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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을 활용하는 1000가지 방법-129화 (129/229)

129화 최종 계획(1)

A등급 공간은 전투 능력만으로 서열을 가린다.

서열 10위권까지는 최상위 서열자로 인정받아 지배 영역을 가질 권리를 받는다.

그런데 서열 7위가 사라져 빈자리가 생겼다.

“한동안 혼란스럽겠구나.”

서열 1위는 커다란 의자에 앉아서 가만히 생각했다.

긴 장발 머리에 장신의 남자였는데 온몸에 초록 알갱이가 서린 상태로 혼자 거대한 의자에 앉아 턱에 손을 괴고 고민하고 있었다.

서열 1위의 앞에는 특별한 장식이 없는 기둥이 세워진 로비가 끝없이 펼쳐졌다.

“골치 아픈 일이 생겼어.”

서열 7위가 사라져 생긴 빈자리에는 새로운 지배자가 필요했다.

코어들은 이곳을 차지하려고 전투를 벌일 테고, 최종 승자가 나올 때까지 치열한 내전이 벌어질 터였다.

“인간이라…….”

사실 간단한 해결책이 있었다.

서열 7위를 이긴 자를 그 지역의 지배자로 두는 것.

문제는 그가 ‘인간’이라는 사실이었다.

“다른 생명체가 그 자리를 차지하게 놔둘 순 없겠지.”

인간은 코어가 아닌 데다, 자신의 휘하에 두는 것도 당연히 불가능했다.

그렇다고 지켜볼 수도 없었다.

서열 7위가 맡은 지역이 텅 비어 무주공산이 되며 방어망에 틈이 생겼다.

게다가 최상위 서열자를 쓰러뜨린 자는 부하가 아닌 눈엣가시 같은 강적이다.

“없애야 하나?”

전면전이라면 승산은 있었다.

문제는 이쪽에서 입을 타격이었다.

서열 10위권은 한 명 한 명이 막강한 전투력과 지배력을 가진다.

이들이 핵심 세력이기에 하나만 사라져도 공간 전체의 전투력이 약해진다.

“으음.”

서열 1위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사생결단을 하느냐.

아니면 다른 선택을 하느냐.

결단의 순간이 임박한 때였다.

“뭐지?”

넓은 로비는 어둡고 음침했다.

서열 1위가 있는 곳은 철옹성으로 구성된 던전이었다.

그가 혼자 있는 마지막 방은 아무도 모르도록 깊이 숨겨 놓은 비밀 장소였다.

“누구냐?”

어두운 저 너머에서 하얀빛이 다가왔다.

반딧불처럼 작았던 그 빛은 점차 빛줄기처럼 긴 자국을 만들었다.

그리고 섬광처럼 매서운 속도로 자신에게 다가왔다.

“인간인가?”

빛의 정체는 유진하였다.

유진하가 빛의 오오라를 머금고 나타난 것이다.

“당신이 서열 1위인가요?”

“내가 맞다.”

서열 1위는 의자에 앉아서 가만히 앞을 응시했다.

빛을 발휘하며 나타난 유진하에게 묘한 흥미를 느낀 것이다.

“마지막 방까지 온 자는 아무도 없었다.”

이 거점은 복잡한 미로와 무수한 함정이 깔린 난공불락의 던전이었다.

들어온 자를 다시 빠져나가지 못할 만큼 정교하게 구성한 던전인데…….

“여기 말인가요?”

유진하는 주변을 돌아봤다.

뒷머리를 벅벅 긁더니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둡고 고요한 로비는 침묵 속에 있었다.

“그렇게 어렵지는 않았어요.”

“뭐?”

서열 1위는 말문이 막혔다.

무수한 적들을 좌절시킨 이 던전을 이렇게 쉽게 돌파한 저 인간의 정체가 의문스러웠다.

“미로에는 반드시 길이 있거든요.”

“…….”

뭐라고 할 말이 없었다.

그걸 몰라서 다른 녀석들이 못한 게 아니었다.

“네가 서열 7위를 이긴 인간인가?”

“유진하라고 해요.”

유진하는 차분한 얼굴로 대응했다.

마침내 서열 1위와 마주했다.

정교하게 구성한 던전도 그렇고 그의 정체는 명확했다.

“당신이 서열 1위라면… 이 공간의 주인인가요?”

“맞다. 내가 공간의 주인이지.”

그는 순순히 인정했다.

유진하는 서열 1위이자 A등급 공간의 주인과 마침내 만났다.

“너희의 소식은 들었다. 훨씬 약한 공간이라고 들었는데 오판이었어.”

서열 1위는 실패를 인정했다.

공간을 지배하는 자로서 책임감이 있는 자세를 겸비했다.

결사대의 리더인 유진하는 최종 책임자가 갖는 무게감을 서열 1위와 같은 심정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실패하면 끝나는 순간이지.”

서열 1위와 유진하는 같았다.

자신의 판단에 따라 휘하의 모두가 같은 운명에 처한다.

생존과 멸망.

