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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을 활용하는 1000가지 방법-136화 (136/229)

136화 관문의 저편(3)

“조커?! 살아 있었던 건가요?”

죽었던 조커가 다시 나타났다.

에어리스는 마치 귀신이라도 본 듯 화들짝 놀랐다.

고개를 돌려 다시 관문 쪽을 바라보니 아까 죽었던 조커가 그대로 목이 잘린 채로 누워 있었다.

“어? 이게 어떻게 된 거죠?”

죽은 조커와 살아 있는 조커.

혼란에 빠진 에어리스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어쩔 줄 몰라 했다.

조커는 팔짱을 끼며 도리도리 고개를 돌리는 에어리스의 반응이 재밌다는 듯이 지켜봤다.

“후후, 당황했나.”

“어떻게 된 건지 잘 모르겠어요.”

에어리스는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난감해했다.

쭈뼛쭈뼛하다가 자꾸 조커의 눈치를 살폈다.

적당히 놀려 먹었다고 생각했는지 조커는 가볍게 헛기침을 하며 정답을 알려 줬다.

“나는 죽은 게 맞아.”

“네? 그럼 지금은 귀신인가요?”

“영혼 상태는 아니고. 분신인 거지.”

조커는 단검을 쥐고 있었다.

-키리나의 단검.

분신 능력을 발동한다.

일정 시간 동안 사용자와 완전히 동일한 분신을 발동시킨다.

분신은 술사의 명령대로 움직이며 동일한 기억과 인격체, 능력을 가진다.

“본체가 죽었어도 발동된 분신은 지속 시간이 남았다.”

“아, 그런 건가요?”

“능력 증폭 카드를 얻었다. 덕분에 분신의 지속 시간은 많이 늘어났지. 3일은 지속할 수 있어.”

분신 조커는 태연하게 상황을 알려 줬다.

본체의 죽음과 분신의 제한 시간까지 무덤덤하게 답했다.

자신의 사망에 대해 말하면서도 지극히 냉철하며 강인한 태도를 보였다.

“괜찮으신 건가요?”

“무슨 말이지?”

“본체가 없다는 건… 죽었다는 소리는 그러니까…….”

“걱정할 필요는 없어.”

조커는 천천히 팔짱을 풀었다.

짧은 대화에서도 이미 그는 결심을 굳힌 모양새였다.

“전투에서 죽음이란 찰나의 순간 중 하나니까. 각오한 일이었어.”

“그래도…….”

“유진하가 초창기에 하던 말을 기억하나? 전투에 들어가면 죽을 확률이 생긴다고.”

항상 생존을 최우선으로 여겼던 유진하의 신조였다.

“전쟁터에 나온 이상 흙으로 되돌아가는 건 당연한 거야. 그러니 내가 죽었다고 신경 쓸 필요는 없어.”

“…….”

에어리스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분신만 남아 자신의 죽음을 덤덤하게 받아들이는 조커를 보면서, 오히려 자신의 목이 타들어 가는 감정을 느꼈다.

“분신은 3일 동안 유지된다. 그때까지 내 마지막 싸움을 하겠다.”

조커 분신은 건너편에서 광활한 오오라를 발휘하는 문지기를 바라봤다.

그는 방금 전에 자신의 목을 자른 자였다.

남은 분신은 그 빚을 되돌려 주기 위해 비장한 각오로 최후의 전투를 준비했다.

* * *

“두렵니?”

조커가 어린 시절부터 항상 들었던 소리였다.

빈민가에는 햇볕과 비를 잘 막지 못하는 허술한 집이 모여 있었다.

하루도 살아가기 힘든 곳에서 살아갈 힘을 준건 자신의 어머니였다.

“두려워할 필요 없어.”

조커에게 있어 어머니는 유일한 혈육이었고 신앙과도 같았다.

“살아남으려면 무엇이든 해.”

물러설 곳이 없으면 오로지 앞으로 달려가면 된다.

그 앞에 가시덤불이 있어 온몸을 찌르더라도 나아가야 한다.

어머니의 가르침이었다.

“절대로 멈추지 마.”

어머니는 어렸을 때부터 그 말을 해 줬다.

막대한 빚더미를 지고 희망조차 남지 않은 상황에서, 어린 아들에게 해 줄 수 있는 거라고는 응원이 전부였다.

“이제는 혼자서 살아가야 해.”

깨진 유리컵. 널브러진 주전자.

빈 약봉지.

비좁고 더러운 집에서 중병에 걸려 죽어 가는 와중에도 어머니는 아들의 생사를 염려했다.

“뒤돌아보지 말고 달려가. 알았지?”

