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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을 활용하는 1000가지 방법-114화 (114/229)

114화 구출전(6)

기지는 고요했다.

유진하는 격전 끝에 기지를 넘어가 호수에 낙하했다.

“진하…….”

기지 최하층 지하에 지금 막 도착한 에어리스가 유진하를 조심스럽게 불러봤다.

돌아오는 대답은 당연히 없었다.

부서진 코어 조각이 에어리스의 발에 살짝 닿았다.

“어디에 있어요?”

어두운 통로 속에 에어리스는 혼자 조심스레 걸어가더니 불안함에 대검을 굳게 쥐었다.

살금살금.

주변을 경계하면서 통로 끝에 보이는 마지막 방으로 향했다.

“여기는……?”

문이 부서진 광경이 보였고, 내부에는 열기와 자욱한 먼지가 가득했다.

바닥에 살짝 손을 대보니 빛의 열기가 어렴풋이 느껴졌다.

“진하가 여기서 누구와 싸운 흔적이 있어요.”

이곳은 전장이었다.

파편과 먼지가 걷히자 에어리스는 제대로 방의 전경을 보게 되었다.

“아!”

에어리스의 눈앞에는 놀라운 광경이 있었다.

투명하고 커다란 크리스털 안에는 이소민이 있었다.

“이소민 언니!”

불러도 대답하지 않았다.

이소민은 크리스털 속에서 마치 꿈을 꾸듯이 눈꺼풀을 감고 잠들어 있었다.

마치 크리스털의 따뜻한 수중에서 천천히 유영하는 느낌도 들었다.

D와 J 자매 요원들도 양옆의 크리스털 속에 갇혀 있었다.

“어떻게…….”

세 사람은 에어리스를 피신시켜 주고 대신 잡혀준 사람들이었다.

이들의 희생 덕분에 에어리스는 무사할 수 있었지만, 지금 눈앞의 광경은 너무나 충격적이었다.

크리스털 속에 갇혀 있는 모습을 보자 소름이 돋았다.

“…너무해.”

에어리스의 눈가에 눈물이 서렸다.

마음이 저미듯이 아팠는데 동시에 놀랄 만한 사실을 새롭게 깨달았다.

“설마…….”

갇혀 있는 이소민의 상체에 이전과 다른 에너지 흐름이 보였다.

심장에서 발휘되는 힘은 아니었고 이질적인 느낌의 에너지가 이소민의 전신에 새로운 기운처럼 흘러갔다.

이소민의 심장 부근에 있는 그것의 정체가 무엇인지 보였다.

“코어……?!”

이소민의 심장에는 코어가 있었다.

저들은 인간을 실험체로 여기고 코어를 이식시켜서 크리스털 속에 가둬둔 거였다.

“인간과 코어의 융합……?”

크게 놀란 에어리스는 가슴이 쿵쾅거리며 뛰었다.

코어는 인간에 관심을 가졌다.

무엇에 끌렸던 걸까.

“대체 왜……?”

에어리스는 서열 7위와의 대결에서 위화감을 받은 적이 있었다.

보통 전투에서는 서로의 피와 땀을 주고받는다.

마치 전투를 통해서 대화를 나누듯이 상대와 호흡하면서 격렬하고도 섬세한 감정을 주고받는다.

극한의 대결에서도 서로의 생각과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느낌이 달랐어.”

코어는 정반대였다.

아무런 감정조차 내비치지 않고 전투에 임했다.

그들은 무감각한 인형 같은 존재였으며 감정이란 존재하지 않는 자들 이었다.

“인간은 달라…….”

인간은 감정의 생명체였다.

이성적이면서도 때로는 감성적으로 움직였다.

전투에서도 타인을 위한 희생이 있었다.

D와 J가 그랬다.

두 사람은 에어리스를 구하기 위해서 본인들을 희생시켰다.

코어로서는 절대 이해할 수 없는 가치관이었다.

