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6화 결사적인 하루(2)
전투를 받아들인 서열 7위는 머리카락에 서려 있던 푸른 알갱이의 수를 무수하게 늘렸다.
“시작해 보자.”
서열 7위는 순식간에 레벨5 초월화에 이르렀다.
온몸에 검은 띠를 둘렀고 등 뒤에는 검은 날개를 발현시켰다.
발현된 날개는 마치 나비의 날개처럼 은은한 검은 빛에 무지개 효과가 서려 있었고, 막대한 오오라로 영기의 가루가 사방으로 떨어졌다.
오오라를 발현하는 시도만으로 서열 7위의 몸은 저절로 공중에 떠오를 만큼 막강했다.
“인간들이 한군데에 모였으니 더 쉬워졌어.”
허공에 떠오른 서열 7위는 마치 고고한 존재처럼 인간들을 내려다봤는데
표정 변화 없는 얼굴로 막강한 오오라를 뿜어내는 것이 전혀 긴장하지 않은 듯 했다.
“와라.”
서열 7위가 손을 까딱거렸다.
선공을 양보해도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의 표현이었다.
파앗!
유진하는 빛의 기운을 머금고 단숨에 돌격했다.
같은 레벨5.
초월화 단계로 도전했다.
“그런가.”
유진하가 빛의 속도로 달려들었으나 서열 7위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겨우 손가락 하나로 유진하의 주먹을 막아 냈다.
“뭐라고?”
전투 단계가 올라갈수록 사용할 수 있는 오오라가 증가한다.
초월화를 통해 전투력은 물론 속력도 급성장한 빛의 힘이지만 서열 7위를 능가하지는 못했다.
힘의 차이에 긴장한 유진하가 식은땀을 흘렸고, 이마의 땀방울이 볼을 타며 내려오더니 밑으로 떨어졌다.
그때였다.
콰앙!
번개가 치는 듯한 굉음이 터져 나왔다.
서열 7위의 반격이었고 주먹 한 방에 유진하는 뒤로 처박혔다.
로비의 외벽마저 뚫어 버리고 튕겨 나간 유진하는 마치 지평선을 나아가는 섬광처럼 하염없이 날아갔다.
“으윽…….”
엄청난 속도로 튕겨 날아가던 유진하는 다시 몸을 돌리려고 무진 애를 썼다.
겨우 방향을 바꿔서 다시 자세를 잡으려는 순간 눈앞에 서열 7위가 나타났다.
서열 7위가 유진하를 따라잡으려 곧바로 날아온 거였다.
퍼억!
서열 7위는 손으로 유진하를 강하게 내리쳤다.
일격이 터지자 차원을 가르는 듯한 원형의 충격파가 터졌고, 해소되지 못한 기운이 구름을 뚫고 나가며 하늘에 동그란 공백을 만들었다.
멀리서 봐도 보일 만한 거대한 구멍이었다.
쿠구구구!
유진하는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 꽂혔다.
지면이 파괴되고 격렬한 지진파가 휘몰아쳤다.
“으으윽!”
지면에 떨어져 지하 밑까지 박혀 버린 유진하는 고통 속에 버둥거렸다.
온몸이 으스러지는 듯한 충격을 받아 정신력이 흔들렸다.
전투 레벨이 올라가면 전투력에 비례해서 방어력이 상승하는데, 그걸 무시할 만큼 서열 7위의 공격은 막강했다.
전략으로 맞서기에 상대는 너무나 압도적으로 강했다.
하늘에 뜬 그는 검은 날개를 펼친 채로 지하에 잠들 듯이 뻗어 버린 유진하를 내려다봤다.
“…….”
아무 말 없이 차갑게 쳐다보던 서열 7위는 잠시 후 몸을 돌려 기지로 돌아갔다.
“허억. 허억.”
유진하는 일어나지 못했다.
전략을 무의미하게 만드는 막강한 전투력에 무기력하게 당했다.
