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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을 활용하는 1000가지 방법-87화 (87/229)

87화 괴도단(1)

“범인은 당신입니다, 신참 제너드 경관.”

유진하가 손끝으로 가리킨 방향에는 신참 경관이 있었다.

동그란 안경 속에 겁쟁이의 가면을 쓴 남자.

추리에서 밝혀진 그의 진짜 정체는 살인마였다.

“설마 진짜 범인이라고?”

베테랑 레나 경관은 자신의 파트너가 살인마라는 사실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녀의 손이 살짝 떨렸다.

제너드 경관은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빠르게 레나를 낚아채서 역으로 그녀의 머리에 권총을 겨누었다.

“여기서 알아낼 줄이야.”

“…….”

살인범은 레나 경관을 인질로 잡자 본색을 드러냈다.

안경 속에 감춰둔 눈매가 흉측했다.

본성이 드러난 살인마였다.

한 손에는 권총, 다른 손에는 화염 카드를 손에 쥐었다.

카드는 범행 도구였다.

“아무 관련도 없는 사람들을 죽인 이유는요?”

“의뢰였다.”

“살인 청부업자군요.”

유진하는 한숨을 내쉬었다.

돈으로 사람을 죽이는 직업을 가진 전문가였다.

예전에 만난 살인에 흥미를 가진 살인마와는 결이 달랐는데 이쪽은 돈으로 움직이는 전문가였다.

“역시 이럴 줄 알았어.”

골목 뒤편에서 다른 사람이 그림자와 함께 나타났다.

완전 무장으로 방어구를 장착한 이소민과 대검을 멘 에어리스가 함께 있었다.

“셋이었나?”

“탐정이 혼자 다니는 거 봤어? 당연히 보조가 있지.”

이소민이 핀잔을 주었다.

이소민에 이어 에어리스까지 옆에 나타났다.

처음부터 여기로 살인마를 유인하는 작전이었다.

“그쪽은 프로일 줄 알았어요.”

유진하는 예상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외딴 골목은 사람들의 발길이 적어 범행 장소로도 적격이나, 반대로 전문 살인 청부업자를 잡기에도 좋은 곳이었다.

“포기해요. 어차피 당신이 빠져나갈 방법은 없으니까요.”

살인마는 유진하의 경고를 듣지 않았다.

권총과 화염 카드.

레나 경관을 인질로 잡았으니 빠져나갈 기회는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붙잡힌 레나 경관은 한때는 신참 경관이었던 자에게 조심스레 말을 걸었다.

“네가 정말 범인이야? 모든 게 연기였다는 거고?”

“후후, 사람을 쉽게 믿지 마. 정말 베테랑 경관이라면 말이야.”

레나가 그렇게 신참이라고 챙겨줬는데 배신으로 돌아왔다.

살인 청부업자였다니.

서슬 퍼런 권총이 머리를 겨누고 있었다.

살인마는 인질 레나를 이용해서 앞뒤로 포위된 형국을 빠져나가려고 했다.

“모두 엎드려라. 아니면 인질을 쏘겠다.”

“웃기고 있네.”

그 앞에 이소민이 턱 나타났다.

입술을 피식거리면서 흥 소리를 내더니 살인마에게 삿대질했다.

“어디서 명령질이야! 야, 그렇게 자신 있으면 나한테 쏴봐.”

이소민은 한 걸음 더 내디뎠다.

성큼성큼 강하게 다가오자 살인마가 오히려 당황했다.

“진짜 쏜다!”

“그래. 나한테 쏴보라고.”

이소민은 의지가 철철 넘쳐흐르면서 한 걸음씩 앞으로 걸어갔다.

기세에서 밀리자 살인마는 당황하다가 이내 반발심이 들었다.

“죽고 싶다면 그렇게 해주지.”

권총이 발사됐다.

이소민은 가슴에 총알을 맞았다.

“아!”

인질이 된 레나 경관은 사람이 총에 맞는 걸 눈앞에서 직접 보게 되었다.

