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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을 활용하는 1000가지 방법-134화 (134/229)
  • 134화 관문의 저편(1)

    “이 거대한 문은 뭐지?”

    현장에 나타난 정부 요원들은 난감하다는 듯이 새로운 차원문을 쳐다봤다.

    이전과는 전혀 다른 형태였는데 거대한 철문처럼 굳건하게 닫혀 있었다.

    “이전에 본 적이 없는 경우야.”

    “푸른빛의 차원문과 다르다. 거대한 문이 달려 있다니…….”

    기존의 차원문은 푸른빛의 기운이 물결처럼 흘렀고, 그 안에 들어가면 소용돌이에 빨려 들어가듯 어지러운 흐름에 휘말린다.

    하지만 이번에는 사뭇 달랐다.

    푸른빛의 회전하는 기운은 똑같이 있었으나 그 앞을 거대한 검은 문이 막고 있었다.

    “모두 비켜.”

    긴 생머리를 휘날리며 D가 나타났다.

    결사대에서 복귀하고 정부의 최고 간부로 승진한 그녀는 냉철한 눈빛으로 자신의 상징과도 같은 태도(太刀)를 쥐고 냉철한 눈빛을 머금었다.

    “철문이라…….”

    D 역시 처음 보는 형태의 차원문에 낯설어했다.

    차원문을 막고 있는 거대한 검은 문을 보면서 강한 경계심을 느꼈다.

    “어디 나도 볼까.”

    D의 옆에는 마스터가 있었다.

    낯선 차원문의 출현 소식에 직접 살펴보려고 현장까지 찾아온 거였다.

    “흐음.”

    푸른 머릿결의 마스터는 입술을 매만지면서 검은 문을 샅샅이 살폈다.

    철문은 섬세한 조각이 가득 새겨졌는데 괴로움에 몸부림치는 인간, 환희에 찬 천사, 창을 쥐고 적을 겨냥하는 뿔이 달린 악마가 있었다.

    마치 거창한 창조 세계를 조각한 느낌이었다.

    “이거… 느낌이 안 좋네.”

    거대한 문에 새겨진 조각은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생동감이 넘쳤다.

    마스터는 손으로 거대 철문을 살짝 매만졌다.

    “흐음.”

    먼지가 쌓인 문을 어루만지자 감춰졌던 글자가 나타났다.

    처음 보는 신비한 문자가 하나하나 드러난 후 그걸 확인하던 마스터는 불안한 눈빛으로 철문을 살피고 있었다.

    해석한 글귀에는 마스터가 가장 경계하던 일이 벌어진다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이건 차원문이 아니야.”

    마스터는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관문이야…….”

    차원문이 아닌 관문.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면서 마스터는 불안한 듯이 뭔가를 계속 중얼거렸다.

    옆에서 지켜보던 D조차도 마스터가 처음으로 당황한 티를 내자 긴장한 마음이 되어 검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마스터…….”

    “유진하를 불러야겠어.”

    마스터는 관문에서 시선을 돌렸다.

    새롭게 나타난 관문은 새로운 세계를 암시했다.

    이전과는 다른 문제가 다가오고 있었다.

    * * *

    모자를 눌러쓴 푸른 머리의 마스터는 선글라스를 낀 채로 공원 벤치에 앉아 있었다.

    “날씨가 좋구나.”

    “그렇긴 하네요.”

    유진하는 마스터의 옆자리에 앉아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은 옥상에서 만나는 게 아니네요.”

    “하필이면 호텔이 리모델링 공사 중이네.”

    “그렇군요.”

    마스터는 아이스크림을 할짝거리며 말했다.

    공원에서 얘기를 나누기에는 제법 중요한 사안이 많았다.

    “조커가 단독으로 공략전을 갔다고 그랬나?”

    조커는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3일 안에 귀환하겠다고 약속했는데 아직 복귀하지 않았다.

    약속을 지키지 않을 자가 아니었기에 무언가 문제가 생긴 듯했다.

    “가 봐야겠어요.”

    “위험할 수도 있어.”

    마스터의 말에는 유진하를 만류하려는 의도가 강했다.

    조커는 인간 중에서도 손꼽히는 강자였다.

    유진하, 에어리스와 대등하게 맞설 수 있고, 어쩌면 둘을 앞설 수 있는 잠재력도 있었다.

