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을 활용하는 1000가지 방법-103화 (103/229)
  • 103화 악인들의 원정대(1)

    고요한 공간.

    바람이 심심한 흙먼지를 일으키다 사라지는 곳이었다.

    붉은 모래가 뒤덮인 고원은 끝없이 이어지는 절벽과 벼랑이 굽이치며 펼쳐졌다.

    높다란 절벽 위에는 두 사람이 있었다.

    “진하, 그 사람들은 괜찮을까요?”

    대검을 등에 멘 에어리스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옆에는 유진하가 바위 위에 앉아 있었는데 두 다리를 모두 올려 양반다리 자세를 유지했다.

    “아마도……?”

    멀리 지평선 너머에는 사람의 발자국이 쭉 이어졌다.

    붉은 고원에서 사람의 자취는 그게 유일했다.

    끝없이 이어지는 발걸음.

    바람이 불어 흔적도 없이 사라질 때까지 발자국만 남아 있었다.

    “공략전은 다들 실력이 출중하니까 괜찮을 거야.”

    절벽에서 잠시 바위에 앉은 유진하가 먼발치의 경치를 계속 감상했다.

    선발대를 먼저 보내고 여기서 기다리고 있었다.

    작전 입안은 유진하.

    이번 대전략에서 원정대는 다른 공간의 발전된 문명이나 기술을 가져오는 목표를 가졌다.

    “문명을 발전시킬 기술자를 데려가야 해.”

    우리 공간의 문명을 급속도로 발전시키려면 훌륭한 엔지니어를 구해야 했다.

    제한 시간은 한 달.

    그 안에 모두가 성장해야 했다.

    에어리스는 걱정되는 부분이 하나 있었다.

    “그 세 사람을 정말 믿을 수 있을까요?”

    유진하의 원정대는 총 다섯 명이 참가했다.

    유진하와 에어리스를 제외하면 나머지 셋은 범죄자였다.

    알카트로스의 에이스.

    괴도 알파.

    조커.

    이들은 모두 숙적이었고 목숨을 걸고 격전까지 치른 상대였다.

    이런 사람들과 진정으로 협력하고 원정대 휘하에 둘 수 있을까.

    에어리스는 고민이 되었다.

    “괜찮을 거야.”

    바람이 불어오자 유진하의 머리카락이 살짝 흔들렸다.

    차분한 얼굴로 먼 곳을 바라볼 뿐.

    유진하는 그저 바위에 앉은 채로 가만히 있었다.

    “원체 배신도 하고 자기 잇속만 챙기는 녀석들이긴 해. 당연히 서로 믿을 부분은 없어.”

    “그러면…….”

    “오히려 그렇기에 제어하기가 편한 부분이 있어.”

    유진하는 자신만만했다.

    무려 세 명의 숙적을 휘하에 두고서 부려먹을 방법을 준비했다.

    “감옥에서 풀어놓은 맹수들이잖아. 내가 채찍을 가지고 조련할 생각이야.”

    팀마다 부여되는 협력 체계는 달라야 했다.

    에이스, 괴도, 조커 세 사람과 함께하면서 일명 악인들의 원정대를 자청했다.

    리더 유진하는 이 조합으로 팀을 구성했고 다른 멤버들과 다르게 대우할 생각이었다.

    그들에게 다른 미션을 주었다.

    “악인들의 원정대는 화합이 아니라 경쟁으로 묶어놓겠어.”

    유진하는 새로운 원정대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다루기 시작했다.

    그들은 전투의 전문가이자 맹수 같은 존재들이었다.

    맹수들은 영역 싸움을 벌이는 법이다.

    치열한 생존 경쟁의 미션을 주면 그들은 서로를 물고 뜯을 터였다.

    * * *

    카아악!

    몬스터의 비명이 터널에 메아리처럼 퍼졌다.

    단검에는 핏빛이 서렸다.

    몬스터의 목에서 피의 물결이 솟아올라 백가면에 튀었다.

    광대 조커의 문양이 그려진 가면에는 붉은 피가 살짝 묻었다.

    “더 있나?”

    조커는 쌍단검을 양손에 쥐고 몬스터를 전부 베어버렸다.

    그가 지나간 터널은 죽음의 흔적만이 무수히 남았다.

