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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을 활용하는 1000가지 방법-95화 (95/229)
  • 95화 난입자(1)

    어둠 속의 한 줄기 빛이었다.

    섬광처럼 나아간 유진하는 괴도에게 닿았다.

    번개와 빛의 연계.

    단 한 번의 일격이 어둠을 가르고 지나갔다.

    “크억!”

    괴도는 완전히 막지 못했다.

    유진하의 기술은 그만큼 위력적이었다.

    검은 방을 가득 채웠던 어둠은 어느새 대부분이 사라졌다.

    ‘해냈다.’

    유진하는 일격을 날린 후에 자리에 멈췄다.

    빛은 여전히 몸에 남아 있었다.

    끝이라는 생각으로 날린 힘이었고 괴도는 저 멀리 나동그라졌다.

    ‘이겼어. 그런데…….’

    불길한 기분이 들은 건 왜일까?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이상하게 맴돌았다.

    유진하는 쓰러진 괴도에게로 한 걸음 다가갔다.

    걸을 때마다 가슴은 요동쳤다.

    ‘이긴 걸까?’

    유진하는 머릿속으로 모든 계획을 되짚어봤다.

    대결의 흐름은 계산대로였다.

    지금은……?

    이겼다.

    아니, 이겼어야 한다.

    쓰러진 괴도는 눈을 가린 하얀 가면을 쓰고 있었다.

    검은 턱시도와 망토를 입은 도둑이 완전한 패배를 눈앞에 두고 있었다.

    “이 자는 대체?”

    유진하는 쓰러진 괴도를 내려다보면서 녀석의 정체에 관심이 생겼다.

    모든 것을 훔칠 수 있다는 괴도.

    출중한 두뇌를 가졌고 간부 요원들에 못지않은 실력까지 겸비했다.

    “굳이 범죄를 저지르고 유희를 즐길 이유는 없는데.”

    괴도단은 특이했다.

    귀중한 물건을 차지하기보다는 훔치는 행위 자체에 더 흥미를 느끼는 듯했다.

    그들은 특이하면서 특별했다.

    “정체가 뭘까?”

    문득 괴도의 얼굴이 궁금해졌다.

    서서히 가면을 향해 손을 뻗을 즈음.

    별안간 주변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이변이 발생했다.

    “뭐지?”

    격렬한 충격이 계속 전해졌다.

    지진이 일어난 듯이 제대로 서 있기 힘들 만큼 흔들렸다.

    “흐음.”

    괴도 알파는 그 진동으로 인해 정신을 번쩍 차리고 눈을 떴다.

    기절 상태에서 깨어나자마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어? 벌써 괜찮다고?”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닙니다.”

    거세게 흔들리는 검은 방이 심상치 않았다.

    괴도 알파는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누가 들어왔군요.”

    알파의 눈빛은 이내 냉정하게 변했다.

    지금은 비상 상황임을 깨달았다.

    “이곳은 완전히 차단된 곳입니다. 평범한 방법으로는 절대 들어올 수가 없죠.”

    “그럼 어떻게 된 거죠?”

    “거기까지는 모릅니다.”

    괴도 알파는 진동이 멈출 때까지 기다리더니 이윽고 중요한 사실을 밝혔다.

    “어떻게 들어왔냐가 지금 중요한 게 아닙니다.”

    “누가 들어왔나. 그거겠군요.”

    기하학 큐브는 완전히 차단된 방벽이었다.

    여기를 뚫고 들어온 자들이 있었다.

    물론 바깥에 있던 경찰이나 혹은 요원이 들어왔을 가능성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 중에서 큐브의 방벽을 뚫을 능력을 가진 사람은 이제껏 아무도 없었다.

    “화면을 보겠습니다.”

    괴도 알파는 바닥에 푸른 창을 모조리 띄웠다.

    백여 개가 넘는 화면이 전광판처럼 무수히 켜졌다.

    큐브의 모든 방이 나타났다.

    “같이 찾아보겠습니까?”

    “저도요?”

    “부탁드리겠습니다. 녀석의 정체를 빨리 알아내야 하니까요.”

    괴도는 정중하게 부탁했다.

    낯선 침입자는 목적이 불분명했고 위협적이었다.

    유진하 역시 그 정체불명의 자들이 반갑지 않아서 모든 화면을 쳐다봤다.

