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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을 활용하는 1000가지 방법-135화 (135/229)

135화 관문의 저편(2)

검은 땅은 마치 어두운 대지처럼 아무것도 없었다.

죽은 자의 대륙 같았다.

“여기는……?”

유진하 일행이 차원문을 넘어 도착한 이곳은 조커가 혼자서 넘어간 마지막 장소였다.

“진하, 이곳은 느낌이 이상해요.”

심상찮은 분위기를 느낀 에어리스도 등에 멘 대검을 움켜쥐고 언제라도 휘두를 태세를 갖췄다.

에어리스조차 본능적인 방어 태세를 갖출 정도로 위험한 기운이 스산하게 흘렀다.

불길한 기운이 가득한 이곳에서 조커는 단독으로 움직였을 터였다.

“저기 뭔가 보여.”

이소민이 손가락을 들어 앞을 가리켰다.

유일하게 빛이 있는 곳이 있었는데, 자세히 보니 거대한 문이었다.

거대한 관문은 마치 지옥의 문처럼 불길하고 응축된 기운을 계속 뿜어냈다.

“관문이야.”

유진하는 저 문의 정체를 바로 알아차렸다.

우리가 사는 공간에 나타난 관문과 완전히 똑같은 형태였으니까.

“여기에도 있었나?”

다른 점이 있다면 관문이 살짝 열려 있다는 사실이었다.

관문의 열린 틈에서는 검은 기운이 연기처럼 흘러내렸고, 안개처럼 퍼져 나가 땅을 저주받은 대지처럼 만들어 갔다.

관문 앞에는 검은 망토를 쓴 자가 있었다.

“누가 있어?”

그 거대한 관문의 앞에는 검은 망토를 뒤집어쓴 자가 긴 낫을 들고 있었다.

그자의 앞에는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뒤로 포박당한 사람이 있었다.

“저건?”

일행들은 한눈에 그가 누군지 알아챘다.

헝클어진 머리카락과 핏기조차 없는 얼굴

조커였다.

“조커?”

양손을 뒤로 결박당한 조커가 무릎을 꿇은 채로 고개를 숙였다.

바로 뒤에 있는 검은 망토를 쓴 자는 기다란 낫을 들어 언제라도 조커의 목을 내려칠 자세를 취했다.

마치 사형 집행 같았다.

“그만!”

유진하가 소리쳤다.

어두운 곳이라 순간적으로 100장의 카드를 꺼내어 번개 카드를 모조리 발동시켰다.

번개에서 방출하는 빛을 온몸에 휘감은 유진하는 조커에게 달려갔다.

“…….”

그제야 조커는 어렴풋이 고개를 들었다.

빛에 휘감겨 다가오는 유진하를 눈치챈 듯했다.

그는 최선을 다해 한마디 말을 남겼다.

“도망… 쳐라…….”

그 말이 끝날 즈음.

검은 망토를 쓴 자가 낫을 내려쳤다.

사형 집행.

조커의 목이 단칼에 베였다.

단 한 순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짧은 정적의 시간이 영겁의 세월처럼 느껴졌다.

현실 같지 않은 현실이 벌어졌다.

툭.

조커의 머리가 땅에 떨어졌다.

그 소리는 깊은 울림처럼 귓가에 오래도록 자리 잡았다.

“으아아아!”

유진하는 빛을 머금으며 맹렬한 기세로 달려들었다.

섬광처럼 나아갔으나 죽은 조커의 곁으로 가지 못했다.

막강한 벽이 막고 있는지 더 나아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뭐지?’

눈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 있었다.

방패나 보호막 같은 종류는 아니었고, 마치 차원이 나뉜 장벽에 막힌 듯했다.

“…….”

망토를 쓴 그자는 조커를 죽인 후에 피 묻은 낫을 여유롭게 옷깃으로 닦아 냈다.

낫을 닦는 자의 번뜩이는 눈동자에는 어딜 보고 있는지 모를 만큼 초점이 무수히 존재했으며, 이를 통해 보통의 눈이 아니라는 걸 느꼈다.

눈이 아니라 마치 모든 것을 살피는 듯했다.

