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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을 활용하는 1000가지 방법-130화 (130/229)

130화 최종 계획(2)

귀환 후 1일.

호텔 옥상의 테라스에는 한 사람이 있었다.

한 사람은 화창한 하늘 아래에서 푸른 머리를 나부끼며 팔짱을 낀 채로 도시의 전경을 바라봤다.

“언제 오려나?”

누군가를 기다리느라 긴장해서 다리까지 떨고 있는데 약속된 시간이 다가올수록 더 초조해졌다.

“마스터.”

마침내 옥상 입구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하얀 티셔츠와 청바지 차림의 유진하가 나타났다.

“유진하. 딱 맞춰서 왔네?”

“아아, 길이 좀 막혀서요.”

유진하는 뒷머리를 긁적이며 손목시계를 살폈다.

12시 정각이 되기 5분 전이었다.

도로가 붐볐는데도 다행히 늦지 않고 도착했다.

“네 능력이면 단숨에 올 수 있는데 뭐하러 힘들게 왔냐. 빛으로 오면 되는데?”

마스터는 빛의 능력을 가리켰다.

각인된 빛의 카드는 유진하가 가진 최대의 힘이었다.

“평소에는 안 쓰려고요.”

굳이 능력을 남용해서 남들에게 이목을 끌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그저 일반 사람들과 똑같이 평범하고 행복한 삶을 살기를 원했다.

모두의 평범한 삶을 지키는 것.

그걸 위한 여정이었다.

“그래, 하고 싶은 대로 해야지.”

마스터도 같은 심정이었다.

남들과 똑같이 평범하면서도 행복한 삶을 위해서 절대 전면에 나서지 않았다.

그런 면에서 둘은 가치관이 같았고, 마스터가 유진하를 더 신뢰하는 이유이기도 했다.

“M한테 자세한 정보는 아직 받지 못했지만 치열한 격전을 벌였다고 들었어.”

“…그랬었죠.”

유진하는 전권을 위임받아 대전략을 구상했다.

리더를 맡아서 결사대를 이끌어 코어 생명체와의 극한의 결전을 벌여 왔다.

새삼 아슬아슬했던 순간들이 머릿속에 지나갔다.

“정말 가까스로 모두가 무사히 귀환했네요.”

“진짜 수고했어. 너희들이 지켜 낸 거야.”

마스터는 작전의 성공에서 큰 보람과 자부심을 받았다.

처음에 이 공간에 왔을 때는 오직 어둠뿐이었다.

빅뱅으로 시작된 세상은 생명체의 진화를 거쳐 지성체 인간의 단계까지 왔다.

수십억 년을 넘는 길고 긴 세월이 흘렀고 혼자만의 시간을 보냈다.

다른 공간과 완전히 차단시켜서 이 세계를 철저히 숨겨 왔고 덕분에 온전하게 지켜 낼 수 있었다.

“지금까지는 항상 숨어 왔었는데 이제는 정면 승부를 이겨 낼 정도로 성장했어.”

마스터는 새삼 모두가 자랑스러웠다.

긴 시간이 흐르는 동안 훌륭한 사람들이 태어나고 성장했다.

“발전된 문명을 넘어 뛰어난 지성체가 되었으니까. 우리도 당당한 세력으로 성장한 거야.”

마스터가 기뻐하는 모습을 보면서 유진하도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혼자서 이 세계를 지켜 낸다는 부담감이 그동안 마스터의 어깨를 짓눌렀을 터였다.

내부의 적과 외부의 적.

마스터는 항상 모든 걸 스스로 해결해 왔다.

이제는 유진하를 비롯해 든든한 지원자들이 도와줄 차례였다.

“아직 M의 보고서가 올라오지는 않았지만, 최종 조율을 한 부분은 말씀을 드려야 할 것 같아요.”

“최종 조율?”

마스터는 알쏭달쏭한 얼굴로 유진하를 빤히 쳐다봤다.

이번 전략은 섬멸전이 아니었다.

상대를 모조리 없애는 목표가 아니라 전투 자체를 마무리하는데 그 목표를 두었다.

생존을 위한 선택이었다.

“A등급 공간과 전면전을 피하고 대등한 관계로 발전하기로 협약을 맺었어요.”

“흐음. 협약이라는 거지?”

“구체적으로는 세부 사항이 있어요.”

유진하는 품에서 한 장의 낡은 종이를 하나 꺼냈다.

코어 세계의 마스터인 서열 1위와 담판을 벌여서 얻어 낸 협약 증서였다.

-첫 번째, 양측은 전투를 즉시 종료하고 새로운 협력 관계를 만들기로 한다.

