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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을 활용하는 1000가지 방법-108화 (108/229)
  • 108화 대전략(3)

    서열 7위는 대지에 퍼진 기운을 도로 흡수했다.

    오오라는 체내로 흘러 들어가더니 실루엣처럼 몸의 테두리가 되었다.

    “레벨4…….”

    코어는 발휘하는 힘을 전투 단계로 구분했다.

    레벨1부터 시작한다.

    “초기에는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않은 상태다. 이게 레벨1이지.”

    서열 7위는 중얼거렸다.

    오오라 활용이 부족해서 무기와 방어구, 카드에 의존하는 정도였다.

    체내로 기운을 흡수한 그는 온몸에 감도는 오오라를 느끼며 쥐죽은 듯한 고요 속에 가만히 있었다.

    녀석의 눈빛이 번뜩였다.

    “레벨2는 발현.”

    본격적으로 기운을 발휘하는 단계였다.

    에어리스는 물론 인간 중에서도 고수에 속하는 사람들이 이 단계에 속했다.

    손등에 문장을 가진 유진하와 에어리스, 조커 정도가 여기에 속했다.

    “레벨3은 강화.”

    다음 단계는 기운을 강화한다.

    여기부터는 인간 중에서는 도달한 사람이 없었다.

    서열 7위는 여기서 두 단계를 더 넘어선 수준에 있었다.

    “레벨4는 내재화이다.”

    기운은 원래 방출된다.

    몸 밖에 발현해서 육체를 강화하거나 파괴력을 높인다.

    짧은 순간에 위력을 올릴 수 있으나 단점도 존재했다.

    외부에 방출하면 에너지가 손실된다는 거였다.

    “밖으로 내보낸 기운은 일부가 소실되지.”

    외부에 방출된 에너지는 최소 30% 이상이 사라진다.

    내재화는 그 단점을 극복하는 단계였다.

    오오라를 체내에 빨아들여 30% 손실 없이 힘을 완전하게 발휘하는 방식이었다.

    100% 에너지.

    ‘내재화’는 그 힘을 가능하게 한다.

    “이 오오라가 보이나.”

    내재화된 오오라가 실루엣처럼 얇은 테두리가 되어 서열 7위의 온몸에 씌워졌다.

    자세히 보면 오오라가 마치 태양의 표면이 일렁이듯이 넘실거리기도 한다.

    “전투 단계……?!”

    무수한 창살 세례를 맞아 온몸이 만신창이가 된 에어리스는 힘겹게 버티고 있었다.

    제대로 서기 힘들어서 대검에 몸을 기대었다.

    그동안 맞선 적들을 떠올렸으나 이만큼 강한 상대는 처음이었다.

    ‘차원이 달라.’

    마치 높다란 계단 너머의 천상에 있는 존재 같았다.

    어떤 상대에게 맞서도 밀리지 않았으나 한계에 닿았다.

    “…으윽.”

    에어리스는 온몸이 핏물과 땀방울로 뒤범벅되었다.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어깨는 힘없이 내려가고 있었다.

    바람이 몰아치듯이 에어리스의 금발 머리카락이 흩어졌다.

    그 순간.

    서열 7위가 바로 앞에 다가왔다.

    “아…….”

    에어리스는 외마디 비명을 흘렸다.

    서열 7위는 온몸에 얇게 흐르는 오오라 속에서 서서히 기세를 올리고 있었다.

    서열 7위가 손날을 가볍게 내밀었다.

    “아악!”

    압도적인 차이였다.

    손짓 한 번에 에어리스는 저 멀리 날아갔다.

    겨우 대검으로 방어했으나 튕기듯이 밀려났다.

    “따라가지.”

    날아가는 에어리스를 지켜보던 서열 7위가 살짝 발구름을 시작했다.

    동시에 마치 연기처럼 사라지듯이 나아갔다.

    “아!”

    공중에 밀려 날아가던 에어리스 옆에 서열 7위가 다시 나타났다.

    순간 이동에 비할 만큼 빠른 속도였다.

    두 사람은 공중에 같이 있었다.

    이미 엉망진창으로 당한 에어리스는 대응할 기력조차 없었다.

    ‘끝이다.’

    서열 7위는 주저하지 않고 손을 내밀었다.

    마지막 일격이었다.

    서열 7위와 에어리스 사이에서 시간이 멈춘 듯한 충격이 퍼졌다.

