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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을 활용하는 1000가지 방법-117화 (117/229)
  • 117화 내분의 씨앗(2)

    “여기가 오늘부터 네가 머무를 방이다.”

    서열 6위는 이소민을 직접 새로운 거처로 안내했다.

    별 모양의 요새에는 수많은 방이 있었고 그 중에 하나를 주었다.

    “흐음.”

    이소민은 방을 둘러보다가 표정을 찡그렸다.

    방이 온통 돌덩어리로 이루어진 탓이었다.

    “이게 정말 방이야?”

    “문제라도 있냐?”

    서열 6위는 무슨 일이냐는 듯이 되물었는데, 장난기가 많고 행동이 우선적이라 대놓고 지시하는 경향이 강했다.

    물론 이소민도 과감하고 겁이 없는 성향이었다.

    “돌만 가득한 방이잖아. 이건 뭐 소파도 돌멩이. 탁자도 돌멩이네.”

    “그래?”

    “부드러운 침대나 소파는 없어?”

    “후후, 그딴 건 모르지.”

    서열 6위는 킥킥 웃더니 이소민의 어깨를 툭 잡았다.

    “그냥 대충 살아라. 어차피 바깥에서 자는 것만 아니면 되는 거잖아.”

    “하아…….”

    이소민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인간과 달리 코어는 저마다의 생활 방식도 달랐다.

    “배려해 줘. 부드러운 침대라도 줘야지.”

    “인간들은 제법 귀찮은 구석이 있구나.”

    서열 6위는 귀찮다는 듯이 뒷머리를 벅벅 긁었다.

    이소민이 자꾸 보채자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부드러운 거라고? 알았다. 잠깐만 기다려라.”

    말이 끝나기 무섭게 서열 6위는 빠르게 이동했다.

    순식간에 벽을 뚫고 하늘을 날아가는 바람에 파편과 먼지가 자욱하게 남았다.

    “우앗!”

    이소민은 팔을 들어서 쏟아지는 먼지를 막았다.

    잠깐 눈을 감았을까.

    오래지 않아 붉은 불꽃의 소년 같은 서열 6위가 돌아왔다.

    “부드러운 거면 된다는 거지?”

    서열 6위는 손에 몰캉몰캉한 물체를 가져왔다.

    스펀지처럼 작은 뭔가였는데 이소민이 살짝 만져 보니 부드럽고 통통 튀는 느낌이 들었다.

    “보드랍고 탄력도 있네. 이게 대체 뭐야?”

    “솜털이다. 나무에서 자라나는 걸 싹 다 모아 왔지.”

    서열 6위는 어깨를 으쓱하더니 몰캉몰캉한 솜털 더미를 돌덩어리 위에 툭 내려놨다.

    “됐지? 이거 깔면 된다. 귀찮은 일은 더 없는 거지?”

    “고마워.”

    “응?”

    서열 6위는 멈칫했다.

    고맙다는 소리는 거의 들어 보지 못한 터라 말뜻을 순간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

    감정이 없는 코어들은 고맙다는 마음 자체가 들지 않는다.

    지시와 명령 혹은 서로가 필요해서 행동하기에 남에게 감사한다는 개념도 없다.

    지금도 이소민을 데리고 있으면서 자신의 적인 서열 7위를 신경 썼고, 어떻게 하면 이길 수 있는지만 생각했다.

    “네 마음대로 해라.”

    서열 6위는 머쓱해진 나머지 손가락으로 볼을 긁었다.

    이소민은 먼지가 남은 방 정리를 시작했다.

    “아직도 더럽잖아. 좀 치우고 살아야지.”

    “하하. 또 일이 있어?”

    “대청소 좀 해야겠어. 물하고 걸레 좀 가져올래?”

    이소민이 또 요청했다.

    서열 6위가 멈칫하며 기다리자 얼른 등을 떼밀어서 밖으로 내보냈다.

    “빨리 갔다 와. 부탁이야.”

    “응?”

    엉겁결에 방에서 밀려난 서열 6위는 멍하니 있다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다시 바깥으로 날아갔다.

    “물하고 걸레…….”

    이소민의 요청은 어렵지 않았다.

    물과 걸레는 이 근방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자원들이었으니까 금방 가져올 수 있었다.

    “옛다. 물하고 걸레.”

    “빨리 왔네. 정말 고마워.”

    이소민은 밝게 웃으면서 감사를 표했다.

    ‘정말 고마워.’

