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화 구출전(3)
서열 7위의 본거지에선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조커가 정면으로 당당하게 쳐들어가면서 제어실을 장악할 무렵.
유진하와 에어리스는 그 틈에 본거지에 잠입했다.
“진하, 이소민 언니랑 자매 요원들은 어디에 있을까요?”
복도를 달려가던 에어리스가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유진하는 던전에 들어온 듯이 빠르게 주변을 탐색했다.
서열 7위한테 붙잡힌 이소민과 자매 요원들이 기지 어딘가에 있었다.
정보통 M이 알아낸 바에 따르면 세 사람은 이곳에 살아 있었다.
“지하가 있어.”
기지에는 지하 시설이 있었다.
보안이 철저한 곳이었으나 유진하는 비상구를 찾아냈다.
“여기로 가면 될 거 같아.”
“진하, 서두를게요.”
에어리스는 마음이 급했다.
세 사람의 희생으로 무사히 빠져나올 수 있었으니, 반드시 자신의 힘으로 구해내고 싶었다.
“초조해할 필요 없어.”
유진하는 조급하게 서두르는 에어리스를 다독였다.
서두르면 실수할 수 있었다.
“네, 조심할게요.”
에어리스는 마음을 다독이면서도 긴장감을 서서히 끌어올렸다.
떨리는 감정을 서서히 전투의 기운으로 끌어올렸다.
“지하가 있다는 건 알았어. 하지만 아직 정확한 기지 내부까지는 몰라. 시간이 부족하고.”
“진하, 그럼 어떻게 할까요?”
“나뉘어서 가야겠어.”
유진하는 방금 발견한 지하 통로를 에어리스에게 양보했다.
“이쪽으로 먼저 가. 나는 다른 곳으로 갈게.”
흩어져서 탐색한다.
멤버들을 구출하기 위해서 유진하와 에어리스는 나뉘어서 수색을 시작했다.
“진하, 먼저 갈게요.”
에어리스는 비밀 통로로 들어갔고 유진하는 다른 통로로 향했다.
지하로 향하는 길은 하나가 아니었다.
조커가 적들의 이목을 끌어주는 지금이 절호의 기회였다.
“지금.”
다른 비상구가 근처에 있어서 유진하는 빠르게 그쪽으로 향했다.
서열 7위는 기지에 없었다.
괴도와 에이스가 녀석을 맡아서 계속 유인하고 있으나 기지 사정을 알게 되면 언제라도 돌아올 터였다.
시간은 제한됐다.
“속력을 올려서 가볼까.”
손등에 새겨진 태양의 문양이 서서히 오오라를 머금었다.
빛의 힘이 하얗게 온몸에 서렸다.
“전속으로…….”
유진하는 빛의 속도로 나아갔다.
비상 통로를 번개처럼 이동하면서 빠르게 내려갔다.
파앗.
짙게 서리는 빛이 흘러갔다.
유진하는 기지 최하층에 착지하자 호흡을 가다듬었다.
“최하층인가…….”
멤버들은 기지 어딘가에 붙잡혔을 테고 그렇다면 지하 최하층이 가장 유력한 곳이었다.
사방은 고요하고 어두웠다.
방금 이곳에 도착한 유진하는 자신의 몸에서 빛이 빠져나가기를 기다리기로 했다.
‘빛이 보이면 적들이 먼저 기습할 수 있어.’
어둠 속에 은신하려면 온몸의 빛이 사라져야 했다.
잠시 빛을 숨겨야 했다.
“후우.”
유진하는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어둡고 조용한 최하층.
길고 긴 복도를 따라가면서 최하층 수색을 시작했다.
* * *
“하아, 상대가 꽤 많네요.”
에어리스는 지하 1층의 통로에서 무수한 적들을 맞이했다.
십수 명의 코어 생명체가 있었다.
지상에서 홀로 습격한 조커처럼 비슷한 정면 돌파 전략을 선택했다.
“앞을 막겠다면 힘으로 뚫고 지나가겠어요.”
에어리스는 의지를 불태웠다.
반드시 이소민과 자매 요원들을 구해 내겠다고 다짐했다.
이 싸움에서 물러설 수 없다는 기세로 기운을 발휘했다.
“인간이라는 존재인가?”
무리 중에서 가장 서열이 높아 보이는 자가 나타났다.
