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을 활용하는 1000가지 방법-94화 (94/229)
  • 94화 확률이 정한 승패

    엘리와 괴도 베타의 대결.

    에어리스와 조커의 대결.

    두 곳의 승부가 결정지어진 후로 이제는 마지막 방 하나만 남았다.

    기하학 큐브로 만들어낸 검은 방.

    유진하와 괴도 알파가 최후의 승부를 앞두고 있었다.

    “저는 기하학 큐브 내에서 많은 힘을 가지게 됩니다.”

    괴도의 손에서 발휘되는 기운이 뱀처럼 꿈틀거리더니 팔을 타고 올라가 온몸을 휘감았다.

    턱시도를 입은 괴도는 검은 오오라를 머금으며 손아귀에 힘을 주었다.

    “괴도…….”

    멀리서 지켜보던 유진하는 자신의 뺨에 칼날 같은 기운이 스치고 지나치는 기분을 느꼈다.

    차갑고 날카로운 기세였다.

    “…….”

    주르륵 뺨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착각인 줄 알았는데 실제로 화살처럼 기운이 스치고 지나갔다.

    괴도 알파는 아까보다 더한 기세를 끌어올리고 있었다.

    이전보다 적극적이었다.

    “상황이 바뀌었죠?”

    “뭐?”

    유진하는 뺨에서 흘러내린 피를 살짝 손가락으로 닦아냈다.

    이어서 정곡을 찌르는 말을 던지자 괴도의 눈빛이 미묘하게 흔들렸다.

    유진하는 그 눈동자가 흔들리는 광경을 놓치지 않았다.

    “다른 곳에서 승부가 끝났죠? 어때요?”

    “후후. 그럴까요.”

    아마 에어리스는 조커와 맞붙었을 터였다.

    조커가 난입했다는 사실은 유진하도 이미 알고 있었다.

    불청객에 가까웠는데 번거로운 변수로 여겼다.

    에어리스를 보낸 이유는 충분히 조커에 맞설 수 있는 실력자이기 때문이었다.

    “에어리스는 그렇고 다른 쪽도 마찬가지겠죠. 괴도 베타도 엘리에게 당했죠?”

    “굳이 숨길 생각은 없습니다. 인정하겠습니다.”

    괴도 알파는 순순히 토로했다.

    머리가 뛰어날 정도로 잘 돌아가는 터라 전략에 능통한 사람이었다.

    유진하를 상대로 어설픈 모략이나 속임수보다는 정통 두뇌전을 선택한 터였다.

    포커페이스조차 통하지 않는다.

    괴도는 유진하와의 승부에 진지하게 임하기로 했다.

    “빨리 당신을 쓰러뜨리고 다른 곳에 가겠습니다. 불만은 없겠죠?”

    “이쪽도 같은 생각이라서요.”

    유진하도 주먹을 쥐고 기운을 모으기 시작했다.

    장소는 검은 방이나 다행히 어둡지는 않았고 빛이 충분히 들어왔다.

    “빛의 힘.”

    내재화된 빛의 카드.

    패러사이트와의 대결에서 빛의 카드가 심장에 각인되었다.

    손등에 새겨진 태양의 문양이 서서히 빛나고 있었다.

    서서히 온몸에 빛을 빨아들여 차오르기 시작했다.

    프리즘처럼 찬란한 빛이 모여들었다.

    “빛입니까?”

    괴도 알파는 그 힘의 정체를 곧바로 깨달았다.

    저 모이는 오오라가 빛이라고 깨닫자마자 빠르게 머릿속에서 전략을 구상했다.

    빛의 장점과 단점.

    ‘빛의 총량은… 현재는 100만 루멘 정도에서 더 증가하고 있다.’

    괴도는 순식간에 유진하에게 모이는 빛의 양까지 파악했다.

    저 힘에 맞춰 자신의 능력에 비교해서 승산을 계산했다.

    ‘승률은 97%.’

    3%가 빠지지만 충분했다.

    괴도 알파는 여유를 되찾더니 검은 기운을 더 강하게 발휘했다.