    탑3에 해당하는 괴물이 돌아오지 않았다는 얘기는 다시 말해 그곳이 그만큼 위험하다는 말이 된다.

    “나는 유진하, 네가 우리 공간의 핵심 세력이 되어 줬으면 해.”

    “…….”

    마스터는 솔직한 심정을 토로했다.

    수많은 격전을 치르면서 세계가 멸망하는 순간을 가까스로 비껴 왔다.

    앞으로도 어떤 위기가 있을지 모르기에 유진하를 비롯해 훌륭한 동료들을 곁에 두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 조커가 필요해요.”

    “조커가?”

    “그는 얼마든지 강해질 수 있으니까요.”

    조커는 제멋대로였다.

    독단적이고 즉흥적이며 기분대로 움직이는 자였다.

    동시에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본심을 숨기고 음흉하게 고개를 숙일 수도 있었다.

    뛰어난 지략가는 아니라도 대단한 처세술을 지녔다.

    “다루기는 어려운 사람이지만 말이 아예 통하지 않는 건 아니니까요.”

    “그렇긴 해…….”

    마스터는 말끝을 흐렸다.

    조커가 돌아오지 않는다면 그건 확실히 전력에서 큰 손해가 될 것이었다.

    문제는 조커가 유진하를 보낼 만큼 가치가 있느냐였다.

    “조커도 물론 뛰어난 멤버야. 그렇지만 유진하, 네가 희생할 정도는 아니라고.”

    마스터는 극단적인 상황을 피하고 싶었다.

    조커를 구하려다가 유진하를 잃을 수도 있었다.

    생각조차 하기 싫은 가정이었다.

    “무리하지 않을게요.”

    유진하는 가만히 중얼거렸다.

    선글라스를 낀 마스터는 먹던 아이스크림을 마저 입에 욱여넣더니 잠시 고개를 들었다.

    그러곤 푸른 하늘에서 쏟아지는 빛을 보며 잠시 한숨을 내쉬었다.

    “네 선택이잖아. 내가 어떻게 말릴 수는 없지.”

    바람이 두 사람 사이를 가볍게 지나쳤다.

    이 공간의 주인인 마스터는 이곳의 모든 생명체에게 자유로운 행동을 보장했다.

    간섭하지 않았고 스스로 진화하며 성장하도록 했다.

    “자유를 주었으니까. 나는 그게 정상이라고 생각해.”

    그 결과 인간은 다른 존재들과 달리 특별한 것을 가지게 되었다.

    “자유를 통해야만 한계 너머에 도달할 가능성이 생기는 거야. 자유가 있어야 유진하나 조커 같이 뛰어난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 나올 수 있기도 하고.”

    “가능성이군요.”

    “맞아. 남이 정해 놓은 대로 매뉴얼을 만들면 빨리 성장할 수는 있겠지. 하지만 매뉴얼보다 더 강해질 수는 없어.”

    마스터는 나름의 가치관과 철학이 있었다.

    개중 가장 중요하게 여긴 부분은 자유와 성장이었다.

    “내가 간섭했다면 다들 빠르게 성장하긴 했을 거야. 하지만 딱 나만큼의 한계가 생기는 거지. 오래 걸리더라도 생명이 스스로 진화하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편이 옳다고 여겼어.”

    “자유로운 환경이 뛰어난 존재들을 만든다는 거군요.”

    “그런 거지.”

    지략의 유진하.

    전투의 조커.

    모략의 에이스와 괴도 알파.

    그들은 각자의 분야에서 마스터를 넘어서는 재능을 가졌다.

    인간의 자유는 성장의 계기가 되었고 초월자로서의 가능성을 열어젖혔다.

    “수십억 년이나 걸렸어도 자유를 주었기에 감정을 얻었어. 어느 세계보다 훌륭한 가치를 말이야.”

    코어들은 없는 감정.

    자유를 보장한 세계에서 소유할 수 있는 가치였다.

    감정이 없는 코어들은 일정 수준까지는 빠르게 성장했지만 그 이상 성장하지는 못했다.

    “조커를 찾아가도록 허락할게. 대신 금방 돌아와야 해.”

    “네, 그럴게요.”

    마스터는 결정을 내렸다.

    유진하를 곁에 두고픈 마음을 억누르고 자유로운 행동을 보장한 것이다.

    “다른 얘기도 할 게 있어. 관문이 생겼다는 건 알지?”

