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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을 활용하는 1000가지 방법-132화 (132/229)

132화 최종 계획(4)

“이게 뭐야?”

이소민은 영문을 알 수 없다는 듯 두 사람을 쳐다봤다.

괴도와 조커.

독특한 성격과 개성을 가진 두 사람이 왜 여기까지 찾아와서 소파에 앉아 차 한 잔이나 홀짝이고 있을까?

“아니, 당신들은 왜 온 거야?”

이소민이 툭 말을 던지자 괴도는 찻잔을 입에서 떼며 대답했다.

“차 한 잔은 마셔도 괜찮을까요? 저희는 초대를 받은 겁니다만…….”

“초대? 누가?”

“저예요.”

거실 귀퉁이에서 살짝 손을 든 사람이 있었다.

볼이 살짝 붉어지고 쑥스러운 듯이 고개를 살포시 숙인 에어리스가 가볍게 손을 든 채로 모두의 눈치를 살폈다.

“…제가 불렀어요.”

“저 두 사람을 에어리스가 불렀다고?”

에어리스가 연락해서 두 사람을 불렀을 거라고는 유진하도 미처 몰랐던 사실이었다.

“J에게 부탁했거든요. 이번 결사대에 참여한 사람들을 초대해서 대접하고 싶다고요.”

결사대가 무사히 귀환한 후에 축하 파티를 생략했다.

에어리스는 그게 마음에 걸려서 감사의 인사를 따로 표하고 싶었던 거였다.

“모두에게 보냈는데 다들 바빴는지 전부 답변은 못 받았어요. 두 분이 와 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지인의 초대를 받았으면 꼭 참석해야 예의겠죠. 마드모아젤 에어리스.”

괴도는 자리에서 일어나 모자를 벗어 에어리스와 인사를 나눴다.

두 사람을 지켜보던 이소민은 방금 괴도의 마드모아젤 멘트를 되새기더니 순간 얼음처럼 굳었다.

“마드모아젤? 그게 뭔 소리야?”

“숙녀 분을 뜻하는 말입니다.”

“으악! 부끄러워!”

너무나 부끄러운 말을 들었는지 이소민은 마치 경기를 일으키듯이 덜덜거렸다.

팔에 생긴 닭살을 벅벅 긁으며 경악했다.

“후우, 예의를 차리기도 힘들군요.”

괴도는 무안한 듯이 다시 모자를 눌러썼다.

물론 이소민의 방해와는 상관없이 에어리스에게는 격식을 갖춰서 부를 생각이었다.

“에어리스 양의 초대장을 받았죠. 그래서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눈을 가린 하얀 가면을 쓴 괴도가 살짝 미소를 지었다.

흥미로운 듯이 그의 눈동자가 방안의 이곳저곳을 살폈다.

“유진하, 제가 보내는 도전장이 아니라서 실망하신 거는 아니죠?”

“아뇨. 그건 사양할게요.”

유진하는 바로 손사래를 쳤다.

괴도와 조커가 걸어 오는 승부는 웬만하면 피하고 싶었다.

난데없는 손님이 나타나자 이소민은 부담이 되는지 양손을 허리에 올리고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건 그렇고 손님이 올지 전혀 몰라서 준비는 하나도 안 되었거든? 배달 음식이라도 시킬까?”

“흐음. 배달 음식이라…….”

괴도는 말끝을 줄였고, 조커 역시 머쓱한 얼굴로 찻잔만 만지작거렸다.

턱시도를 차려입은 괴도.

정장을 입은 조커.

말끔하게 옷을 입은 두 사람이 거실에 주저앉아 짜장면과 치킨을 먹는다?

그런 상상을 떠올리자 이소민은 참지 못하고 폭소를 터트렸다.

“푸흡!”

눈치 빠른 조커는 저 웃음의 의미를 바로 알아챘다.

모두에게 어색한 시간이 흘러가자 에어리스는 얼른 양손을 흔들면서 분위기를 바꿔 보려고 나섰다.

“사실 같이 갔던 모두를 초대했었거든요. 특별한 계획이 없으면 놀이동산은 어떨까요?”

“놀이동산?”

조커와 괴도는 식은땀을 흘렸다.

집에 초대받아서 배달 음식을 대접받을 뻔하다가 이제는 난데없이 놀이동산이라니.

산전수전을 겪은 두 사람조차 저 알 수 없는 에어리스의 의식과 흐름을 쫓아가기 어려웠다.

“하하.”

유진하는 뒷머리를 어색하게 긁으면서 될 대로 되라는 마음이 되었다.

갑자기 모인 탓에 부담만 잔뜩 느껴지는데, 따지고 보면 밖으로 내보내는 편이 훨씬 나아 보였다.

놀이동산이 싫으면 괴도와 조커도 알아서 돌아갈 테니까.

“놀이동산… 정말인가요?”

괴도는 당황한 듯이 손가락을 떨더니 떨떠름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조커는 한 모금 마시던 차를 내려놓더니 자신의 의사를 밝혔다.

