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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을 활용하는 1000가지 방법-118화 (118/229)
  • 118화 내분의 씨앗(3)

    코어의 세계는 적자생존의 법칙이 적용된다.

    때문에 서열로 순위를 가르며 치열한 생존 경쟁을 벌였다.

    “오랜만이다. 유진하.”

    중절모를 눌러쓴 M은 코트의 깃을 잡으며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살폈다.

    M은 코어의 세계로 넘어와서 정보를 수집하고 다니느라 가장 바쁘게 돌아다녔다.

    유진하와는 절벽의 귀퉁이에서 오랜만에 마주했다.

    “M, 수고했어요.”

    “아직 부족한 정보가 많다. 코어라는 존재는 알면 알수록 놀라운 생명체더군.”

    M이 알아낸 정보는 전략과 전술을 결정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고.

    덕분에 서열 6, 7, 8위 간에 삼파전으로 내부 분열을 일으킨다는 계획을 짤 수 있었다.

    “과감한 작전이야. 코어들의 경쟁심을 이용할 줄은 몰랐어.”

    유진하의 작전은 대담했다.

    하나의 수를 두어 다음 수로 착착 이끌어 가는 솜씨가 훌륭했다.

    지켜보는 입장에서도 저절로 감탄이 나올 만큼 뛰어났다.

    “다음은 어떻게 할 거냐?”

    “결판을 내야죠.”

    유진하는 이미 결심을 굳혔다.

    결사대의 멤버들은 자신의 역할을 훌륭히 수행했다.

    분란의 씨앗이 되어 코어들끼리의 내전을 유도했으니까.

    “이제 전장을 선택해야죠.”

    서열 6, 7, 8위가 벌이는 삼파전의 양상을 획책했으니, 남은 건 그들을 결판지을 장소로 모으는 일이다.

    “코어들이 태어나는 곳이 있다고 들었어요.”

    코어는 인간과 달리 아기로 태어나지 않는다.

    ‘태초의 요람’이라 불리는 지대에서 코어가 탄생한다.

    M이 알아낸 정보였다.

    “태어나자마자 코어는 서열부터 결정한다고 하더라. 서로 대결해서 순위를 가르지.”

    “그곳이 좋겠어요.”

    코어는 요람에서 태어나서 죽기 직전까지 생존 경쟁을 벌인다.

    태초의 요람.

    유진하는 코어의 탄생지를 전장으로 선택했다.

    “저와 에어리스, 조커가 직접 서열전을 신청하겠어요.”

    “서열전을……?”

    M은 깜짝 놀랐다.

    코어들의 서열전에 인간들이 참가하겠다니.

    유진하의 파격적인 전략은 계속됐다.

    “인간들이 서열전에 참가하면 안 된다는 규칙은 없어요.”

    “그건 그렇지…….”

    “게다가 서열전은 여러 과제를 거친다고 했어요. 여기서 실전을 거치면서 코어를 상대하는 실력을 늘릴 수 있어요.”

    유진하의 눈빛이 빛났다.

    과감하게 다음 수를 결정하고 실행에 옮겼다.

    “우리가 참가한다면 서열 7위도 관심을 가지게 될 거예요. 6위와 8위도 참가하겠죠.”

    “계획대로 모이는 거군.”

    하나의 수에서 수많은 가능성이 충족됐다.

    듣다 보니 상대의 가장 핵심부를 공략하면서 유인도 할 수 있는 절묘한 계책이었다.

    과감하고 저돌적인 승부수였다.

    “나도 참여할까?”

    “저랑 에어리스, 조커까지 셋이서 갈 생각이었어요.”

    “…그렇군.”

    유진하, 에어리스, 조커.

    전투력이 U등급인 최고급 전력들이었다.

    이들에 비해서 M의 전투력은 많이 부족한 게 사실이었다.

    “내가 전투에서는 아무래도 큰 힘이 안 되니까.”

    “잘하는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는 편이 낫잖아요. M이 가져오는 정보는 너무나 소중해요.”

    “알았다. 지금처럼 정보를 수집해서 알려 줄게.”

    “부탁할게요.”

    M은 리더 유진하의 결정대로 정보 수집의 역할에 집중했다.

    고원에 먼지바람이 불어올 즈음.

    대화를 마친 두 사람은 작별의 인사를 나누고 고원 속으로 각자의 길을 향해 사라졌다.

    목적지는 태초의 요람.

