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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을 활용하는 1000가지 방법-92화 (92/229)

92화 검은 방(2)

괴도단은 검은 턱시도에 눈을 가린 하얀 가면을 쓰고 있었다.

알파와 베타, 두 남녀가 괴도단의 유명한 콤비였다.

“하나씩 맡으면 되겠어.”

베타는 엘리를 의식했다.

하얀 드레스 차림에 사브르 검을 든 여왕은 위풍당당하면서도 섬세한 느낌이 공존했다.

“드레스를 입은 여왕이라…….”

직접 맞서게 되니 묘한 기대감과 긴장감이 동시에 들었다.

“우리는 다른 방에서 싸우죠.”

“그래요.”

엘리는 베타의 제안을 순순히 받아들였다.

괴도 알파는 손가락을 들어 새로운 방을 만들었다.

두 사람을 위해 새로운 문을 만들었다.

“두 분이 대결하기에 적당하고 괜찮은 장소를 만들어드렸습니다.”

새롭게 독립된 큐브 방이 만들어졌고, 두 사람은 그 안에서 누구의 방해도 없이 대결하게 되었다.

“이제 우리 차례입니다.”

괴도 알파는 두 팔을 벌리며 한껏 여유를 부렸다.

이 검은 큐브의 방은 괴도 알파가 모든 것을 제어할 수 있는 세상이었다.

“좋아.”

유진하는 담담했다.

괴도 알파가 맨손으로 나선 이상 상대의 특성을 파악해야 했다.

100장의 카드를 꺼내지는 않고 일단 지켜보기로 했다.

“우리는 괴도단. 다른 범죄자들과 다른 점은 사람을 해치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 말과 동시에 괴도 알파는 온몸에서 강한 오오라를 발산했다.

“무기는 선호하지 않죠. 쓰더라도 어디까지나 위협용입니다.”

“그래요? 확실히 괴이한 도둑이긴 하네요. 그래 봐야 도둑이지만요.”

“그렇죠. 세상을 농락하면서 즐기고 싶은 마음은 있습니다.”

동시에 괴도 알파가 발을 굴렀다.

이전에 본 적 없는 무시무시한 오오라가 계속 감쌌다.

“영화는 좋게 봤습니까?”

“네. 많이요.”

“서로 공통점이 많군요. 두뇌전을 좋아하고 영화도 좋아하고.”

“결정적인 차이는 도둑질을 하느냐 마느냐. 그거네요.”

서로 신경전이 오갔다.

괴도 알파는 손으로 입을 막으며 쿡쿡 웃더니 눈빛을 강하게 빛냈다.

“이제는 하나 더 생길 겁니다. 승자와 패자로 나눠드리죠.”

하늘까지 무섭게 치솟던 오오라가 일순간 연기처럼 가라앉았다.

마치 먼지가 사방에 퍼지듯이 기운이 착 내려앉았다.

괴도 알파는 손을 내밀었다.

알파의 손이 어느새 유진하의 눈앞까지 다가왔다.

“큭!”

유진하는 가까스로 고개를 숙여 알파의 손을 간신히 회피했다.

괴도 알파는 저 멀리 도착한 후에 고개를 돌렸다.

“영화를 보여드리죠. 이번 영화는 히어로 장르입니다.”

* * *

범죄가 창궐하는 밤의 도시.

곳곳에서 불길과 폭발이 벌어졌다.

이곳은 불타는 도로였고 부서진 자동차 사이에서 격렬한 검술 대결이 벌어졌다.

카앙!

에어리스는 부서진 자동차 사이로 빠르게 움직이면서 대검을 휘둘렀다.

상대는 조커였다.

쌍단검을 든 조커는 경찰차의 무덤처럼 변해버린 도로에 있었다.

“후우.”

에어리스는 조커의 움직임에 주목했다.

부서진 경찰차 틈 사이로 에어리스는 분주하게 움직였다.

조커는 제자리에서 우두커니 서서 에어리스를 바라봤다.

‘저 눈을 피해 갈 수 없는 걸까.’

정면 돌파는 부담이 되었다.

에어리스는 잠시 행동을 멈추고 부서진 경찰차 앞에 섰다.

“하압!”

손으로 경찰차를 잡아 강하게 힘을 주었다.

조커를 향해서 경찰차를 저 멀리 날려 보냈다.

“변수를 주는 건가…….”

조커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더니 단검에 강한 기운을 모았다.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경찰차를 향해서 단검으로 일도양단하듯이 베었다.

촤악!

경찰차가 반으로 갈라졌다.

“하아압!”

부서진 경찰차 사이에서 에어리스가 나타났다.

경찰차를 던져서 조커의 시야를 가린 틈에 돌격했다.

카앙!

대검과 단검이 맞붙었다.