경악스러웠다.

더 놀라운 광경은 지금부터였다.

“아이, 별거 아니잖아.”

레나의 걱정과 다르게 이소민은 총알이 아니라 솜털을 맞았는지 멀쩡하게 비웃었다.

“이거 물리 데미지 면역 방어구야. 그런 거 안 통해.”

이소민은 상체를 툭툭 두드렸다.

권총이 아무리 강하다 해도 물리 대미지라면 어떤 타격도 받지 않는다.

“뭐, 뭐야, 너!”

놀란 살인마가 이소민에게 권총을 마구 난사했다.

물론 총알은 전부 튕겨나갈 뿐이었다.

“물리 면역 방어구라고 했잖아, 이 멍청아!”

이소민은 화가 났는지 그대로 주먹을 내질렀다.

살인마의 면상에 정확히 스트레이트를 꽂았다.

“크억!”

살인마는 불의의 일격을 받았는지 휘청거리며 몸이 뒤로 넘어갔다.

그 충격에 살인마는 권총을 손에서 놓쳐 버렸다.

“이젠 제 차례네요.”

공중에서 빙글빙글 돌던 권총이 보였다.

에어리스는 등 뒤에서 대검을 꺼내어 허공에 뜬 권총을 일격에 베어버렸다.

서걱.

단칼에 썰린 권총은 반 토막이 되어 떨어졌다.

“우와!”

에어리스의 대검술을 눈앞에서 본 레나 경관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그와 동시에 살인마가 든 화염 카드는 어느새 유진하의 손에 들렸다.

빛의 카드를 내재화한 자.

마술사라는 별칭답게 상대의 카드를 빠르게 번개처럼 잡아냈다.

“당신들은 대체……?”

유진하, 에어리스, 이소민.

세 사람의 실력을 본 레나 경관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눈이 휘둥그레졌다.

“와아! 정말 대단해.”

한동안 감탄하던 레나와 달리 유진하는 여유가 있었다.

“경관들이 더 올 거예요.”

유진하는 손에 든 화염 카드를 레나 경관에게 주었다.

“이건 범행 증거고요.”

“아, 챙겨줘서 고마워.”

레나 경관이 얼떨떨해하는 동안 이소민은 빠르게 뒤처리를 시작했다.

주먹 한 방 먹고 기절한 살인마를 수갑과 밧줄로 꽁꽁 묶었다.

마치 청소 업체에서 나온 전문가처럼 말끔한 솜씨였다.

모든 정리가 마무리되자 유진하는 가볍게 손을 흔들었다.

“그럼 이만 가볼게요.”

“잠깐만.”

세 사람이 떠나려는 즈음에 레나 경관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레나는 동경이 담긴 시선으로 세 사람을 바라보다가 문득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정말 고마워. 그런데 당신들은?”

“저는 유진하라고 해요. 옆에는 에어리스와 이소민입니다.”

유진하는 웃으면서 손을 흔들었고 바쁜 일이 있는지 길을 재촉했다.

“경관들이 올 테니 잠깐만 있으면 돼요.”

마지막 당부 사항을 남겼다.

“아, 그 살인마는 변장한 거예요. 실제 얼굴은 달라요.”

그 말을 듣자 레나 경관은 얼른 살인범의 얼굴을 잡아 뜯었다.

변장한 가면을 벗기자 녀석의 진짜 얼굴이 드러났다.

붉은 머리의 젊고 말쑥한 외모를 가진 남자였다.

“다 알고 있었던 거네.”

레나 경관은 어안이 벙벙한 채로 멀리 걸어가는 세 사람을 묵묵히 바라봤다.

가로등 아래에서 그들은 나란히 걸어갔다.

남다른 추리력과 뛰어난 판단력을 가진 유진하.

커다란 대검을 자유롭게 휘두르는 에어리스.

특별한 방어구로 무장한 이소민.

“대단해.”