“제한을 넘지 마라.”

망토를 쓴 자의 목소리는 엄중하면서도 무거웠다.

그자는 매서운 눈동자로 일행을 쏘아봤다.

유진하는 그제야 깨달았다.

앞을 막은 이 투명한 벽의 정체는 단순한 물체가 아니었다.

저 알 수 없는 존재가 소유한 자신만의 범위이자, 철저하게 폐쇄된 본인만의 세계였다.

“관문은 열지 않아야 한다.”

열지 말라.

단 한마디의 말에 많은 뜻이 함축되었다.

열리면 안 되는 관문을 개방시킨 바람에 이 문제가 발생했다는 소리였다.

조커는 이 관문을 열었기에 죽어야 했던 걸까.

“조커를 죽인 이유가 그건가?”

“…….”

검은 망토를 뒤집어쓴 자는 가만히 유진하를 응시했다.

줄곧 빛줄기의 힘으로 맹렬하게 달려들고 있었지만 절대 그쪽으로 넘어갈 수 없었다.

빛의 힘이 시공간과 차원을 넘지 못하고 한계에 도달한 것이다.

“나는… 관문을 지키는 문지기…….”

피 묻은 낫을 소매로 닦아 내던 문지기가 중얼거렸다.

귀를 긁는 듯한 목소리였다.

“죽은 자가 관문을 억지로 열어 버리는 바람에 내가 나타났다.”

죽은 조커는 바닥에 널브러졌다.

시간상 조커가 이 공간으로 넘어갔을 때 동시에 우리 세계에도 관문이 나타났다.

관문이 하나가 아니라는 소리였다.

“너희들은 폐쇄 공간으로 지정됐다. 그곳에 소속된 생명체는 누구도 빠져나갈 수 없도록 관문이 막는다.”

이제 이해가 갔다.

관문은 우리 공간을 봉쇄하는 장치였다.

정확히 말하면 공간에 소속된 모든 생명체가 빠져나가지 못하게 한다는 소리였고, 다른 공간에 있던 자조차도 관문에 막혀 더는 새로운 곳으로 넘어가지 못한다.

완전 폐쇄.

우리 공간은 관문에 막혀 ‘정지’ 상태가 되었다.

“대체 왜지?”

유진하는 의문을 가졌다.

“너희들은 누구고. 왜 우리 공간을 관문으로 막았지?”

“…….”

관문의 문지기는 말수를 줄였다.

그 낫은 보통의 무기와 다른 오오라를 풍기고 있었다.

유진하는 저 기운의 흐름을 눈치채고 있었다.

‘영원의 영역.’

전투 레벨6.

초월화를 넘어선 영원의 영역에 해당하는 단계였다.

관문의 문지기를 상대로 유진하는 물러설 생각이 없었다.

“조커를 되찾으려면…….”

빛의 오오라가 영원의 영역에 도달했다.

빛은 시공간 장벽에 막힐지라도, 레벨6 영원의 영역에 도달한 오오라는 차원의 한계를 넘어설 수 있다.

“당신의 거리를 뚫고 넘어가겠어.”

관문의 문지기에 도전하겠다고 결심을 굳힌 유진하가 빛의 오오라를 발휘하며 영원의 영역에 도달한 기세로 맹렬하게 돌진했다.

마침내 시공간 장벽에 서서히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

문지기의 붉은 눈동자가 다중 초점으로 움직이며 유진하의 전신을 바라봤다.

얼굴과 눈.

가슴과 팔.

다리와 발.

문지기는 천천히 낫을 한 손에 움켜쥐었다.

그러곤 장벽을 뚫고 들어오는 빛줄기를 맞설 자세를 취했다.

콰앙!

굉음이 터질 무렵.

빛의 섬광이 전격적으로 문지기에게 쏟아졌다.

그들의 격렬한 격돌에 지평선 너머까지 광활한 충격파가 퍼져 나갔다.

대지를 가득 채웠던 검은 오오라마저 그 파괴력에 휩쓸리듯이 밀려났다.

“…그 정도인가.”