‘터무니없이 강하다.’
서열 7위는 말조차 섞지 않았다.
적수로 인정은커녕 대결 상대로도 인식하지 않는 듯이 엄청난 속도로 돌아갔다.
그가 다시 로비에 돌아왔고 아까 유진하가 떨어뜨렸던 땀방울은 그제야 땅바닥에 떨어졌다.
짧은 시간.
승부는 한순간에 결판이 났다.
“진하…….”
에어리스는 깜짝 놀라 방금 벌어진 일에 주목했다.
번개처럼 짧은 시간에 충격적인 결과가 벌어졌다.
서열 7위는 지금까지의 모든 전략을 무위로 만드는 압도적인 무력을 선보였다.
“녀석은 끝났다.”
그는 승부의 결과를 선언했다.
감정이 담기지 않아 차분하면서도 냉정한 목소리였다.
“새로운 게임을 해 보려고 한다.”
그 말은 명령조에 가까웠다.
“여기 모인 인간 중에서 한 명이라도 벗어나면 너희들의 승리로 인정해 주지.”
자신감의 표현임과 동시에 아홉 명의 인간을 모조리 잡아버리겠다는 의도였다.
“너희가 이기면 모두 보내 주겠어.”
그 말은 진심이었기에 잠자코 듣던 에어리스와 이소민은 소름이 돋았다.
공포와 충격.
이 싸움은 절망적인 흐름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이소민 언니…….”
그동안 상대한 적들 중 이만큼 격이 높아 보이는 상대는 처음이었다.
어떤 적에게도 밀리지 않았으나 지금은 달랐다.
“제가 막는 동안에 달아나요.”
“에어리스?”
잠시 시간을 벌겠다는 에어리스의 말에 이소민은 화들짝 놀랐다.
에어리스는 온몸에 오오라를 두르고 푸른빛의 양 날개를 펼치며 전투를 준비하고 있었다.
잠시 버티는 것도 힘든 상대라 처음부터 전력을 다한 것이다.
“이소민 언니는 제가 무사히 돌려보낼게요.”
“…도망갈 생각 없어. 나도 싸울 거라고.”
이소민은 코어를 주입받았다.
크리스탈 속에 갇힐 적에 강제로 받았는데, 서열 6위 파이와 같이 지내며 활용하는 방법을 배웠다.
덕분에 에너지 순환을 통해 전신에 기운을 넣는 방법을 알았다.
폭발적인 오오라의 증가와 전투 레벨도 터득했다.
“나도 4단계는 할 수 있어.”
에어리스처럼 이소민 역시 강한 오오라를 방출했다.
전투 감각이 뛰어난 에어리스는 5단계 초월화까지 이뤘으나 아직 이소민은 그 정도 수준에 미치치 못했다.
“이야아아아아!”
그래도 이소민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서열 7위의 검은 날개에 서린 무지개 빛의 오오라가 계속 성장하고 있었다.
마치 살아 있는 생물처럼 점점 커졌다.
콰아앙!
서열 7위는 시간을 주지 않았다.
전투에 들어서자 맹렬한 기세로 기운을 태우기 시작했고, 마치 불길처럼 오오라의 흐름이 미묘하게 변화했다.
한순간.
서열 7위는 대응조차 하지 못하도록 이소민의 목을 잡아 번쩍 들어 올렸다.
“이소민 언니!”
에어리스가 소리쳤다.
이어서 대검을 빠르게 내려쳤으나 서열 7위는 두 손가락으로 가볍게 검날을 잡아냈다.
엄청난 오오라의 파동이 퍼졌다.
그들 사이에서 파생된 충격파는 잠시 파도처럼 일렁거렸다가 이내 조용히 가라앉았다.
“한계가 있는 법이다.”
그 말은 인간을 향한 소리였다.
인간의 가능성을 인정하나 그 이상의 힘은 한계라는 것이다.