    “서로 겨뤄 봐도 되겠습니다.”

    하얀 가면 속에서 괴도의 눈빛이 빛났다.

    유진하 역시 빛을 머금은 상태에서 살짝 내렸던 눈꺼풀을 천천히 들었다.

    빛의 오오라 대 어둠의 오오라.

    빛과 어둠.

    유진하와 괴도 알파는 격돌했다.

    완벽하게 대비되는 두 사람이 서로에게 달려들어 맞부딪쳤다.

    “큭!”

    빛줄기 속에서 움직이는 유진하에 맞서 괴도 알파는 어둠의 궤적으로 대응했다.

    어둠.

    괴도의 오오라는 검은 뱀처럼 휘어지며 특이하게 휘어졌다.

    정확한 능력을 알 수 없었다.

    괴도 알파가 단번에 빛의 능력을 파악했을 때와는 달랐다.

    “빛의 힘이라…….”

    상대의 능력을 안다면 대응법을 찾아낼 수 있었다.

    괴도 알파는 훨씬 유리하게 대결을 이어갈 요소를 갖추었다.

    “어둠과 빛은 서로 상성입니다.”

    빛이 있으면 어둠이 있다.

    서로 대립하는 힘이자 상성이었다.

    더 강한 쪽이 집어삼키게 된다.

    “빛의 첫 번째 약점…….”

    괴도 알파는 여유를 보였다.

    빛의 유진하를 앞에 두고 강한 어둠을 끌어올려 사방을 가득 채웠다.

    유진하는 빛의 속도로 나아갈 수 있으나 괴도 알파는 전혀 다른 관점으로 대응했다.

    “빛은 빠르나 어둠 속에서는 길을 잃는 법입니다.”

    괴도 알파는 안개처럼 깔아놓은 어둠 속에 자신의 몸을 숨겼다.

    “아…….”

    괴도는 감쪽같이 자취를 감췄다.

    빛의 힘으로 움직이는 유진하는 쾌속을 넘어 광속을 발휘했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적은 잡을 수 없었다.

    “아….”

    어둠 속에 한 줄기 빛이 되었다.

    무한에 가까운 우주를 헤매다가 외로이 남은 느낌이었다.

    사방이 공허했다.

    “괴도는……?”

    어디에도 녀석이 보이지 않았다.

    어둠 속에서 빛은 계속 맴돌고 있었다.

    “갇힌 건가?”

    유진하는 머뭇거렸다.

    사방이 막힌 어둠이 조여 왔다.

    유진하가 발휘하는 빛만이 마치 반딧불 하나처럼 희미하게 깜빡이고 있었다.

    “괴도 알파…….”

    괴도는 어둠의 장막 속에 자취를 감추고 지켜보고 있을 터였다.

    유진하의 몸에 감도는 빛은 점점 사라지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 빛은 외로웠다.

    시간이 흐를수록 힘이 빠지고 불리해진다.

    “두 번째 단점. 빛이 없는 곳에서 힘이 약해진다는 겁니다.”

    유진하도 아는 단점이었다.

    탑의 주인과 싸웠을 때도 같은 방식으로 공략한 기억이 있었다.

    빛은 강하다.

    하지만 어둠 속에서는 약하다.

    “후우.”

    작아지는 빛 속에서 유진하는 가만히 숨을 골랐다.

    괴도는 어딘가 숨어 있었다.

    모든 빛이 빠져나가는 틈을 기다리면 100% 괴도의 승리였다.

    ‘기다린다.’

    유진하는 말없이 기다렸다.

    가만히 서서 어둠 속에 있었다.

    빛은 서서히 줄어들었다.

    촛불에 녹아가는 양초처럼 사라져갔다.

    “…….”

    어둠과 빛.

    괴도 알파는 빛의 약점을 파악하고 대응했다.

    유진하는 대응책을 찾지 못했다.

    잠시 정적이 흘렀다.

    고요함만이 가득했다.

    ‘시간 싸움이라…….’