    코어들이 태어나는 고향 같은 곳에 유진하가 과감한 발걸음을 내디뎠다.

    * * *

    코어들의 서열전에 최초로 인간이 참가했다는 소문은 삽시간에 퍼졌다.

    충격적인 행보였다.

    인간들을 노리는 코어들은 당연히 모두 관심을 가졌다.

    “인간들이 요람에 갔다는 소문이 쫙 퍼졌어. 너도 관심이 생기냐?”

    서열 6위 파이는 평평한 돌덩어리에 앉아서 무뚝뚝하게 물어봤다.

    그는 나무 조각을 겹겹이 쌓아놓은 물체로 손을 뻗고 있었는데, 긴장이라도 한 듯 떨고 있었다.

    젠가 게임이었다.

    툭.

    손가락으로 밀어서 나무 조각 하나를 빼냈다.

    쌓아 놓은 나무 조각을 무너트리는 사람이 지는 게임이었다.

    “이소민, 네 차례다.”

    “흐음.”

    이소민은 손가락을 신중하게 뻗어 나무 조각을 건드렸다.

    청소가 끝난 뒤 할 것이 없어진 이소민은 서열 6위 파이와 여러 가지 보드게임을 만들어서 즐겼다.

    물론 패자는 벌칙이 있었다.

    “그러니까 내 동료들이 코어들의 요람에 갔다는 거잖아.”

    이소민은 대충 눈치채고 있었다.

    정면 승부를 취하는 전략적 과감성은 유진하가 주로 사용하는 전략 패턴이었다.

    역시나…….

    뭔가 결단할 줄은 알았는데 유진하의 생각은 상상을 뛰어넘었다.

    코어들의 핵심지에 당당히 입장할 줄이야.

    그것도 서열전에 참가해서 코어의 이목을 모두 끌었다.

    “자, 내 차례다.”

    인질로 잡힌 이소민은 서열 6위와 신나게 놀아 주고 있었다.

    특유의 쾌활함과 친밀함을 드러내며 어느새 이 거주지를 안방처럼 차지했다.

    툭.

    나무 조각 하나를 잘 빼냈다.

    이제는 다시 서열 6위의 차례였다.

    “파이, 네 차례다.”

    파이는 이소민이 붙여 준 이름이었다.

    처음으로 받은 이름이었는데 서열 6위는 꽤 마음에 들어 했다.

    “제법 잘하는데? 좋아.”

    파이가 자신감을 내비쳤다.

    “인간들….”

    손가락을 내밀던 파이가 짧은 말을 내뱉었다.

    이소민은 순간 멈칫했다.

    “태초의 요람에 간 인간들이 앞으로 어떻게 할 거 같냐?”

    “…….”

    무슨 대답을 원하는 걸까.

    말문이 막힌 이소민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유진하와 에어리스, 조커가 코어들의 탄생지에 갔는데, 그럼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이 많았으나 자신의 역할에 최선을 다하기로 했다.

    “다들 잘할 거라고 믿어.”

    “그러냐?”

    파이는 시큰둥한 얼굴로 뻔히 이소민을 바라보더니 다시 젠가 게임으로 시선을 옮겼다.

    게임에 열중하는 이소민의 표정은 제법 열정적이었다.

    이소민은 손가락을 바들거리면서 뻗었다.

    “내가 이기면 나한테 코어 활용법을 알려 준다고 했어.”

    “약속은 지킨다. 이소민, 네가 이기면 얼마든지 말이야.”

    파이는 약속을 확답했다.

    이소민은 이곳에 겨우 인질로 남을 생각이 없었다.

    주어진 역할에 충실해 파이와의 사이가 훨씬 좋아졌으나 스스로 강해지고픈 마음도 있었다.

    심장에 이식한 코어.

    코어를 활용하는 법을 배워서 전투 단계를 터득하고 싶었다.

    “해 보자.”

    이소민은 손가락을 덜덜거리면서 나무 조각을 겨우 꺼냈다.

    그때 젠가가 비틀거렸다.

    “아아.”

    짧은 비명이 흐르는 동안.

    젠가는 기우뚱 흔들리더니 결국 무너지고 말았다.

    “졌잖아.”

    이소민은 아쉬움 속에 크게 소리쳤다.

    게임에서 지다니.

    그것도 처음 젠가를 해본 파이한테 졌으니 더 굴욕적이었다.

    “캬캬캬캬캬.”