    이번에는 고맙다는 말을 더 강조했다.

    서열 6위는 평생 듣지 못했던 고맙다는 말을 연거푸 듣자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인지 서열 6위의 머릿속에는 무뚝뚝한 코어들과는 다른 이소민의 밝은 미소와 쾌활한 성격이 자꾸만 맴돌았다.

    ‘저 고맙다는 소리를 더 듣고 싶어졌다.’

    이해할 수는 없지만 이런 생각이 훅 들었다.

    유진하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인간에게는 감정이 있다.’

    코어에게 없는 ‘감정’이라는 무언가가 인간에게는 존재한다고 했다.

    이게 인간의 ‘가능성’이라고하던가.

    서열 6위는 감정에 대해서 조금씩 생각하기 시작했다.

    “할 거 없으면 청소 좀 도와줄래?”

    이소민이 물에 담근 걸레를 쭉쭉 짜내며 본격적인 청소 준비에 들어갔다.

    “나보고 청소를 도와 달라고?”

    “어차피 할 거 없잖아. 심심하면 좀 도와줘도 되고.”

    틀린 말은 아니었다.

    딱히 할 일이 없어서 부하들을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았으니까.

    “이거 좀 치워 줄래?”

    이소민은 구석에 모아 놓은 쓰레기 더미를 가져와서 서열 6위에게 맡겼다.

    어안이 벙벙해진 서열 6위는 엉겁결에 청소를 함께 시작했다.

    본격적으로 청소를 시작한 이소민은 서열 6위에게 먼지 쓸기부터 시켰다.

    “구석구석 깔끔하게.”

    꼼꼼하게 물걸레로 닦던 이소민은 청소에 어설픈 서열 6위한테 계속 지시했다.

    서열 6위는 빗자루를 하나 들고 바닥을 쓸었는데, 엉겁결에 계속 빗자루를 쓸다가 문득 재미가 없는지 뾰로통해졌다.

    “에이, 별로다. 안 해.”

    서열 6위는 대충 쓸다가 빗자루를 바닥에 내던졌다.

    물걸레질하던 이소민은 빗자루를 다시 들어서 구석에 놓았다.

    “잘하고 있었잖아.”

    “별로…….”

    서열 6위가 팔짱을 낀 채로 투덜거렸다.

    이소민이 옆에 다가와서 빗자루를 다시 들이밀었다.

    “네가 청소를 도와줘서 정말 고마웠는데. 취소해야겠다.”

    “취소?”

    “방금도 정말 고맙다고 말하려고 했는데. 이제 못하겠네.”

    잠시 멈춰 버린 서열 6위는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자기에게 고맙다고 말하는 인간이 새롭고 특이해서 관심이 있었다.

    왜 그런지는 모르나 어쩐지 그 말이 계속 듣고 싶었다.

    “…으음.”

    “고마운 마음은 여기까지야.”

    “…흐으음.”

    고민하던 서열 6위는 결국 빗자루를 다시 손에 쥐었다.

    “정말 고마워.”

    반가움에 큰 미소를 보이는 이소민을 보면서 서열 6위는 그 환한 얼굴을 또렷하게 쳐다봤다.

    저렇게 밝은 표정은 태어나서 처음 봤다.

    저게 감정일까?

    저 웃는 얼굴을 보면 자꾸 무장이 해제되듯이 경계심이 풀어졌다.

    “아, 이거도 치우면 되냐.”

    “그러면 더 고맙지.”

    청소는 더 열정적으로 진행됐다.

    이소민은 이후에도 10번이나 더 고맙다는 감사 인사를 해 주었다.

    서열 6위는 칭찬을 받을 때마다 어쩐지 더 신나게 일했다.

    “덕분에 빨리 끝났다. 고마워.”

    “…으음.”

    청소가 끝난 방은 먼지 하나 없이 깔끔했다.

    서열 6위는 감사 인사를 계속 듣더니 묘하게 얼굴이 빨개졌다.

    붉은 머리에 불꽃까지 서리고 얼굴마저 붉어지자 온몸이 붉게 물든 듯했다.

    “수고했어. 정말 고마웠어.”

    이소민이 마지막으로 미소와 윙크까지 날려 주었다.

    서열 6위는 마치 온몸이 얼어 버린 듯이 자리에 멈춰 버렸다.

    왜 자꾸만 저 미소가 계속 눈가에 아른거리는지 본인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었다.

    “…다 끝나면 다행이다.”