    “여기…….”

    열심히 살펴보다가 문득 한 곳에 시선을 고정했다.

    화면 하나에는 당당한 체구의 남자 둘과 가녀리지만 눈빛이 매서운 여자 하나가 잡혔다.

    침입자는 세 명이었다.

    “…그들이군요.”

    괴도는 입술을 살짝 악물었다.

    누군지 알았다는 듯이 가면 속의 눈동자가 일그러졌다.

    “누구죠?”

    “추측일 뿐이지만 가장 안 좋은 녀석들이 왔습니다.”

    괴도는 자신의 추리를 정리했다.

    계산이 빠르고 명석한 두뇌를 가진 데다 눈썰미마저 남달랐기에 저들의 정체를 금세 파악했다.

    “소거법으로 제거하도록 하겠습니다. 일단 저들은 요원들은 아닙니다.”

    “그러네요.”

    요원들은 검은 정장을 입는다.

    선글라스를 착용하는 사람도 있었다.

    침입자들은 일반적인 셔츠와 청바지를 입었고 독특하게도 전원이 코트를 입고 있었다.

    검은 코드였다.

    “나는 세계에서 중요한 실력자들의 정보는 알고 있습니다.”

    “그런가요?”

    괴도는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정보력에서는 어쩌면 정부 기관이 모르는 내용까지 안다는 듯이 자신감을 내비쳤다.

    “괴도라고 불리면서 일을 처리하려면 철저하게 준비해야 합니다. 경찰 정보는 물론 실력자들을 잘 알아야 체포를 피할 수 있겠죠.”

    괴도는 망토를 살짝 잡았다.

    방금 유진하가 날린 번개와 빛의 연계를 맞고서도 금세 멀쩡한 모습이었다.

    ‘기절했을 뿐이라는 건가?’

    검은 큐브의 방.

    자신이 만든 공간에서 어쩌면 괴도는 무적에 가까울 수 있었다.

    “저런 녀석들은 내 데이터에 없습니다. 그렇지만 내 큐브의 공간을 뚫고 들어올 정도면 대단한 실력자들이라는 것은 분명하죠.”

    “그렇겠네요.”

    “내 데이터에 없는 자들은 딱 하나입니다.”

    사실 그들의 정체는 유진하도 어느 정도 알아차렸다.

    일부러 괴도에게서 상황 설명을 듣고 싶어서 가만히 들은 거였다.

    “아사신… 말이죠?”

    “역시 알고 있었군요.”

    괴도는 싱긋 웃었다.

    유진하와 대결하면서 대단한 지략가라고 깨달은 터라 크게 놀랍지는 않았다.

    “하하.”

    괴도는 그동안 많은 상대와 대적한 덕분에 상대의 가치를 잘 파악했다.

    유진하에 대해서도 파악했다.

    지략가 위에 지략가.

    이런 별칭이 저절로 떠오를 만큼 대단한 수준이었다.

    “아사신이라면 세계 3대 조직 중 하나. 그 정도 되는 녀석들이 이번 일에 관여한 겁니다.”

    알카트로스, 괴도단과 더불어 세계 3대 조직 중 하나였다.

    세 조직은 서로 가치관이 달랐다.

    알카트로스는 마스터를 노리는 집단이었다.

    어떤 범죄든 완벽함을 추구했다.

    괴도단은 달랐다.

    괴이한 도둑이라는 별칭답게 기이한 훔치기를 자랑했다.

    “아사신은 암살 집단입니다.”

    괴도는 차가운 말투로 내뱉었다.

    암살자 아사신.

    밤의 그림자에 숨어 여태껏 정체가 알려지지 않은 자들이었다.

    “암살자가 여기에 온 이유는 뻔하겠군요.”

    괴도는 답을 알고 있었다.

    유진하도 마찬가지였다.

    이미 조커가 들어왔을 때부터 암살 집단의 목적은 같았다.

    “…여왕이야.”

    유진하는 불길한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아사신의 목적은 여왕 암살이었다.

    조커에 이어 살인 전문가 세 명이 더 침입했다.

    의뢰를 이루기 위해서 그들은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을 터였다.

    “…막아야겠네요.”

    유진하는 여왕 호위의 임무를 맡았다.