“나는 가겠어.”

뜻밖의 소리였다.

조커는 놀이동산에 가겠다니.

“네? 정말이요?”

놀란 유진하가 되물었다.

저 침착한 조커가 놀이동산을 선호할 리가 없는데 왜 받아들였는지 의문이었다.

“정말이다. 나는 놀이동산이든 어디든 가겠어.”

조커가 결정하자 같이 손님으로 온 괴도도 혼자만 놀이동산에 안 가기 무안해졌다.

괴도는 모자챙을 부여잡으며 고심하더니 이내 결정을 내렸다.

“이거 참. 이러면 저도 안 갈 수가 없겠군요.”

마침내 승낙했다.

턱시도의 괴도와 정장의 조커가 모두 놀이동산에 가게 되었다.

유진하에게는 전혀 예기치 않은 결과였다.

짧은 비명이 흘러나왔다.

‘아…….’

처음으로 예측에 실패했다.

사람의 취향이나 기분은 도통 알 수 없는 미지의 영역이라는 걸 재차 깨닫게 되었다.

“여기서 짜장면이나 치킨을 먹는 것보다는 낫겠더군요.”

괴도는 소파에서 일어나 망토를 펄럭였다.

덕분에 먼지가 생기자 이소민은 손을 휘휘 내저으며 고개를 돌렸다.

“아이, 집에서 망토 털면 어떡해. 먼지만 나오잖아요.”

“아, 그렇군요. 실례했습니다.”

푸대접에 이어 면박까지 받자 괴도는 괜히 여기 왔나, 후회하는 감정이 밀려오고 있었다.

괴도가 혼나는 모습을 보자 조커는 눈치를 살피면서 조심스레 먼지가 안 나도록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가 볼게요.”

유진하와 에어리스, 이소민의 뒤로 괴도와 조커가 합류했다.

다섯 명이 함께 걸어가니 그 모습만으로도 위압감이 느껴졌다.

유진하는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놀이동산 원정대가 되었네?”

오늘 하루는 왠지 긴 하루가 될 거 같은 예감이 들었다.

* * *

화창해서 인지 놀이동산은 사람들로 붐볐다.

테이블에 앉아서 음료수를 마시는 연인.

풍선을 들고 장난을 치는 아이와 바이킹을 타며 비명을 지르는 사람.

모두가 즐거운 시간을 보낼 즈음이었다.

“저 사람들 뭐야?”

눈에 띄는 사람들이 나타나자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쏠렸다.

다섯 명의 유진하 일행은 등장하자마자 강한 개성을 드러냈다.

턱시도에 가면을 쓴 괴도.

백가면을 쓴 조커.

이 사람들이 중요한 원인이었다.

“자, 그럼 같이 놀아 봐요. 놀이기구를 타도 좋고, 산책을 해도 좋아요.”

다섯 명의 멤버들은 각자 편한 방식을 선택했다.

에어리스는 혼자 놀이 기구를 타려다가 이내 조커에게 다가가서 말을 걸었다.

“조커, 혹시 놀이 기구를 타 봤어요?”

에어리스가 조커에게 다가가 말을 붙였다.

흠칫 놀란 조커는 경계하는 마음이 들었다.

에어리스의 저 천진난만한 미소에서 알 수 없는 위화감을 느낀 탓이었다.

“아니. 나는 놀이동산에 처음 와 본다.”

“아, 그럼 정말 잘됐다. 저는 저번에 와서 진하와 이소민 언니와는 같이 타 봤거든요. 이번에는 조커하고 놀이 기구를 타면 될 거 같아서요.”

“…그러지.”

별다른 생각 없이 조커는 에어리스의 제안을 선뜻 받아들였다.

그게 실수였다.

하루 내내 끌려다니면서 미친 듯이 놀이 기구만 타리라고는 이때 미처 생각지 못했다.

“와아!”

바이킹에서 두 손을 들어 만세 하는 에어리스와 달리, 조커는 잔뜩 긴장해서 뻣뻣한 자세로 안전 바를 움켜잡았다.

조커는 놀이 기구에 취약했다.

본인도 몰랐던 사실을 하나 깨닫게 되었다.

쪼르륵.

이소민은 카페에서 빵과 커피를 즐겼다.

브런치 느낌처럼 혼자 사색에 잠겨 자신만의 시간을 즐겼다.

“역시 부드러운 커피가 좋아.”

바쁜 도시와 어지러운 놀이동산에서 여유를 마음껏 느꼈다.

은은한 커피 향과 함께 온전한 휴식을 보냈다.

“그런데 나만 여기 카페에 있는 건가?”

다만, 혼자라서 좀 외로운 느낌이 있었는데 멀리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곳을 보게 되었다.

뭐 때문인가 의문이 들 즈음.

사람들은 무슨 신기한 서커스를 보듯이 가로등 위에 있는 괴도가 망토를 나부끼는 모습이 보였다.