    유진하는 괴도가 오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물론 괴도 역시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이대로 빛이 다 줄어들기만 기다리면 승률은 100%였다.

    하지만 변수가 있었다.

    ‘그들이 오고 있습니다…….’

    에어리스와 엘리가 있었다.

    여기 검은 방에 있어도 괴도는 다른 방의 상황을 알 수 있었다.

    손바닥에 작은 화면창을 만들어서 쉽게 보았다.

    ‘에어리스와 여왕이 오고 있다.’

    조커를 쓰러뜨린 에어리스.

    괴도 베타를 제압한 엘리자베스.

    두 사람은 여러 방을 넘어가며 차츰 검은 방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여기를 알고 있군요.’

    검은 방의 정확한 위치를 알았다.

    ‘유진하가 알려줬군요.’

    검은 방에 오기 전에 작전 지시를 내렸다면 여기까지 오는 데 오래 걸릴 까닭이 없었다.

    아직 유진하를 제압하지 못했는데 두 사람이 온다?

    그들은 조커와 괴도 베타를 쓰러뜨린 실력자였다.

    3대1은 무리였다.

    ‘셋을 동시에 상대하면 승률이 60%까지 떨어진다.’

    계산이 금방 나왔다.

    3대1이 되면 패배할 확률이 무려 40%나 된다.

    ‘만약 유진하를 당장 쓰러뜨리고 둘만 상대한다면…….’

    머릿속에서 빠르게 계산기를 두드렸다.

    ‘유진하가 없어지고… 에어리스와 여왕을 동시에 상대한다면… 승률은 100%…….’

    괴도 알파는 팽팽 빠르게 돌아가는 머릿속에서 승률을 파악하고 다음 행동을 결정했다.

    계산에 착오는 없었다.

    최선의 상황이 명백해졌다.

    ‘혼자 97% 승률로 유진하를 이기고, 나머지 두 사람은 100% 확률로 잡으면 끝입니다.’

    97%와 100%.

    가장 적절한 선택이었다.

    ‘유진하를 먼저 이긴다.’

    괴도는 최선의 결정을 내렸다.

    승률 97%로 유진하를 먼저 잡으면 게임은 끝난다.

    에어리스와 여왕이 오기 전에 처리할 계획을 세웠다.

    잠시 후.

    괴도가 움직였다.

    어둠의 장막 속에 자취를 완전히 감추고 접근했다.

    유진하가 눈치채지 못하도록 뒤로 다가가기 시작했다.

    어둠에 은신하여 기습한다.

    맹수가 먹잇감의 목덜미를 물어뜯듯이 단숨에 끝낼 생각을 가졌다.

    그때였다.

    바스락.

    “아.”

    괴도는 바닥에서 뭔가를 밟았다.

    자세히 보니 카드였다.

    ‘번개의 카드?’

    바닥에 왜 카드가 깔렸지, 라는 생각을 하던 찰나에 머릿속을 스치는 불안감을 깨달았다.

    유진하가 깔아놓은 카드였다.

    “거기 있었나요?”

    천천히 고개를 돌린 유진하가 괴도를 바라봤다.

    괴도는 소름을 느꼈다.

    완벽하게 들켜 버렸다.

    자세히 보니 바닥은 물론 공중까지 전 방향에 카드가 잔뜩 있었다.

    위치 지정.

    유진하는 몰래 카드를 지뢰처럼 사방에 뿌려놓았다.

    괴도를 찾기 위해서였다.

    “…걸렸군요.”

    괴도는 작게 중얼거렸다.

    유진하는 차분하게 괴도를 쳐다봤다.

    “당신이 이길 승산… 97%로 계산했죠?”

    “뭐?”

    괴도는 속마음이 들키자 크게 놀랐다.

    포커페이스 표정이 다시 무너졌다.

    대체 어떻게?

    유진하는 괴도의 생각을 이미 읽고 있었던 듯이 대답했다.

    “97%를 믿는 사람은 3% 때문에 진다. 혹시 생각해 봤어요?”

