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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을 활용하는 1000가지 방법-93화 (93/229)
  • 93화 여왕과 괴도

    밤의 도시는 곳곳에서 화염과 공포가 벌어지고 있었다.

    불이 붙은 도로에는 부서진 자동차와 잔해가 가득했다.

    무너져 가는 건물.

    그 안에서는 강렬한 오오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에어리스 대 조커.

    “하아압!”

    에어리스는 기합을 내질렀다.

    두 사람은 서로의 무기를 놓친 상태였고 육탄전을 감행했다.

    검과 방패의 문양을 가진 에어리스.

    쌍단검의 문양을 가진 조커.

    두 사람은 문양의 힘을 머금고 서로에게 맹렬하게 돌격했다.

    에어리스는 주먹을 크게 휘둘렀고, 조커 역시 피하지 않고 받아쳤다.

    콰앙.

    두 사람의 주먹과 오오라가 맞부딪치자 굉음이 튀어나왔다.

    동시에 충격파가 퍼졌다.

    “격투술도 할 줄 아나?”

    조커는 가볍게 씩 웃었다.

    두 사람은 잠시 거리를 두고 떨어졌다가 이내 서로에게 돌격했다.

    치열하게 주먹을 교환하면서도 에어리스는 결코 물러서지 않았다.

    “하아압!”

    에어리스는 최선을 다했으나 조커의 기술은 차원이 달랐다.

    에어리스의 주먹을 가볍게 손으로 툭툭 쳐내면서 받아냈다.

    회피술의 달인, 조커는 근접전에서 더 강한 상대였다.

    “힘은 뛰어난데 너무 정직하게 들어와.”

    조커는 한 수 가르쳐 주려는 듯이 한 발을 앞으로 내디뎠다.

    단숨에 에어리스에게 파고들어 주먹을 날렸다.

    에어리스는 두 팔로 방어했으나 저 멀리 튕겨 나갔다.

    부서진 창문으로 넘어갔다가 도로에 나와서 겨우 몸을 추슬렀다.

    “검술은 뛰어날지라도 격투는 또 다른 분야지.”

    저벅저벅.

    멀리서 조커는 휘몰아치는 오오라를 발휘하며 걸어 나왔다.

    매서운 눈빛이 화살처럼 날아와 에어리스에게 꽂히는 기분이었다.

    “허억. 허억.”

    맨손의 격투.

    에어리스는 막강한 조커를 상대로 숨 쉴 틈도 없이 대결에 임했다.

    “물러설 생각은 없어요.”

    낯선 격투전에서도 에어리스는 포기하지 않았다.

    “이 싸움…….”

    결정적인 순간마다 앞을 막았던 수많은 상대와 맞서서도 쓰러지지 않았다.

    “당신을 넘어서겠어요.”

    에어리스의 몸에서 강한 투지가 흘러나왔다.

    상대는 조커.

    반드시 이기겠다는 일념으로 에어리스의 눈빛이 빛났다.

    * * *

    “여기는?”

    여왕 엘리는 낯선 장소에 있었다.

    드레스를 입고 사브르 검을 쥔 채로 주변을 돌아봤는데 무성한 숲에 홀로 있었다.

    이곳은 숲이었다.

    “여왕님이 직접 상대하다니 영광이네.”

    상대는 괴도단의 베타였다.

    검은 정장에 하이힐을 신은 베타는 육감적인 몸매와 자태를 자랑했다.

    반면에 순백의 드레스를 입은 여왕은 사브르 검을 들어 전투적인 기세를 발휘했다.

    “괴도라는 별명이 어느 정도의 가치를 가졌는지 직접 확인해 볼까요.”

    “나도 즐겁게 놀아야겠어.”

    베타는 눈을 가린 가면을 만지면서 여유롭게 웃었다.

    여왕 엘리 대 괴도 베타.

    사브르 검을 든 엘리에 맞서 베타는 하늘거리는 옷을 소환했다.

    보랏빛의 가운이었다.

    “내 새 옷이 어때?”

    비단옷의 가운을 걸친 베타는 온몸에서 흐릿한 안개를 퍼트렸다.

    평범한 안개는 아니었다.

    붉은빛의 기운이 주변에 퍼지기 시작했다.

