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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을 활용하는 1000가지 방법-112화 (112/229)

112화 구출전(4)

부서진 백가면은 파편 조각이 되어 바닥에 떨어졌다.

“…마음에 들어.”

담벼락에 기대어 주저앉은 조커는 맨얼굴이 되자 머리카락을 가볍게 쓸어 넘겼다.

오랜만에 가면이 없어지자 바람이 뺨을 스치고 지나갔다.

조커는 색다른 느낌을 받았는지 미소를 지었다.

“대단한 녀석은 아니네.”

방금 발차기를 날린 서열 14221위는 학다리처럼 한 다리로만 섰다.

팔짱을 낀 채로 발을 살짝 흔드는 여유까지 보였다.

“혼자서도 충분하겠어. 먼저 가.”

“그러지.”

서로 간단하게 상의한 후에 각자 행동했다.

코어는 감정이 없는 생명체였다.

불필요한 말은 없고 지시와 수행처럼 무미건조한 대화만을 주고받았다.

“후후, 한 명은 보내겠다고?”

조커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몸에 묻은 먼지를 툭툭 털어냈다.

검은 양복이 금세 단정해지고 깨끗해졌다.

“날 무시하겠다는 건가?”

서열 14221위는 긴 머리를 가진 여성형 코어 생명체였다.

특유의 외다리 자세를 유지하며 조커를 쳐다봤고, 그 틈에 다른 한 명은 기지의 지하로 내려갔다.

“도발을 당하면 나는 반드시 되돌려 주지.”

코어 생명체에게 얕보이자 조커는 고개를 옆으로 기울이더니 눈동자를 동그랗게 떴다.

마치 맹수의 눈빛처럼 날카롭게 번뜩였다.

“후회하게 해주지.”

조커는 쌍단검을 들고 온몸에서 오오라를 발휘했다.

서열 14221위는 학다리 자세에서 발을 까딱거리면서 조커의 신경을 계속 거슬렀다.

레벨 3. 강화.

기세에서는 확실히 조커를 압도하는 위압감을 발휘했다.

‘저 다리가 마음에 안 들어.’

계속 흔들거리는 다리.

조커는 상대의 발놀림이 굉장히 마음에 안 들었다.

자꾸 신경을 빼앗는 저 자세가 눈에 거슬리고 싫었다.

“좋아.”

조커는 짧은 말을 남기고 전매특허인 속도로 단숨에 거리를 좁혔다.

순간 회피술은 다르게 말하면 근접전에서 초고속을 의미했다.

앞을 가르듯이 단숨에 나아갔다.

“어?!”

조커가 단검을 내지르자 서열 14221위는 상체를 뒤로 젖혀서 피했다.

속도는 상대도 만만치 않았다.

심지어 상체를 뒤로 눕히는 회피술을 보이면서 발차기까지 동시에 날렸다.

회피 동시에 반격.

서열 14221위는 발차기를 다시 조커에게 날렸다.

“크억!”

레벨3의 기운에 맞서 조커에게는 문양의 힘이 있었다.

손등에 새겨진 쌍단검의 문양은 강한 오오라 기운을 발산했으나 코어의 전투 레벨3에 당장 맞설 정도는 아니었다.

모든 면에서 아래였다.

힘과 속도에 모두 작용했고, 조커는 속도만으로 상대를 제압하기 불가능했다.

“칫.”

재차 발차기 일격을 맞고 저 멀리 날아간 조커가 담벼락에 처박혔다.

입가에서는 피가 터져 나왔다.

흐릿해지는 정신 속에서 조커는 자세를 바로잡았다.

“정말 저 자세. 마음에 안 들어.”

건너편에서 서열 14221위는 여전히 고고한 학다리 자세를 유지했다.

연신 까딱거리는 발놀림이 밉살스러웠다.

어서 다시 덤비라는 도발이었다.

“큭큭큭.”

조커는 축 늘어진 자신의 머릿결을 느끼면서 이번에는 가만히 있었다.

내려온 머리카락 속에 냉철한 눈빛을 잠시 감추었다.

도발을 두 번이나 당한 지금.

조롱당한 자존심을 다시 세우기 위해서라도 녀석을 끝장내야 했다.

“승부에서 여유를 부리면 어떻게 되는지 알려주지.”

조커는 비틀거리면서 호흡을 가다듬었다.

갈비뼈가 몇 개 나갔고 온몸은 만신창이가 되었으나 겉으로 내색하지 않았다.

적어도 한 가지는 확실했다.

한 번만 더 정통으로 맞으면 죽는다는 사실은 알았다.

그때였다.

갑자기 조커의 얼굴로 발차기가 날아왔다.

파앗!