    괴도는 아찔한 느낌을 받았다.

    승률의 함정이었다.

    97%면 반드시 될 거라는 판단은 크나큰 착각이었다.

    유진하는 그 점을 지적했다.

    “에어리스와 엘리. 두 사람이 여기에 올까 봐 당신이 먼저 움직였죠? 그걸 내가 유도했으리라고는 생각 못 했나 보네요.”

    괴도는 아차 싶었다.

    에어리스와 여왕이 이곳으로 오는 것도 유진하의 작전이라니.

    그의 계산 범위였다.

    “97% 확률도 내가 일부러 계산하도록……?”

    “당신은 머리가 비상한 도둑이니까요.”

    상대의 수준에 따라 맞춤 전략을 구사한다.

    유진하는 그런 면에서 능숙했다.

    힘이 강하다면 파괴력을 무력화시키는 작전을 구상한다.

    지력이 뛰어나면 전략을 봉쇄하는 방식으로 상대한다.

    사람의 스타일에 맞는 전략으로 맞선다.

    유진하의 전략은 그랬다.

    “당신처럼 똑똑한 사람은 자기 계산대로 되어야 움직이거든요.”

    유진하의 전략대로였다.

    어둠 속에 들어온 시작부터 지금의 시간 싸움까지 전부 계산된 작전이었다.

    97%라는 승률 자체가 유진하의 미끼였던 셈이었다.

    “당신은 나머지 3% 때문에 지는 겁니다.”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반격이 시작됐다.

    “라이트닝.”

    번개의 카드를 발동시키는 주문을 읊었다.

    펼쳐놓은 카드는 전부 번개였다.

    파지지직.

    번개가 사방에서 몰아쳤다.

    수많은 번개가 내리꽂혀서 괴도를 몰아붙였다.

    “크윽!”

    쏟아지는 번개 속에서 괴도는 일부는 피하고 나머지는 오오라로 막아냈다.

    괴도가 뿌려놓은 어둠의 영역이니 그렇다면 아직 승산이 있었다.

    75% 정도는 유리하다고 생각했다.

    “75%.”

    유진하가 같은 확률을 꺼냈다.

    또다시 속마음을 들킨 괴도는 표정이 일그러졌다.

    대체 저 녀석은 어떻게 다 아는 걸까?

    대단한 지력이었다.

    모든 걸 안다는 듯이 유진하는 서서히 이곳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파라락.

    유진하의 양손에 든 카드가 더 많이 나왔다.

    “그쪽 승산을 더 낮춰 볼까요?”

    흩뿌려지는 깃털처럼 카드들이 나부끼더니 일제히 자리를 잡았다.

    100장을 넘어서 200장이 되었다.

    300.

    400.

    마치 증식하듯이 늘어났다.

    500장의 번개 카드가 일제히 발동했다.

    밤을 순식간에 대낮으로 밝힐 만큼 막대한 낙뢰가 터져 나왔다.

    콰아아앙!

    번개와 함께 귀청이 나갈 듯한 굉음도 들렸다.

    그 번개의 위력에 괴도는 자신이 깔아놓은 어둠의 오오라가 전부 날아갔음을 깨달았다.

    “아!”

    유진하는 여전히 차분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지금 그쪽 승률은 30%. 맞죠?”

    대답할 여유도 없었다.

    계산된 승률은 뒤집혔다.

    그 순간.

    번개가 발생시킨 막대한 전류가 바닥을 흐르는 동안, 남은 빛은 한 곳으로 흡수되었다.

    모든 빛이 유진하에게 들어왔다.

    번개와 빛의 연계.

    자주 애용하는 기술였다.

    손등에 새겨진 태양의 문양이 하얀 빛을 뿜어냈다.

    유진하의 육체는 새하얀 빛으로 물들어갔다.

    “이제 알려드릴게요.”

    섬광의 일격이었다.

    유진하가 나아가는 빛은 정확히 괴도를 향했다.

    녀석의 상체에 주먹을 작렬시켰다.

    “당신의 승산은… 이제 제로가 되었습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