그 사이에서 두 사람은 최후의 담판을 벌이게 되었다.

“대단한 실력자라는 건 알고 있다. 나를 찾아왔다면 원하는 게 뭐지?”

공략전은 공간의 주인을 제압하거나 주인의 전리품을 차지하면서 끝난다.

이후에는 공간이 소멸하면서 멸망하는 과정으로 이어지고.

이제까지의 모든 공략전이 그랬다.

“승부를 원한다면 받아 주지.”

서열 1위는 오오라를 발휘했다.

발휘된 오오라는 초록빛의 알갱이와 융합하며 서서히 유진하를 압박했다.

“…아니요.”

유진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서열 1위와 결전을 벌이러 이곳에 온 게 아니었다.

“이 싸움을 여기서 끝내기를 원하고 있어요.”

의외의 답변을 받은 서열 1위는 멈칫했다.

예상치 못한 말이었는지 발휘하던 오오라가 바람에 흔들리듯 흩어졌다.

“전투를 끝내자고?”

“그래요. 더 이상의 싸움은 서로에게 재앙이 될 테니까요.”

유진하는 동요하지 않고 말을 이어 갔다.

“서로의 공간을 공격하지 않는다. 이 조건이면 어떨까요?”

“…….”

서열 1위는 그제야 담판의 의미를 깨달았다.

유진하의 제안은 구체적이었다.

-양측이 협정을 맺어서 ‘불가침 조약’을 맺는다.

과감한 제안이었다.

“이게 제 결론입니다. 서로가 싸우면 확실하게 큰 타격을 입을 테니까요.”

“타격을 입는다?”

“…그래요.”

유진하는 냉정한 눈빛으로 상대를 응시했다.

협상은 서로가 동등한 입장에 있을 때 성사되기에 절대 얕보이면 안 된다.

“우리가 이기든 당신이 이기든 서로 큰 피해를 받을 거예요.”

“예상은 해 봤나?”

서열 1위는 유진하의 의도를 떠보려는 듯이 기습적으로 질문했다.

동시에 매서운 눈빛으로 유진하의 전신을 빠르게 훑어보며 실력을 파악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외나무다리에 있었다.

승부냐. 협상이냐.

한순간에 모든 것이 결정 난다.

“승률은… 당신들이 앞서요.”

저들은 7위를 잃었으나 나머지가 온전히 남았다.

인간 중에는 현재 저들과 맞설 수준은 유진하가 유일했다.

조커와 에어리스가 전투 6단계 영원의 영역에 도전하고 있으나 시간이 더 필요했다.

“당신을 이길 순 없을 거예요. 하지만 적어도 이 공간을 날려 버릴 방법은 준비했죠.”

“그게 뭐지?”

“…….”

유진하는 온몸에서 빛의 오오라를 드러냈다.

레벨6.

영원의 영역.

빛의 창살이 무수히 나타나서 원형의 굴레처럼 온몸을 둘러쌌다.

“빛이라…….”

서열 1위는 눈부시게 쏟아지는 빛의 자태를 바라봤다.

따스한 저 빛은 유진하가 대답 대신 보여 준 힘이었다.

“빛의 힘으로 승부하겠다?”

문득 서열 1위의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이 있었다.

유진하는 최후의 태양이었다.

하늘에는 세 개의 태양이 떴으니 어쩌면 유진하가 네 번째 태양일 수도 있었다.

“최후의 수가 그건가.”

빛을 다루는 힘.

태양이 되는 힘.

유진하가 하늘에 뜬 세 개의 태양의 활용법을 찾았다면?

“정말로 여기를 아예 날려 버릴 수 있겠어.”

불가능하지 않았다.

태양마저 아우른다면 가능성이 있는 시나리오였다.

“상호 확증 파괴의 원리…….”

서로가 상대를 확실하게 파괴한다면 전투를 자제한다.

양측이 생존하기 위해서 피한다.

핵무기가 지배하던 냉전 시대에 통용하던 정치적 논리였다.

지금 유진하는 그 국제 정치적 이론을 승부수로 던졌다.

“…마지막 순간이에요.”

사실 유진하는 아직 하늘에 뜬 세 개의 태양을 완벽하게 다룰 수 없었다.

그저 한계 너머에서 이쪽으로 밀어 버리는 정도가 겨우 가능했다.

‘태양을 떨어뜨린다.’

대신 유진하 역시 태양에 집어삼켜져 소멸해 버릴 터였다.

자신의 목숨을 걸어야지만 코어들의 공간에 재앙을 불러일으킬 수 있었다.

물론 이것은 결사대 전원의 소멸도 의미했기에 실제로 사용할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상대를 위협하는 용도로는 충분했다.

-쓰지 않을 카드로 협상에 나선다.

유진하는 과감한 결단을 내렸다.

“서로 같이 멸망하거나 협력을 하거나 선택할 순간입니다.”

“…….”

“당신에게 맡기겠어요.”

선택의 순간에 도달했다.

서열 1위의 선택으로 대전략의 승패가 결정된다.

“…….”

