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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을 활용하는 1000가지 방법-124화 (124/229)

124화 서열전(6)

“왕의 증표는 충분히 얻었군.”

조커는 다섯 개의 증표를 손에 넣었다.

자신과 같은 붉은 증표가 하나 섞였으나 나머지 네 개는 다른 색이었다.

“저도 많이 얻었어요.”

에어리스는 세 개의 증표를 얻어 냈다.

조커처럼 상대를 도발해서 실수를 노리는 노련미가 없어서 정면으로 부딪치는 바람에 소득이 적었다.

“둘 다 고생했어요.”

유진하는 일곱 개를 얻었다.

세 사람은 초반 5분 만에 15개의 증표를 얻어 내는 쾌거를 이룩했다.

“생각보다 더 잘됐어요.”

만족스런 성과였다.

셋이서 2층 방을 통과할 만큼 충분한 증표를 얻었으니 여유롭게 다음 단계를 준비할 수 있었다.

조커는 지저분해진 단검을 팔꿈치 사이에 끼워 슥슥 닦으면서 재정비에 들어갔다.

“이제 일주일 남았다.”

“네, 아직 그만큼 남았죠.”

“앞으로 피하기만 할 수도 있지만 그럴 생각은 아니겠지?”

“…….”

유진하는 앞으로의 과제를 인식했다.

“일주일이면 아홉 명이 모두 모일 수 있는 기간이에요.”

결사대 전원을 집결시킨다.

모든 동료를 되찾겠다.

유진하는 이번 사왕전의 목표를 분명하게 제시했다.

일주일은 그 목표를 완수하기 위한 고된 시간이 될 터였다.

“진하, 저도 최선을 다할게요.”

에어리스도 주먹을 불끈 쥐며 의지를 다졌다.

결사대는 A등급 공간과의 결판을 짓겠다는 각오로 넘어온 실력자들이었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전투가 끝나면 모두가 무사히 돌아오기를 원했다.

2층 방의 미션에서 일주일의 시간은 그 목표를 이룰 소중하고 유일한 기회를 주었다.

“지금부터가 중요해요.”

유진하는 고개를 돌려 고원 저편을 바라봤다.

잔잔하게 흐르는 바람과 살짝 날리는 풀잎이 눈가에 아른거렸다.

“이미 이곳은 생존 경쟁이 시작되었어요. 만약 그렇다면 반드시 제가 생각한 대로 상황이 흘러갈 거예요.”

“진하?”

에어리스는 유진하의 얼굴을 빤히 쳐다봤다.

처음 만났을 때의 유진하는 뛰어난 관찰력과 지력을 겸비했으나 살아남기에만 집중했다.

하지만 지금은 모두의 생존을 책임지는 사람이 되었다.

‘혼자서 살아남던 모습에서 이제는 누구보다 강하게 성장했어요.’

모두가 왔고,

모두가 지냈고,

모두가 함께 돌아간다.

“이곳에는 서열 7위와 8위가 있잖아요. 그들은 자신이 어떤 왕의 증표를 가졌는지 숨겼을 거예요.”

유진하의 말을 들은 조커가 눈을 번뜩였다.

전투에서는 가장 강한 자가 유일한 승자가 된다.

익숙한 냄새를 맡았는지 조커가 반응을 보였다.

“어차피 증표는 몇 개를 가져도 상관이 없어요. 교환도 가능하고요.”

유진하 일행도 15개의 증표를 얻었다.

서로 필요한 증표를 나눠 가짐으로 ‘교환’의 가능성도 확인했다.

“이 얘기는 다르게 말하면 한 명이 모든 증표를 싹 쓸어 갈 수도 있다는 겁니다.”

포식자가 증표를 전부 차지한다.

단 한 명의 강자가 게임 전체를 지배할 수 있는 구조였다.

“서열 7위와 8위가 먹이 사슬의 최정상에 있어요. 두 마리의 호랑이가 이곳을 양분하겠죠.”

유진하의 추측은 놀랍도록 정확하게 들어맞았다.

서열 7위와 서열 8위는 이미 2층의 세계를 절반으로 나눠 가졌다.

약육강식의 원리.

2층은 강자가 지배하는 세상이었다.

그래서 다른 참가자들은 두 세력 중 하나에 몸을 의탁했다.

“흥미롭군.”

조커는 팔짱을 낀 채로 다리를 살짝 꼬았다.

유진하의 통찰력이 놀라웠지만 정말 사실이라면 마땅한 타개책이 떠오르지 않았다.

“서열 7위와 8위의 틈바구니에서 우리가 승부수를 걸 수 있을까?”

“…….”

모두가 잠시 침묵했다.

