 삶을 선택한 거야. 너는 영원한 삶을 얻은 대신 자유를 포기한 거지.”

    문지기의 눈동자가 동그랗게 떠졌다.

    신랄하게 움직이는 그의 입 모양이 잔혹한 진실을 밝혀냈다.

    “관문을 지키는 문지기. 너는 자유롭게 날아갈 수가 없어.”

    마치 새장 속에 갇힌 새였다.

    문지기의 유일한 친구도 검은 까마귀가 전부였기에.

    “메마른 관문에 홀로 앉아 까마귀 가면을 쓰고 자유와 영생 사이에서 갈망한다. 네가 선택한 운명이야.”

    “…….”

    “비참하군.”

    냉소적인 조커의 말이 흘렀다.

    관문의 문지기는 거대 낫을 움켜쥐더니 온 힘을 다해 내려쳤다.

    분노를 실은 엄청난 일격이 지평선 너머의 대륙까지 갈라 버렸다.

    “목이 잘린 주제에 할 말인가?”

    전신에 발산된 아우라가 끝없이 하늘로 치솟았다.

    관문의 문지기는 분노의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수십억 년을 산 자신을 과감하게 도발한 조커는 오히려 미친 사람처럼 웃었다.

    “후후, 죽은 자의 분신체한테도 고전하는 건 너잖아.”

    “얼마든지 끝낼 수 있다.”

    “전혀 아닐걸?”

    분신체 조커는 양손에 쌍단검을 쥐고 고개를 들었다.

    무섭도록 고요하면서도 냉정한 눈빛이 번뜩였다.

    “운명에 순응해서 자유를 포기한 녀석이 강할 리가 없으니까.”

    조커는 무서운 속도로 달려들었다.

    번개처럼 빠른 속도로 단숨에 관문의 문지기에게 도달했다.

    스걱.

    단 한 순간에 문지기의 목을 베어 버렸다.

    까마귀 가면을 쓴 녀석의 목이 데구루루 굴러떨어졌다.

    “관문이라는 새장에 갇힌 까마귀로 살다가 죽는 거다.”

    조커는 가만히 공중에 멈췄다.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 살았던 자답게, 문지기처럼 관문에 영원히 얽매여 사느니 한순간이라도 자유롭기를 원했다.

    “커억?!”

    그때였다.

    거대 낫이 조커의 배를 찔렀다.

    목이 잘렸던 문지기는 까마귀 가면의 머리를 손에 든 채로 무기를 휘둘렀다.

    “영생은 죽지 않는다는 거다.”

    문지기는 도로 자신의 머리를 원위치에 올려놨다.

    그는 죽지 않는 자였다.

    <영겁의 세월을 지키는 자>가 가진 고유 특성은 무한의 영생이었다.

    “후후. 역시 길들어졌어.”

    조커는 희미하게 웃으면서 자신의 배를 찌른 낫을 살폈다.

    분신체였으나 타격을 입을 때마다 몸체가 흩어진다.

    흐릿하게 연기처럼 희미해지는 와중에도 전투 의지는 죽지 않았다.

    콰악!

    분신체 조커는 낫에 찔린 채로 달려들어 문지기의 가슴을 쌍단검으로 재차 찍었다.

    “관문에 얽매이면서 영생의 능력을 얻어 냈지?”

    “…….”

    “그럼 관문에서 벗어나면 어떨까? 네 힘이 사라지지 않을까?”

    조커는 최후의 저력을 발휘했다.

    <삶과 죽음의 경계선>

    이 힘의 특수 능력은 직선 돌파에 무한이라는 사실이었다.

    조커는 문지기의 가슴에 단검을 박아 넣고 온 힘을 다해 강제로 밀어냈다.

    마지막 기세였다.

    문지기는 속수무책으로 밀려나면서 차츰 흩어지는 육체를 느꼈다.

    “아…….”

    관문을 지키는 문지기의 운명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서약을 통한 맹세였으나 이제는 그 제한에서 벗어났고, 문지기는 처음으로 관문에서 떨어졌다.

    수십억 년이 지나서 느껴 보는 자유였다.

    생존을 위해서 오래도록 관문에 기생하는 삶이었으나 지금은 그 긴 세월이 무의미해졌다.

    “허억.”

    자유를 잃고 영생을 얻었던 처음.

    지금은 반대로 자유를 얻고 영생을 잃었다.

    조커에 밀려 나아가던 문지기는 한계선을 넘으며 서약도 깨져 버렸다.

    그렇게 서약이 깨진 문지기의 육체는 서서히 흔적조차 없이 사라져 갔다.

    “후후후후.”

    문지기가 흩어지는 것을 보며 조커는 냉소적으로 웃었다.

    전투는 끝났고 조커 역시 모든 힘을 소진했다.

    분신체는 서서히 고개를 떨구었다.

    <삶과 죽음의 경계선>

    경계선에서 줄타기하듯이 걸어가던 광대가 끝내 모든 힘을 잃고 죽음의 낭떠러지로 추락했다.

    “마지막 순간이군.”

    모든 에너지를 발휘한 분신체는 자신도 연기가 되어 사라졌다.

    귓가에는 누군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으나 딱히 중요하지는 않았다.

    서서히 흐려지는 육체.

    조커의 삶이 마침내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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