“인간에 대한 관심이 어쩌면…….”

그들은 인간의 감정에 주목해서 새로운 융합체를 실험하는 거였다.

충격적이었다.

“코어가 어떻게 전투적으로 진화했는지 알 것 같아…….”

그들은 수많은 세월을 걸쳐 다른 생명체와의 융합과 진화에 적극적이었다.

강해지기 위해서는 무엇이든 한다.

코어들의 생존 전략이었다.

“…그럴 수 없어.”

에어리스는 눈빛을 강하게 빛냈다.

코어의 실험체로 세 사람을 희생시킬 수 없었다.

“구해 줄게요. 조금만 기다려요.”

에어리스는 모두를 구해 내겠다는 의욕이 강하게 샘솟아서 뜨거운 열의로 가득 찼다.

대검을 양손에 들어서 모든 힘을 모았다.

“하아압!”

손등의 문양에서 기운이 발현됐다.

치솟는 오오라를 모아서 대검을 힘차게 휘둘렀다.

카앙!

크리스털을 정확히 갈랐다.

조각조각 부서지는 유리 파편이 흩날리며 떨어졌다.

갇혀 있던 이소민이 해방되어 서서히 몸이 앞으로 기울었다.

“이소민 언니…….”

에어리스는 쓰러지는 이소민을 안아 주었다.

부서진 크리스털 안에서 깨끗한 물이 흘러나왔다.

온몸이 젖은 이소민을 안은 에어리스는 잠시 숨을 죽인 채로 그녀의 상태를 살펴봤다.

“심장이 뛰고 있어.”

코어를 이식했음에도 심장 박동이나 숨쉬기에 문제는 없었다.

다행히 온전한 채로 무사했다.

“이제 다른 사람들도…….”

이소민을 눕혀놓고 일어설 즈음.

에어리스는 불길하고 낯선 느낌을 받았다.

어느새 뒤에는 한 사람이 있었다.

조커였다.

“조커?”

“에어리스.”

조커는 검은 양복을 입고 한 손에는 단검을, 다른 손은 주머니에 넣고 있었다.

백가면은 사라지고 맨얼굴을 드러낸 채로 헝클어진 머릿결 속에서 매서운 눈매를 번뜩였다.

“당신이 왜 여기에……?”

“나는 이번 작전에서 자유롭게 행동을 허가받았잖아.”

조커는 자유롭게 행동하라.

리더 유진하가 내린 지시였다.

“저를 도와주려는 건가요?”

“글쎄…….”

조커는 어깨를 들썩이면서 벽에 기댔다.

“서두르면 좋겠다고 알려주려고 왔지.”

“네?”

“지금 녀석이 오고 있거든.”

조커는 손가락으로 위를 가리켰다.

누군가 온다?

에어리스는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조커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아직 두 사람이 남았어요. D와 J를 남겨둘 순 없어요.”

“이해는 가는데…….”

조커는 벽에 기대어 특유의 여유를 부리듯이 다리를 살짝 꼬았다.

한 손에 든 단검을 툭툭 던지고 다시 받기를 반복했다.

“…그럴 시간이 없을 거야. 선택은 너에게 맡겨 두지.”

에어리스는 순간 망설였다.

조커는 빈말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사실 에어리스 역시 낯설고 불길한 조짐을 느끼고 있었다.

전투에 민감한 조커 역시 같은 위기감을 느꼈을 가능성도 있었다.

“…….”

이소민을 안은 채로 에어리스는 선택의 시간을 맞이했다.

행방이 사라진 유진하도 어디에 있나 신경 쓰였다.

조커와의 10초간 짧은 대화가 끝나고 에어리스는 결단을 내려야 했다.

“…결정했어요.”

불길한 존재가 다가오는 지금.

에어리스는 중요한 선택을 내렸다.

* * *

세 개의 태양이 잠든 밤이 되었다.