바람 같은 고속의 옆차기였다.

조커는 가까스로 피했으나 볼에 살짝 칼날처럼 스쳤다.

두 번은 기다렸으나 이제 상대도 끝장을 낼 요량으로 공격을 시작했다.

“쳇!”

조커는 순간 회피술에 자신이 있었으나, 코어 생명체는 전투 단계를 올릴 때마다 힘과 속도가 상승했다.

레벨3 단계로도 조커의 속도에 비견될 만한 위력을 갖췄다.

후우욱.

서열 14221위와 조커의 근접전 승부가 이어졌다.

휘몰아치는 발차기로 인해 주변에 바람이 일어났다.

조커도 비슷한 속도의 승부에서 잡히지 않았다.

팽팽한 흐름 속에서 서열 14221위는 전투의 판을 바꿨다.

쿵.

발차기로 땅을 내리찍었다.

조커의 회피술을 파훼하지 못하자 지면을 부숴서 변수를 주었다.

과감한 판단이었다.

“…….”

수많은 조각과 파편이 튀어 오르자 조커의 자세가 크게 흔들렸다.

몸의 균형을 잃었다.

상대는 조커의 빈틈을 노렸다.

콰앙.

발차기가 조커의 얼굴에 정통으로 작렬했다.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동시에 서열 14221위는 발끝에서 느껴지는 감촉에서 순간적으로 위화감을 받았다.

이전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아까 조커를 찼을 때는 맨살에 부딪치는 느낌이었는데 지금은 퍽퍽한 나무토막 같았다.

동시에 조커는 온몸이 거울처럼 부서졌다.

“어?”

조커의 형상이 부서진 너머에는 또 다른 조커가 있었다.

번뜩이는 단검을 쥔 조커는 매서운 눈빛을 머금으며 기회를 기다렸다.

칼날이 번뜩였다.

단검 하나가 불길한 오오라 기운을 머금었다.

악인들의 원정대에서 한 달 동안 탐험하다가 얻은 물건이었다.

‘키리나’라는 괴물을 없애고 얻은 단검인데 특수 효과가 뛰어난 초레어 물품이었다.

-키리나의 단검.

분신 능력을 발동한다.

일정 시간 동안 사용자와 완전히 동일한 분신을 발동시킨다.

분신은 술사의 명령대로 움직인다.

아까 발차기에 맞은 사람은 조커의 ‘분신’이었다.

서열 14221위가 땅바닥에 발차기를 날려서 혼란을 줄 때가 역으로 기회였다.

조커는 같은 순간에 분신을 사용해서 몰래 앞으로 내세웠다.

분신을 앞으로 보내고 본체는 따로 숨어서 기회를 엿보았다.

“미끼에 걸렸어.”

분신에 발차기를 날린 서열 14221위는 무방비 상태가 되었다.

조커는 승부사였다.

절호의 기회를 놓치지 않는다.

“죽어서 후회해라.”

단검이 번뜩였다.

차원을 가르려는 듯이 미친 듯한 연속 베기를 날렸다.

계속 밉상이던 발놀림이 불쾌해서 다리부터 베었다.

“…….”

다리가 날아갔음에도 서열 14221위는 눈썹조차 움직이지 않았다.

그들에게는 무감각이지만 통각만은 있었다.

고통을 느끼는 감정만은 있었는데도 끝까지 신음 소리를 내뱉지 않았다.

“후후, 제법이야.”

조커는 살짝 미소를 지었다.

눈매를 번뜩이며 사방으로 칼날을 날렸다.

팔이 닿는 모든 범위.

원형의 사정거리에 있는 모든 존재를 갈라 버렸다.

서열 14221위는 육신이 갈가리 흩어지고 코어만이 남았다.

조커는 가만히 서서 덩그러니 남은 코어를 잠시 감상했다.

“죽어서 후회해라.”

단검을 내려쳐서 마지막 일격으로 코어를 갈라 버렸다.

완전한 파괴였다.

카앙.

구슬이 깨지는 소리와 함께 유리 조각 같은 파편이 사방에 흩어졌다.

승부가 결말이 났다.

“후욱.”

바람이 불자 조커의 머릿결이 더 세차게 흔들렸다.

부상이 있는 상체를 어루만지던 조커는 살짝 비틀거렸으나 곧 균형을 잡았다.

“레벨3이라…….”

조커는 순간 회피와 가속에 강점을 가진 전투원이었다.

상대의 서열은 14221위였다.

“아직 만 명이 넘게 더 강한 적들이 있다는 소리인데.”

처음부터 이곳이 만만치 않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목숨이 간당간당한 승부를 통해서 얻는 전투의 즐거움도 확실했다.