    굉음이 터졌다.

    “…….”

    서열 7위는 잠시 멈췄다.

    자신의 손을 에어리스에게 내리치지 못하고 그대로 머뭇거렸다.

    지금 이 자리에 다른 사람이 있었다.

    “인간?”

    한 명이 아니고 두 명이었다.

    서열 7위는 새로운 상대를 인식했는데 두 사람이 동시에 달려들었다.

    D와 J 자매였다.

    “너희들은?”

    D가 검은 생머리를 휘날리며 태도(太刀)의 검을 꺼냈다.

    일격의 베기를 최대치로 발휘했다.

    일섬.

    “이야압!”

    예전에는 패러사이트에게 지배당해 숙주가 되었던 D였다.

    기생충은 D의 모든 에너지를 빨아 당겨서 아낌없이 사용했다.

    그때의 상황은 지옥과도 같았고 한동안 악몽으로 남아 괴롭게 만들었다.

    기억이 남은 탓에 불면증으로 고통스러웠다.

    단점만 있는 건 아니었다.

    일섬 최대치.

    그날의 과거가 남은 덕분에 에너지 활용과 최대 기술에 대해서 몸이 기억하고 익혀 두었다.

    지금 그 머릿속에 남은 파묻힌 기억을 꺼냈다.

    악몽이 아니라 전투에서의 힘을 끄집어내었다.

    일섬 최대치를 전력으로 발휘했다.

    ‘7연속 일섬.’

    D는 좌우로 이동하면서 깔끔한 고속 베기를 작렬시켰다.

    “으아아아!”

    이어서 동생 D도 붉은 머리를 휘날리면서 한손검을 거대화시켜서 내려쳤다.

    초거대 카드였다.

    일반 거대화 카드보다 최대 두 배로 모습을 더 키울 수 있는 레어였다.

    한손검은 고층 빌딩에 육박하는 크기로 커졌다.

    ‘듀엣’

    D와 J는 자매만의 호흡으로 완벽한 연계를 날렸다.

    “이야아아아아!”

    서열 7위는 난입한 두 사람을 맞이했다.

    D와 J 자매의 연계는 완벽하게 서열 7위에게 작렬했다.

    에어리스를 노리는 타이밍을 역으로 잡은 거였다.

    완벽한 기습이자 역습이었다.

    7연속 일섬과 초거대화 한손검.

    서열 7위는 자매가 혼신을 다한 공격에 직격으로 맞았다.

    “이야아아압!”

    D는 7연속 일섬을 날린 후에 기진맥진했다.

    팔다리가 후들후들 떨렸다.

    J의 상황은 상대적으로 나았으나 체력이 부족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아……!”

    자매는 땅에 착지해서 하늘을 바라다봤다.

    최선을 다한 일격이었으나 눈부신 하늘에는 녀석이 떠 있었다.

    “안 통했다고?”

    서열 7위는 온몸에 실루엣처럼 두른 오오라를 여전히 유지하고 있었다.

    내재화된 기운은 최대치의 일섬 7연속 베기로도 전혀 타격을 주지 못했다.

    “내 검이…….”

    D는 손에 든 검을 살펴봤다.

    태도의 검날이 망가져서 더 쓰지 못하는 상태가 되었다.

    초거대화된 J의 검도 마찬가지였다.

    “…망가졌어.”

    불어오는 바람 속에서 D는 망가진 태도의 검을 바라봤다.

    하늘에 있는 서열 7위는 마치 빛을 가다듬듯이 화려하게 빛났다.

    내재된 오오라를 머금으며 감정이 없는 눈빛으로 차갑게 노려봤다.

    상대는 압도적으로 강했다.

    “A등급 공간에서도 최상위…….”

    D는 상대의 강함에 대해 솔직하게 인정했다.

    그들의 공간은 전투력 등급이 A였다.

    우리 공간의 B보다 한 단계가 높았다.

    전투력 한 등급의 차이는 실로 어마어마한 실력의 차이를 의미했다.

    현재로서 승산이 없었다.

    “정면 승부는 무리야.”

    J는 고개를 떨구었다.

    그녀의 붉은 머리가 모래바람에 휘날리며 흔들렸다.

    장비를 모은 이소민이 당했고 에어리스는 힘이 다해 주저앉았다.

    혼신을 다한 연계까지 막혔다.