낫을 움켜쥔 문지기는 차갑게 내뱉었다.

마치 얼음처럼 폐부를 찌르는 듯한 말투였다.

“관문은 한 달 뒤에 스스로 열릴 것이다. 너희는 그 흐름에 따라서 스스로 받은 운명을 결정하면 된다.”

운명을 받아 결정한다고 그랬다.

그 말은 삶과 죽음을 가르는 의미가 분명했다.

누가 왜.

그걸 우리에게 강요하나.

“당신은 대체 누구지?”

“관문의 문지기이자 집행관…….”

집행관.

직위가 있다면 어떤 규칙과 법칙이 있는 세계가 있는 듯했다.

번뜩이는 낫이 휘청 흔들리더니 문지기가 그대로 몸을 빙글 돌려 역습을 날렸다.

일격.

집행관이 낫을 후려치자 유진하는 그 공격을 막지 못하고 저 멀리 튕겨 날아갔다.

“진하!”

에어리스는 빠르게 대검을 들고 달려들었다.

레벨6 영원의 영역에 도달한 현재.

에어리스는 손등의 문양에서 푸른빛을 전신으로 감싸며 매섭게 달려들었다.

카앙!

전력으로 대검을 내려쳤으나, 낫은 보통의 무기가 아니었다.

레벨6 영원의 영역의 힘으로 내려치는 대검의 파괴력을 집행관이 가볍게 정면으로 받아 냈다.

“아…….”

집행관은 낫에 강한 오오라를 흘려 보냈다.

곧이어 하늘에 무수하게 많은 낫이 생성됐다.

-백 개로 하나인 낫.

낫을 백 개로 늘린다.

“집행관에게 덤비는 자는 즉결 처분할 수 있다.”

집행관은 허공에 생성된 낫 중에서 하나를 내려쳤다.

에어리스는 시공간을 찢어 버릴 법한 집행관의 낫을 정면에서 받아 낼 수 없었다.

“아악!”

낫은 시공간과 차원을 가르고 허공에 자국을 남겼다.

에어리스가 영원의 영역에 도달했음에도 실력의 차이는 절대적이었다.

결국 에어리스는 큰 부상을 입고 가까스로 목숨만 건진 채 뒤로 물러났다.

시공간을 갈라 버린 낫은 이윽고 갈라진 틈새로 빠져 소멸했다.

“더 싸워 보겠나?”

남아 있는 낫은 99개였다.

집행관은 이어서 다음 낫을 손에 쥐고 시공간을 가르는 위력으로 거듭 에어리스를 몰아붙였다.

“아아앗!”

저 낫에 맞으면 사라진다.

시공간을 갈라 버린 궤적에 닿아도 육체가 산산이 쪼개질 터였다.

한 번 휘두르면 사라지는 낫이지만, 무려 100개를 허공에 띄어 놓았다.

집행관은 전투술에 능숙했고 전투 패턴도 다양했다.

“허억. 허억.”

낫이 자른 공간은 자국)이 되어 계속 남았다.

그곳에 닿으면 몸이 베이기 때문에 피해야만 했다.

집행관은 계속 낫을 사용하면서 시공간을 갈라 버렸고, 차츰 에어리스의 움직임에 맞춰서 퇴로를 막아 갔다.

“아차!”

정신없이 피하다 보니 에어리스의 전후좌우에는 시공간이 잘린 궤적으로 가득했다.

어느 방향으로도 물러설 곳이 없게 구석으로 몰린 것이다.

“허억. 허억.”

에어리스는 거친 숨소리를 토해 내고 힘겹게 대검을 들었다.

상대가 아무리 관문의 문지기이자 집행관이라지만 힘의 차이가 너무 심했다.

검은 망토를 쓴 그는 공중에 떠서 고고한 자세로 아래를 내려다보며 붉은 눈을 번뜩였다.

“소멸하라.”

마지막 낫을 잡아챈 집행관이 판결을 선언하듯이 음성을 내리깔았다.

저 진중한 목소리가 마치 귓가에 메아리처럼 반복해서 들렸다.

“하아아압!”

에어리스는 정면으로 박차고 뛰어들었다.