서열 7위는 압도적인 오오라로 인간을 하나하나 무력화시켰다.
“아…….”
녀석의 손에 잡힌 이소민은 그만 정신을 잃었다.
서열 7위는 이미 혼절한 이소민을 손에서 놓는 동시에 에어리스를 향해 손을 내려쳤다.
쿠과광!
마치 기둥이 내려치는 듯한 일격이었다.
에어리스는 첫 한 방을 제대로 막아 내지 못하고 그대로 땅에 처박혔다.
강한 충격을 버티지 못한 로비는 완전히 무너지며 가라앉았다.
“아…….”
외마디 비명이 흘러나왔다.
이소민과 에어리스는 동시에 바닥에 쓰러졌고 기운을 잃은 채로 움직이지 않았다.
“…….”
서열 7위는 차분했다.
어떤 감상조차 남기지 않고 조용히 눈동자만 움직였다.
이미 완전히 폐허처럼 변해 버린 이곳에서 가만히 있었다.
D와 J 자매.
에어리스와 이소민.
그리고 유진하.
다섯 명의 인간이 잔해 속에 쓰러졌다.
“남은 인간은 넷.”
정찰과 분석을 맡은 M.
조커, 에이스, 괴도가 유일하게 남은 인간들이었다.
서열 7위는 인간들의 기운을 느끼며 곧바로 다가갈 채비를 갖췄다.
“다들 근처에 있군.”
다리를 뒤로 젖혔다가 이내 강하게 쿵 내리찍었다.
그와 동시에 혜성처럼 나아갔다.
귓가를 찢을 듯한 굉음이 터져 나왔고, 동시에 조커와 에이스, 그리고 괴도의 앞에 나타났다.
“너는?”
에이스가 순간적으로 상대를 응시했다.
하늘에 떠오른 서열 7위는 햇볕을 받으며 마치 전지전능한 존재처럼 지상에 있는 자들을 훑어보았다.
“불쾌한 눈빛이군.”
에이스는 본능적으로 위압감을 느꼈다.
‘이자는 강하다. 그것도 터무니없이…….’
괴도 역시 심상찮은 분위기를 감지하고 검은 망토를 펄럭이며 경계 태세를 갖췄다.
“서열 7위군요. 이번 작전의 최대 적이라고 들었습니다.”
쌍단검을 든 조커는 고개를 들어 하늘에 있는 녀석을 응시했다.
그는 예전에 분신으로 살짝 맞섰던 때보다 더 강대한 기운을 뿜어내고 있었다.
검은 날개에 서린 무지개 빛의 기운은 섬뜩했고, 하늘에서 가루 같은 오오라의 알갱이가 내려왔다.
“지금이 진짜라는 건가.”
조커는 천재적인 전투 센스로 상대의 실력을 어느 정도 감지해 냈다.
그리고 예측할 수 없는 서열 7위의 무력에 불길함을 느꼈다.
“너부터 결정하지.”
세 사람 중에서 가장 먼저 에이스가 선택됐다.
에이스는 이미 사방에 코어를 잔뜩 띄어 놓은 상태로 코어의 동력원과 연결해서 에너지를 신체에 받아들였다.
그리고 받아들인 오오라 기운을 순환식 흐름으로 이동시켜서 5단계 초월화까지 무난하게 발현시켰다.
“저도 함께하죠.”
괴도 알파도 같은 전투 단계에 진입했다.
두 사람은 각자 코어를 34개씩 나눠 가져서 이미 무한에 가까운 에너지원을 가졌다.
전투에서 실전 데이터까지 축적한 뒤였다.
“위에서 내려오지 않겠다면 가겠다.”
에이스는 오오라를 머금으며 단숨에 치솟았다.
공중에서 내려다보는 서열 7위의 자세가 처음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저 꼿꼿한 머리를 바닥까지 숙이게 하고 싶었다.