    갈기갈기 찢긴 몬스터가 수없이 쓰러져 있었다.

    이곳은 던전.

    조커는 괴물의 시체와 피범벅으로 가득한 통로를 유유히 지나갔다.

    “…순조롭네.”

    백가면을 쓴 조커는 특이한 경력의 소유자였다.

    한때는 정부 요원 E였고 동시에 알카트로스의 조커로 이중간첩을 하다가, 지금은 아사신 암살단의 일원이 되었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집단에는 모두 참가해 본 유일무이의 인간이었다.

    “내가 가장 먼저 공간의 주인을 제압하도록 하지.”

    유진하가 준 미션은 경쟁이었다.

    가장 먼저 공간의 주인을 제압한 사람에게 해방을 주겠다.

    일종의 게임이었다.

    “유진하, 아주 재밌는 녀석이야.”

    조커는 가면 속에서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저번에 에어리스와의 승부에서 패배한 후로 붙잡혔다.

    정부가 새로 만든 철통 보안의 감옥에 갇혀 있을 적에 유진하가 찾아왔다.

    “용건은?”

    “협력이죠.”

    유진하의 원정대에 합류해서 공략전을 함께하라는 제안이었다.

    임무를 완수하면 감옥에서 해방이라는 꽤 깔끔한 협상안을 받았다.

    “후후, 공짜는 아니라는 점이 더 매력이지만…….”

    조커는 던전을 걸어가면서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공략전에 합류한 지금은 물론 여기서 유진하와 에어리스를 상대할 수도 있었다.

    목숨을 걸고 싸울 수도 있었다.

    그런데…….

    원정대에는 조커의 숙적도 있었다.

    “그자들과 한 팀이 되다니 정말 재밌어졌어.”

    알카트로스의 리더 에이스와 괴도 알파도 원정대에 합류했다.

    조커는 알카트로스를 배신했으니 당연히 에이스와는 숙적이었다.

    여왕 암살 미수 사건으로 엮인 괴도단과도 악연 사이였다.

    “영리한 녀석. 맹수들끼리 서로 경쟁하게 만들었어.”

    저 둘이 같이 있으니 유진하와 에어리스를 상대할 틈이 없었다.

    악연과 악연이 같은 팀에서 서로를 견제했다.

    누가 뒤통수칠지 모르니 먼저 행동하지 못하게 되었다.

    유진하는 견제를 기반으로 협력하는 팀을 구성했다.

    “정말 특이한 팀이야. 재미있어.”

    만약 조커가 유진하를 노린다면 괴도와 에이스가 얌전히 지켜보지 않는다.

    배신에는 배신으로 맞선다.

    틈을 봐서 조커의 뒤를 노릴 수 있었다.

    “유진하의 절묘한 전략이군.”

    숙적 관계로 맺어진 팀.

    서로 간의 원한 관계 때문에 미묘한 세력 균형을 이루었다.

    캬아아악!

    무수한 괴물들이 복도를 가득 채우며 달려들었다.

    하나같이 커다란 발톱을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숫자가 많아.”

    조커의 눈빛이 붉게 변했다.

    손등에 새긴 쌍검의 문양에서 붉은빛이 발현됐다.

    순간 회피력이 신속의 속도로 발전한 지금은 무엇이 덤비든 자신 있었다.

    터널을 가득 채운 몬스터들의 갈퀴는 산들바람 수준에 불과했다.

    완전 회피.

    회피술의 조커가 몬스터의 공격을 전부 회피한 후에 반격했다.

    붉은빛을 머금은 쌍단검이 모조리 괴물을 베어버렸다.

    촤아악!

    괴물들은 굉음을 내지르며 전부 나자빠졌다.

    괴물의 피가 튀어 조커의 검은 양복을 붉게 물들었다.

    “후후.”

    조커는 온몸에 튄 괴물의 피를 팔꿈치로 스윽 닦아내며 여유를 부렸다.

    피 묻은 단검도 팔꿈치 사이에 껴서 슥슥 닦았다.

    깨끗해진 단검의 날이 하얗게 번뜩였다.

    “과연 조커라는 겁니까?”

    멀리서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눈을 가린 하얀 가면과 펄럭이는 검은 망토.

    반듯한 턱시도 양복과 높이가 있는 실크 햇 모자를 쓴 자였다.