뒤가 막혔다면 앞으로 돌격한다.

어떤 절망적인 전투에서도 마지막까지 극한의 저력을 발휘하며 버텨 내던 그녀였다.

“…….”

에어리스가 발휘한 최후의 힘은 순간적으로 푸른빛의 갈래처럼 치솟았다.

최대의 위력을 실은 대검은 집행관을 통째로 베었다.

“…베었다?!”

관문을 지키는 집행관 조용했다.

그는 앞으로 벌어지는 모든 사건을 집행하는 자였다.

수억 년의 세월.

그는 이 거대한 관문의 꼭대기에 홀로 외로이 앉아 있었다.

가끔 날아오는 까마귀가 그의 친구였을 따름이었다.

‘왜 문지기를 맡았을까?’

오래된 기억이었다.

‘관문을 지키는 자’가 된 기억도 이제는 가물가물했다.

계기는 있었다.

신을 초월한 자.

이런 설명으로도 부족한 존재가 관문을 부여했다.

<이곳을 지켜라. 관문에 얽혀 있다면 영원한 삶을 약속한다.>

그 존재는 이 자리를 맡겼고, 그날부터 관문의 문지기가 되었다.

그때부터 관문은 그의 거처이자 삶의 매개체가 되었다.

문지기가 된 덕분에 영생을 얻었지만, 긍정적이었던 마음은 이내 비관적으로 바뀌었다.

‘관문의 족쇄에 묶인 자.’

그는 스스로를 영원한 존재지만 동시에 얽매인 존재로 여겼다.

관문에 묶인 운명이었고,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는 영생을 얻었다.

관문에 얽매인 자의 숙명이었다.

‘처음으로 베였다.’

관문의 문지기가 된 후로 최초로 겪는 상황이었다.

넘을 수 없는 차이를 포기하지 않는 자를 만났다.

포기하지 않는 자는 마지막까지 강한 기세를 내뿜으며 자신에게 달려들었고 결국 공격을 성공시켰다.

문지기이자 집행관.

그런 그도 이런 생생한 전투는 오랜만에 느꼈고, 동시에 살아 있다는 감정마저 맛봤다.

이제 느꼈다.

자신이 원래 감정을 가진 존재라는 사실을…….

오랜만에 처음 느낀 감정은 고통이었다.

이후에는 분노였다.

“훌륭하다. 하지만 너희는 여기서 모두 소멸한다.”

집행관의 검은 눈동자에 있던 무수한 초점들이 제각기 현란하게 움직이더니, 원자가 분열하듯 무수한 숫자로 늘어났다.

그리고 눌러쓴 망토를 벗어 던졌는데 망토를 벗은 집행관은 특색 없는 후줄근한 검은 복장과 부리까지 뾰족하게 나온 까마귀 가면을 쓰고 있었다.

“…오랜만에 개방한다.”

망토를 벗자 전신에서 오오라가 퍼지면서 대지에 격렬한 진동을 주었다.

까마귀 가면을 쓴 집행관은 육체와 정신의 경계선을 서서히 넘어가기 시작했고, 서서히 영혼과 육체가 하나로 되어 갔다.

영원의 영역에 존재하는 무수한 경지 중 하나였다.

정신과 육체의 일체화.

영원의 영역은 무궁무진한 세계였다.

마치 거대한 생명의 나무가 뻗어낸 줄기와 같았는데, 개인의 재능과 가능성에 따라 저마다 도달할 수 있는 고유한 경지가 달랐다.

이제 막 그 세계로 발을 내디딘 에어리스는 아직 그 경지에 닿지 못했다.

둘의 기력은 완연한 차이를 드러냈다.

가느다란 촛불과 불타오르는 염화.

집행관의 기세는 대륙의 지평선 너머까지 뻗어 나갔다.

두려울 만큼 압도적인 오오라였다.

“이 정도였어.”

에어리스의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말끔한 검은 정장을 입고, 삐에로 그림이 그려진 백가면을 눌러쓴 자.

“조커?”

조커가 나타났다.

죽은 줄 알았던 그가 나타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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