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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을 활용하는 1000가지 방법-115화 (115/229)

115화 구출전(7)

서열 7위는 어린 외모의 미소년처럼 보였다.

짧은 머리에 새하얀 피부를 머금고 차분한 눈매로 노려보며 무시무시한 기운을 내뿜었다.

“레벨5. 초월.”

등에서 발휘하는 양 날개의 기운은 범상치 않은 오오라를 발산했다.

레벨4는 내재화 단계로써 몸 안에 기운을 최대한 내포해서 에너지를 축적하는 방식이었다.

레벨5는 한 단계 위였다.

“오오라가 결국 몸에서 넘쳐나고 말지.”

말 그대로 초월 단계였다.

내재화로도 담아내질 못할 만큼 막대한 기운이 뿜어졌다.

살벌한 오오라였다.

“흐음.”

조커는 양손에 쌍단검을 쥔 채로 상대의 기세를 바라봤다.

미친 듯이 치솟는 기운은 마치 보랏빛과 검은색이 뒤섞인 듯이 공간을 메우고 있었다.

“대단해. 아름답다고 해야 할까.”

전투에 흥미를 느끼는 조커한테 있어 초월적인 전투력은 감탄과 예술의 영역에 있었다.

강한 힘에 매력을 느꼈다.

“겨뤄보고 싶다.”

조커는 긴장감을 즐기는 듯이 쌍단검을 움켜쥐었다.

치솟은 오오라는 무궁무진한 빛으로 온 사방에 가득 퍼졌고 마치 장벽처럼 거대했다.

한 걸음.

단 한 번 내딛는 순간이었다.

그곳으로 향하는 조커의 뒷모습은 마치 처형대로 향하는 사형수와 비슷했다.

조커는 갑자기 하늘을 올려다보게 되었다.

이해가 가는 광경이 아니었다.

한 번도 적을 시야에서 놓친 적이 없는데 왜 갑자기 하늘이 보인 걸까.

“어?”

그제야 조커는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힘이 주르륵 빠져 버리고 자세가 무너졌다.

툭.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조커는 그게 무엇인지 찰나에 깨달았다.

자신의 머리였다.

‘죽었다.’

서열 7위는 조커에게 단숨에 다가와서 손날을 휘두른 거였다.

조커의 목을 일격에 베어 버렸다.

‘죽음.’

아무 저항도 하지 못하고 조커는 목이 잘려 쓰러졌다.

서열 7위는 바닥에 쓰러진 조커의 머리를 바라봤다.

“후후.”

죽은 조커는 희미하게 웃었다.

마치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이 환한 미소였다.

파앗.

그 순간.

조커는 연기처럼 흩어졌다.

잘린 머리와 몸체는 자취도 없이 사라졌다.

“진짜가 아니었어.”

서열 7위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라진 조커는 본체가 아니라 분신이었다.

처음부터 분신을 남겨놔서 서열 7위와 승부를 벌였다.

“인간들을 놓쳤나.”

서열 7위는 짧은 말을 중얼거리며 발산한 오오라를 도로 거둬들였다.

레벨5 초월화의 힘이 사라졌고, 조용해진 지하 최하층은 서열 7위만 고독하게 남았다.

“두 명은 남았어.”

크리스털은 두 개가 남았다.

이소민은 놓쳤으나 D와 J를 가둔 봉인석은 그대로였다.

“인간은 아홉 명이다. 도망갈 곳은 없어.”

서열 7위는 결의를 다졌다.

압도적인 무력 차이를 가졌음에도 인간들은 혼신의 힘을 다해 맞서고 있었다.

아홉 명의 소수 정예로는 불가능에 가까움에도 그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인간들은 과감하게 서열 7위의 본거지를 기습했고 심지어 인간 한 명을 빼갔다.

과감하면서도 절묘한 전략이었다.

이 대결은 결코 일방적인 흐름이 아니었다.