건장한 체구에 근육질 스타일의 남자였다.
“당신은 누구시죠?”
“서열 47만 위다.”
상대는 서서히 기운을 끌어올렸다.
몸 안의 코어는 동력원처럼 막대한 에너지를 발휘했다.
‘레벨2?’
코어는 전투에 강한 생명체였다.
인간보다 확연히 강한 전투력을 가진 자들이었고 그들만의 ‘전투 단계’까지 존재했다.
에어리스는 서열 7위와의 대결을 떠올렸다.
‘코어의 힘…….’
레벨1은 초기에 아무 힘도 발휘하지 않은 상태이다.
레벨2는 발현.
본격적으로 기운을 발산하는 단계였다.
에어리스가 발휘하는 힘은 전부 이 단계에 속했다.
“저게 3단계?”
서열 47만 위는 3단계를 발산했다.
3단계는 강화.
이 단계의 힘만으로도 에어리스는 서열 7위와의 전투에서 완벽하게 밀렸다.
이후에는 심지어 4단계 내재화와 정체불명의 5단계도 있었다.
“후우.”
에어리스는 식은땀을 흘렸으나 긴장감을 억누르려고 대검을 강하게 움켜잡았다.
이전 전투의 트라우마가 어깨를 무겁게 짓눌렀다.
부활 혹은 절망.
에어리스는 전투에서 다시 일어서기로 결의를 다졌다.
“하아압!”
손등에서 빛이 흘러나왔다.
검과 방패가 새겨진 문양이 푸른빛의 힘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속성 부여 건틀릿으로 번개의 힘을 발휘하고 충전식 건틀릿으로 에너지까지 모았다.
에어리스가 가진 최대의 힘이었다.
“코어의 흐름…….”
에어리스는 이전 대결에서 배운 점이 있었다.
눈썰미가 남다른 덕분이었다.
서열 7위와의 전투에서 코어가 발휘하는 에너지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똑똑히 봤다.
“레벨3이라면…….”
코어는 에너지 흐름을 조절하면서 단계를 조절했다.
레벨3이 되면 코어를 본격적으로 개방한다.
마치 문을 열고 펌프식 기계를 작동하듯이 수십 배의 에너지를 증폭시켜 방출했다.
“나는…….”
에어리스는 가슴 부근에 한 손을 올렸다.
심장 부근이었다.
“나는 인간이 아니에요…….”
심장을 가진 사람이 아니었다.
저들처럼 코어가 있지도 않았다.
“하지만… 나에게도…….”
에어리스는 차분한 눈매로 마음을 가다듬었다.
심장은 아니어도 분명히 가슴이 뛰고 있었다.
이성과 감정.
온몸에 뜨거운 피처럼 흘러가는 기운도 느껴졌다.
“어쩌면…….”
인간처럼 감정이 있고 에너지도 내뿜는 무언가가 분명히 가슴에 있었다.
동시에 자신이 인간이 아니라는 낯설면서도 줄곧 외면하던 현실에 당혹스러움도 느꼈다.
‘나는 누구일까?’
항상 머릿속에서 맴돌았던 질문이었다.
모든 걸 알고 싶었다.
나는 누구이며 무엇을 했는지…….
“이기고 싶어.”
그랬다.
코어는 감정이 없다.
인간은 감정이 있다.
-에어리스는 감정이 있다.
코어는 에너지를 방출한다.
심장은 에너지를 방출하지 않는다.
-에어리스는 에너지를 방출한다.
코어와 인간.
에어리스의 가슴에 있는 무언가는 인간의 감정과 코어의 에너지를 모두 가졌다.
완성형이었다.
“하아아압!”
에어리스는 힘을 끌어 모았다.
심장 부근의 떨림이 미묘하게 점점 더 크게 뛰었다.
코어의 전투 단계를 보면서 알게 된 에너지 흐름이 있었다.
가슴에서 개방되는 힘이 문장으로 이어져 막대한 에너지가 되었다.
“설마? 3단계?”
상대는 순간 당황했다.
가장 앞서 나온 서열 47만 위도 놀란 표정이 되었다.
“인간은 2단계가 한계라고 하지 않았나?”
정보에 따르면 그랬다.
전투 3단계보다 떨어지는 인간은 위협적인 존재가 아니었다.