갈라진 경찰차 사이에서 에어리스와 조커는 강하게 격돌했다.

“제법이야. 많이 늘었구나.”

조커는 미소를 지었다.

에어리스의 기습이 통하지 않았다.

“아!”

순간 회피의 달인.

조커는 어떤 공격도 피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내 거리에 들어왔어.”

조커는 말이 끝나기 무섭게 급가속으로 끌어올려 몰아쳤다.

전후좌우.

단검의 궤도가 사방에서 휘몰아쳤고 에어리스는 무방비로 단검에 맞았다.

“으윽!”

조커가 지나친 자리에 에어리스가 나뒹굴었다.

부서진 자동차와 불타는 도로에서 조커는 위세가 넘치듯이 주변을 한 차례 훑어봤다.

근접전에서 조커는 무적에 가까웠다.

“더 보여줄 건 없나?”

온몸에 상처를 입은 에어리스는 대검을 지팡이처럼 삼아 간신히 잡고 일어났다.

“아직이에요.”

에어리스의 손에 낀 건틀릿 장갑.

속성을 부여하는 힘이 있었다.

“라이트닝…….”

건틀릿에서 발동한 번개의 힘이 대검에 감돌았다.

충전식 목걸이의 에너지가 에어리스의 온몸에 흘렸다.

“아직 더…….”

마지막은 손등의 문양이 있었다.

패러사이트를 상대할 때에도 검과 방패의 문양에서 강력한 힘을 발휘했다.

기운을 발동시킨 에어리스는 마지막까지 모든 에너지를 끌어 모았다.

“…흐음.”

에어리스의 온몸에서 푸른 기운이 강하게 샘솟았다.

하늘 높이 치솟은 기력이 사방으로 퍼져나갔고, 에어리스가 한 걸음씩 걸을 때마다 파동이 일렁이듯이 진동했다.

조커는 그 모습을 보면서 가만히 생각했다.

‘맘에 들어.’

에어리스는 오오라를 머금으며 단숨에 달려들었다.

진지한 눈빛.

끝없이 타오르는 기세.

조커의 눈동자에 비친 에어리스는 모든 기운을 발휘했다.

‘생동감과 경이로운 힘.’

압도적인 위력을 머금으며 달려드는 에어리스를 보면서 환희의 감정마저 받았다.

조커는 강한 상대를 원했다.

지금 눈앞에 있는 에어리스처럼…….

“큭큭.”

조커 역시 오오라를 발휘하자 그 충격파로 인해 양옆에 있던 자동차가 살짝 공중에 들려 올라갔다.

“아까 받은 선물을 돌려주지.”

떠오른 자동차를 하나씩 툭 쳐서 앞으로 강하게 보냈다.

커다란 자동차가 에어리스를 향해 날아왔다.

“후우.”

에어리스는 호흡을 가다듬으며 자세를 고쳐 잡았다.

대검을 휘둘러 다가오는 자동차를 반으로 가르기 시작했다.

“하나. 둘.”

두 개의 자동차를 각각 베어버린 후에 이번에는 역습으로 조커가 돌격했다.

같은 방식이었다.

에어리스와 조커는 다시 재격돌했다.

콰앙!

격렬한 마찰음이 퍼져나갔다.

충격파가 골목을 파고들어 도시 너머까지 진동했다.

공중에서 맞부딪친 두 사람은 서로의 기세를 정면으로 느꼈다.

“맘에 든다. 지금의 기세. 그 눈빛까지.”

조커는 승부를 즐기며 대결을 만끽했다.

호적수를 만나자 강렬하게 솟구치는 심장 박동을 느꼈다.

격렬한 충격파로 인해 주변의 아스팔트는 부서졌고 파편이 나부꼈다.

절정의 전투에서 조커는 점점 강해지고 있었다.

치열한 전투 속에서 살아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목숨을 건 대결에서 환희를 맞이했다.

“하아압!”

에어리스의 기합 소리가 울렸다.

조커가 빠진 환상을 깨기에 충분한 고함이었다.

조커는 순간 회피를 이용해서 근접전에서 무적에 가까운 실력을 발휘했다.

지금은 달랐다.

“크윽!”

단검의 위력이 나오지 않았다.

정확히는 에어리스가 발휘하는 기운이 강력해서 단검으로는 벨 수가 없었다.

“당신을 이겨내겠어요.”

에어리스는 힘차게 기합 소리를 내면서 대검을 크게 휘둘렀다.

발휘한 기운에다 문장의 힘.

온몸의 원심력까지 실어서 날린 최대의 위력이었다.

광활한 파괴력이 대검에 그대로 담겨 대지를 가르듯이 내리쳤다.

“큭…….”

조커의 회피술로도 피할 수 없는 타이밍이었다.