    “붉은빛은 핏빛처럼 꺼림칙하긴 해. 위력은 확실해서 좋지만.”

    피의 안개는 서서히 붉은 빛의 괴물들로 변해갔다.

    무수히 많은 숫자로 늘어난 피의 마귀처럼 보였다.

    “큭!”

    엘리는 사브르 검을 들었다.

    달려드는 피의 마귀에 잡히면 위험했다.

    손에 든 사브르 검에서 푸른 물의 기운이 감돌았다.

    “엘리먼트.”

    물결의 기운이 엘리의 온몸에 감돌았다.

    물의 흐름을 타면 고속 이동이 가능해지는데, 몰려드는 피의 마귀들 사이를 회피하면서 하나하나 사브르 검을 정확하게 명중시켰다.

    “슬라이드.”

    엘리가 발휘하는 물결은 붉은 피에 닿자마자 분쇄하듯이 흩어져 버렸다.

    푸른 물에 닿자 핏빛의 안개는 정화가 되어 갔고 투명한 물로 바뀌었다.

    엘리의 반경에는 물보라가 휘몰아쳤다.

    “물의 여왕이네?”

    괴도 베타는 안개의 가운을 입은 채로 흥미롭게 지켜봤다.

    하늘하늘 움직이는 이 안개의 가운은 베타의 상징과도 같은 장비였다.

    -안개의 가운.

    일곱 종류의 안개를 발휘할 수 있다.

    “화려한 실력이 있었어. 내 안개가 질투를 느낄 만큼 강렬하다.”

    괴도 베타는 알 듯 모를 듯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가시가 숨겨진 듯이 날카로웠다.

    피의 안개에 이어 이번에는 초록빛 안개가 서서히 뿜어졌다.

    “확실히 제압하기 힘들어. 조금 방식을 바꿔볼까?”

    초록빛 안개는 근처의 풀과 나무에 스며들었다.

    안개의 침식이었다.

    평범했던 풀잎은 안개를 받자마자 갑자기 날카로운 이빨이 생겨났다.

    초록빛 안개는 지상의 풀을 마계의 넝쿨처럼 바꿀 수 있었다.

    사방은 숲이었고 이곳은 순식간에 마계의 넝쿨로 변해 버렸다.

    “마계의 넝쿨을 끌어냈어. 이건 쉽지 않을걸?”

    날카로운 가시의 넝쿨이 다가와 괴도 베타의 허리를 천천히 휘감았다.

    다른 넝쿨을 더 조종하여 하늘 높이 올라갔다.

    평온했던 숲은 어느새 거대한 적의로 뒤덮였다.

    마계의 정글처럼 변해 버렸다.

    “평범한 세계는 가끔 지루할 때가 있어.”

    괴도 베타는 괴물의 넝쿨과 함께 사방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밑에 있던 엘리의 생각은 달랐다.

    사브르 검에서 솟구치는 물결의 힘을 드레스에 휘감았다.

    “세상은 평온하기를 원해요. 당신은 평화를 흔들려는 거뿐이고요.”

    “마치 악당같이 취급하시네.”

    “악당이 아닌 괴도라서 다르다는 건가요?”

    엘리는 발밑에 폭포수처럼 치솟는 물결을 만들어서 하늘로 올라왔다.

    물결의 힘으로 올라온 엘리.

    날카로운 넝쿨과 올라온 베타.

    두 사람은 하늘에서 서로를 마주 봤다.

    아래 숲은 이빨을 드러낸 마계의 넝쿨이 뒤덮여 지옥이 되었다.

    “자, 조금은 더 재밌어졌지?”

    괴도 베타는 매끄러운 긴 다리를 드러내며 넝쿨 줄기에 걸터앉았다.

    한껏 즐기려는 듯이 손짓부터 살포시 움직이며 넝쿨을 자유자재로 조종했다.

    “징그럽지만 그래도 귀여운 구석이 있다니까…….”

    넝쿨은 마치 촉수처럼 빙글 꼬아가며 괴도 베타의 주변을 맴돌았다.

    어느새 하늘까지 뒤덮을 만큼 높이 자라났다.

    태양이 가려버릴 만큼 넝쿨이 뒤덮자 암흑처럼 어두워졌다.