약해서 얼마든지 짓밟을 수 있는 존재였다.
하지만 저들의 상대는 에어리스였고 코어의 전투 단계를 터득해 가고 있었다.
카앙!
에어리스는 엄청난 오오라와 함께 대검을 휘둘렀다.
발휘한 충격파가 일격으로 서열 47만 위를 제외한 전부를 한 번에 휩쓸었다.
“큭!”
레벨3의 오오라를 발휘하던 47만 위는 간담이 서늘해졌다.
에어리스의 전투력은 예상을 뛰어넘는 수준이었다.
“이럴 수가?!”
대검에서 몰아치는 한 방 한 방의 위력이 막강했다.
팔이 떨어져 나갈 듯한 오오라를 발산했다.
서열 47만 위는 물러서지 않았다.
“으아아아!”
인간 중에 3단계를 쓰는 강적이 있을 줄은 몰랐으나 어차피 같은 전투 단계였다.
충분히 승산이 있었다.
에어리스는 대검을 한 손에 쥐고 차분히 호흡을 가다듬었다.
“당신은… 그와 달라요.”
서열 47만 위는 강했고 같은 3단계에 있으나, 서열 7위가 발휘하던 위압감 수준은 아니었다.
“하아아압!”
47만 위는 확실히 서열 최정상에 비해 미약했다.
에어리스는 만만찮은 상대를 거치면서 그동안 성장해 왔다.
지금은…….
코어의 전투 단계마저 습득하고 있었다.
“하아압!”
에어리스는 서열 47만 위를 정확하게 내리쳤다.
코어를 완전히 반으로 갈라버렸다.
상대는 조각난 코어와 함께 연기처럼 사라졌다.
“…이겼어요.”
에어리스는 대검을 양손에 든 채로 숨이 차올라서 잠시 헐떡였다.
그대로 잠시 벽에 기대었다.
누적된 긴장감과 부담감에서 잠시나마 벗어나고 있었다.
“이렇게 싸우면 되는 걸까요?”
에어리스는 숨을 짧게 고른 후에 대검을 등에 메고 다시 걸었다.
지하 1층을 전부 둘러봤으나 연구실이나 빈방이 가득했다.
멤버들은 어디에도 없었다.
하는 수없이 더 밑으로 내려가리라 마음먹었다.
“더 가볼게요.”
복도에 숨겨진 비상구를 찾아서 문을 열었다.
한 층 더 아래.
지하 2층으로 향했다.
* * *
최하층은 지하 3층이었다.
유진하는 이미 이곳에서 한 차례 격전을 치러냈다.
“빛의 힘.”
상대는 코어 생명체였고 나름의 실력은 갖췄으나 어려운 상대는 아니었다.
“빛의 힘은 처음부터 3단계였어.”
코어들의 전투 레벨은 유진하도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M이 알아낸 데이터와 에어리스에게 들은 전투 정보를 취합했다.
빛은 우월한 힘이었다.
속도와 힘을 통틀어서 가장 우수한 에너지였다.
“이 힘은 당신들의 기준에 따르면 3단계야.”
M의 정보에 따르면 전투 레벨 3단계는 서열 50만 위부터 사용이 가능했다.
유진하는 방금 만난 몇 명의 적을 3단계 빛의 힘으로 모조리 제압했다.
원래 지하 3층은 어두워서 빛이 없었으나 유진하는 적과 마주칠 때마다 번개 카드를 사용해서 빛을 모았다.
번개와 빛의 연계.
유진하는 이 연계 기술을 사용하면서 지하 3층을 헤집고 다녔다.
“어?”
기계가 정지하는 소리가 들렸다.
기지는 모든 에너지를 잃고 폐허처럼 멈췄다.
“조커인가?”
지상 1층의 제어실은 기지의 모든 전력을 공급한다.
이곳의 스위치를 내리면 기지의 전력을 차단할 수 있는데 조커가 제압해서 기지의 전력을 없애 버렸다.
조커의 짓이 분명했다.
“흐음.”
유진하는 멈춰 버린 기지에서 발걸음을 재촉했다.
“여기에 있을 거야.”
멤버들을 되찾겠다는 분명한 목표가 있었다.
시간이 언제까지 허락될지 알 수 없어서 서둘러야 했다.
