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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을 활용하는 1000가지 방법-100화 (100/229)
  • 100화 센트럴 파크 광장 (1)

    하늘이 맑았다.

    거리는 바쁘게 오가는 사람들로 붐볐고 공원에는 싱싱한 풀잎이 휘날렸다.

    이곳은 뉴욕의 센트럴 파크 광장이었다.

    대낮이면 운동하며 산책하고 책을 읽는 사람들로 가득할 시간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무도 없었다.

    조용한 공원에서 한 사람이 손을 들었다.

    “준비는 다 된 거죠?”

    유진하가 빛나는 햇살 아래에서 모두에게 물어봤다.

    주변에는 검은 양복을 입은 요원들이 가득했다.

    M이 먼저 대답했다.

    “사람들은 전부 대피시켰다.”

    세계의 중심지였던 뉴욕은 마치 도시의 기능이 끝난 듯이 고요했다.

    유령 도시처럼 사람들의 자취가 모두 사라졌다.

    붉은 머리의 J도 선글라스를 낀 채로 하늘을 바라봤다.

    “마스터가 얘기해 준 지점이 여기잖아. 녀석들이 오면 마중이라도 나와야겠어.”

    “그래야죠.”

    유진하는 하늘을 보다가 이내 고개를 돌려 모두를 돌아봤다.

    이곳에는 정예 요원들과 용병들이 집결했다.

    간부 요원 C도 있었다.

    금발의 미남인 그는 패러사이트에게 지배당한 후에 회복 과정을 거쳤다가 지금은 복귀했다.

    “지휘권은 너에게 있어. 그건 마스터의 뜻이기도 하고 간부 요원들도 전부 동의했지.”

    쾌도의 검술을 가진 D, 근육질의 G도 같은 생각이었다.

    마스터가 임명한 리더 자리에 유진하가 적격이라고 여겼다.

    유진하의 최근 업적은 압도적인 수준이었다.

    패러사이트 기생충 소멸.

    알카트로스 소탕.

    괴도단 제압.

    간부 요원들이 지금까지 해내지 못한 과업들을 전부 이뤄냈다.

    M이 작성한 보고서는 다음과 같았다.

    - 유진하 능력치

    지력: U

    전투력: SSS → U

    민첩: S → U

    정신력: SS

    체력: C

    전체적으로 큰 상향이 이뤄졌다.

    특히 빛의 카드를 내재화한 후에 전투력과 민첩이 급성장했는데 얼티밋 등급 이상도 가능했다.

    ‘장점이 곧 단점이지.’

    M은 빛의 카드의 장단점을 정확하게 판단했다.

    빛이 없는 어둠에서는 그 위력이 확연히 반감되어 전투력과 민첩성이 크게 떨어진다.

    체력적인 부분도 부족했지만 유진하의 발전 가능성을 매우 높게 평가했다.

    “진하, 준비는 됐어요.”

    에어리스가 유진하의 바로 옆에 있었다.

    대검을 등에 메고 건틀릿 장갑과 목걸이까지 완전한 장비 상태로 참가했다.

    금발의 순진한 외모인데도 전투에서 발현되는 괴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실력자였다.

    에어리스 능력은 다음과 같았다.

    - 에어리스 능력치

    지력: C

    전투력: U

    민첩: S → SS

    정신력: SSS

    체력: SS → SSS

    에어리스의 강점은 불굴의 정신력에서 나오는 힘이었다.

    순수하고 여린 외모 속에서도 위기 상황마다 강인한 저력을 발휘했다.

    에어리스 역시 한계를 넘어서는 가능성이 있었다.

    “나도 끼어볼까.”

    이소민이 커피 한 잔을 마시면서 나타났다.

    물리 대미지 면역 갑주를 착용하고 사바톤 부츠를 신은 채로 걸어왔다.

    완전무장 상태였다.

    M은 이소민의 능력도 확인했다.

    - 이소민 능력치 (장비 착용시)

    지력: B

    전투력: SS

    민첩: S → SS

    정신력: U

    체력: C

    전체적으로 급성장한 능력치였다.

    얼마 전까지 초보였던 모습을 생각하면 장족의 발전이었다.

    각종 장비를 착용하면서 강해지는 중인데 꾸준한 실력 향상이 눈에 띄었다.

    제 몫을 충분히 해낼 실력자였다.

    “마스터가 오늘이라고 했다.”

    M은 하늘을 바라봤다.

    선글라스 덕분에 빛이 시야를 가리지 않아 똑바로 태양을 볼 수 있었다.

    푸른 하늘 속에 이곳의 평온은 곧 사라질 예정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전쟁터가 될 수도 있었다.

    차원문이 열리면 A등급의 공간에서 쳐들어온다.

    “재앙일까? 아니면 절망일까?”

    붉은 머리를 휘날리며 J가 한마디를 내뱉었다.

    태도(太刀)의 검을 든 D도 검은 생머리를 손가락으로 가다듬으며 마음을 다잡고 있었다.

    절체절명의 방어전이 눈앞이었다.

    “제이슨, 그쪽은요?”

    유진하가 용병팀의 대장을 호출했다.