이곳의 최정상급 서열자 두 명을 상대로 얼음 위를 걷는 듯한 아슬아슬한 승부를 걸어야 했다.

“정면으로는 승산이 없다.”

조커는 단언했다.

분신으로라도 서열 7위와 직접 맞선 경험이 있었기에 상대가 얼마나 강한지 알고 있었다.

유진하는 두 가지 단어를 꺼냈다.

“…견제와 협력.”

의미가 있는 발언이었다.

“서열 7위와 8위는 움직일 수 없을 거예요.”

“진하…….”

에어리스는 놀란 얼굴이 되었다.

팔짱을 살짝 풀은 조커도 주의 깊게 바라봤다.

“두 명의 강자는 서로를 노리고 있어요. 그렇다면 섣불리 움직이기 어렵겠죠. 잘못해서 틈을 보이면 순식간에 무너질 수가 있거든요.”

초강대국의 논리였다.

상호 확증 파괴.

둘 중에 누가 이기더라도 서로 궤멸적인 타격을 입는다면 섣불리 싸우지 못한다.

핵폭탄이 나온 이후에 강대국끼리 벌어진 정치적인 힘의 논리였다.

“서로 함부로 싸우지 못한다라…….”

말뜻을 바로 이해한 조커는 가면을 쓰고 자세를 고쳐 잡았다.

긍정하는 자세였다.

유진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두 호랑이는 최종 승부만을 기다리겠죠. 피하거나 혹은 결판을 짓거나.”

“일주일이 남았으니까… 급할 건 없겠지.”

그 안에 최종 결착이 벌어질 수도 있으나 그들은 결코 대결을 서두르지 않을 것이다.

“그들이 조용할 때가 우리의 기회가 되죠.”

유진하의 예상은 정확했다.

서열 7위와 8위는 서로를 견제하느라 온정신을 집중했다.

지금 흘러가는 시간은 인간들에게 천금 같은 마지막 기회였다.

* * *

서열 7위는 절벽에서 가만히 기다리고 있었다.

그의 온몸에는 한기와 살기를 품은 푸른 알갱이가 서려 있어 평소보다 더 싸늘한 느낌을 주었는데, 최상위권 서열의 코어를 기다리는 동안 평소와 다른 긴장감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오랜만이다.”

서열 8위가 뒤에서 나타났다.

그의 검은 머리에는 검은빛의 번개가 정전기처럼 감돌았다.

서열 10위권의 강자들은 가만히 있어도 몸에 기운이 서릴 만큼 오오라가 넘쳐흘렀다.

“기다리지는 않았어.”

“오래 기다린 거 같은데?”

“아니라니까.”

서열 7위는 바로 정색했다.

8위와는 한 끗 차이였고 당연하다는 듯이 서로를 매우 싫어했다.

“내 자리를 노리는 녀석이랑 얘기하고 싶은 마음은 없지.”

“나도 같은 생각이다.”

서로 양보할 기색이 전혀 없었다.

“인간을 모두 차지하고 싶은 것도 같겠지.”

서열 7위는 D와 J 자매를 차지했다.

서열 8위는 괴도, 에이스와 연합했다.

그들은 인간이라는 매개체를 통해서 더 강해지겠다는 욕망이 있었다.

그래서 인간을 전부 얻고 싶었다.

“일주일 뒤에 게임이 끝난다. 인간은 모두 여기에 있어.”

“그 안에 결판을 내야겠군. 마지막 날에 승부를 걸까?”

“그러든지…….”

서열 7위는 먼저 발길을 돌렸다.

그의 몸에 감도는 푸른 알갱이가 점점 더 많은 숫자로 늘어났다.

상대에 대한 경계심이 오오라로 발현되어 새어 나오고 있는 것이었다.

“마지막 날이다. 명심해라.”

서열 8위 역시 검은 번개가 정전기처럼 발생하더니 차츰 늘어났다.

푸른 알갱이와 검은 번개가 서로 견제하듯이 맞부딪쳤다.

일순간 아슬아슬한 서로의 눈빛이 교차했고 부딪쳤던 오오라 기운은 빠직거리더니 이내 사라졌다.

“기대하고 있겠어.”

서열 7위가 먼저 자리를 떠났다.

절벽에 홀로 남은 서열 8위는 허공을 잠시 바라보다가 이내 고개를 돌렸다.

이 싸움.

최상위 코어들의 결정전이 예정됐다.

* * *

“7위와 8위는 움직이지 않아요.”

유진하는 마치 그들의 만남을 이미 예측했다.

그들은 각자의 세력권을 이 게임에서도 형성했고 상호 확증 파괴의 원리에 따라 전면 대결을 마지막으로 미루었다.