서열 1위도 쉽지 않은 선택인지 잠자코 고심했다.

그의 입에서 나오는 대답에 따라 모든 결과가 뒤바뀌게 된다.

전투냐. 협력이냐.

고요한 로비에는 태양의 오오라와 초록빛의 오오라가 오래도록 남아 있었다.

* * *

푸른 하늘이 보였다.

탁 트인 고원에는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어떤 혼란도 없는 이곳의 하늘에는 태양이 세 개가 잔존했다.

“시원하다.”

높은 절벽에 선 이소민은 기지개를 켜며 불어오는 바람을 맞이했다.

가슴 속까지 상쾌한 기분이 가득 들어왔다.

“모두 준비는 된 거지?”

에어리스와 요원들은 물론 조커, 괴도와 에이스도 저마다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모두가 같은 생각으로 이곳에서 유진하의 귀환을 기다렸다.

“유진하가 돌아오기를…….”

떠나기 전에 유진하는 하루의 시간을 달라고 했다.

최종 담판을 짓고 돌아오겠다고.

모두에게 약속하고 떠났다.

“…오겠지?”

이소민이 옆에 있는 에어리스를 바라봤다.

에어리스는 조용히 정면을 바라보며 먼 곳을 응시했다.

지평선 너머 어딘가에서 유진하는 최선을 다해 대전략의 마지막 퍼즐을 맞추고 있을 터였다.

“기다리고 있어요.”

불어오는 바람이 금발의 머릿결을 흩날렸다.

아홉 명의 결사대 모두 무사히 돌아가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바랐다.

“오늘 오지 않으면 차원문을 열고 돌아가라고 했다.”

에이스는 양손을 호주머니에 넣고 가만히 주변을 둘러봤다.

이 절벽은 곧 차원문이 열릴 장소였다.

“처음 여기 왔을 때부터 마스터와 약속한 시간이다.”

무사 귀환을 위한 계획이었다.

유진하는 처음부터 마지막을 미리 내다보고 결정했다.

리더로서 작전의 성공과 실패에 상관없이 남은 사람들을 무사히 보내고 싶었다.

“얼마 남지 않았어.”

이소민은 한숨을 내쉬었다.

남은 시간은 겨우 30분.

멤버들은 저마다 유진하가 없는 상황에서 선택의 순간을 맞이해야 했다.

“유진하가 돌아오지 않는다면 다들 어떻게 할 거야?”

항상 잘 웃던 이소민이었으나 모처럼 진지한 질문을 던지며 살짝 말끝을 흐렸다.

모두에게 하는 질문이었으나 다들 섣불리 대답하지 않았다.

“돌아가느냐. 남느냐.”

조커는 자신이 쓴 백가면을 만지며 잠시 고민에 빠졌다.

가면에 새겨진 삐에로 그림이 방긋거리며 웃고 있었다.

조롱하거나 비웃음을 위한 광대였으나 지금은 분위기가 바뀌었다.

“나는 남겠어. 여기에 강자들이 많아서 하나하나 쓰러뜨리는 것도 재밌겠거든.”

조커다운 선택이었다.

전투를 즐기는 자답게 치열한 승부가 벌어지는 코어들의 세계를 마음에 들어 했다.

그의 손등에 새겨진 쌍단검의 문양에 붉은빛이 감돌았다.

“자, 여기까지…….”

이소민은 손뼉을 치면서 분위기를 확 바꾸었다.

“조커만 여기에 남고 우리는 모두 돌아가기로 확정이다!”

“어이…….”

장난기 많은 이소민한테 뒤통수를 맞은 조커가 멈칫했다.

딱딱한 일행의 분위기를 순식간에 반전시키려는 이소민의 농담이었다.

재수 없게 걸린 조커는 해명하느라 버둥거렸다.

그때였다.

“빛?”

에어리스는 섬광처럼 다가오는 빛줄기를 보고 멈칫했다.

“진하…….”

저 멀리 화사한 빛 속으로 날아오는 그 사람.

“진하!!”

에어리스가 크게 소리쳤다.

햇볕이 다가오면서 결사대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번졌다.

너무나 아름다운 햇살 속에서 모두가 기다리던 단 한 사람이 돌아온 것이다.

“어서 와요!!”

결사대의 지휘자이자 모두를 지키려던 리더였다.

유진하는 모두를 안전하게 돌려보내고 혼자 희생까지 각오했다.

태양과 빛의 오오라를 머금으며 날아오는 유진하의 눈빛에는 결사대 멤버들이 하나하나 보였다.

이소민. 요원들.

조커. 괴도. 에이스.

마지막은 양손을 들며 밝게 웃는 에어리스가 보였다.

“돌아왔어.”

화사한 빛과 함께 유진하는 마지막으로 도착했다.

최종 순간을 함께 맞이하며 모두가 환하게 웃는 순간을 맞이했다.

결사대는 성공적으로 작전을 완수하고 귀환 길에 올랐다.

마침내 차원문이 열렸고 아홉 명의 결사대 전원이 무사히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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