    최우선으로 엘리를 지켜야 했다.

    “저도 돕겠습니다.”

    괴도 알파는 바닥에 떨어진 모자를 주워서 툭툭 털었다.

    천장이 평평하고 높은 모자였다.

    괴도들은 근세풍의 복장을 좋아하는지 모자도 고풍스러운 스타일을 선호했다.

    양손으로 다시 모자를 정중하게 쓴 괴도가 공손한 자세로 가볍게 고개 숙여 인사했다.

    “일이 이렇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다시 한번 정중히 사과드리죠.”

    “아사신은 여왕을 암살해서 괴도단에게 죄를 덮어씌우려는 거예요.”

    “그렇겠죠. 아마 정해진 시간이 되서도 여왕을 암살했다는 신호가 오지 않으니까. 저들이 직접 이곳으로 침입했을 겁니다.”

    괴도는 모자챙을 잡고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괴도 대 아사신.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조직끼리 정면으로 대결하는 순간이 다가왔다.

    “기대되는군요.”

    괴도는 아사신의 난입에 흥미를 느끼는 듯했다.

    여왕을 지키는 입장으로 바뀌자 금세 순응하고 받아들였다.

    유진하는 국가 공인 탐정의 자격으로 이곳에 있었다.

    ‘목표는 여왕의 호위. 다음은 괴도 체포와 아사신 궤멸.’

    괴도단과 아사신 사이에서 유진하는 과감한 결단을 내렸다.

    “휴전은 어떤가요?”

    “임시로 전투 중지하자는 거군요.”

    유진하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방금까지 괴도와 치열하게 대결했으나 지금은 모든 것이 바뀌었다.

    암살자 아사신이 나타난 이상.

    괴도와의 대결은 무의미했고 전투를 계속하면 서로 자멸하는 길이 되었다.

    “괴도인 당신이 도와주면 해볼 만해요.”

    “흐음. 마음에 드는군요.”

    괴도는 한 걸음 슬쩍 물러났다.

    거절의 의사였다.

    “휴전은 합의하나 협력은 거부하겠습니다.”

    괴도는 검은 망토를 펄럭이면서 등을 돌렸다.

    그는 항상 자세가 자신감이 넘쳤다.

    고귀한 자세로 예의와 매너를 목숨처럼 지키는 도둑이었다.

    “여왕을 구하는 역할은 유진하, 당신에게 뺏기고 싶지 않습니다.”

    유진하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당신은 여왕을 납치한 도둑이잖아요.”

    “흐음. 그건 과거의 일입니다.”

    정곡을 찔렸는지 걸어가던 괴도의 발걸음이 잠시 멈췄다.

    그는 고개를 돌리고 가면 속에서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그것도 여왕께 직접 사과드리겠습니다. 멋지게 구해드린 다음에 용서를 빌죠.”

    “괴도한테 기사도가 있는 줄 몰랐네요.”

    “기사는 당신들입니다. 저는 괴도의 자존심이라고 해두죠.”

    유진하는 농담을 섞어서 괴도에게 말을 걸었다.

    괴도 역시 여왕에게 기사 작위를 받은 유진하를 떠올리며 유머로 답변했다.

    농담이 오고가는 동안 두 사람은 각자의 길을 가기 시작했다.

    “그럼 다음에 보겠습니다.”

    괴도는 검은 방의 문을 열고 나갔다.

    정말로 암살자 아사신들을 직접 상대할 작정이었다.

    “괴도가 여왕에게 먼저 갈 기회를 줄 수 없지.”

    유진하는 의지를 불태웠다.

    저 가면 속의 남자.

    정중한 척하면서도 살살 약 올리는 기색이 있었다.

    “머리가 비상한 도둑이니까 벌써 작전을 다 구상했겠지.”

    검은 망토와 하얀 가면을 쓴 괴도의 움직임이 한결 빨라졌다.

    녀석이 어떤 전략으로 나서기 전에 유진하 역시 서둘러야 했다.

    “다른 문으로 가야겠다.”

    괴도가 간 곳과 다른 방향을 선택했다.

    그러면서 유진하 역시 대응책을 구상했다.

    “일단 에어리스와 먼저 합류하는 편이 좋겠어.”

    * * *

    조커를 쓰러뜨린 후에 에어리스는 다음 방을 계속 넘어왔다.