“반드시 나머지 모두 내 손으로 잡아내겠어. 계책을 쓰겠다면 전부 받아주지.”

마치 서로 한 수를 주고받은 느낌이었다.

무력과 지략이 잘 어우러진 한 판의 게임처럼 진행되었다.

서열 7위는 인간의 실력을 인정하면서 서서히 적으로 간주하기 시작했다.

본격적인 승부는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 * *

치유의 호수는 사람들의 발길로 바빠졌다.

“이소민 언니, 정신 차려요.”

에어리스는 구출한 이소민을 바닥에 눕혔다.

치유의 호수는 탈출하면 다시 재회하기로 약속한 장소였다.

푸른 물에 회복 효과가 담겨 있어서 부상 치료에 좋았다.

“에어리스.”

유진하는 이미 이곳에 있었다.

아까 기지에서 격전을 벌이다가 빛의 속도로 날아온 거였다.

거의 죽음 직전까지 몰렸으나 호수의 치유 효과 덕분에 목숨을 구했다.

“모두 무사해서 다행이야.”

이소민에게 큰 이상은 없다고 확인한 후에야 조금은 안심하게 되었다.

“크리스털에서 나왔지만 상태는 괜찮은 거 같아. 더 쉬면 깨어날 거야.”

“다행이에요, 진하.”

유진하와 에어리스는 구출전이 절반의 성공으로 끝났으나 서로 무사했음에 안도했다.

찰나의 승부.

머나먼 다른 공간에서 이들은 함께 싸우고 있었다.

“흠흠.”

조커는 헛기침하면서 분위기를 바꿨다.

유진하와 에어리스는 같이 있다가 서로 황급히 떨어졌다.

“조커도 수고했어요.”

“너한테 그런 소리를 들으려고 싸운 건 아니다.”

계속 기침을 하던 조커는 팔짱을 끼더니 주변을 돌아봤다.

본능적인 버릇이었다.

원체 치열한 전투와 기습을 겪어 와서 매번 사방을 경계하는 습관이 있었다.

추격자가 있을까 자꾸 둘러봤다.

“분신으로 서열 7위와 싸워봤죠?”

“알고 있었나.”

“전투를 즐기는 조커라면 당연히 맞붙겠죠. 분신이 있으면 가능하잖아요.”

“넌 항상 다 알고 있구나.”

조커는 피식 웃으면서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키리나의 쌍단검.

분신 능력을 발동한다.

일정 시간 동안 사용자와 완전히 동일한 분신을 발동시킨다.

조커는 서열 7위의 실력을 가늠하기 위해서 일부러 분신을 대신 보냈다.

“레벨5. 초월화 단계였다.”

분신은 완패했으나 상대의 정보를 알 수 있었다.

“압도적인 격차였다. 서열 100위 이내만 쓸 수 있는 전투 단계라는데 거짓말이 아니었어.”

“승부가 되지 않았다는 건가요?”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있었어도 죽었을 거야.”

“…그렇군요.”

유진하는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에어리스와 조커는 전투력 U등급으로 평가받았고, 결사대에서 최고 수준의 전투력이었다.

상대는 이들의 실력을 아득히 뛰어넘는 강자였다.

“확실히 괴물이네요.”

전투력으로 불리했으니 정면으로는 당연히 승산이 없었다.

“우리가 이기려면…….”

지략으로 승부를 봐야 했다.

체스처럼 한 수를 두면서 천천히 왕의 목을 노리고 나아가야 했다.

“진하, 이쪽이요.”

에어리스는 양손으로 담아온 물을 이소민의 입가에 흘려줬다.

다행히 호수의 치유력은 부상과 상처 회복만이 아니라 기절 상태에도 작용했다.

“으음…….”

이소민은 천천히 눈꺼풀을 떴다.

눈을 뜨자 흐릿해진 초점이 서서히 명확해졌다.

그녀의 시야에 한 명씩 보이기 시작했다.

“에어리스! 유진하!”