그걸 멀리서 지켜본 이소민은 얼른 고개를 돌리고 시선을 피해 버렸다.

“그냥 혼자 있는 게 낫겠다.”

쪼르륵.

커피를 마시면서 다른 곳을 쳐다보며 일행이 아닌 척 혼자 휴식을 즐겼다.

괴도가 가로등에 있자 신경이 쓰인 사람이 한 명 더 있었는데 유진하였다.

슬쩍 다가와서는 괴도에게 말을 걸었다.

“거기서 뭐해요?”

“높은 곳에서 봐야 잘 보입니다. 올라오면 알 거예요.”

“…저는 됐거든요.”

유진하는 단칼에 거절했다.

지략이 뛰어난 괴도는 이미 뭔가를 아는 듯이 놀이동산의 전체적인 구도에 집중했다.

물론 유진하도 괴도의 의도를 알아차렸는데, 이곳에서 무슨 일인가 벌어지고 있었다.

“그들이 왔죠?”

“역시 유진하도 눈치를 챘군요.”

두 사람은 동시에 놀이동산에서 낯선 자들의 존재를 눈치챘다.

곳곳에 위장한 감시자가 있었다.

지력이 상당한 두 사람은 감시자를 알아챘고 군데군데 숨은 그들을 파악하고 있었다.

“역시 괴도와 조커가 모였으면 그쪽에서 가만히 있을 리가 없죠.”

괴도는 모자챙을 잡더니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사실 조금만 생각해 봐도 뻔한 일이었다.

주의할 대상인 괴도와 조커가 모이면 당연히 반응할 곳이 있었다.

유진하는 정답을 말했다.

“정부 요원이죠.”

“그들은 여전하군요. 하긴 괴도를 항상 경계하는 임무가 있을 테니까요.”

가로등에 올라간 괴도는 예상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때는 동료였으나 언제라도 적이 될 수 있는 사이였다.

애초에 괴도, 조커, 에이스는 ‘악인들의 원정대’로 불린 멤버들이었고 요원들이 그들을 신뢰할 이유는 없었다.

“요원들은 경계만 하고 있을 거예요. 어쩔 수 없는 거죠.”

유진하도 서로가 처한 현실을 인정했다.

동료와 적을 오가는 사이였다.

한때는 목숨을 걸고 협력했으나 언젠가는 다시 싸울 수도 있었다.

이번 결사대의 활약 덕분에 그들은 마스터에게 면죄를 받았으나, 조커와 괴도에 대한 믿음이 있는 건 아니었다.

각자의 신분으로 인해 발생하는 거리감은 앞으로도 극복할 과제였다.

“에어리스 양은 알았던 겁니다. 우리가 결사대로 함께 했으나 언젠가 다시 대립할 수도 있다는 것을요.”

괴도는 가로등에서 슬쩍 내려왔다.

놀이동산에는 요원들이 숨어서 관찰하고 있었고 이미 그들의 위치를 몇몇 파악했다.

“저쪽 입장도 이해하지만 감시를 받는 쪽에서는 신경이 쓰이죠.”

“동감이에요.”

유진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괴도는 턱시도 복장을 정돈하면서 이곳의 거추장스러운 상황을 경계하고 있었다.

‘에어리스의 초대장은 어쩌면 이걸 염려했던 것일까?’

‘조커와 괴도를 초대한 진짜 의도는 화해와 협력을 계속 유지하고 싶은 에어리스의 바람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곳곳에 숨은 위장 요원들을 지켜보면서 괴도는 재밌는 계획을 떠올렸다.

“유진하, 우리 내기를 하면 어떨까요?”

“내기요?”

“놀이동산에 숨은 요원들을 누가 더 많이 찾아내나. 어떤가요?”

괴도는 게임을 제안했다.

감시자를 찾아내서 돌려보내는 김에 내기까지 살짝 곁들이자는 소리였다.

괴도의 제안에 유진하는 순순히 받아들였다.

“좋아요. 어차피 자유롭게 즐기고 싶으니까요. 대신 능력은 쓰지 않도록 해요.”

“사람들이 놀라지 않도록 배려하겠다는 말이군요. 알겠습니다.”

유진하와 괴도는 규칙에 합의했다.

숨어 있는 요원을 누가 더 많이 찾아내나.

요원의 신체에 먼저 손을 대면 발견자로 인정하기로 했다.

“더 많이 찾은 사람이 이기는 겁니다.”

괴도는 망토를 펄럭이며 천천히 달려갈 자세를 잡았다.

동시에 유진하도 살짝 숨을 고르며 승부를 시작하려 했다.

“게임 시작!”

괴도 알파와 유진하의 대결.

놀이동산에서 벌어지는 둘만의 새로운 게임.

마치 땅속에 숨은 두더지를 찾는 느낌으로 숨어 있는 요원을 하나하나 찾아내기 시작했다.

서로의 자존심을 건 대결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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