세 사람에 대해 점점 궁금해졌고 관심이 생겼다.

문득 한 가지 바람도 생겼다.

“…다시 만날 수 있을까.”

레나 경관은 그들이 사라지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가로등이 깜빡이는 밤.

붉은 문의 살인 사건이 해결됐다.

“사건은 끝났고…….”

걸어가던 유진하는 하나의 메모를 확인했다.

이 사건을 해결하기 전에 명함 하나를 받은 거였다.

검은 명함이었다.

눈만 가린 하얀 가면이 명함에 그려져 있었다.

“…괴도단.”

세계 3대 조직 중 하나였다.

알카트로스. 아사신. 괴도단.

이 중에서 가장 기이한 범죄를 저지르는 단체가 괴도단이었는데, 검은 명함은 그들이 보내는 예고장이었다.

세상의 경찰과 정부를 농락하는 괴상한 도둑들.

예고장이자 도전장이었다.

“다음은 괴도단 소탕이야.”

* * *

영국 런던.

괴도단은 자신만만하게 자신들의 범행을 예고했다.

“확실히 특이하네요.”

유진하는 검은 명함을 계속 살펴봤다.

괴도단이 보낸 범죄 예고장은 항상 눈만 가린 하얀 가면이 그려졌다.

“괴도단이라…….”

괴도 뤼팽 이후로 이들을 모방하는 자들은 수없이 많았다.

그중에도 독보적으로 대단한 실력을 발휘한 자들이 괴도단이었다.

“실력에 자신이 있는 건 알겠지만 이번에는 선을 좀 많이 넘었네요.”

이곳은 버킹엄 궁전.

영국 여왕이 머무는 곳이었다.

괴도단은 명함에 간단한 메시지를 담았다.

-버킹엄 궁전에서 가장 귀중한 것을 가져가겠다.

“가장 귀중한 거라…….”

괴도단의 예고장 덕분에 난리가 난 영국 경찰들은 버킹엄 궁전을 겹겹이 포위했다.

유진하가 영국에 온 진짜 목적도 괴도단 소탕 때문이었다.

에어리스, 이소민도 함께 궁전의 앞마당에 자리했다.

“마스터와 요원들은 대체 이 많은 일을 어떻게 다 한 거냐?”

이소민은 한숨을 내쉬었다.

전 세계를 마구잡이로 돌아다니는 일정에 이제는 몸과 마음이 지쳐 있었다.

휴식이 간절했다.

“하암, 시차 적응할 틈도 없네. 졸리다.”

방금도 에든버러에서 사건 하나를 해결하자마자 숨 돌릴 틈도 없이 런던으로 왔다.

체력이 튼튼한 에어리스는 그다지 지친 기색이 아니었다.

여전히 에너지와 열정이 많았다.

“저는 괜찮았어요. 세계 일주 하는 느낌도 좋았고요.”

에어리스의 버킷 리스트 중에는 세계 여행도 있었다.

대륙을 넘어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이집트 피라미드, 파리 에펠탑, 뉴욕 자유의 여신상을 모두 보았다.

“모든 곳이 정말 멋있었어요. 또 가고 싶네요.”

에어리스는 환한 미소를 지었다.

기분 좋은 추억을 하나하나 만들어가듯이 마음에 들었다.

두 사람이 약간 대화를 나누는 동안에 유진하는 생각에 잠겼다.

“괴도단은 두 명인데…….”

여기 오기 전에 괴도단의 사건 정보를 살펴봤다.

그들은 남녀 두 명이었다.

가면으로 얼굴을 가린 채로 대담하게 물건을 훔쳤다.

100%의 성공률이었다.

“과감한 수법에 창의적인 작전도 보여주고 있어.”

괴도단이 훔친 물건은 보석부터 유물까지 다양했다.

그들은 원하는 물건을 반드시 훔쳤고, 세계 3대 조직이 된 연유에는 그들의 과감한 범죄가 매스컴에서 유명세를 탄 덕분이었다.