코어 생명체는 확실히 강했고 그들의 전투 레벨을 따라잡지 못하면 인간에게 승산은 없었다.

“최상위권은 어떤 놈들이지?”

호기심이 문득 들었다.

서열 10위권 이내는 완전히 괴수들이 분명했다.

그런 자들을 이기려면 이쪽도 그만한 괴물이 되어야 했다.

“큭큭큭큭.”

조커는 미친 듯이 웃기 시작했다.

온몸에 사무치는 긴장과 압박이 즐거웠다.

사선에서의 전투.

조커의 취향에 너무나 맞았다.

“더 즐겨보겠어. 코어들의 전투 레벨에 관심도 있고.”

코어 생명체는 무한한 동력원을 가진 듯이 막대한 에너지를 발휘했다.

조커는 그 힘의 원리를 배우고 싶었다.

강해지기 위해서.

적들을 다 베어버리기 위해서였다.

* * *

지하 3층.

최하층에 도착한 유진하는 홀로 모든 방을 탐색했다.

이소민과 자매 요원들이 감금된 방을 찾는 중이었다.

“여긴가?”

통로 끝에 마지막 방이 있었다.

단단한 철문이 앞을 가로막았는데 특별한 문제는 아니었다.

유진하는 카드 한 장을 손에 들더니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이걸로 해볼까.”

화염 카드였으나 불을 사용하려고 꺼낸 의도가 아니었다.

카드를 문틈에 넣었다.

손놀림이 능숙한 터라 억지로 부수지 않아도 봉쇄된 문 정도는 가볍게 툭 열어버렸다.

“됐다.”

유진하는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왔다.

감옥의 방은 앞이 보이지 않을 만큼 어두웠고 침묵만이 흘렀다.

무서운 공기가 어깨를 짓눌렀다.

‘빛이 필요해.’

번개 카드를 꺼내어 발동시켰다.

미약하게 번개를 발휘해서 약간의 빛을 발휘했다.

그제야 앞이 보였다.

“아…….”

감옥 구석에는 커다란 물체가 있었는데 투명하게 빛나는 크리스털이었다.

공중에 뜬 투명한 크리스털 속에는 무언가 갇혀 있었는데, 자세히 보니 사람이었다.

“이소민 누나?”

커다란 크리스털 안에 갇힌 이소민은 움직이지 않았다.

마치 인형처럼 눈을 감고 조용히 잠든 것처럼 고요했다.

“…….”

크리스털은 두 개가 더 있었다.

D와 J도 그 안에 갇혀 있었다.

이곳은 감옥인 줄 알았는데 자세히 보니 실험실에 가까웠다.

“코어들이 인간을 실험하는 건가?”

충격적인 상황을 맞이하자 유진하는 할 말을 잃었다.

코어는 인간에 관심을 가졌다.

크리스털 속에 갇힌 사람들에게서 인간의 정보를 빼내고 있었다.

“…구해내겠어.”

유진하는 크리스털을 향해 천천히 손을 뻗었다.

눈을 감은 이소민.

검은 생머리를 늘어뜨린 D.

붉은 머리를 머금은 J.

태양의 문장이 새겨진 손에 힘을 모아서 이들을 구해내려는 시도를 시작했다.

그때였다.

누군가 뒤에 있었다.

배후에서 불온하고 살벌한 오오라가 마치 침묵의 그림자처럼 다가왔다.

불과 열 걸음 안으로 다가올 동안, 유진하는 낌새조차 눈치채지 못했다.

‘강하다…….’

고개를 돌리며 뒤를 확인하지는 못했다.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

지금까지 상대한 코어 생명체에게서 느낀 적이 없는 위협이었다.

걸어오지 않고 잠시 가만히 있음에도 뒤에서 느껴지는 오오라가 소름이 끼쳤다.

번뜩이는 두 눈빛으로 강하게 노려보는 상대는 갓 기지에 도착한 서열 4021위였다.

‘레벨3.’

그는 레벨3 강화 단계를 발휘했다.

이 오오라만으로 유진하는 극한의 공포를 느꼈다.

곧이어 뿜어지던 오오라가 갑자기 흐름을 바꾸었고, 마치 역류하듯이 녀석의 몸에 도로 흡수됐다.

레벨4 내재화.

사방에 퍼졌던 기운을 도로 빨아들여 몸에 담아, 바깥에 분출되어 낭비되는 에너지 소모를 줄일 수 있었다.

에어리스조차 넘어서지 못했던 단계였다.

레벨4의 코어 생명체.

뒤를 잡힌 유진하.

숨 막히는 긴장감 속에서 유진하는 처음으로 적에게 배후를 내주며 최악의 위기를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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