    제이슨은 쌍도끼를 등에 메고 이번 방어전에 참여했다.

    그는 최고 수준의 용병팀을 가진 사람이었고 예전 탑의 시련에서도 함께한 적이 있었다.

    “전원 준비 완료다. 유진하, 네 명령만 있으면 바로 따를 거야.”

    제이슨 역시 유진하를 높게 평가하는 사람이었다.

    탑의 시련에서 보여줬던 유진하의 지력과 결단력을 직접 본 덕분에 그 후로 계속 신뢰했다.

    “후우.”

    유진하는 자신의 두 팔을 살짝 감싸듯이 만졌다.

    처음으로 떨리는 감각이 느껴졌다.

    이번에 쳐들어오는 적은 지금까지의 공략전과 방어전에서 만난 상대들과는 격이 달랐다.

    이전에는 소규모 전투에 가까웠으나 이번에는 전쟁에 비유할 만했다.

    “공간과 공간이 서로의 생존을 걸고 사력을 다해 싸우는 사투…….”

    패배한 쪽은 멸망한다.

    공간끼리 벌어지는 ‘공간전’이었다.

    “A등급의 공간이 열린다면…….”

    어깨를 짓누르는 부담감과 사명감이 강하게 느껴졌다.

    질 수 없는 싸움이었다.

    세계 멸망의 순간이 오더라도 마지막까지 맞서 싸울 각오를 품었다.

    “저기에 열려요…….”

    에어리스가 문득 어떤 기운을 느끼고 하늘을 올려다봤다.

    평온했던 하늘에는 마치 정전기처럼 붉은빛의 번개가 발동하기 시작했다.

    콰지직.

    하늘 곳곳에서 번개가 지직거리는 광경이 차츰 늘어났다.

    바람이 스산해지고 폭풍처럼 차가운 기운이 느껴졌다.

    모두가 곧 다가올 위험을 감지하기 시작했다.

    “시작됐어.”

    유진하도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조용하던 하늘은 차츰 소용돌이처럼 일그러지더니 원형의 공간이 텅 빈 곳처럼 나타났다.

    붉은빛의 번개는 원형의 띠를 이루듯이 경계선을 그려갔다.

    “마치 마법진이 열리는 거 같아. 종말의 날처럼…….”

    항상 두려움이 없었던 이소민조차 마음 깊이 떨림이 느껴졌는지 자기도 모르게 한마디를 내뱉었다.

    경계선을 그은 번개가 용암처럼 꿈틀거리며 선을 이어갔다.

    이어지는 공간은 차츰 원형의 차원문으로 만들어졌다.

    “차원문이 열린다.”

    평소에 보던 차원문과는 형태가 달랐다.

    기존에는 정사각형이었는데 이번에는 원형이었다.

    마치 살아서 움직이듯이 원형의 차원문은 비틀리며 서서히 열렸다.

    “다들 준비하세요.”

    요원들과 용병들은 각자 자신 있는 무기와 장비를 꺼냈다.

    저 문 너머 A등급의 공간에서 이곳에 보내는 침입자들과 싸워야 했다.

    침묵 속에서 차원 너머의 존재들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온다.”

    차원문 저편에서 무수한 그림자가 나타났다.

    매서운 안광을 가진 괴물들이 아우성을 치듯이 몰려왔다.

    일반적인 몬스터가 아니었다.

    불길한 오오라를 머금은 괴수들은 마치 지옥의 사자처럼 세상을 모조리 불태울 기세로 달려들었다.

    “너무 많아!”

    이소민이 소리쳤다.

    차원문 너머에서도 얼핏 보이는 괴물들의 수는 상상을 초월하는 규모였다.

    적어도 천 마리가 넘는 몬스터들이 이전에 상대한 적이 없는 규모로 덤벼들었다.

    방어전의 멤버는 요원들과 용병을 다 합쳐 봐야 300명 남짓이라 전력 차이가 여실했다.

    “저게 다 넘어왔다가는 전멸당하겠군요.”

    유진하는 방어전의 목표를 명확히 설정했다.

    우리 공간을 무사히 지킨다.

    최우선 목적이었다.

    “방벽을 설치해서 차원문을 봉쇄해야 해요.”

    차원문이 연결된 상태라면 무수한 괴물들이 쳐들어오게 된다.

    침입하는 적들의 숫자를 최소로 줄여야 했다.

    마스터가 가진 성배의 힘이 있다면 차원문의 입구를 막아낼 수 있었다.

    마스터의 몫이었다.

    “마스터, 지금이에요.”

    고층 빌딩의 옥상에서 대기하던 마스터는 귓가의 이어폰으로 유진하의 신호를 받았다.

    저 괴물들이 모두 지상에 내려오면 세상은 멸망한다.

    마스터 역시 이번 전투에서는 본인이 직접 나서려고 각오했다.

    “내가 막아볼게.”

    금빛의 성배에는 어느새 물이 흘러넘치듯이 채워졌다.

    성배의 물결은 무한에 가까운 성수의 힘을 발휘한다.

    그 힘으로 차원문이 열리는 곳에 ‘성수의 방벽’을 만들어 괴물들의 침입 자체를 막는 작전이었다.