    괴도 알파가 뒤에 나타나서 가볍게 인사했다.

    “괴도인가?”

    “괴도 알파라고 하죠.”

    조커와 알파가 말을 나눴다.

    아사신의 조커와 괴도단의 알파는 근본적으로 서로 다른 조직이었다.

    여왕 사건에서 부딪친 적도 있어서 악연도 남아 있던 터라 원정대에 같이 있어도 견제하는 사이였다.

    “대단한 실력입니다. 단검으로 몬스터를 제거했네요.”

    괴도는 손을 대어 바닥에 쓰러진 몬스터의 상처를 살펴봤다.

    단도의 자국이 깔끔하게 괴물의 급소를 베어버렸다.

    “피 냄새가 꽤 지독하군요.”

    괴도는 자리에서 일어나 손을 툭툭 털었다.

    조커는 괴물 무리를 전부 베어버리느라 온몸이 피로 물든 상태였다.

    괴도의 말속에 숨은 비아냥을 못 알아들을 조커가 아니었다.

    “그쪽은 싸우지 않아서 깔끔하네. 양복도 멋지고.”

    “저는 몬스터 무리를 상대하기 싫어서 지나쳐 갔습니다. 조커, 당신 같은 전투력과 비교해서 부족하고요.”

    괴도는 살짝 웃으면서 망토를 휘날리며 몸을 돌렸다.

    조커와 괴도.

    두 사람 사이에는 차가운 기운이 흘렀다.

    “공간의 주인을 노리라는 미션을 먼저 할 생각인가?”

    “유진하의 제안 말이군요.”

    조커, 괴도, 에이스.

    유진하는 세 사람에게 같은 과제를 내줬다.

    - 공략전에서 가장 많이 공간의 주인을 제압한 사람이 우승한다.

    - 우승자는 원하는 조건을 이룬다.

    게임이었다.

    유진하는 희대의 범죄자들이 가진 속성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괴도, 에이스, 조커는 서로가 가장 뛰어나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런 그들끼리 경쟁을 붙인다면?

    심지어 서로 악연 사이였다.

    ‘맹수끼리 다투게 만들어라.’

    유진하는 그들을 이렇게 다루었다.

    “네가 나보다 공간의 주인을 먼저 잡을 거라고 여기는 건가?”

    조커는 가만히 서서 괴도를 경계했다.

    괴도 역시 미소를 지으면서도 조커의 행동에 집중했다.

    “물론입니다. 괴도의 이름을 걸고서는 원하는 건 다 훔쳤죠.”

    괴도는 손에 검은 명함을 꺼내더니 조커에게 툭 던졌다.

    사인이 담긴 도전장이었다.

    조커는 괴도의 도전장을 받자 가면 속에서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후후, 재밌네.”

    “그럼 다음에 보겠습니다.”

    괴도는 망토를 휘날리며 먼저 나아갔다.

    녀석이 사라지는 모습을 보면서 조커는 마음속으로 흥미와 즐거움을 만끽했다.

    “게임이라…….”

    조커는 게임 자체를 즐겼다.

    어떤 조직에서도 만족하지 못하고 혼자서 즐기듯이 살았다.

    구속받지 않는 존재였다.

    조커는 자신의 전투 의지에 따라 즐기며 행동하는 자였다.

    지금 유진하가 만든 게임은 그런 면에서 묘하게 경쟁심을 자극해서 흥미로웠다.

    에이스, 괴도와의 경쟁은 매력이 넘치는 게임이었다.

    “내가 이기면 되는 거지.”

    상황이 만족스러운지 조커는 휘파람까지 흥얼거리면서 걸어갔다.

    온몸에 묻은 피를 가볍게 닦아내며 게임에서 이기기 위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던전은 악인 세 명이 치열한 각축전을 벌여나갔다.

    “조커는 알겠는데 에이스는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군요.”

    괴도 알파 역시 공략전에 진지하게 임하고 있었다.

    여왕 암살 미수 사건에서 괴도단의 파트너인 베타가 잡혀버렸다.

    이 게임에서 우승해야 그녀를 감옥에서 빼낼 수 있었다.

    “세계 제일의 도둑이라고 했는데 감옥에 갇힌 파트너의 위치조차 모르고 있다니……. 한심하군요.”

