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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을 활용하는 1000가지 방법-123화 (123/229)
  • 123화 서열전(5)

    -2층 방의 미션은 사왕전입니다.

    2층을 막은 철문 앞에 유진하, 에어리스, 조커가 도착했다.

    이들의 앞에는 하얀 창이 나타나서 안내 사항을 하나씩 알려 줬다.

    - 현재 고탑전의 생존자는 112명입니다.

    생존율은 11.2%입니다.

    “꽤 탈락했어.”

    처음 1000명으로 시작한 생존자는 미션을 거치면서 대폭 감소했다.

    “여기는 재밌는 곳이야…….”

    조커는 팔짱을 낀 채로 생존자의 숫자에 관심을 보였다.

    전투에서 긴장감과 만족감을 동시에 받는 터라 생존율에 강한 자극을 받았다.

    삶과 죽음 사이에서 외줄 타는 듯한 삶은 마약처럼 자극적이었다.

    “고탑전은 여러 면에서 포인트가 있어요.”

    “포인트가 뭐지?”

    “저들은 인간을 확보하는 게 목적의 전부가 아닌 거 같아요.”

    조커는 우두커니 생각에 잠겼다.

    “그렇다면……?”

    “1000위 이내의 코어들은 사생결단을 벌이고 있어요. 경쟁자들이 서로 싸우면서 제거되는 거죠.”

    A등급 공간은 적자생존의 법칙이 적용되는 곳이었다.

    코어들은 서로가 경쟁자였기에 서로를 자신의 서열을 높일 기회로 삼았다.

    “최상위 서열이 보기에 잠재적인 경쟁자가 사라지는 거죠.”

    “…나름의 관리라는 건가.”

    조커는 이해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외부의 존재인 인간보다 자신들의 안위를 최우선시했다.

    협력하지 않는 세계.

    코어들의 경쟁심은 유진하가 노릴 수 있는 포인트였다.

    하얀 창에서 2층 방의 미션이 본격적으로 나왔다.

    <사왕전 준비 단계>

    -여러분은 네 명의 왕, 사왕의 한 명이 됩니다.

    -참가자는 사왕의 증표 중 하나를 무작위로 받게 됩니다.

    -왕의 증표를 전부 잃으면 탈락입니다.

    -입장할 시에 5분간은 안전이 보장됩니다.

    -제한 시간은 일주일입니다.

    <승리 조건>

    -참가자는 자신의 증표가 아닌 다른 왕의 증표를 모아야 합니다.

    -다른 왕의 증표 4장을 더 모으면 승리 조건을 달성합니다.

    -제한 시간까지 승리 조건을 만족한 참가자만이 다음 층으로 진출합니다.

    <보상>

    -3층으로 가는 계단을 확보합니다.

    -왕의 증표를 보유합니다.

    “사왕전이라고 하네요?”

    에어리스는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화면을 쳐다봤다.

    볼을 간질거리며 게임의 규칙을 열심히 반복해서 쳐다봤다.

    “그러니까 증표가 있고… 그걸 모으고…….”

    에어리스가 규칙을 몇 번이나 반복해서 읽을 즈음에 왕의 증표가 나타났다.

    “이게 증표구나.”

    모두의 손에 나타난 왕의 증표는 저마다 색깔이 달랐다.

    파란 메달을 받은 유진하가 자세히 살펴보니 왕관을 쓴 왕의 조각이 앞면에 새겨졌다.

    에어리스는 노란 메달, 조커는 붉은 메달을 받았다.

    모두가 다른 왕이 되었다.

    “앞으로 다른 메달을 4개 더 얻어야 하는 거네요.”

    에어리스는 노란 메달을 손에 쥔 채로 아무 생각 없이 조커의 붉은 메달을 바라봤다.

    ‘저런 걸 얻으면 되려나?’

    별다른 생각 없이 바라보다가 우연히 조커와 눈빛이 딱 마주쳤다.

    조커는 붉은 메달을 주머니에 숨기더니 정색했다.

    “내 메달을 뺏어가려면 목숨은 걸어야 할 거다.”