    파이는 배를 잡고 웃으면서 뒹굴뒹굴했다.

    거기에다 약을 올리듯이 혓바닥까지 삐죽 내밀었다.

    “그럼 약속대로 벌칙 받아라.”

    파이는 빠르게 움직여서 장비를 챙겨 왔다.

    걸레와 빗자루였다.

    “샅샅이 닦아.”

    벌칙은 청소였다.

    이곳은 대응접실이라 꽤 넓었다.

    혼자서 쓸고 닦으려면 하루가 꼬박 걸릴 양이었다.

    슥슥.

    이소민은 하는 수 없이 빗자루로 열심히 바닥을 쓸었다.

    “야, 여기도 닦아야지.”

    옆에 알짱거리던 파이는 잔소리까지 해 댔다.

    치근덕거리는 게 영 거슬렸지만 그래도 꾹 참았다.

    “청소 끝나고 한 게임 더 하자. 인간들은 재밌는 놀이를 많이 하는 거 같아. 또 게임 할 거 있냐?”

    “얼마든지 있지.”

    이소민은 주머니에서 검은 돌멩이를 하나 꺼냈다.

    “체스라고 들어봤어?”

    이소민은 불타는 열정으로 다음 게임을 계획했다.

    보드게임에서 3번의 더 패배를 더 거치고 나서야 마침내 딱 한 번 이길 수 있었다.

    “좋다. 코어를 활용하는 방법을 알려주지.”

    파이는 약속대로 코어 동력원의 활용법을 알려 주었다.

    서열 6위의 도움으로 이소민은 코어의 동력과 에너지를 뿜어내는 방법을 서서히 깨우쳐 갔다.

    물론 틈틈이 게임을 하면서 파이와 놀아 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조금만 기다리자.”

    서열 6위 파이도 서열전에 참가한 인간들을 의식하나 당장 서두르지는 않았다.

    지금 이소민을 키우고 같이 노는 것도 재밌고, 서열 7위와 8위가 어떻게 나오는지도 지켜볼 생각이었으니까.

    삼파전.

    태초의 요람.

    코어들의 태어나는 이곳은 새로운 전장이 되어 갔다.

    * * *

    서열전은 코어들이 태어나는 태초의 요람에서 시작된다.

    신생 코어들은 서열전을 통해 순위를 가리기에 서열전의 치러지는 태초의 요람에는 신생 코어 무리가 가득했다.

    서열전은 라운드를 거치는 형식으로 진행되는데 지금은 1라운드를 막 시작하는 단계였다.

    “흐음.”

    유진하가 주변을 둘러봤다.

    평범한 고원에 사방이 담벼락으로 막힌 무대.

    무대에는 갓 태어나서 싱싱한 코어 100명이 있었다.

    “1라운드라는 건데…….”

    태초의 요람.

    코어들의 탄생 무대에서 서열전을 신청하면 여러 혜택이 주어진다.

    가장 큰 장점으로 대회에 참가한 자는 외부의 위협에 면제받는다는 것이 있었다.

    대회에 참가한 자들끼리만 서열을 가리고, 신생 코어를 노리지 못하도록 보호하려는 조치였다.

    유진하는 이걸 이용했다.

    “서열전에 참가하는 동안 우리는 외부에서 공격받지 않는 거죠. 그거면 충분해요.”

    이곳의 규칙으로 보호받으면서 성장한다.

    유진하는 이 규칙을 이용하기 위해 코어들의 중심부에 들어갔다.

    “크흐흐흐.”

    갓 태어난 신생 코어들은 호기심이 많았다.

    지금 그들의 눈동자는 전부 인간들을 향했다.

    “진하, 다들 우리만 보고 있어요.”

    집중되는 시선을 느낀 에어리스가 목소리를 낮춰서 속삭였다.

    100명이나 되는 갓 태어난 신생 코어들은 인간을 얕보고 있었다.

    조커는 그 눈빛을 전투 의지로 받아들였다.

    “시작이라는 거겠지.”

    따가운 시선을 받자 조커의 자세는 오히려 대범해졌다.

    조커는 언제라도 전투를 할 여유가 있는 듯 양복을 툭툭 정돈하며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

    “100명의 신생아가 상대라면…….”

    조커가 말끝을 끌었다.

    유진하는 조커의 자세를 지켜보다가 혹시라도 섣부르게 행동할까 봐 조심스레 당부했다.

    “조커, 무리하지 말아요.”