“코어들은 이미 양쪽으로 편을 나누고 있겠죠.”

거대한 두 세력이 출몰했다.

두 명의 강자가 지배하는 이곳에는 그들만의 새로운 규칙이 법이었다.

조커는 턱을 매만지며 쉽지 않은 현실을 깨달았다.

“어렵지만 덕분에 시간은 벌었어.”

“맞아요. 지금이야말로 우리가 움직일 기회죠.”

유진하는 자신의 구상을 드러냈다.

“우리는 제3세력이 될 거예요.”

서열 7위와 8위의 세력에 이어 제3세력을 키우겠다.

과감한 계획이었다.

“세 번째 세력이라… 가능할까?”

“곧 될 거예요.”

조커의 의문에 유진하는 확신으로 대답했다.

정세 파악이 들어맞았다면 반드시 벌어질 사건이 있었다.

“제 생각이 정확하다면 그들이 올 거니까요.”

“진하…….”

에어리스는 불안해져서 주변을 두리번거리면서 살폈다.

알 수 없는 불길함이 서릴 즈음.

유진하의 예측대로 누군가 오고 있었다.

“역시…….”

유진하는 상대의 정체를 알고 있다는 듯이 가만히 그쪽을 응시했다.

에어리스와 조커도 같은 방향을 쳐다봤다.

그곳에는 한 사람이 무서운 속도로 달음질치며 달려왔다.

“우와아아아!”

커다란 목청과 활달한 목소리.

항상 들어서 익숙하면서도 반가운 그 기합 소리.

달려오는 사람은 이소민이었다.

“유진하! 에어리스!”

갑작스레 등장한 이소민이 뛰어들며 두 사람에게 확 안겼다.

“이소민 언니! 괜찮아요?”

“당연하지. 정말 만나고 싶었어.”

씩씩한 이소민은 밝게 웃으면서 두 사람을 꼬옥 안아 주었다.

처음부터 모험을 함께한 세 사람은 오랜만에 반가운 재회를 맞았다.

너무나 기다렸던 만남이었다.

“여기서 만나기로 한 건가?”

세 사람을 지켜보던 조커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게 끝이 아니었다.

이소민이 손가락 끝으로 다른 방향을 가리켰다.

“저기에 괴도와 에이스가 아까부터 있어.”

모자와 망토, 턱시도를 차려입은 괴도가 나타났다.

에이스도 말끔한 정장 차림으로 같이 있었다.

“서열 8위를 끌어들였다.”

“고생했어요.”

유진하는 괴도와 에이스를 반갑게 맞이했다.

지략이 뛰어난 이들은 유진하의 대전략을 알아서 깨우치고 퍼즐 조각을 맞추듯이 스스로 행동했다.

조각이 하나하나 모이며 큰 그림의 정체를 드러냈다.

“유진하, 이제 마지막이겠지?”

에이스는 가만히 바라봤다.

대전략의 큰 그림은 인간들의 재회를 이 시점으로 잡았다.

“맞아요. 두 사람은 역시 예상대로 훌륭하게 해 줬어요.”

7위를 견제하기 위해서 8위를 끌어들이는 전략이었다.

괴도는 손으로 입가를 가리며 피식 웃었다.

“저희가 제대로 짚은 거군요.”

에이스와 머리를 맞대고 구상한 전략이 유진하의 계산 범위에 들었다니 저절로 웃음이 터져 나왔다.

결국 유진하의 계산 아래에 있었다는 소리였다.

“유진하, 당신은 정말 재밌습니다.”

이소민에 이어 괴도와 에이스까지 무사히 합류했다.

“M은 이미 움직이고 있어요.”

유진하는 지평선 너머를 응시했다.

고탑전에서 M은 이소민과 함께 움직였고 무사히 2층까지 올라왔다.

정보 수집을 위해서 벌써 단독 행동에 들어갔다.

“제3세력의 남은 자는 한 명…….”

제3세력에서 가장 중요한 멤버로 유진하가 가장 마지막에 끌어들인 녀석이었다.

“다 모였냐?”

붉은 머리를 가진 소년 같은 자가 나타났다.

그의 온몸에는 빨간 알갱이처럼 감도는 오오라가 서려 있었다.

이번 대회의 감독관이자 심판관인 서열 6위 파이가 최종 합류자였다.

“드디어 제3세력이 모였어요.”

유진하는 제3세력이 완성되는 이 순간만을 기다렸다.

-제3세력

유진하. 에어리스. 이소민.

조커. 괴도 알파. 에이스. M.

서열 6위 파이.

유진하는 이번 작전의 최종 목적을 밝혔다.

“목표는 서열 7위 제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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