죽음이 목전에 이른 사람에게 동정이나 위로의 말은 무의미했다.

조커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유언과도 같은 어머니의 말을 들었다.

“사람은 본성이 있어. 선과 악. 너는 앞으로 그 사이에서 악을 행하는 날도 있을 거야.”

“…….”

“살아남기 위해서라면 어떤 것이라도 해. 영혼을 팔아도 괜찮아. 무서울 수도 있어.”

어머니는 마지막 당부의 말을 남겼다.

“만약 두려우면… 가면을 써.”

“…….”

“가면을 쓰면 본성을 숨기고 살아갈 수 있어.”

어린 시절.

어머니의 유언은 조커에게 큰 자극으로 남았다.

살아남으려면 악을 행해도 된다.

두려우면 가면을 써라.

그 말대로 살았다.

선과 악이라는 경계선을 오가며 세상을 지나쳤다.

하나하나 살아가는 경험을 얻어 가며 그는 무서운 존재로 성장했다.

살아남기 위해 누군가의 피를 볼 때는 가면을 썼다.

반면에 따스한 빵과 스프를 빈민가의 아이들에게 대접할 적에는 가면을 벗었다.

“잘 들어.”

그 아이들에게 자신이 배웠던 삶을 알려 줬다.

어머니의 유언이었다.

살아남으려면 뭐든지 하라.

두려우면 가면을 써라.

“허억, 허억.”

어느 날.

공사 중인 빈 건물에서 조커는 거친 숨을 내뱉었다.

의뢰를 수행하다 복부에 칼을 찔린 탓이다.

차가웠고 아팠다.

하지만 그는 가면을 쓰고 있었다.

어머니의 말처럼 두려울 적에 가면을 쓰면 본성을 감출 수 있었다.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

“큭!”

배를 찌른 칼을 맨손으로 뽑아냈다.

자신의 피가 묻은 단검이 손에 들어왔다.

그 칼날에는 자신의 얼굴이 비치지 않았고 가면만 보였다.

“이게 손에 맞는군.”

조커는 단검이 맘에 들었는지 계속 달빛에 비추어 바라봤다.

공사장에는 이미 죽은 자들이 널브러져 있었고, 그들 중간에는 벽돌 더미에 앉아 있는 조커가 있었다.

“정부 요원이라…….”

조커는 선과 악의 경계선에서 살았다.

어차피 인생조차 삶과 죽음의 줄타기를 하는 게 아닌가.

그렇게 여겼다.

“가면을 벗은 삶도 좋겠지.”

조커는 가면이 없는 요원의 삶도 받아들였다.

공략전과 방어전에서 두각을 드러내며 승승장구했으며 이내 간부까지 올랐다.

“알카트로스에 잠입할 수 있겠어?”

마스터는 그에게 특별한 임무를 맡겼다.

범죄 조직 알카트로스에 들어가 스파이 역할을 맡아 달라는 소리였다.

조커는 흔쾌히 받아들였다.

어차피 그의 인생은 가면을 쓰고 벗으면서 자유자재로 오갔기에…….

“이제부터 너는 조커다.”

알카트로스의 리더 에이스는 그에게 ‘조커’라는 암호명을 주었다.

왜 그랬을까?

리더에게 건네받은 백가면에는 마치 자신과 비슷한 광대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춤을 추는 피에로.

조커는 왠지 마음에 들었다.

‘나는 광대다.’

삶과 죽음.

가면을 쓰고 벗는 자.

선과 악의 경계선.

그 사이에서 줄타기를 즐기는 광대야말로 조커의 인생을 함축하고 있었다.

지금.

혼자 이곳에 왔을 적에 조커는 거대한 관문을 목격했다.

“열어 버린다.”

뭔가를 아는 것도 아니었고 특별한 결심이 있지도 않았다.

그저 처음 보는 관문에 흥미를 느꼈을 따름이었다.

하지만 관문은 열리지 않았고 단검으로 벨 수도 없었다.

“후우, 단단한 건가.”

마치 결계라도 쳐진 마냥 관문은 끄떡도 하지 않았다.

그래도 쉬지 않고 반복했다.

조커는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열릴 거다.”

저 문이 절대적인 경계는 아닐 것이다.

항상 가면 속에서 삶과 죽음의 경계를 느꼈던 자신이었다.

단검으로 후려치면서 저 문에서 무언가를 차츰 느꼈다.

이 녀석은 단순한 문이 아니었다.

감정이 있는 듯했다.

“두려움이 느껴진다.”

처음 봤을 때 지옥의 문처럼 든든했던 문은 무수히 두드리자 조금씩 변해 갔다.

그것은 감정 기복과도 같았다.