    “민폐를 끼치지는 않을 거다.”

    조커는 쌍단검을 꺼냈다.

    그리고 100명의 신생 코어를 상대하려고 혼자서 터벅터벅 걸어갔다.

    조커가 등장하자 신생 코어들은 강한 경계심을 드러냈다.

    조커의 발걸음은 자신만만했다.

    “리더와 에어리스는 쉬어라. 나 혼자면 충분하니까.”

    심판을 맡은 코어 생명체가 손을 들었다.

    경기가 시작됐다.

    “10분 동안 살아남은 자가 다음 라운드로 진출한다.”

    이겨서 살아남아라.

    규칙이 간단해서 조커의 마음에 쏙 들었다.

    “다 들었으면 덤벼라.”

    조커는 단검을 손에서 빙글빙글 돌리면서 특유의 도발 자세를 내보였다.

    선전 포고였다.

    갓 태어난 신생 코어들은 당연히 전투의 감각이 부족했다.

    감각이 부족하기 때문에 상대가 얼마나 강한 수준인지 가늠하지 못했고, 그저 자신들이 100명이나 있으니 유리하다고 생각할 따름이었다.

    “안 오나?”

    조커는 주저 없이 걸어갔다.

    신생 코어들은 조커의 저 당당한 자세에서 묘한 불안감을 느꼈다.

    “내가 먼저 가지.”

    말이 끝나기 무섭게 조커가 빠르게 파고들었다.

    적 진영에 단독으로 돌진해서 순식간에 신생 코어의 가슴을 찔렀다.

    “크억!”

    단칼에 신생 코어 하나가 자세를 숙이며 쓰러졌다.

    조커가단검을 휘두르자 반경에 있는 세 명 역시 줄줄이 가슴에 단검이 박혔다.

    “어떠냐?”

    신생 코어 넷이 순식간에 당했다.

    순간 회피의 달인인 조커는 단검술에도 절정의 기술이 있었다.

    갓 태어난 신생 코어는 전투 단계가 초기 수준에 불과했고, 기껏해야 레벨 1이나 레벨 2단계에 불과했다.

    그런 낮은 전투 단계로는 조커의 공격을 막을 수 없었다.

    “벌써 포기냐?”

    조커는 전투 레벨 3의 서열 14221위를 이긴 전적도 갖춘 실력자였다.

    코어의 서열에서 0.47% 이내라는 소리였다.

    햇병아리에 불과한 신생 코어가 맞설 상대는 아니었다.

    “다 덤벼라.”

    조커는 오오라를 강하게 발산했다.

    단검이 신생 코어를 사정없이 찌르고 베어 버렸다.

    조커의 무자비한 공격에 신생 코어들은 속절없이 당했다.

    전투가 아니라 일방적인 학살이었다.

    “크억!”

    신생 코어들이 추풍낙엽처럼 무수히 쓰러져 나갔다.

    조커는 살인을 즐기지 않았으나 전투에서는 사정을 봐주지 않았다.

    단검은 마치 궤적을 이어 가듯 물결처럼 움직였고, 그 물결이 지나갈 때마다 코어들은 전부 깨져 나갔다.

    무수한 코어의 파편이 흩날리는 동안에 신생 코어의 절반이 사라졌다.

    1라운드는 조커의 사냥 시합이 되었다.

    카앙.

    묵직한 대검이 날렵한 단검을 막아 냈다.

    보다 못한 에어리스가 조커의 앞을 막아선 거였다.

    “그만 해요. 지금은 무자비한 살육을 하고 있어요.”

    조커의 행동에 에어리스는 강한 거부감을 드러냈다.

    감정이 없어 공포나 두려움을 느끼지는 못했지만, 이미 신생 코어들은 전의를 잃고 물러난 상태였다.

    조커는 그들의 항복 의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다 이기면 끝나는 게임이야.”

    저들은 인간이 아니라 코어이기 때문이었다.

    조커는 코어들을 같은 생명체로 취급하지 않았다.

    “시간은 7분이 남았다. 승부에서 아량은 금물이지.”

    “이미 끝난 대결이에요.”

    “남은 시간 동안 막겠다면 너도 상대해 주지.”

    조커는 차가운 눈매로 에어리스를 똑똑히 쳐다봤다.

    조커의 칼날은 앞을 막는 자가 누구든지 가리지 않고 향했다.

    칼끝이 대검을 움켜쥔 에어리스를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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