극한의 속력으로 휘두른 대검을 반사적인 몸놀림을 발휘해서 쌍단검으로 막았다.

“하아아압!”

대검의 충격파는 조커의 방어를 날려버렸다.

쌍단검은 날아가서 각각 아스팔트 도로와 건물 벽에 박혔다.

“크억!”

대검의 위력을 정통으로 맞은 조커가 타격을 받았다.

뒤로 튕겨 나가더니 빌딩 유리창을 깨고 안쪽 깊숙이 처박혔다.

“허억. 허억.”

거의 모든 힘을 소모한 에어리스는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어깨를 들썩이다가 겨우 진정시켰다.

부서진 빌딩 너머에는 고요한 정적이 감돌았다.

“…해낸 건가요?”

짧은 말을 하면서도 숨소리가 헐떡거렸다.

조커를 이기라는 미션이었다.

여왕을 암살하겠다는 사람이었고, 이대로 조용히 잠들어 끝나기를 바랐다.

“이대로 그만하기를…….”

에어리스는 비틀거리는 발걸음을 이끌며 천천히 빌딩 안으로 향했다.

저벅저벅.

사방이 어둡고 먼지가 가득한 옷가게 상점이었다.

에어리스가 혼자 들어섰다.

발걸음 소리만이 들렸다.

“허억. 허억.”

에어리스의 온몸에는 상처가 가득했다.

약간의 기력은 남아 있어서 힘겹지만 걸을 만은 했다.

어두운 저편.

벽면에 기대어 고이 쓰러진 누군가 흐릿하게 보였다.

“조커……?”

자세히 확인하려고 에어리스는 천천히 다가갔다.

쓰러진 남자는 미동조차 하지 않았고 푹 늘어진 존재처럼 늘어졌다.

“당신은?”

에어리스가 한쪽 무릎을 꿇어 조커의 상태를 살피려고 어깨를 잡았다.

그때였다.

상대의 팔이 툭 떨어졌다.

“어?”

마네킹 팔이었다.

이곳은 옷가게였고 바닥에 쓰러진 사람은 조커가 아니라 마네킹 남자였다.

그 순간.

에어리스의 배후에 살기 어린 기운을 가진 자가 나타났다.

“승부는… 끝나지 않았다.”

조커였다.

단검을 잃어 맨손이 된 그는 핏빛이 서린 주먹을 든 채로 에어리스를 내려다봤다.

격렬한 분노가 담긴 기운을 머금으며 곧바로 주먹을 내질렀다.

에어리스는 복부에 강한 충격을 받았다.

“아악!”

엄청난 위력을 맞자 에어리스의 눈빛이 심하게 흔들렸다.

손에 든 대검마저 떨어뜨리고 뒤로 밀려났다.

전투에서 처음으로 무기를 놓치고 말았다.

콰아앙!

충격으로 인해 벽까지 날아갔다.

부서지는 벽과 파편 속에서 에어리스는 비틀거렸다.

“이런 대검을 들고 그렇게 잘 싸우다니…….”

조커는 에어리스가 떨어뜨린 대검을 바라봤다.

무기를 들 생각은 하지 않았으나, 대검에 새겨진 문장에는 관심을 보였다.

“문양의 힘이 대단했어. 그것 때문에 밀려났다. 그럼 이건 어떠려나?”

조커는 대검에 새겨진 문장에 손을 뻗었다.

쌍단검의 문양이었다.

상점 주인이 대검에 각인시켜 준 문장이었는데 조커는 이것을 원했다.

“허억. 허억.”

에어리스가 충격에 정신을 못 차릴 즈음 전혀 예상치 못한 광경을 맞이했다.

대검의 문양이 서서히 조커에게로 이동했다.

믿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각인 카드.”

이 카드는 각인된 문장을 해제하거나 재각인시킬 수 있었다.

초레어 등급의 가치였다.

일회용의 귀한 물건이었는데 이걸로 각인된 문장을 빼앗으려 들었다.

“아!”

각인 카드가 소모됐다.

대검의 문양은 마치 흘러가는 물결처럼 서서히 움직였고 결국 조커에게 흡수됐다.

조커의 육체로 이동한 문양은 손등에 새겨졌다.

파아아!

쌍검의 문양은 조커의 손등에는 찬란하게 빛났다.

“이 힘은 내 것이 되었어. 모두 네 덕분이지.”

에어리스는 자신의 손등에 남은 문장을 바라봤다.

검과 방패가 교차된 문양이 푸른빛으로 빛났다.

조커의 손등에서는 붉은빛이 나타났다.

“승부를 내자.”

맨손의 두 사람은 문양의 힘을 발휘한 채로 서로를 바라봤다.

폭풍전야.

주변에는 고요함이 감돌았다.

승부의 추가 급격히 흔들리는 즈음에 대결은 막바지로 치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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