너무나 기쁜 나머지 이소민은 두 사람을 와락 껴안았다.

“아야! 너무 꽉 잡지 말아요!”

“잠깐만 있어.”

한참을 안아주다가 바람이 불어와서 마음을 진정시켜 줄 즈음에야 이소민은 포옹을 풀어줬다.

“이제야 살 거 같다.”

방금 크리스털 속에 갇혀 있었던 사람이라고는 믿을 수 없이 경쾌했다.

기지개를 켜면서 밝게 웃어 보인 이소민은 특유의 쾌활함을 되찾았다.

“왜? 나한테 뭐 묻었어?”

“아뇨. 그게…….”

에어리스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이소민을 바라봤다.

이소민의 가슴에는 심장에 이어 또 하나의 물체가 있었다.

코어였다.

“나한테 코어가 있는 거?”

“이소민 언니도 알고 있었어요?”

이소민은 자신의 가슴에 살짝 손을 댔다.

뛰는 심장과 그 옆의 코어가 둘 다 느껴졌다.

“그냥 조금씩 느껴져. 뭔가 안에서 흘러나오는 기운이랄까? 그런 게 있는 거 같아.”

“괜찮은 거죠?”

유진하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어봤다.

당당하게 어깨를 편 이소민이 주먹으로 가슴을 강하게 쿵 쳤다.

“문제없어.”

쿵.

또 한 번 심장을 쳤다.

“나는 나대로 싸워 나갈 힘을 찾을 거니까. 코어가 이식되었다면 경과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알려줄게.”

“알겠어요. 코어를 제거할 방법도 찾아볼게요.”

유진하는 이소민의 어깨를 잡아주며 위로했다.

코어와 심장이 융합된 형태였다.

인간에게 있어 코어가 어떻게 작용할지 알 수 없어 마음이 불안할 텐데도 이소민은 대범했다.

언제나 그랬듯이 그녀는 팔다리를 더 쭉 펴며 활기차게 행동했다.

“자, 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 하려나? 일단 다시 본거지에 쳐들어가서 D와 J를 구출할까?”

“당장은 어려울 거예요. 서열 7위가 돌아왔으니까요.”

유진하는 기지 본거지에 재진입하는 것은 무리라고 판단했다.

분신을 통해 서열 7위와 겨뤄본 조커 역시 동의했다.

“괴물이 지키고 있다. 당장은 가능성이 없어.”

조커는 흥미를 가진 상태였으나 아직은 실력을 더 높일 필요가 있다고 자각했다.

푸짐한 메인 요리를 즐기기 위해서는 잠시 샐러드 같은 에피타이저를 먹어서 입맛을 돋울 필요가 있다.

만찬을 즐기기 위해서 조커는 강해지는 걸 우선시했다.

“코어들의 전투 단계를 따라잡을 방법을 찾아내는 게 우선이다. 녀석들을 이겨내지 못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지.”

“이미 결정됐어요.”

유진하의 대전략은 처음부터 여러 갈래의 길을 계획했다.

사실 초반이 가장 고민이었다.

“처음에 상대가 어떻게 나올지 몰랐어요. 최악의 국면은 피했지만요.”

고심 끝에 유진하가 선택한 초반 전략은 기동전이었다.

유인팀과 공격팀을 따로 편성해서 최대한 빠르게 나아갈 전략을 취했다.

결사대는 현재 아홉 명 중에서 일곱이 남았다.

“코어에 대한 정보는 M이 계속 보내주고 있어요.”

분석가 M은 단독으로 돌아다니면서 스펀지처럼 코어의 정보를 흡수했다.

전투 단계의 분석과 주요 지형지물에 대해서도 매번 전송 카드를 통해 머릿속으로 알려줬다.

M의 정보는 귀했다.

그걸 토대로 새로운 전략 목표를 결정했다.

“코어는 서열로 신분을 가르고 있어요. 이건 강점이자 약점이 될 수 있죠.”