    마스터는 곁눈질로 유진하를 쳐다보더니 본론을 꺼냈다.

    수십억 년을 살았다는 공간의 주인은 역시 보통내기가 아니었다.

    “들었어요. 특이한 문이라고.”

    “맞아.”

    중요한 얘기를 앞두고 두 사람은 잠시 말이 없어졌다.

    삭막한 바람이 지나가자 마침내 마스터는 입을 열었다.

    “혹시 신화와 전설에 대해서 들어 본 적이 있어?”

    “신화라면… 고대 그리스 신화나 북유럽 신화 같은 신들의 이야기 말인가요?”

    “그런 유명한 신화들 말고도 훨씬 많은 것들이 있어. 그것들은 전부 내가 알려 준 거야.”

    “네?”

    유진하는 반문했다.

    그리스의 올림푸스 신화와 북유럽의 아스가르드 신화가 마스터의 입에서 나온 거라니.

    마스터는 그런 유진하의 반응을 보더니 입가에 옅은 미소를 지었다.

    “놀랐나 보구나. 하긴 나도 처음 들었을 때는 그랬는데.”

    “마스터도 들은 이야기인 건가요?”

    “너도 알다시피 공간은 무한에 가까울 만큼 많잖아. 그중에는 대단한 공간들도 있거든.”

    다른 공간의 이야기.

    그것이 신화와 전설의 정체였다.

    “그런 공간들은 너무나 유명해져서 다른 공간까지 기록과 소문이 널리 알려졌어. 올림푸스나 아스가르드는 실제로 있는 공간이지. 다른 공간으로 말이야.”

    “신화 속 세상이 실존한다?”

    “내가 사람들에게 알려 주면서 음유 시인들이 신화라고 부른 거라고.”

    창작이 아니었다니.

    올림푸스와 아스가르드 같은 신화가 실제로 존재하는 것에 유진하는 놀랐다.

    “그들이 실존하며 머무는 공간도 따로 있어.”

    유명한 공간의 이야기는 다른 공간으로 널리 전파된다.

    마치 우리가 알고 있는 신화와 전설처럼 널리 퍼져 나갔다.

    “우리 공간을 만들기 전에 들은 건가요?”

    “맞아. 나도 아주 오래전에 소문으로 들었지. 수십억 년도 넘었겠네.”

    “마스터가 그 이야기를 사람들한테 말해 줘서 널리 퍼진 거네요.”

    “다들 즐겁게 듣더라고. 내가 방랑 시인처럼 노래를 곁들어서 얘기해 주니까 좋아하더라.”

    마스터는 오래전 기억이 나는지, 작은 현악기를 품에 안은 시늉을 하면서 기타를 치듯이 흉내까지 냈다.

    “아주 오래되고 깊은 이야기. 짧은 생의 인간들이 아닌 영겁의 긴 세월을 거스르는 신들의 이야기…….”

    “저기요. 노래는 됐고요.”

    예전 생각으로 흥이 난 마스터를 유진하가 얼른 제지했다.

    마스터는 음치에 가까웠다.

    아마 뛰어난 방랑 시인들이 열심히 음색과 박자를 조율하지 않았을까?

    “그럼 올림푸스나 아스가르드 같은 곳에 있는 존재들은 거의 신에 가까운 존재들이겠네요.”

    “맞아. 참고로 동양 쪽의 신화도 내가 알려 준 이야기야. 서유기나 창세 신화도 그렇고 다들 실존해.”

    마스터는 자랑스럽다는 듯이 어깨를 펴며 웃었다.

    유진하는 신화와 전설 같은 이야기가 실존한다는 소리를 듣자 호기심이 들었다.

    “S등급의 공간이라고 할 수 있으려나.”

    A등급을 넘어선 S등급은 초월적인 세계를 의미했다.

    그곳은 우리가 마주하기 어려운 신화 속 세상과 같았다.

    신이라 불릴 정도로 대단한 존재들과 그들의 여행은 이미 무수한 공간에 신화처럼 전해졌다.

    이런 곳에 가려면 그만한 각오가 필요할 터였다.

    “관문은 여기와 연관된 것일까요?”

    “확실하지는 않지만 아마도 그렇겠지.”

    마스터도 장담하지 못하고 추측만 했다.

    새롭게 나타난 관문은 직접 경험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영역이었다.

    “관문에 적힌 글귀는 간단했어. 30일이 지나면 열린다.”