    “우리 귀여운 아기들아. 가서 재밌게 놀아주렴.”

    배배 꼬이던 넝쿨이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며 일제히 꿈틀거렸다.

    캬아아아악!

    고성과 괴함을 내지르며 넝쿨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온몸을 던지듯이 달려드는 넝쿨의 움직임 때문에 큰 진동이 발생했다.

    바위 조각과 파편이 튀어나왔다.

    넝쿨은 물길을 머금은 엘리를 노리고 달려들었다.

    “세이버스.”

    엘리는 사브르 검을 가볍게 한 차례 휘둘렀다.

    그와 동시에 주변에는 물기둥이 폭포수처럼 치솟았다.

    물의 방벽이었다.

    어떤 공격도 막아낼 것 같은 힘이 있었다.

    “정화의 힘.”

    넝쿨들은 물결에 막혔다.

    사브르 검을 가진 엘리는 무엇이든 정화시킬 힘이 있었다.

    어떤 모습으로 형태가 변해도 다시 원래대로 되돌릴 수 있었다.

    캬아아아.

    울부짖던 넝쿨은 서서히 이빨부터 사라져갔다.

    원래의 얌전했던 풀과 나무로 서서히 되돌아갔다.

    “잡을 수 없어?”

    괴도 베타가 예상했던 범위를 넘어선 반격이었다.

    여왕 엘리는 물기둥 위에서 고고한 자세로 있었다.

    어떤 공격에도 두렵지 않다는 듯이 차분한 눈빛을 머금고 있었다.

    “끝을 보겠다고요?”

    “…….”

    엘리가 말하자 베타는 대답하지 않았다.

    물기둥에 있는 엘리.

    넝쿨과 함께 있는 괴도 베타.

    공중에 있던 두 사람은 잠시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가진 검은 초레어 검입니다. 마스터에게 받은 선물이에요.”

    엘리의 사브르 검에는 햇살이 반사되듯이 비쳤다.

    물결의 흐름이 차츰 파도처럼 거대해졌다.

    거대한 파도를 보면서 괴도 베타는 자신만만했다.

    “어디 제대로 붙어보자고. 그쪽의 물이 더 많은지 내가 가진 넝쿨이 더 많은지.”

    정화의 힘이라 해도 물결은 사방을 뒤덮은 숲의 넝쿨에 비하면 미약한 수준이라고 여겼다.

    “어?”

    괴도 베타의 몸이 갑자기 휘청거렸다.

    주변에 있는 넝쿨들이 흐물거리고 줄기는 축 늘어진 탓이었다.

    “어떻게 된 거지?”

    마계의 넝쿨이 전부 힘이 빠져가고 있었다.

    “왜?”

    베타는 곧 이유를 깨달았다.

    아까부터 엘리가 발휘한 물결이 땅에 떨어져서 젖어 있었다.

    땅에 떨어진 물은 밑으로 흡수되었고, 넝쿨들은 땅에 기반을 두고 성장한 식물이었다.

    덕분에 넝쿨은 엘리의 물을 땅에서 흡수한 탓에 정화되고 있었다.

    “아차.”

    괴도 베타는 안개의 가운을 입고 다른 힘을 발휘하려 했다.

    엘리는 지켜보지 않았다.

    사브르 검이 이미 막대한 물결을 모아서 파도의 높이를 더 높게 솟구치게 했다.

    “웨이브.”

    파도의 물결이었다.

    휘몰아치는 물결의 힘은 괴도 베타의 모든 능력을 무력화시켰다.

    파아아!

    촉수처럼 날뛰던 넝쿨은 힘이 하나씩 빠지며 사라졌다.

    정화의 물결이 지나가자 숲은 정상이 되었다.

    “끝났어.”

    엘리는 땅에 내려왔다.

    물의 기운이 엘리의 온몸에 오오라처럼 감돌았다.

    “빗물?”

    엘리는 고개를 들어 위를 바라봤다.

    방금 발휘했던 물결이 하늘에서 빗방울처럼 촉촉하게 내려왔다.

    반가운 비였다.

    “해냈어.”

    건너편에는 물에 완전히 젖은 괴도 베타가 나뒹굴었다.

    “후후후후.”

    안개의 가운은 정화의 물에 젖어버린 탓에 더는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했다.