    전멸 직전의 상황에서 훗날을 기약해야 했다.

    “에어리스, 널 보내줄게.”

    “네?”

    대검에 기대어 주저앉은 상태로 기진맥진한 에어리스는 가까스로 고개를 들었다.

    바람결에 흔들리는 붉은 머리카락 속에서 J는 살짝 미소를 지었다.

    “유진하가 우리를 여기로 보냈어. 에어리스를 구조해 달라는 부탁이었지.”

    “저를요?”

    “응. 녀석은 네가 무사히 돌아와야 승산이 있다고 했어. 어떻게든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거야.”

    “그럼 두 사람은요?”

    “여기 남아야지.”

    J는 단호한 결의를 드러냈다.

    이들은 처음부터 자신의 안위는 상관없이 에어리스를 구출할 계획이었다.

    “유진하는 결사대의 리더야. 우리는 리더의 작전대로 따를 거고.”

    D와 J는 요원이었다.

    최정상급 요원답게 두 사람은 명령에 충실했다.

    -에어리스를 구하라.

    유진하의 첫 번째 작전이었고 두 사람은 어떤 일이 있어도 해내겠다고 결심했다.

    희생을 각오하더라도…….

    그렇게 마음먹었다.

    “D… 그리고 J…….”

    에어리스는 목이 메어오는 감정을 느꼈다.

    완전히 지쳐버린 상태였으나 각자가 최선을 다해서 이 싸움에 임하고 있었다.

    포기하지 않는다.

    결사대라는 이름이 어울릴 만큼 비장한 각오를 가졌다.

    “유진하가 있는 곳으로 보내줄게.”

    J는 카드를 내밀었다.

    순간 이동 카드였다.

    원하는 위치를 지정할 수 있으나 한 사람만 사용할 수 있는 한계가 있었다.

    “에어리스, 먼저 가.”

    J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유일한 탈출법을 사용했다.

    카드가 빛을 발하는 동안 서서히 세 사람이 있던 공간은 나누어지고 있었다.

    푸른 장벽 같은 빛줄기는 사라질 사람과 남을 사람을 갈라놓았다.

    에어리스는 슬픈 눈빛으로 두 사람을 바라봤다.

    “아…….”

    최선을 다해 소리쳤지만 이내 순간 이동의 빛줄기에 휩싸여 사라졌다.

    D가 검은 생머리를 휘날리며 마지막으로 중얼거렸다.

    “…뒤를 부탁할게.”

    전략적 혹은 전술적 판단에 따라 생존과 멸망의 기로가 갈린다.

    결사대는 막중한 책임감을 가졌다.

    이 싸움에서 지면 모두에게 희망은 없었다.

    정신력과 작전 수행력이 뛰어난 D와 J 자매는 에어리스 구출 작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대신 남았다는 거냐?”

    서열 7위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햇빛이 쏟아지는 하늘에서 천천히 내려온 그는 압도적인 위압감을 발휘하며 남아 있는 자매 요원을 쳐다봤다.

    적자생존의 세계에서 있을 수 없는 행동이었다.

    “왜지?”

    타인을 위한 ‘희생’이란 개념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세계였다.

    “너의 목숨보다 더 소중한 남이 있을 수 있나?”

    서열 7위는 도저히 알 수 없다는 듯이 순수한 의문을 던졌다.

    인간이란 존재는 전투에 강하지 않았다.

    하지만 방금의 행동은 처음으로 의문을 가질 만했다.

    “너희와 우리는 달라.”

    D는 차분하게 대답했다.

    불어오는 바람 속에서 검은 생머리를 휘날리면서 태도의 검을 굳게 움켜잡았다.

    “우리는 인간이고 너희는 코어이니까.”

    서로가 다른 생명체였다.

    감정이 있는 인간.

    감정이 없는 코어.

    별개의 가치를 가진 두 생명체는 가치관과 생명관이 달랐다.

    서로의 생각이 대립했다.

    “이해할 수 없는 존재인가. 인간에 대해서 조금은 관심이 생겼어.”

    서열 7위는 솔직하게 토로했다.

    인간이 보이는 희생이라는 행동과 감정이라는 부분에 대해서 흥미를 느꼈다.

    “레벨5…….”

    전투 4단계 내재화를 넘어선 수준이 존재했다.

    서열 7위의 오오라는 서서히 뭉치기 시작했다.