    “아아, 그럴 생각이 아니었어요.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바라본 거예요.”

    “흐음…….”

    당황한 에어리스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뒤로 물러났다.

    백가면을 만지면서 조커가 오히려 어깨를 빙글 돌렸다.

    “농담이다. 안에 들어가면 여유는 없을 테니 미리 긴장할 필요 없어.”

    “아, 그렇군요.”

    조커 식 농담에는 목숨을 걸으라는 말이 항상 있었다.

    다소 괴팍하나 서로 가벼운 유머를 주고받을 사이가 되었다.

    물론 쉽게 적응하기 어려운 코드의 유머이지만.

    “어차피 우리끼리 생존할 거라면 나름 전략을 세울 수 있겠어.”

    조커는 사왕전 게임에서 나름의 전략을 세웠다.

    아직은 입장 전이었기에 상의할 시간이 충분했다.

    “왕의 증표가 같은 자들은 서로 한 팀처럼 움직일 거야.”

    “한 팀으로요?”

    에어리스가 되물었다.

    조커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우리랑 비슷한 상황이다. 우리도 서로 증표가 다르니까 서로의 것이 필요하지. 같은 증표를 가진 자들끼리 팀을 이루는 편이 유리하다.”

    “그렇긴 하네요.”

    조커의 말을 듣자 에어리스는 서로 다른 팀이 될까 봐 지레 풀이 죽은 얼굴이 되었다.

    조커는 숨을 한번 내쉬더니 곧바로 자신의 작전을 밝혔다.

    “아주 간단한 해결책이 있어. 에어리스, 네가 노란 증표니까 같은 왕의 무리에 가서 같은 편인 척할 수 있다.”

    “같은 편인 척이요?”

    “그래. 같은 편인 척하면서 움직이다가, 기회를 봐서 녀석들의 증표를 몰래 빼앗는 거다.”

    “아…….”

    위장 작전이었다.

    왕의 증표가 같은 자들에게 가서 배신하라는 소리였다.

    “과연 이중간첩을 하던 조커다운 전략이네요.”

    유진하는 가만히 미소를 지었다.

    배신자 작전은 전략이라기보다는 조커다운 모략에 가까웠다.

    조커는 상대를 기만하고 속이기에 능숙했으니까.

    “유진하, 문제가 있나?”

    “아니요. 재밌는 전략이지만 실행하기가 어려울 거 같아서요.”

    듣기에는 그럴듯하나 실행하려면 문제점이 있었다.

    “일단 저들이 인간을 믿어 줄 리가 없어요.”

    “…그렇겠지.”

    “조커, 당신이라면 어떻게든 능수능란하게 대처하겠지만 에어리스는 무리예요.”

    가만히 듣던 에어리스는 깜짝 놀라 귀를 쫑긋 세웠다.

    남을 속이고 현혹하는 작전은 조커에게 특기였으나 에어리스는 젬병에 가까웠다.

    올곧은 정통파에 가까운 에어리스는 정면에서 맞서며 물러서지 않았다.

    그래서 속이는 작전은 불가능했다.

    더구나…….

    지력 : C

    수많은 전투를 겪어 가며 무섭게 성장했어도 에어리스의 지력은 항상 제자리 수준이었다.

    “…그렇군. 무슨 말인지 알았다.”

    조커도 순순히 인정했다.

    물론 조커 단독으로는 가능했으니 실행은 본인에게 맡겨도 된다.

    유진하는 증표보다 다른 점에 주목했다.

    “우리는 가장 마지막에 2층으로 올라온 편이에요.”

    2층 방의 사왕전 게임은 이미 안에서 한창 진행 중이었다.

    먼저 들어간 사람들이 있어서 최초 입장한 자와는 적어도 6시간의 차이가 있었다.

    “안에서는 이미 증표를 차지하기 위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을 거예요.”

    게임은 시작됐다.

    사왕전은 먼저 입장한 사람이 훨씬 유리했다.

    내부 지형에 더 빨리 적응했을 테고, 대처법도 궁리할 시간이 많았을 테니까.

    “동맹이나 연합도 이뤄졌을 수도 있어요. 새로 들어가는 사람은 그들의 목표물이 되기 딱 좋겠죠.”