하늘은 요동치고 있었다.

하나의 존재가 지평선을 가르듯이 무서운 속도로 날아갔다.

“인간들이 있다.”

서열 7위였다.

그는 인간 세 명을 붙잡아서 자신의 본거지 지하에 가두었다.

원래는 괴도와 에이스를 쫓는 중이었는데, 변수가 발생해서 상황이 바뀌었다.

“빛이 지나갔다.”

아까 전.

서열 7위는 빛줄기에 휩싸여 하늘을 꿰뚫은 기세로 날아가던 유진하를 목격했다.

유진하는 빛의 속도로 나아가면서 서열 4021위를 제압했다.

그는 서열 7위 수하였다.

“인간이 내 기지에 왔다?”

그제야 서열 7위는 자신이 미끼를 물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괴도와 에이스의 유인책에 말려 시간을 허비하다가 방향을 바꿔서 날아갔다.

일단 자신의 본거지로 향했다.

“여기까지군요.”

괴도는 고원의 절벽에 서서 방향을 바꾸어 사라지는 서열 7위를 바라봤다.

깊게 쓴 검은 모자를 손으로 잡더니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거의 하룻밤 가까이 유인해 냈으니 성공적이죠.”

괴도의 옆에는 에이스가 있었다.

검은 턱시도를 차려입은 괴도와 달리 에이스는 하얀 양복을 입었다.

흑과 백.

괴도와 에이스는 비슷하면서도 다른 느낌을 주었다.

“작전 구상은 좋았다.”

“그쪽도 훌륭했습니다.”

에이스는 파트너였던 괴도의 전략을 인정했다.

지력 SSS등급에 해당하는 두 명의 전술가가 뭉치자 시너지가 발휘되었다.

두 사람은 서로의 두뇌를 모아서 U등급에 해당하는 실력을 발휘했고, 서열 7위를 유인하는 임무를 완벽하게 수행했다.

“다음 계획은?”

“들은 바 없군요.”

유진하가 준 임무는 유인이었다.

다음 계획에 대해서 특별하게 지시한 내용이 없었다.

“그럼 이제부터 자유롭게 행동해도 되겠어.”

에이스는 슬쩍 몸을 돌렸다.

가면을 쓴 괴도는 자신의 모자챙을 잡더니 냉정한 눈매를 번뜩였다.

“혼자 가는 건가요?”

“널 신뢰하지는 않으니까.”

에이스는 차갑게 대꾸했다.

어차피 잠시만 파트너였을 뿐이고 둘은 서로 경계하는 상대였다.

굳이 여기서 싸울 생각까지는 없었으나 언제 맞붙어도 이상하지 않은 사이였다.

“좋아요. 대신 이건 어떤가요?”

“뭐지?”

“앞으로 유진하가 어떻게 나올지 추측해 보자는 겁니다.”

에이스는 멈칫했다.

괴도의 제안은 꽤 구미가 당겼다.

유진하가 어떻게 나오나.

결사대의 리더는 앞으로 중대한 결정을 내리게 된다.

모두의 운명이 걸린 선택이었다.

“유진하의 생각을 맞춘다……. 재미있는 주제로군.”

“서로 흥미가 맞았군요.”

괴도는 미소 속에서 냉철한 눈빛을 머금었다.

에이스 역시 흥미를 보이고 턱을 매만졌다.

곧 헤어질 줄 알았던 두 사람은 같은 목적이 생기자 파트너 관계를 조금 더 유지하게 되었다.

“유진하의 생각이라…….”

유진하는 판세를 분석하고 흐름을 읽어낸다.

두뇌전에 통달한 두 사람은 유진하라는 공동의 경쟁자를 두고서 협력하기로 했다.

물론…….

유진하도 그 생각을 먼저 해서 두 사람을 같은 팀으로 보낸 거였지만.

양측의 의도야 어떻든 결과적으로 괴도와 에이스는 계속 한 팀을 유지하게 되었다.