    엘리는 사브르의 검을 내밀어 괴도 베타를 겨누었다.

    “대단한 여왕님이네. 이쪽이 졌어.”

    베타는 순순히 자신의 패배를 인정했다.

    하얀 가면은 벗겨진 상태였고 물에 젖어 머리카락이 흩어졌으나 베타 역시 대단한 미녀였다.

    “괴도 놀이는 끝났네요.”

    엘리는 자신의 힘으로 괴도 베타를 사로잡았다.

    숲의 방에서 벌어진 일전은 하늘에서 쏟아지는 빗물과 함께 마무리되었다.

    추적추적.

    빗소리가 한동안 숲의 목마름을 달래주듯이 길게 내려왔다.

    * * *

    “하압!”

    에어리스는 조커와의 격투에 전력을 쏟고 있었다.

    그들의 대결이 벌어지자 주변의 도로와 건물은 군데군데 파괴됐다.

    밤의 도시는 지옥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퍼억!

    치열하게 오가는 공방이었다.

    문양의 힘과 기운을 가득 머금은 에어리스는 차츰 속도를 끌어올렸다.

    팔꿈치를 휘두른 후에 몸을 날려 발차기까지 연계를 날렸다.

    “큭!”

    회피에 일가견이 있는 조커조차 에어리스의 공격을 피할 수 없었다.

    검술이 아닌 격투로도 에어리스는 당당하게 조커와 맞섰다.

    천부적인 재능이었다.

    스스로 발전하고 초월적인 힘을 발휘했다.

    “훌륭하다.”

    조커의 입가에서 웃음기가 가셨다.

    쌍검의 문장을 손등에 각인했으나 그 힘의 완전한 사용에 아직은 미숙한 터였다.

    “하하…….”

    조커가 혼자서 웃음을 보일 즈음에 에어리스가 돌격했다.

    충격파까지 발휘하며 에어리스는 주먹을 내질렀다.

    위력적인 파괴력에 밀려 사방의 가로등이 순식간에 부서지고 자동차마저 튕겨 나갔다.

    “좋다. 받아주지.”

    조커 역시 물러설 생각은 없었다.

    강하게 오오라를 발휘하며 조커도 강하게 전진했다.

    정면 승부였다.

    양측에서 몰아치는 기세가 정면으로 격돌했다.

    마치 200㎞로 달리던 자동차가 양쪽에서 부딪친 듯했다.

    굉음과 충격파가 퍼졌다.

    둘은 맞부딪친 상태에서 근처의 건물에 처박히거나 자동차를 날려버리면서 사방팔방으로 이동했다.

    섬광처럼 이동하는 두 사람의 움직임은 공중에서 양옆으로 흩어졌다.

    “허억. 허억.”

    에어리스는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조커 역시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내 검…….”

    에어리스는 자신의 대검이 있는 곳에 도착했다.

    조커 역시 상황은 같았다.

    쌍단검을 다시 손에 쥐었다.

    “다음 일격에 승부를 내자.”

    “…그래요.”

    조커의 제안에 에어리스는 순순히 받아들였다.

    에어리스는 대검을 들었다.

    조커 역시 쌍단검을 쥐었다.

    강한 집념이 오오라가 되어 두 사람의 몸을 휘감고 있었다.

    양쪽에서 마지막 돌격을 감행했다.

    대검 대 쌍단검.

    에어리스 대 조커.

    마지막 승부가 도시 너머를 넘어선 충격파까지 발산했다.

    콰아앙!

    굉음이 울려 퍼졌다.

    일격의 승부였고 결판이 났다.

    칼날은 부서지고 파편이 무수히 떨어졌다.

    에어리스의 대검이 조커의 쌍단검을 부숴 버렸다.

    광활한 검의 파동이 퍼져나갔다.

    부서진 단검을 보면서 조커는 희미하게 웃었다.

    “하하하하.”

    그 웃음소리는 짧았다.

    혼신의 힘을 다한 에어리스의 일격을 맞고 조커는 바닥에 쓰러졌다.

    “허억. 허억.”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 에어리스는 쓰러진 조커를 내려다봤다.

    “이겼어…….”

    불타오르는 밤의 도시는 이제 조용해졌다.

    치열했던 대결.

    승자는 에어리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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