    “30일…….”

    이제 하루가 지났다.

    관문이 열리기까지 아직 29일이라는 시간이 남았다는 소리였다.

    “저 관문이 열리면 뭔가 벌어진다는 거네요. 그럼 우리도 대비 태세를 갖춰야겠어요. 조커부터 데리고 와야겠고.”

    유진하는 결심을 굳혔다.

    조커는 전투 팀의 핵심 멤버였기에 그의 행방부터 찾아내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래.”

    마스터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S등급의 공간과 관문에 대해서 필요한 얘기를 모두 나누었다.

    이제는 새로운 도전과 마주할 차례였다.

    “혼자 가진 않을 테고, 조커를 찾으러 같이 갈 사람은 누구야?”

    “이미 여기 있어요.”

    공원에는 새로운 원정대의 멤버들이 있었다.

    가장 먼저 나타난 사람은 대검을 등에 멘 에어리스였다.

    “에어리스. 그리고 이소민 누나와 가겠어요.”

    영혼의 단짝처럼 따라붙는 에어리스, 이소민이 이번에도 함께하기로 했다.

    다른 사람은 없었다.

    “겨우 셋이서 가겠다는 거야?”

    “규모가 큰 원정대로 가지 않을 거니까요. 어차피 조커만 데려올 생각이라서요.”

    더 많은 동료를 데려갈 수도 있지만 그랬다가는 이곳의 방위가 소홀해질 수 있었다.

    유진하, 에어리스, 조커.

    세 사람이 모두 자리를 비우게 될 때면 괴도 알파나 요원 D는 남겨 놓아야 이곳을 방어할 수 있다.

    “딱 세 명만이라면 오래 갈 생각은 아니구나.”

    “금방 다녀올게요.”

    조커를 복귀시키는 여정에 유진하, 에어리스, 이소민이 함께했다.

    마스터는 밝은 미소와 함께 손을 내밀었다.

    “조커가 간 차원문을 열어 줄게.”

    마스터의 손에서 푸른빛의 차원문이 생성됐다.

    이곳으로 넘어가면 조커가 갔던 공간의 좌표로 향한다.

    망설일 시간은 없었다.

    “무조건 살아서 돌아와.”

    마스터의 응원을 들으며 유진하 일행은 차원문으로 향했다.

    차원 통로에 들어서자 마치 육체가 공중에 부유하는 기분이 들었고, 짧은 시간 동안 온몸이 뭉클해지더니 기척조차 없이 사라졌다.

    “가 버렸네…….”

    마스터는 공원에 혼자 남아서 차원문 너머로 사라진 유진하 일행을 떠올렸다.

    따사로운 햇살이 내리쬐자 눈이 약간 매웠는지 마스터는 손으로 눈가를 훔쳤다.

    “마스터.”

    “으응.”

    경호를 맡은 D가 나타났다.

    마스터는 고개를 돌려 눈시울을 잠시 닦고는 이내 아무렇지 않은 척 웃었다.

    “D도 같이 가고 싶었잖아.”

    “…아닙니다.”

    태도(太刀)를 쥔 D는 묵묵히 자리에 남았다.

    그녀는 마스터의 호위와 공간의 방어를 맡아야 했기에 이번 원정에 따라갈 수 없었다.

    “옆에서 신경써 줘서 항상 미안하고 고마워.”

    마스터는 벤치에서 일어나 두 팔을 뻗으며 기지개를 쭉 켰다.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많았다.

    “유진하가 언제 올지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올 때까지 가만히 있을 순 없지.”

    “저도 마스터 곁에서 보좌하겠습니다.”

    “잘 부탁할게.”

    마스터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남은 기간 동안 실력자들을 더 키워 내는 것이 좋을 거야.”

    “…네.”

    바람이 불어오자 D의 생머리가 나부꼈다.

    차원문 너머로 넘어간 유진하 일행을 보면서 다음에는 반드시 함께하고픈 마음이었다.

    결사대로 이뤄졌던 기억이 남았고 아홉 명의 그들은 항상 같이 함께하는 동료라고 여겼다.

    “가자.”

    떠난 자와 남은 자.

    그들에게는 각자의 과업이 있었다.

    마스터는 D와 함께 공원을 나섰고, 긴 그림자를 남기며 오래도록 걸었다.

    같은 날.

    차원문 너머에서 홀로 싸우던 조커가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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