-두 번째, 불가침 조약을 맺어 서로의 공간을 침범하지 않는다.

-세 번째, 협의체를 구성해 발전 모델을 협의한다.

세 가지 대원칙을 성립했다.

작전의 전권을 위임받았기에 협약을 맺을 수 있었다.

“재밌는 내용인데?”

마스터는 관심을 보이면서 협약 증서를 읽어 내려갔다.

대범한 내용이었다.

“전투를 끝내고, 서로 침범하지 않는다는 것도 좋고.”

작전의 목적은 확실히 얻었다.

그 외에는 예상치 못한 내용이 눈에 띄었다.

“협의체를 만들어 발전 모델을 만들어간다?”

“거기가 핵심이에요.”

유진하는 가벼운 미소를 지으며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저 세 번째 문구인 협의체와 발전 모델이 앞으로의 길을 제시했다.

대전략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저들과 연합하기로 했어요.”

“연합? 동맹 말이야?”

“네, 이제부터 코어의 세계와 우리는 연합이에요.”

마스터는 깜짝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

연합 동맹체.

공간과 공간이 서로 힘을 합치기로 했다는 소리였다.

“앞으로도 침략이 얼마든지 더 일어날 수 있어요. 이걸 막아 내려면 우리도 스스로 강해져야 하지만 든든한 동맹이 있는 편이 좋아요.”

“국제 정치와 비슷하네.”

마스터는 인간들의 역사를 숱하게 지켜봤다.

고대부터 현대까지.

제국과 강대국은 전쟁과 문명, 경제력으로 인해 번영과 쇠퇴를 맞이했다.

연합이란 인간 역사에서 필수 불가결의 요소였다.

“상호 확증 파괴의 논리는 핵무기 대결이고. 이제는 연합 세력이라는 국제 정치의 핵심 논리를 활용하는 거구나.”

유진하의 생각을 듣자 마스터는 감탄했다.

사실 공간들은 이미 저마다 연합 세력권을 유지하고 있었다.

따라서 공간전에 나타난 신생 세력들은 살아남기 위해 새로운 계책을 떠올렸다.

공간 연합체.

이른바, ‘성운’이라 불리는 개념이었다.

“맞는 말이야. 나도 동의해.”

마스터는 고개를 끄덕이며 유진하의 전략을 받아들였다.

침략을 막으라고 전권을 맡겼더니 그 이상의 목표까지 이뤄 냈다.

연합을 만들어서 막강한 ‘성운’ 세력을 만들겠다고 공언한 것.

유진하가 처음부터 몇 수 뒤를 내다보았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다행이에요.”

유진하는 뒷머리를 긁으면서 겸손하게 고개를 숙였다.

어린 나이에 결사대의 리더라는 중책을 맡아서 모든 전략을 수립했다.

심지어 대전략의 최종 목표로 연합체 성운을 구성하겠다는 참으로 대담한 구상까지 실천했다.

어마어마한 생각과 그걸 이뤄 낸 사람치고는 너무나 겸손한 모습이었다.

“잘했어. 정말 놀라운 결과야.”

마스터는 흡족한 표정이 되어 도시의 전경을 바라봤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면 넓은 세상이 보였다.

동시에 이 넓은 세상을 무사히 지켜 냈다는 안도감이 소름처럼 온몸에 퍼졌다.

“아, 연합의 대가를 받았어요.”

유진하는 품에서 선물을 꺼냈다.

서열 1위에게서 직접 받은 협약의 대가였다.

유진하의 품에서 수십 개의 동그란 구체가 둥둥 떠올랐다.

“그 동그란 게 설마 코어……?”

마스터는 듣기만 하던 코어를 실물로 보게 되었다.

인간의 심장에 해당하는 것을 직접 보니 새삼 신기하면서도 관심이 생겼다.

“이론상으로는 무한에 가까운 동력원이라고 했어요.”

“잘 이용하면 굉장하겠는데?”

마스터는 손가락을 내밀어 코어 하나를 툭 찔러봤다.

살짝 뒤로 밀렸던 코어는 둥둥 떠오른 채로 다시 자기 위치로 돌아왔다.

“동력원으로 사용해서 자원 부족을 해결할 수도 있고. 전투에 활용해서 우리 공간을 지킬 수도 있어요.”

“이거 다양하게 쓸 수 있겠네.”

마스터는 풋 웃으면서 코어들을 바라봤다.

귀중한 선물까지 받았으니 이제는 귀환 파티에 참가할 차례였다.

“연구소에다 이것들은 맡길게. 자, 그럼 우리는 파티에 가자.”

“하하. 그것도 좋지만 지금은 사양할게요.”