    서열 6위는 뻣뻣한 로봇처럼 엉성하게 팔다리를 움직이며 돌아섰다.

    왠지 이 자리에 있기가 어색했다.

    아니, 더 있고 싶은데 이상한 기분이 들어서 당장은 피하고 싶었다.

    인간이라서일까.

    아니면 다른 이유일까.

    “그런데 하나만 물어볼게.”

    이소민의 목소리가 들렸다.

    서열 6위는 돌아가는 발걸음을 멈추고 이소민을 바라봤다.

    “앞으로 널 어떻게 불러야 할지 모르겠어.”

    궁금증으로 가득한 이소민의 눈망울이 보였다.

    서열 6위는 살짝 눈빛을 내려서 그 시선을 피했다.

    “…서열 6위다.”

    나지막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이 세계는 서열로 모든 것이 정해지는 세계였다.

    언제든지 바뀌는 서열이 자신의 이름인 곳이었다.

    “그렇게 부르면 딱딱하잖아.”

    “딱딱하다고?”

    생각하지 못했던 반응이었다.

    순위로 불리는 게 딱딱하다니.

    “침대도 그렇고 인간들은 부드러운 걸 좋아하네.”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고.”

    “그러냐?”

    다르다는 부분이 특이했던 걸까.

    점점 인간에 대해서 흥미가 생겼고 이소민이 하는 모든 행동에 관심이 갔다.

    “너도 이름을 정하면 어떨까?”

    “이름?”

    “그래. 나도 이소민이라는 이름이 있잖아.”

    “맞아. 그래서 너희들의 서열은 알 수가 없어서 불편해.”

    “아이, 그런 건 상관없잖아.”

    이소민은 발끈하면서 버럭 했다.

    인간은 서열이 아닌 각자가 지은 이름으로 서로를 구분한다.

    코어가 서열로 서로를 구분하는 세상과는 완전히 달랐다.

    “이름이라… 나는 모르겠는데.”

    “내가 지어 줄게.”

    이소민은 적극적으로 나섰다.

    새로운 이름 짓기가 재밌다고 생각한 듯했다.

    “코어 중에 아무도 이름이 없지?”

    “…우리는 서열로 불리니까.”

    “그럼 내가 코어한테 최초로 이름을 붙여 주는 거네?”

    “어?”

    코어 중에 최초로 이름을 가진 자.

    이소민의 말을 들은 서열 6위는 순간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기분을 느꼈다.

    코어 중에 최초로 이름을 선물 받는다는 것이 무슨 마음인지 도통 알 수 없었다.

    “괜찮지?”

    “…그래.”

    “그러면 뭘로 지어 줄까.”

    이소민은 잔뜩 기분이 좋아져서 손가락을 들어 하나씩 새로운 이름을 말해 봤다.

    “불꽃이 계속 머리에 감도니까. 파이어도 괜찮고.”

    “파이어?”

    “다른 이름으로 싸가지도 있고.”

    “그건 욕 아니냐.”

    “아, 눈치는 있구나. 장난이야.”

    두 사람은 티격태격 주고받으면서 새로운 이름을 지어 나갔다.

    “아까 파이어가 나은 듯한데.”

    “그러면 거기서 살짝 바꿔서 파이가 어때?”

    서열 6위는 ‘파이’라는 새 이름이 마음에 들었다.

    이소민이 지어준 첫 이름이었다.

    누군가의 이름을 지어준다는 행위는 마음이 전해진다는 걸 의미했다.

    “이제부터 파이라고 부를게.”

    이소민은 환하게 웃으면 단 하루 만에 서열 6위의 많은 걸 바꾸었다.

    고맙다는 말.

    새로운 이름 파이.

    비타민처럼 밝은 한 명의 인간이 삭막한 붉은 고원의 기지를 조금씩 바꿔 가고 있었다.

    이소민은 인간 멤버들 중에서 가장 밝고 긍정적인 정신력을 소유한 사람이었다.

    그 환한 기운이 서열 6위의 마음에 들었고, 그래서 새로운 이름도 순순히 받아들였다.

    “새 이름이 파이라고… 마음에 들어. 그렇게 불러라.”

    “알았어. 파이.”

    인간과 코어 사이는 넘을 수 없는 장벽이 남아 있다고 믿었다.

    심장이 뛰는 인간과 무감각한 코어는 서로가 다른 차원의 존재였으니까.

    그런데 이소민이 그 견고한 장벽을 감정의 힘으로 무너트렸다.