    게임 규칙상 입장한 뒤 5분간은 안전을 보장한다고 했다.

    2층에 들어서자마자 탈락하지는 않는다는 소리였다.

    “진하, 우리가 많이 불리하겠어요.”

    에어리스는 점점 머릿속이 복잡해지는지 빙글빙글 눈동자를 돌렸다.

    더 이상의 고민은 무리였다.

    “가능성은 있어.”

    유진하는 에어리스의 고민을 정리하듯이 손가락을 들어 허공을 휘휘 긋는 시늉을 몇 차례 반복했다.

    그 손짓은 오케스트라를 배치하는 지휘자처럼 움직였다.

    ‘허공을 작전판으로 삼아서.’

    112명의 참가자들이 안에서 어떻게 움직일까.

    그들이 어떤 작전을 꾸밀까.

    허공의 빈 화면은 어느새 유진하의 눈에만 보이는 작전 구상 지도가 되었다.

    에어리스와 조커는 유진하를 방해하지 않고 그 모습을 지켜봤다.

    1분이 지나자 유진하는 모든 계산을 끝냈다.

    “…알았어요.”

    고민에 잠겼던 유진하의 눈빛은 점점 밝아지더니 자신감 넘치는 기운을 머금었다.

    “지금 안에서 어떻게 움직이고 있을지.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진하…….”

    에어리스는 믿고 있었다.

    유진하와 처음 만났을 때부터 신뢰하고 의지했다.

    그래서 한순간도 그의 곁을 떠나고 싶지 않았다.

    ‘지금은…….’

    아홉 명의 결사대를 이끄는 리더가 되어 모두를 지키려고 노력했다.

    믿었다.

    믿어야 했다.

    미션 안내가 다시 나왔다.

    -입장할 시간이 되었습니다.

    참가자들은 1분 이내에 입장하시기 바랍니다.

    “갈 시간이 되었군.”

    조커는 전투를 준비하며 쌍단검을 꺼내 들었다.

    에어리스도 언제라도 대검을 꺼내기 위해서 검의 손잡이를 부여잡았다.

    반면에 유진하는 빈손이었다.

    “들어가자마자 시작이에요.”

    입장하고 5분 동안만 안전 상태이기에 그 시간 안에 무사한 곳으로 이동해야 했다.

    각오와 함께 세 사람이 철문 안으로 입장했다.

    사왕전의 게임이 시작된 것이다.

    “와앗!”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놀라웠다.

    낯선 2층의 풍경과 마주한 에어리스는 순간적으로 압도되어 뒷걸음질을 쳤다.

    이곳은 방이 아니었다.

    “보통 탑이 아니었어…….”

    끝없이 드러난 벌판과 초원이 지평선 너머까지 쭉 펼쳐졌다.

    탑의 방으로 생각했는데 탁 트인 세상과 마주하자 너무나 놀라웠다.

    “여기는 고원인가요?”

    “그런 거 같아.”

    유진하는 침착하게 반응했다.

    전략을 구성할 적에 항상 여러 변수를 염두에 두었다.

    환경에 따른 시나리오 변화도 예측 범위에 있었다.

    “에어리스, 적들이 어디 있는지부터 살펴봐야 해.”

    사왕전은 입장하는 순간이 가장 위험했다.

    지금 세 사람의 몸에는 푸른 보호막이 쳐졌는데 5분간만 작동하는 보호막이었다.

    이 틈에 다른 장소로 몸을 피해서 안전하게 숨어야 했다.

    아니, 일반적인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할 터였다.

    유진하는 달랐다.

    “…보여요.”

    에어리스는 눈을 크게 뜨고 열심히 숨은 자들을 찾아냈다.

    가늘게 떨리는 잎사귀.

    흔들리는 풀잎.

    숨어서 기습을 노리는 자들이 매복하고 있었다.

    5분의 무적 시간이 끝난 후에 유진하 일행을 물어뜯으려는 하이에나들이었다.

    “진하, 찾았어요.”

    숲은 매복한 자들이 있어 불온한 기운으로 가득했다.