    그 힘은 마치 양날개처럼 등 뒤에서 뻗어가는 오오라를 발산했다.

    마치 악마의 날개처럼 거대한 오오라가 방출됐다.

    “언니…….”

    J는 작게 중얼거렸다.

    어린 시절부터 사이가 안 좋은 자매 사이였으나 어쩌면 이제는 최후가 될 수 있는 순간을 함께하게 되었다.

    “어릴 적부터 많이 싸웠지만 그래도 고마웠어.”

    붉은 머릿결을 휘날리며 J는 진지한 얼굴로 마지막 싸움을 준비했다.

    항상 냉정하게 정부의 임무를 수행했던 D도 같은 마음이었다.

    J의 마지막 진심을 들은 D는 처음으로 전투에서 이성 대신 감정에 잠겼다.

    최후를 예감한 회상이었다.

    “…나도 고마웠어.”

    자매의 진심이 서로에게 전달될 즈음이었다.

    어쩌면 많이 늦었던 걸까.

    두 사람은 짧은 감상에 빠질 여유도 없이 서열 7위가 발휘하는 극한의 오오라 날개를 보았다.

    저 기운에서 뿜어지는 위압감을 보자 공포감마저 상실했다.

    절망과 침묵.

    이 싸움의 끝에서 희망은 없었다.

    첫 전투에서 결사대는 아홉 명의 멤버 중에 무려 세 사람을 잃었다.

    이소민.

    D.

    J.

    큰 희생이었다.

    나머지 여섯 명에게 막중한 책임감이 넘겨졌다.

    -살아 있는 사람은 앞선 자의 의지를 이어간다.

    머나먼 공간 너머에서 결사대는 외로운 싸움을 각오했다.

    최후까지 벌어질 이들의 일전은 이제 시작되었다.

    * * *

    호수에는 물결이 잔잔했다.

    아무도 없는 이곳에는 정적만이 감돌았다.

    나무와 풀이 있는 주변 환경이 우리가 사는 공간과 엇비슷했다.

    물과 공기는 생명체의 기본이었다.

    어디서도 이 법칙에서 벗어난 공간은 없었다.

    하늘의 태양이 세 개일 뿐.

    다른 환경은 동일했다.

    파아아.

    평온하던 호수에는 푸른빛의 빛줄기가 내리치자 물결이 흐트러졌다.

    “아…….”

    순간 이동으로 이동한 에어리스는 온몸에 부상을 입은 채로 호숫가에 도착했다.

    “여기는……?!”

    순간 이동으로 유진하가 있는 곳에 보내준다고 했다.

    지쳐버린 에어리스는 힘겹게 걸음을 내딛다가 호수 앞의 바위에 털썩 앉았다.

    무거운 대검을 잠시 내려놨다.

    “호수…….”

    푸른 물결이 넘실거리는 호수가 시야에 가득 담겼다.

    에어리스는 가만히 기다리다가 몸을 일으켜 호숫가의 물로 손을 적셨다.

    얼굴부터 조심스레 물로 닦았다.

    “어?”

    얼굴에 난 상처에 물이 닿자 서서히 아물기 시작했다.

    “회복할 수 있는 건가요?”

    에어리스는 팔의 상처도 물로 닦았다.

    효과는 바로 나타났다.

    상처가 스르륵 사라지더니 기력마저 회복되었다.

    “여기가 특별한 곳이었네요.”

    기운을 되찾은 에어리스는 잠시나마 평온을 되찾았다.

    A등급의 공간에 도착하자마자 차원이 다른 강적과 대결했다.

    서열 7위는 전투 단계를 올리면서 압도적인 위압감으로 결사대를 압도했다.

    “이소민 언니…….”

    가시에 찔려 정신을 잃은 이소민.

    D와 J 자매도 목숨을 걸어 에어리스를 지켜줬다.

    세 사람의 희생을 지켜보며 에어리스는 무기력하게 후퇴해야 했다.

    에어리스의 눈망울 속에는 슬픈 눈물이 서리고 있었다.

    그때였다.

    “에어리스…….”

    반가운 목소리가 뒤에서 들렸다.

    에어리스가 고개를 돌리자 뒤쪽의 나무에서 누군가를 나타났다.

    그 사람이었다.

    가장 부르고 싶었던 그 이름.

    에어리스는 떨리는 감정을 억누르며 그를 불렀다.

    “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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