괴도단의 명성이 그렇게 완성됐다.

“경찰들이 쫙 깔린 곳에 괴도단이 침투해서 물건을 훔쳐서 유유히 도망간다는 건데…….”

유진하는 곰곰이 생각했다.

보름달이 구름에 가려진 밤하늘.

검은 망토를 입고 눈을 가린 하얀 가면을 쓴 괴도단.

지붕에 있던 그들은 마치 경찰을 농락하듯이 물건을 훔쳐냈다.

“무슨 수법을 쓰는 걸까.”

오늘은 예고장에 나온 날이었다.

어두운 밤에 보름달이 구름에 가려졌다.

괴도단은 버킹엄 궁전에서 가장 소중한 것을 가져가겠다고 예고했다.

“유진하, 녀석들은 궁전에서 대체 뭘 가져가려는 걸까?”

“글쎄요.”

이소민이 물어보자 유진하도 정확한 답을 내리지 않았다.

괴도단은 심리전과 두뇌전을 동시에 걸었다.

어떤 변수를 심어놨을 수도 있었다.

성공률 100%.

괴도단은 범죄 예고를 반드시 수행했고 보물이든 보석이든 무엇이든 가져가는 실력자였다.

“이번에는 다를 거예요. 진하가 이곳에 있으니까요.”

에어리스는 말똥말똥하게 눈을 뜬 채로 유진하를 바라봤다.

기대감에 가득 찬 시선이었다.

“노력해 봐야지. 아직은 녀석들의 수법도 잘 모르는 상태거든.”

수십 건의 사건 파일이 있었으나 경찰들이 완벽하게 당한 기록밖에 없었다.

괴도단의 그림자조차 못 잡았고 심지어 그들의 범행 수법조차 대부분 의문으로 남았을 정도였다.

“이런 녀석들은 우월감이 있는 것 같아.”

“우월감이요?”

“범죄를 예고한다는 건 위험 부담이 상당하잖아.”

사방에 설치한 서치라이트 조명이 곳곳을 비추었다.

천 명에 가까운 중무장한 경찰이 철통 경계를 자랑했다.

“괴도단은 경찰들을 농락하면서 훔치기를 원하는 거잖아. 자신들이 훨씬 우월하다 증명하고 싶은 거야.”

“그런가요. 재밌는 이유 같아요.”

“사실 다른 이유가 더 있는 거 같지만 말이야.”

뼈가 있는 말이었다.

괴도단의 예고 범죄.

유진하는 여러 가지 가능성에 대해서 고민했다.

“준비는 됐어.”

중요한 보물은 미리 다른 창고로 보냈다.

남은 유물들은 경찰을 배치해서 수십 겹의 방어력을 집중시켰다.

“여왕도 다른 곳에 보냈고.”

신변 안전을 위해서 여왕은 비밀리에 버킹엄 궁전에서 나와 햇필드 하우스로 보냈다.

햇필드 하우스는 근대 영국에 번성의 기틀이 만들어진 곳이었다.

근세 최강대국 영국을 만든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이 어린 시절을 보낸 장소였다.

그곳에 현재의 여왕을 보냈다.

“진하, 밤이 밝아요.”

에어리스는 어두운 밤하늘의 달빛을 바라봤다.

버킹엄 궁전의 밤은 조금씩 깊어갔다.

시간이 흘러갈수록 보름달이 밝게 빛났다.

그 아래 수많은 별빛처럼 손전등과 서치라이트가 무수히 궁전 곳곳을 비추었다.

그리고…….

한 시간이 흘러…….

마침내 정각.

괴도단이 도착하기로 약속한 시각이 되었다.

긴장한 경찰들 사이로 하늘에서 한 장의 종이가 나풀나풀 내려왔다.

검은 명함.

괴도단이 보낸 예고장이었다.

-버킹엄 궁전을 지키는 모든 분들께. 궁전에서 가장 소중한 것을 가져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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