    이번에 도착한 방도 역시나 낯선 곳이었다.

    “이번에는 대체 어딜까요?”

    에어리스는 당황한 듯이 사방을 둘러봤다.

    부우.

    뱃고동 소리가 들렸다.

    “유람선인가요?”

    큰 소리였으나 놀라지는 않았다.

    에어리스가 선 복도에는 사람들이 돌아다녔는데 전부 현대의 옷이 아니었다.

    근대의 고풍스러운 복장이었는데 커다랗고 동그란 치마를 입은 귀부인이 가득했다.

    “아, 혹시 여기가 어딘가요?”

    외국 사람이라 한국말은 통하지 않았다.

    다행히 에어리스는 영어를 배우던 중이었다.

    “익, 익스큐즈 미.”

    어색한 영어 발음으로 하나씩 물어봤다.

    양산을 든 귀부인은 에어리스를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휙 지나갔다.

    “아, 저기. 헬로우.”

    인사를 안 한 탓일까.

    계속 다른 귀부인에게 말을 거는데 그들은 모두 에어리스를 피했다.

    “왜 저를 피하는 걸까요?”

    사실 귀부인들은 에어리스의 등에 멘 대검을 보고 놀라서 피하고 있었다.

    물론 순진한 에어리스는 자신의 행동에 문제가 있는 것이라고 착각했다.

    자꾸 자책하며 고개를 떨구었다.

    “대체 여긴 어디인가요?”

    한참을 객실 복도에서 고민하던 중이었다.

    역시나 사람들은 현대보다는 조금 더 낡은 느낌의 옷을 차려입었다.

    “현대가 아니고… 근대시대 같은 곳인가요?”

    에어리스는 과거의 역사를 어렴풋이 아는 정도였다.

    그것도 티비에서 다큐멘터리로 몇 번 봤을 따름이라 깊은 지식은 아니었다.

    “과거의 역사라는 거네요.”

    고대 시대부터 현대까지.

    인간의 문명이 발전한 과정은 흥미로운 주제였다.

    덕분에 약간의 지식도 있었다.

    “그러니까 여기는 유람선이고…….”

    괴도단은 큐브 방마다 영화 속 장면을 깔아놓았다.

    이곳도 영화 장소가 확실했다.

    “그러니까 근대에…….”

    커다란 유람선과 귀부인의 사람들.

    바쁘게 오가는 신사들.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1912년이라는 대답을 받았다.

    지나가다 보니 어쩐지 이 배는 낯이 읶었다.

    왠지 곧 침몰할 듯한 기분이었다.

    “설마….”

    초호화 유람선이었다.

    역사 속에서 침몰했던 그 유명한 여객선이었다.

    “아! 알았다!”

    침몰하는 유람선에서 벌어지는 연인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에어리스는 유진하와 함께 마지막 장면을 보다가 눈시울이 붉어진 기억을 떠올렸다.

    그때 거실에서 펑펑 울고 휴지로 눈물을 연신 닦아냈다.

    “그 장면이었네요.”

    에어리스도 아는 내용이었다.

    그 순간.

    푸른빛의 문구가 나타나면서 시나리오를 안내했다.

    -시나리오 개시.

    이 방을 지나가려면 결말 그대로 이야기를 진행하십시오.

    에어리스는 정신이 번뜩 들었다.

    예전에 봤던 기억을 떠올리면 이 여객선은 침몰한다.

    “아, 영화대로라면 잠깐만요.”

    그제야 불길한 느낌을 받았다.

    영화가 진행된다면 에어리스 역시 침몰하는 배에 남는다는 소리였다.

    마침 저 멀리 빙하가 다가오고 있었다.

    그리고…….

    메시지가 하나 더 나타났다.

    -추가 시나리오.

    새로운 참가자가 들어왔습니다.

    상대를 제압하는 추가 시나리오까지 해결해야 이 방에서 나갈 수 있습니다.

    “아아! 문제가 더 늘어났어요!”

    에어리스는 비명을 지르다가 문득 불안감을 느꼈다.

    “진하? 엘리? 아니면 누가 온 건가요. 괴도?”

    에어리스는 아직 몰랐다.

    세 명의 암살자 아사신 중 한 사람이 이곳에 들어왔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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