“열 수 있겠어.”

관문에서 서서히 한계 신호가 나왔다.

장식된 인간 조각은 더 큰 비명을 질렀고, 그 안에 있는 악마 조각은 눈동자를 더 크게 떴다.

마침내 때가 되었다.

관문은 더 이상 고통을 참을 수 없다는 듯 서서히 열리기 시작했다.

무수한 빛이 뿜어져 나왔다.

“어?!”

문이 열리는 와중에 살기가 느껴졌다.

동시에 메마른 손이 나와서 관문의 옆을 붙잡았다.

촤악!

갑자기 날아온 일격이 조커의 팔을 스치고 지나갔다.

순간 회피가 아니었다면 이 일격에 팔이 아니라 몸체가 반토막이 날 수도 있었다.

“누구지?”

조커는 강한 적의 출현을 눈치챘다.

‘관문을 지키는 자.’

검은 망토를 쓴 자가 거대한 낫을 들고 관문에 나타났다.

그의 검은 눈에는 초점이 숱하게 흩어졌다 모였다 하며 조커를 샅샅이 살피고 있었다.

“관문은 지금 열릴 때가 아니다.”

무겁고 진중한 음성이 대지를 울렸다.

마치 듣고 있는 사람의 어깨마저 눌러 버릴 듯한 기세였다.

“당신은……?”

“관문의 문지기.”

두꺼운 낫은 마치 적을 갈라 버리려는 듯이 매서웠다.

쌍단검을 쥔 조커조차 그의 전투력이 보통이 아님을 깨달았다.

“내가 열겠다면……?”

“그럴 능력이 너에게 없다.”

문지기는 태산 위에서 내려다보듯이 대답했다.

그의 어투는 마치 세상의 법칙을 얘기하듯이 엄숙했다.

“능력이 있는지 없는지는 붙어 보면 알겠지.”

조커는 앞으로 한 걸음 내디뎠다.

그 순간.

문지기가 낫을 매섭게 휘둘렀다.

카앙!

격렬한 금속음이 들렸다.

조커는 아까와는 달리 단검으로 낫의 일격을 받아 냈다.

“한 번 궤적을 봤다. 익숙해졌지.”

“…….”

문지기는 대답하지 않았다.

조커의 천부적인 전투 재능은 문지기와의 대결에서도 유감없이 드러났다.

문지기는 이 싸움에서 간만에 흥미를 느꼈다.

낫의 일격으로 단번에 죽는 자들이 허다했기에, 대화할 가치도 없는 자들의 죽음만을 목격했었다.

지금은 달랐다.

죽기를 각오하고 덤비는 조커는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단검술을 발휘했다.

순간 회피도 훌륭했다.

“더 버티겠나?”

낫의 흐름이 더 매서워졌다.

쉴 새 없이 휘몰아치는 베기로 인해 주변의 대륙은 조각처럼 나뉘어 부서지고 있었다.

“우습게 보지 마라.”

조커는 이 싸움에서 격렬한 감정을 받았다.

전투에서 더 강해지겠다는 자세로 혼자만의 공략전을 벌이던 중이었다.

그만한 상대.

아니, 더 초월적인 자를 맞이하면서 긴장감과 동시에 만족감을 느끼며 극도의 흥분 상태가 되었다.

“죽인다.”

조커는 마치 선언하듯이 중얼거렸고, 가면에 감춘 얼굴에서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대결은 계속 이어졌다.

꼬박 하루 내내 싸웠다.

“크윽!”

마침내 결판이 났다.

조커는 이 전투에서도 강해졌으나, 상대는 그보다 더 깊이를 알 수 없는 자였다.

마치 바다에 표류하는 듯이.

망망대해에서 헤매던 조커가 거대한 파도에 삼켜지듯이 쓰러졌다.

“조커!”

죽기 직전에서 자신을 부르는 소리를 들었다.

그 목소리에 정신이 들었을 때는 날카로운 낫의 칼날이 목을 겨누고 있었다.

백가면은 어딘가로 사라진 뒤였다.

유진하와 에어리스, 이소민이 시야에 보였다.

이 싸움에서 자신을 찾으러 온 것이었다.

“…….”

조커는 몰래 희미한 눈빛으로 옅은 미소를 지었다.

목이 잘리기 직전에 마지막 남은 힘으로 분신을 사용했다.

‘본체가 죽어도 최후까지 분신으로 싸운다.’

조커는 그렇게 분신으로 남았다.

죽음에 들어선 상태에서도 분신은 3일 동안 살아남을 수 있었다.

지금은 분신만이 남았다.

그렇게 조커는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서 최후의 전투를 준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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