“약점인가요?”

에어리스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되물었다.

“강점은 전투력일 텐데 약점이 있을까요?”

“적자생존의 규칙은 힘으로 모든 걸 정당화한다는 거야. 여기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거든.”

유진하는 손가락을 들어 하나의 가설을 세웠다.

“강한 자가 모든 걸 얻는 세계라면 저들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강자가 되고 싶을 거야.”

유진하의 설명을 들은 이소민은 잽싸게 말의 핵심을 알아차렸다.

“그러니까 코어는 무조건 강해지려 한다는 거구나?”

에어리스는 순진한 눈망울을 머금으며 멀뚱한 얼굴로 아무것도 몰라요, 라는 표정을 지었다.

조커는 유진하의 말뜻을 눈치챘다.

“간단한 소리야. 녀석들은 서로가 서로를 적으로 여긴다는 거다.”

“맞아요. 그거예요.”

코어들은 서로를 짓밟고 강해져야 했다.

그들에게 협력이나 희생은 전혀 없는 개념이었다.

서열 7위가 왜 인간을 가지고 실험했을까?

그 의문점도 여기서 비롯됐다.

“누구도 믿지 못하는 게 코어들의 세계이죠. 그래서 녀석들은 인간에 대해 호기심이 생겼을 거예요.”

“아, 이소민 언니와 자매 요원님들을 보면서요?”

에어리스가 이해했다는 듯이 눈빛을 빛냈다.

유진하가 바로 대답했다.

“에어리스를 구하기 위해서 희생한 그들을 이해하고 싶어진 거야.”

코어는 서로가 적이었다.

그것은 코어들의 세계를 아우르는 절대적인 법칙이었다.

협력과 희생이란 인간들의 감정이었고 코어들에게는 존재하지 않는 개념이었다.

그것으로 인해 생긴, 가능성이 공략법을 떠올리는 계기로 한줄기 빛처럼 작용했다.

“연합이야. 서로 적대적인 코어한테 찾아가서 동맹을 맺는 거야.”

유진하는 과감한 전략을 제시했다.

코어를 이기기 위해서 적대적인 코어와 연합한다는 작전이었다.

발상의 전환으로 대범한 전략을 수립했다.

“적대적인 코어라면……?”

조커는 날카로운 눈빛을 빛냈다.

유진하는 가볍게 전략 포인트를 결정했다.

“서열 7위와 사이가 안 좋은 코어 생명체가 있어요. 그들과 연합의 가능성이 있겠죠.”

서열 7위와 사이가 안 좋은 관계라면 어림잡아 짐작이 가는 상대가 있었다.

“서열 7위와 경쟁 관계인 코어라면 누가 있을까요? 6위는 바로 아래인 7위한테 위협을 받겠죠. 8위는 얼른 7위를 넘어서고 싶을 테고요.”

“아!”

모두가 머리를 쿵 얻어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다.

서열 7위를 상대하려면 숙적과 연합한다.

코어는 목숨을 건 극도의 경쟁 관계에 있었으니 이걸 이용할 만했다.

이런 세계라면 줄타기 외교 전략을 수립해서 인간팀이 행동할 길을 찾아낼 수 있을 터였다.

“이간질 외교술.”

유진하는 작전의 명칭을 붙였다.

가능성은 있으나 장담할 수 없는 시도였다.

에어리스는 걱정이 되어 유진하의 손을 잡아주었다.

“진하, 괜찮을까요? 너무 위험할 거 같아요.”

“노력해 볼게.”

유진하의 눈빛은 단호했다.

아홉 명의 결사대는 이미 일곱으로 줄어들었다.

잡혀 있는 두 사람을 구해 내고 코어들을 이겨나가기 위해서는 모든 가능성에 도전해야 했다.

“지금 이 순간부터.”

이제부터는 지략전이었다.

신출귀몰하는 두뇌와 절묘한 전략이 빛을 발휘할 시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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