* * *

기지 본거지.

조커의 경고대로 서열 7위는 뒤늦게 돌아왔다.

“역시 인간들이 왔었나.”

기지에는 부서진 코어 조각이 널브러져 있었다.

유리 조각처럼 깨진 코어의 파편을 밟으며 거닐다가 사태 파악에 집중했다.

“인간 실험체들은……?”

자신이 잡은 세 명의 인간이 떠올랐다.

본거지를 기습한 인간들의 목적은 ‘구출’일 터였다.

서둘러 최하층의 감옥에 도착했다.

그곳에는 깨어진 크리스털 하나만 보였다.

“둘은 남았어.”

한 명이 사라졌지만 자매 요원들은 여전히 크리스털 속에 남아 있었다.

에어리스는 이소민만 구출해서 나가는 선택을 내렸다.

조커의 경고를 받은 터라 자매 요원까지 구해서 데려갈 시간이 부족했다.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는 판단이었다.

구출 작전은 절반의 성공이었다.

“기다렸어.”

어둠 속에서 한 명의 목소리가 들렸다.

서열 7위는 어두운 복도 너머에 있는 정체불명의 자에게 관심을 보였다.

“누구냐?”

“네가 찾는 인간 중에 하나지.”

저벅저벅.

어둠 속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가면을 잃은 맨얼굴의 조커가 나타났다.

“네가 여기를 이렇게 만든 거냐?”

“뭐, 정확히는 지상만 그랬지.”

조커는 흥미로운 표정을 드러낸 채로 양손에 단검을 꺼냈다.

강한 적과의 싸움.

에어리스를 보내고 조커는 혼자 남아 이곳에서 강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서열 7위라지?”

흥미를 넘어선 관심이었다.

조커는 아까의 전투로는 만족하지 않았다.

이전 상대는 서열 14221위.

최상위 0.47% 수준의 강자였다.

지금은 무려 서열 7위와 맞서게 되었다.

“10위권 내에 있으면 여기서 제일 강한 수준이겠어.”

조커는 더 막강한 상대를 바랐다.

강한 적을 보면 겨뤄보고 싶다는 욕구가 샘솟았다.

서열 7위는 그 욕망과 광기에 어울리는 자였다.

“원하는 대로 해 주지.”

조커의 광기와 달리 서열 7위는 차분했다.

코어는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존재였고 전투에서의 욕망 역시 이해하지 못했다.

“인간에 대해서는 관심이 있다.”

이전 전투에서 에어리스를 구하고 대신 잡힌 요원들이 있었다.

인간이란 감정이 있는 존재였고, 그들은 남을 위해 희생할 수 있었다.

이해할 수 없는 감정이었다.

서열 7위가 인간을 실험실에 넣어둔 이유였다.

인간은 코어와 다르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감정이란 부분에 대해서 알아내고 싶었다.

“좋아. 승부를 내자.”

조커는 쌍단검을 손에 쥐고 막강한 기운을 발휘했다.

서열 7위는 서서히 오오라를 몸에 휘감았다.

“레벨4 내재화.”

서열 7위는 온몸에 기운을 발휘하여 얇은 띠의 방어막을 감쌌다.

이어서 전투 단계를 급속도로 끌어올려 내재화를 넘어선 단계에 도달했다.

최상위 서열 100위권만이 발휘하는 경지였다.

“레벨5…….”

서열 7위는 차가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오오라의 기운이 등 뒤로 가더니 양 날개처럼 발현됐다.

고고한 오오라의 파동이 흐르자 사방은 마치 공간이 바뀐 듯이 휘청거리며 흔들렸다.

서열 7위는 공간이 흔들리는 오오라의 기운을 가다듬어 양 날개처럼 발동된 기운을 인식했다.

“레벨5는…….”

눈빛은 여전히 감정 없이 차가웠다.

“초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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