    마스터는 새로운 감옥을 준비했다.

    외부와 완전 차단은 물론 혹시나 보안에 빈틈이 있는지 검토해 완벽한 감옥을 만들어 냈다.

    “유진하가 도와줬겠군요. 괴도라 자청하는 내가 훔쳐가지 못하도록 말입니다.”

    세계 제일의 도둑이 훔치지 못하도록 꽁꽁 숨겨 놨다.

    유진하는 그런 녀석이었다.

    괴도는 유진하의 게임에서 이겨서 파트너 베타를 되찾아야 했다.

    “흐음.”

    괴도 알파는 던전의 천장에 있는 비상구를 찾아냈다.

    원래 눈썰미가 뛰어나고 귀중품의 값어치를 단숨에 파악하는 관찰력도 겸비했다.

    곳곳에 숨겨진 비상 통로는 괴도의 시야에 처음부터 훤히 보였다.

    “조커는 정면 돌파이고. 그럼 알카트로스의 에이스가 문제인데?”

    귀신처럼 날뛰는 조커는 방금 만났다.

    정작 알카트로스의 에이스는 어디에 있는지 행방을 찾지 못했다.

    에이스는 범죄조직을 주도면밀하게 지휘해서 완전 범죄를 추구했다.

    완벽한 계획과 과감한 실행력.

    에이스는 세계 최대의 범죄 조직을 이끈 리더였다.

    “어디에 있을까.”

    던전 안을 탐색하던 괴도는 공간의 주인이 어디에 있는지 수색했다.

    그 즈음.

    에이스는 던전에 있지 않았다.

    마치 전체 고원을 살피려는 듯이 여유롭게 던전을 탐색하고 있었다.

    “굳이 던전에 들어가지 않아도 공간의 주인을 찾으면 된다.”

    에이스는 자신의 능력을 활용했다.

    손에는 자유자재로 형태가 변하는 변형펜이 있었다.

    다른 손에는 종이 한 장을 쥐었다.

    -공간 법칙 카드.

    종이에 지시 사항을 적으면 일정 범위 내에서 효과가 이뤄진다.

    “던전의 구조를 파악한다.”

    이번에 적은 글귀였다.

    덕분에 굳이 던전에 들어가지 않고도 구조를 쉽게 파악할 수 있었다.

    “저기다.”

    던전은 복잡한 미로였으나 에이스는 종이의 능력으로 쉽게 구조를 파악했다.

    공간의 주인이 있는 방도 단번에 찾아냈다.

    “내가 원하는 건 알카트로스 멤버의 석방…….”

    알카트로스의 리더 에이스는 범죄 조직임에도 멤버들 간의 신뢰를 중시했다.

    감옥에 갇힌 그들을 구하려면 반드시 유진하의 게임에서 우승해 빼내는 방법뿐이었다.

    “이 게임에 어울려 주지.”

    배신자 조커에 대한 복수의 감정은 남아 있었다.

    당장은 참고 훗날을 도모할 작정이었다.

    이 게임에서의 승리가 우선이었다.

    에이스, 조커, 괴도.

    이들의 삼파전은 결국 유진하의 손아귀 안에서 벌어졌다.

    멀리 떨어진 고원에서 유진하가 한껏 여유롭게 하늘을 바라볼 만했다.

    “누가 이기려나?”

    악인들끼리 벌이는 승부는 즐거운 구경거리였다.

    편안한 마음의 유진하는 경치를 구경하면서 휴식을 취했다.

    에어리스는 어색한 웃음과 함께 식은땀을 흘렸다.

    “진하, 정말 이래도 될까요?”

    “이러려고 녀석들을 데려온 거야.”

    이제부터 한 달의 시간이 남았다.

    악인들의 원정대는 무수한 공략전을 클리어할 예정이었다.

    에이스, 조커, 괴도 알파.

    이 셋이서 서로 경쟁하며 알아서 던전을 클리어하게 놔두는 편이 가장 편했다.

    “저들 실력은 최정상급이니까. 웬만한 곳은 충분히 압도할 거야.”

    M은 세 명의 악인들에 대해서 능력치를 분석했다.

    유진하도 그 보고서를 받아 평가를 본 적이 있었다.

    인성은 별개로 이들의 능력치는 높게 평가받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