    “더 할 일 남았어?”

    “물론이지.”

    이소민은 이왕 청소를 시작한 김에 규모를 키워서 대청소까지 할 생각이었다.

    “좋다. 모두 동원하지.”

    서열 6위 파이는 명령을 내렸다.

    모든 코어들이 기지 대청소를 시작했고, 대청소의 진두지휘는 이소민이 맡았다.

    “다들 고마워요.”

    한 사람이 세상을 바꾼다.

    나비의 작은 날갯짓이 바람이 되어 태풍을 일으키듯이.

    나비 효과처럼 긍정적인 기운이 퍼지기 시작했다.

    이소민은 비타민 같은 매력으로 삭막한 곳을 서서히 바꿔 갔다.

    그렇게 첫날이 바쁘게 지나갔다.

    * * *

    검은 고원이 있었다.

    높다란 절벽과 굽이치는 길 끝에는 반원의 돔구장 같은 기지가 있었다.

    서열 8위의 본거지였다.

    “너희들이 인간이라는 거지?”

    기지의 주인에게 두 사람이 찾아왔다.

    검은 망토와 하얀 가면을 쓴 괴도 알파와 알카트로스의 리더였던 에이스가 있었다.

    “동맹을 원한다는 조건은 들었다.”

    서열 8위는 검은 의자에 앉아 손가락에 깍지를 끼었다.

    괴도와 에이스는 전략적인 연합을 제안했다.

    평평하고 긴 모자의 챙을 잡으며 괴도는 제안을 이어 갔다.

    “서열 7위는 이미 인간을 두 명 확보했습니다. 서열 6위도 아마 인간과 연합하겠죠.”

    괴도와 에이스는 서열 7위의 유인 작전을 마무리한 후에 다음 전략을 고민했다.

    유진하의 다음 계략이 무엇일까?

    고민하던 괴도와 에이스는 이기적인 코어들의 관계를 파고드는 연합 작전을 구상했다.

    ‘유진하라면 이렇게 할 거다.’

    두 사람의 지략은 SSS등급으로 평가됐다.

    유진하의 U등급보다 딱 한 등급 아래였는데, 괴도와 에이스가 서로 지략을 모으면 거의 U등급에 육박할 정도로 지략이 뛰어났다.

    그들은 유진하가 이미 6위와 접촉했으리라고 추측했다.

    ‘같은 방법을 활용한다.’

    괴도와 에이스는 8위까지 끌어들이면 상황이 훨씬 더 유리해지리라고 판단했다.

    전략이 다채롭게 흐른다.

    “서열 6위와 7위가 인간을 확보한다는 거…….”

    서열 8위는 자신보다 높은 순위의 코어를 당연히 의식했다.

    서열로 모든 게 결정되는 세상에서 자기보다 높은 순위는 넘어가야 할 적과 다름이 없었다.

    과도한 적자생존의 부작용이었다.

    “가만히 있으면 나만 밀리겠군.”

    코어는 최소한의 동료 의식조차 없었다.

    그것이 코어의 약점이었다.

    서열 8위의 검은 머리에는 검은빛의 번개가 감돌았다.

    인간이라는 매개체로 인해서 코어들의 서열 경쟁 체계가 흔들리고 있었다.

    에이스와 괴도는 유진하처럼 그 빈틈을 파고들었다.

    “아홉 명의 인간이 왔다. 모든 인간을 모으면 그만큼 네가 강해지는 계기가 될 거다.”

    거짓말이었다.

    유진하가 서열 6위를 끌어들였다면 이쪽은 8위를 가담시켜서 제대로 싸움판을 깔아 보겠다는 계략이었다.

    코어들의 경쟁 관계를 이용한 대전략이 윤곽을 갖춰 갔다.

    “좋다. 너희 둘과 연합하지.”

    검은 머리의 서열 8위는 결국 제안을 받아들였다.

    이렇게 인간들은 각자 흩어져서 앞으로 벌어질 큰 싸움의 계기를 제공했다.

    -확보한 인간.

    서열 6위는 이소민.

    서열 7위는 D와 J.

    서열 8위는 괴도 알파와 에이스.

    코어는 서로를 이기기 위해서 인간을 차지하려는 싸움에 나섰다.

    인간 쟁탈전이었다.

    코어들의 내부 분란을 일으켜서 인간이 이겨 나갈 길을 찾는다.

    유진하의 대전략이 서서히 본궤도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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