콰앙!
에이스가 주먹을 내질렀다.
한껏 기운을 모아서 휘둘렀으나 서열 7위에게는 간단하게 막혔다.
“그게 다인가?”
서열 7위는 표정 하나 바뀌지 않은 상태로 가소롭다는 듯 말했다.
“당연히 아니지.”
에이스는 주먹만 내지른 게 아니었다.
자세히 보니 손에 뭔가를 움켜쥐고 있었다.
코어였다.
“선물을 하나 주지.”
에이스는 주먹이 아니라 코어를 하나 내밀었다.
내민 코어는 일반적인 코어와 다르게 붉은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에이스가 준비한 것은 에너지 흐름을 비틀어 역류를 일으킨 코어였다.
에너지 흐름이 비틀린 코어의 오오라는 뒤엉켜 서로 충돌하는데, 이 과정에서 막대한 에너지를 발생시키고 결국 코어를 폭발시킨다.
“핵분열이라고 들어 봤나?”
에이스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역류된 에너지로 코어 동력원을 폭주시켜서 핵분열 연쇄 폭발을 일으킬 심산이었다.
“인간은 문명 발전에서 무기 만들기를 가장 선호하거든.”
에이스는 코어의 원리와 개념을 완벽하게 이해했다.
그래서 자신의 육체에 흘려서 에너지원으로 사용하거나, 핵분열 폭발물로 응용할 수 있었다.
천재적인 범죄자다운 재능이었다.
“죽어라.”
무한의 코어는 역류된 에너지를 제어하지 못하고 폭주했다.
원자 단위의 핵분열이 시작되자 급속하게 거대한 폭발로 진행됐다.
쿠웅.
“하나 더 드리죠.”
괴도가 어느새 서열 7위의 등 뒤에 나타났다.
에이스와 함께 핵분열 코어 하나를 더 선물한 것이다.
“그럼 이만.”
콰과광!
핵분열 코어가 발동했다.
수십억이 넘는 원자 단위 충돌이 발생하며 표면이 갈라지면서 코어의 원핵이 드러났다.
발생한 에너지는 순식간에 시공간을 집어삼킬 듯이 거대해져 대폭발로 터졌다.
마치 시간이 멈추듯이.
무수한 진동과 폭발이 일어나며 이곳은 삽시간에 흔적도 없이 사라질 터였다.
“…….”
그때였다.
서열 7위는 두 개의 코어를 양손에 하나씩 잡았다.
거기서 발생하는 대폭발을 손에서 발휘하는 오오라로 억누르고 있었다.
“이건?”
에이스는 경악했다.
핵폭발의 원리를 계산한 이상, 이 공간의 반을 붕괴시킬 파괴력이었다.
이런 힘을 받아 낼 수 있는 생명체란 존재할 리 없었다.
그것도 단 한 명이…….
“믿을 수 없어.”
서열 7위는 온몸에서 강렬한 오오라를 발휘하면서 극한의 폭발 에너지를 온전히 받아 냈다.
“으아아아아!”
녀석은 외마디 고함을 질렀다.
확실히 한계에 도달하는 듯했으나 버티면서 뒤틀리는 양손을 억누르며 끝내 받아 냈다.
콰과과과.
공간이 일그러지는 소리가 들리더니 이내 모든 것이 조용해졌다.
핵분열 에너지는 사라졌다.
서열 7위의 손에서 연기처럼 흔적도 없이 소멸한 것이다.
“레벨6…….”
5단계 초월화를 넘어선 단계였다.
강대한 에너지가 그의 등과 허리에서 방출되었고, 서열 7위의 등 뒤에는 또 다른 날개가 펼쳐졌다.
마치 창공을 뒤덮듯이 이전보다 훨씬 거대한 크기의 두 번째 날개가 활짝 펼쳐졌다.
전투 레벨6.
서열 7위는 작게 중얼거렸다.
“영원의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