유진하는 처음으로 손사래를 쳤다.

마스터가 일부러 준비한 축제 파티였는데 정작 주인공이 거부 의사를 밝혔다.

“왜? 멋진 볼거리와 맛있는 음식들을 준비해 놨는데.”

“그럴 기분이 아니라서요.”

유진하는 슬쩍 몸을 돌렸다.

환한 빛 속에서 처음으로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손을 들어 작별 인사를 전했다.

“지금은 그냥 쉬고 싶어서요.”

결사대의 전투는 생과 사를 오가는 긴장의 연속이었는데) 그동안 쌓인 피로감이 전투에서 돌아오자 한 번에 몰려왔다.

귀환한 멤버들은 다들 진이 빠져서 손가락 하나도 까딱하지 못할 만큼 기력을 모두 소진했다.

아차차.

마스터는 손뼉을 치면서 무안한 낯빛을 감추었다.

“내가 센스가 없었네. 그럼 축하 파티는 나중으로 미룰게.”

“네, 그럼 나중에 봐요.”

유진하는 지친 기색으로 천천히 옥상을 빠져나갔다.

마스터는 그 뒷모습을 끝까지 바라본 후에 고개를 돌려 하늘을 바라봤다.

쏟아지는 햇살이 눈이 부시도록 아름답게 빛났다.

“모두 고마워.”

진심 어린 감사의 인사였다.

마스터는 변화하는 세상이 앞으로 얼마나 더 발전해 갈지 기대했다.

“성장하는 존재.”

인간의 가능성을 그렇게 예감했던 터라 그 생각이 점점 증명되자 너무나 기뻤다.

혼자 사색에 잠기며 마스터는 한동안 옥상에 남았다.

* * *

타닥타닥.

바쁘게 오가는 손가락이 컴퓨터 키보드를 열심히 두드렸다.

귀환한 M은 여느 때처럼 보고서 작성에 열을 다했다.

“흐음.”

바쁘게 움직이던 손가락이 잠시 멈췄다.

긴 원정의 피로감은 M에게도 동일하게 찾아왔다.

하지만 요원들은 회사원처럼 보고서로 시작해서 보고서로 끝난다.

이번 결사대의 원정을 기록해 놔야 모든 업무가 마무리된다.

“벌써 밤인가?”

커피를 하나 타던 M은 어둑해진 바깥 풍경을 그제야 알아차렸다.

보고서를 쓰던 사이 해가 저물었는지 가로등이 하나씩 켜지고 있었다.

집중해서 일하다 보니 시간 가는 줄도 몰랐던 것이다.

“커피도 오랜만이야.”

귀환한 첫날이었다.

간만의 커피가 피곤함을 사르르 녹여 주었다.

고개를 잠시 돌리고 어깨를 주무른 M은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았다.

“보고서는 거의 다 썼다.”

결사대의 시작과 끝.

모든 진행 과정을 샅샅이 기록했다.

보고서에는 최대한 생생하게 현장감을 살려서 상세하게 적었다.

“코어라는 동력원과 그들의 전투 단계가 꽤 중요하지.”

모니터를 바라보는 M의 눈빛은 진지했다.

코어의 세계는 세상을 보는 시야를 넓혀줬다.

선물로 받은 코어를 통해 연구할 부분도 있었다.

“연합 공간, 성운으로 성장해야겠지.”

앞으로 그들과 협의체를 구성하여 동맹을 맺고 연합 공간이 되어야 했다.

유진하는 휴가를 떠났지만 아마 저 생각을 계속 떠올릴 터였다.

전략가는 항상 다음 책략을 고민하는 법이었으니까.

“결사대의 전공도 분석했으니까.”

M 자신은 정보 수집과 정찰을 담당했다.

M의 도움으로 유진하의 전략이 막힘없이 흘러갈 수 있었다.

리더 유진하.

전투 팀은 에어리스, 조커.

지원 팀은 이소민, D, J.

유인 팀은 괴도, 에이스.

각자 맡은 바에서 완벽하게 작전을 수행했다.

결사대의 생존은 모두가 이뤄 낸 결과였다.

“그럼 마지막은…….”

타자를 치는 손가락이 차츰 빨라졌다.

이제는 성장 항목을 살펴봤다.

이번 결사대는 얼마만큼 성장했느냐에 대해서 중요한 분석이 남았다.

“공간의 등급과 멤버들의 능력치를 기록해야겠군.”

결사대의 원정이 끝난 후의 우리 공간의 등급에도 변화가 생겼다.

멤버들의 개인 능력치도 성장했다.

이제 그 내용을 기록할 차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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