    하지만…….

    유진하의 전략은 달랐다.

    ‘지금부터 5분간은 무적이야.’

    적들은 이 시간이 흘러갈 때까지 기다렸다가 공격할 생각이지만 유진하는 발상을 전환했다.

    “우리가 무적이니까 이때 공격하면 되는 거야.”

    초반 5분은 유진하와 에어리스, 조커가 무적 상태인 시간이다.

    단 한 번.

    이곳을 지배할 수 있는 유일무이한 시간이었다.

    “가자!”

    유진하는 일순간 모든 빛의 힘을 모았다.

    그리곤 처음 입장했을 때부터 모은 빛의 오오라를 강하게 터트렸다.

    에너지를 빠르게 순환시켜서 레벨4 내재화와 레벨5 초월화를 연이어 발현시킨 것이다.

    “진하, 저기 두 곳이에요.”

    에어리스의 손가락이 가리킨 방향마다 코어가 한 명씩 숨어 있었다.

    숲에 은신한 자객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표적이 되었다.

    조커는 백가면 아래에서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유진하, 누가 더 많이 잡나. 내기해 볼까?”

    조커는 무적 시간을 활용한 5분간 누가 더 많이 잡나 내기하며 흥미롭게 싸우고 싶었다.

    “그러든가요.”

    유진하는 내기를 받아들였다.

    빛의 오오라가 섬광처럼 번뜩였다.

    적들은 서열 100위권의 강자였으나 유진하도 레벨5 초월화에 도달할 만큼 성장했다.

    전신의 테두리를 아우른 오오라가 초월화 단계가 되자 빛의 날개로 형상화되었다.

    섬광의 속도.

    압도적인 속력이었다.

    빛의 날개로 날아가는 유진하는 숲 곳곳에 숨은 적들을 하나하나 제압해 나갔다.

    동시에 그들의 왕의 증표까지 획득했다.

    “훌륭하군.”

    유진하는 근거리에 강한 조커를 배려하려고 일부러 장거리에 있는 적을 목표로 삼았다.

    “크억!”

    조커는 단검으로 코어 생명체를 순식간에 찍어 눌렀다.

    단숨에 적들을 처리한 조커는 서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스르륵 마치 잔상 같은 움직임으로 지나갔다.

    “기습에 대해서는 아직 잘 대처하지 못하는군.”

    조커는 단검을 빙글빙글 돌리면서 건너편에 있는 코어 생명체 셋을 매섭게 노려봤다.

    “첫 번째 실수를 알려 주지. 은신에도 노하우가 있어. 너희들은 그걸 몰라 당하는 거다.”

    “뭐라고? 인간이 감히…….”

    그들은 서열 100위권 내의 강자들이었다.

    조커의 도발에 분노한 셋은 곧바로 달려들었다.

    물론 조커는 5분간의 무적 상태였으니 피해를 받지 않았다.

    “두 번째 실수도 알려 주마. 도발에 넘어가는 정신력으로는 결국 죽는다.”

    조커는 일부러 상대를 도발했다.

    정상적인 상태로 싸운다면 승산이 없었으니까.

    서열 100위권 강자들은 조커도 모두 맞상대하기 버거운 적이었으나 분노에 빠져 이성을 잃었다.

    카앙!

    도발에 넘어가는 바람에 그들의 동작은 커졌고 빈틈이 발생했다.

    조커의 단검이 그 틈을 파고들었다.

    “크억!”

    조커는 코어를 조각처럼 부서 버렸고 그 결과 모두가 먼지처럼 흩어졌다.

    땅바닥에는 왕의 증표만이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크크크큭.”

    조커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지금처럼 즐거울 때가 없어서 가면을 잠깐 벗으며 기쁨과 환희의 미소를 만천하에 드러냈다.

    조커의 웃음소리와 살벌한 칼날음이 뒤섞이며 한동안 숲에 울려 퍼졌다.

    “하아압!”

    에어리스도 무적 상태에서 대검을 휘두르며 적들을 몰아붙였다.

    사왕전의 초반.

    유진하와 에어리스, 조커는 완벽한 시작을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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