문제는 조커의 행보였다.
“후후, 간단하네.”
제어실을 손에 넣겠다는 1차 목표를 달성한 조커는 백가면을 만지면서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백가면 속의 얼굴에서 미묘한 미소가 감돌았다.
“유진하와 에어리스는 지하로 내려갔겠지?”
기지 지상에 살아 있는 코어 생명체는 조커가 싹 쓸어버린 뒤였다.
제어실에는 기지의 전체 지도가 있었다.
덕분에 지하의 시설 위치도 전부 보였다.
“감금 시설이 최하층에 있구나.”
모든 정보를 빠르게 머릿속에 주입했다.
지상과 지하가 있는 이 기지가 제법 흥미를 자극했다.
조커는 유진하에게 이번 작전에서 자유로운 행동을 허가받았고 지금 새로운 계획을 구상했다.
“내 마음대로 해도 된다면… 그것도 재밌겠어.”
흥미로운 생각이 떠올랐는지 조커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이번 작전을 훨씬 더 긴박감이 넘치도록 만들려고 했다.
조커는 발길을 재촉하고 서둘렀다.
“좋아. 적당히 되겠지.”
한창 룰루랄라 조커가 자기만의 계획을 꾸밀 즈음이었다.
먼 고원에서 두 명의 코어 생명체가 기지를 향해 빠르게 다가왔다.
지평선을 가르듯이 쾌속으로 달려오던 그들은 부서진 기지의 정문으로 들어왔다.
두 명의 존재는 들어오자마자 바닥에 널브러진 코어 조각과 마주했다.
“우리 기지가 기습당한 건가? 누구에게?”
무려 서열 7위의 본거지가 정체불명의 공격을 당한 거였다.
둘은 당혹스러웠다.
“…한 명의 짓이다.”
지상에 떨어진 코어의 파편 조각을 살피니 전부 같은 칼자국이 그어졌다.
날카로운 단검을 가진 단 한 사람에게 당했다는 사실을 눈치챘다.
코어 생명체는 불온한 기운을 감지했다.
“코어가 아니야.”
이질적인 오오라를 가진 존재가 이곳에 있다는 걸 깨달았다.
코어 생명체는 무한에 가까운 에너지를 받을 수 있었다.
코어만 멀쩡하다면 그들은 영원히 죽지 않는다.
영생과도 같았다.
“온다.”
매서운 기습이 다가왔다.
근처에 숨어 있던 조커는 독수리처럼 단숨에 그들에게 달려들었다.
쌍단검으로 코어를 하나씩 노렸다.
“기습이라.”
조커의 기습은 날렵하고 정확했으나 상대 역시 만만치 않은 실력자들이었다.
붉은 머리의 여성은 14221위.
노란 머리의 남자는 4021위였다.
수백만의 코어 생명체 중에서 상위권에 속하는 괴수들이었다.
그들은 가볍게 조커의 공격을 회피했다.
“후후.”
빈 땅에 단검을 찍은 조커가 어색한 웃음을 흘려보냈다.
기습은 실패했다.
새로 나타난 두 명은 강적이라는 걸 깨달았다.
아까와는 전혀 다른 상대라는 건 이후의 반격으로도 알 수 있었다.
서열 14221위는 조커의 기습을 한 걸음만 뒤로 움직여서 피하더니 그대로 발차기를 날렸다.
“큭!”
조커는 두 팔을 들어 방어했으나 한 방에 저 멀리 날아갔다.
발차기를 날린 서열 14221위가 한 다리를 든 채로 고개를 까딱거렸다.
“아, 인간인가?”
코어는 감정이 없었다.
그에 반해 조커는 냉철하고 차가운 감정이었으나 결국은 피 끓는 인간이었다.
“방금 발차기 좋았네.”
조커는 방금 일격을 맞아서 백가면을 잃었다.
기지 외벽에 처박혀서 잠시 주저앉았고 오랜만에 맨얼굴이 되어 고개를 들었다.
부서지는 가면의 조각 너머로 코어 생명체가 보였다.
“후후.”
조커는 흘러내리는 머리카락을 살짝 손으로 쓸어 넘겼다.
새로운 강적을 만났다는 기쁨과 기대가 온몸에 전투의 흥분으로 차올랐다.
“맘에 들어. 덤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