    “하압!”

    마스터는 옥상에서 훌쩍 뛰었다.

    서서히 떠오르는 몸을 느끼며 성배를 들고 하늘 높이 나아갔다.

    “저기.”

    목표는 붉은 번개를 머금고 열려가는 차원문이었다.

    두려움이 없다면 거짓일 거였다.

    마스터 역시 이 싸움에서 자신은 물론 모두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서 나섰다.

    가슴 속에서 꺼낸 용기였다.

    “성수의 방벽.”

    수많은 물길이 원형의 차원문을 휘어 감았다.

    마스터가 혼자 발휘하는 성배의 물결이 차원문을 막아내고 있었다.

    봉인과도 같은 힘이었다.

    격렬한 충격파가 터졌다.

    물결이 만들어낸 방벽은 이빨과 적의를 드러내는 침략자들을 모조리 막아냈다.

    “후아.”

    마스터는 방벽을 펼쳐서 막아내느라 무서운 괴물들을 눈앞에서 모조리 마주해야 했다.

    성수의 벽 하나 너머에서 보이는 그들이 마스터를 위협했다.

    붉은 눈과 위압적인 발톱.

    몬스터의 광기에 두려운 마음이 들었으나 버텨야 했다.

    “마스터는 괜찮을 거예요.”

    유진하는 차분하게 생각을 정리했다.

    작전은 가까스로 진행됐다.

    “시간이 조금 더 흐르면 차원문을 다시 닫을 수 있어요. 봉인하는 거예요.”

    하늘 높은 곳에서 성수의 방벽과 차원문 너머의 괴물들이 힘겨루기를 하던 중이었다.

    차원문에서 번개 하나가 옆으로 빠지는 이상 현상이 나타났다.

    “진하, 뭔가 이상해요.”

    가장 먼저 발견한 사람은 에어리스였다.

    유진하도 그제야 차원문에서 삐져나오는 외줄기 번개를 발견했다.

    “틈새가 있어!”

    격렬한 충격과 함께 공간이 벌어지는 빈틈이 발생했다.

    서둘러 막아야 했다.

    “빛으로…….”

    유진하는 온몸의 광활한 빛을 머금어 쏜살같이 하늘로 올라갔다.

    하지만 한발 늦은 뒤였다.

    A등급의 공간에서 몬스터 하나가 틈새에서 빠져나왔다.

    ‘늦었다.’

    유진하가 틈새를 빛으로 막아내는 동시에 괴물 하나가 지면으로 내려왔다.

    뱀의 여덟 머리를 가진 네 발 달린 강철의 몬스터였다.

    지상에 착지하자 막대한 충격파가 퍼져 나왔다.

    쿠웅.

    자욱한 먼지와 부서지는 파편이 흩어졌다.

    부서지는 광경 속에서 몬스터의 안광은 번뜩였고 불길한 기운이 안개처럼 자리 잡았다.

    압도적인 괴수가 적으로 나타났다.

    “모두 전투태세다.”

    제이슨이 쌍도끼를 양손에 쥐더니 휘하의 용병팀에게 소리쳤다.

    용병팀 전원은 곧바로 자세를 잡았다.

    “겨냥해라.”

    간부 C도 흑도(黑刀)의 검을 꺼내어 앞을 겨누었다.

    요원들 역시 진형을 갖추어서 몬스터에 맞서려고 준비했다.

    몬스터의 양옆에는 용병팀과 요원팀이 둘러싸듯이 포위했다.

    “제가 나서겠어요.”

    그들보다 빠르게 먼저 행동한 사람이 있었다.

    에어리스가 대검을 꺼내어 정면으로 달려들었다.

    “하아압!”

    8개의 머리를 가진 몬스터는 모든 방향을 바라봤다.

    몸체도 상가 건물 크기만큼 커다란 크기라서 괴물이 내뿜는 위압감을 막대하게 받았다.

    ‘첫 일격으로 승부를 보겠어.’

    에어리스는 두려움을 떨쳐내고 돌파를 시도했다.

    빠른 발놀림으로 매섭게 파고들어 대검을 힘차게 휘둘렀다.

    카앙!

    날카로운 파열음이 들렸다.

    최대의 힘으로 내리친 에어리스의 대검은 몬스터의 몸체에 쉽게 막혔다.

    “아…….”

    믿을 수 없는 충격이었다.

    몬스터의 눈동자에는 감정이 담기지 않았다.

    에어리스를 적이라고 느끼지도 않았는지 미미하게 깔봤다.

    퍼억!

    괴물의 꼬리가 움직여서 에어리스를 쳐냈다.

    대검으로 방어한 에어리스는 꼬리의 위력에 밀려 저 멀리 공원 너머의 건물까지 날아가 버렸다.

    쿠구궁!

    건물에 맞부딪쳐서 엉망진창이 되어 수십 차례 나동그라졌다.

    “아악…….”

    에어리스는 고통이 섞인 신음을 흘려내며 한동안 일어나지 못했다.

    괴물은 8개의 머리를 움직이더니 다음 먹이를 살펴봤다.

    요원들과 용병들.

    그리고 이소민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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