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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을 활용하는 1000가지 방법-86화 (86/229)
  • 86화 붉은 문의 비밀

    영국 에든버러.

    밤의 도시는 어두운 시내에서 가로등만이 빛나고 있었다.

    야간 순찰에 나선 경관 레나는 긴장된 얼굴로 손전등을 이리저리 비추었다.

    “…오늘은 괜찮으려나.”

    단발의 갈색 머리카락을 가진 여성 경관 레나는 에든버러의 토박이였다.

    이곳에서 태어나 자랐고 지금은 3년 차 경관이 되었다.

    “거기 신참, 언제 올 거야?”

    레나 경관은 최근 들어 신경 쓰이는 일이 생겼다.

    첫 번째는 새로 부임한 지 한 달 남짓 되는 신참 경관이 자신의 파트너가 되었다는 사실이었다.

    “선배님, 천천히 같이 가요.”

    신참 제너드 경관은 약골이었다.

    가로등을 부여잡으며 벌벌 떠는 모양새를 보아하니, 소매치기 하나 제대로 잡을 수 있을지 고민됐다.

    “야, 경찰은 살인마도 잡아야 하는데 계속 그러고 있을 거야?”

    “히익, 살인마요?”

    동그란 안경 속에 겁먹은 눈동자가 자리 잡았다.

    제너드는 초보 경관답게 모든 일에서 미숙했다.

    두 번째는 실종 사건이었다.

    골목에 들어간 사람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사건이었다.

    신참 경관은 겁이 났는지 자꾸 몸을 움츠렸다.

    “안 그래도 요즘 괴상한 소문이 많이 들려요.”

    세 번째 문제는 에든버러 시내에 쫙 퍼진 괴소문이었다.

    사람을 삼켜버린다는 붉은 문의 소문이었다.

    “붉은 문이 열리면 사람들이 빨려 들어간다고 해요. 불길하게요.”

    붉은 문.

    어쩌면 지옥의 문이라는 별칭으로도 불리는 이것에 관한 괴소문이 떠돌았다.

    레나 경관도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문을 들었지만 믿지는 않았다.

    “에이, 그런 게 어딨어. 이건 분명 실종 사건이야. 살인 사건일 수도 있지만…….”

    “히익! 그것도 무서워요!”

    최근 경찰들은 순찰을 다닐 때마다 손전등으로 이리저리 살피곤 했다.

    오늘 순찰은 레나 경관이 신참과 함께라서 잘 챙겨야 했다.

    “벌써 3번째야. 느낌이 안 좋아.”

    붉은 문의 실종 사건.

    다르게 말하면 시체조차 남지 않는 불가사의한 사건이었다.

    “완전 범죄일 수도 있어.”

    레나 경관은 긴장한 마음을 감추려고 호흡을 가다듬으며 밤공기를 들이마셨다.

    차갑고도 시원한 바람이 목구멍으로 넘어왔다.

    덜그럭.

    그 순간.

    골목에서 수상한 소리가 났다.

    “으아!”

    신참 경관 제너드는 동그란 안경을 만지작거리다가 이내 저만치 도망갔다.

    “신참, 빨리 안 와?”

    레나 경관이 버럭 성질을 내자 신참 경관은 어쩔 수 없이 쭈뼛거리며 다가왔다.

    “여기는 사건 현장이잖아요.”

    “맞아.”

    세 번째 실종 사건이 벌어진 골목이었다.

    “붉은 문이다.”

    “그런 건 없어. 범인은 현장으로 돌아온다고 하잖아.”

    “그럼 더 무서워요!”

    덜덜거리는 신참 경관을 뒤에 두고 레나 경관은 손전등을 골목 쪽으로 비추었다.

    천천히 조심히.

    용감하게 한 걸음씩 다가가며 손전등으로 큰 소리의 정체를 찾기 시작했다.

    “야옹!”

    확 튀어나온 고양이가 멀뚱히 레나 쪽을 바라봤다.

    “뭐야, 고양이였잖아.”

    레나 경관은 안도의 한숨과 동시에 아쉬움을 느꼈다.

    이 괴이한 사건의 범인이 있었으면 바로 붙잡을 수도 있었는데 겨우 고양이라서 실망했다.

    “야, 너 언제 또 거기까지 갔어?”

    고양이가 나오는 순간.

    신참 제너드 경관은 한참을 뒤로 도망갔다.

    “어이구, 저걸 진짜.”

    한 달도 안 되는 초보 경관이라 해도 겁이 너무 많았다.

    “손전등조차 제대로 못 드는 경관이 세상에 어디 있냐?”

    레나 경관이 으르렁거리자 신참은 마지못해 돌아왔다.

    신참 경관은 원체 실수를 많이 하긴 하나 이 친구는 겁이 너무 많았다.

    “툭하면 장갑을 자주 잃어버리지 않나. 제복도 자꾸 태워 먹어서 교체하고.”

    “아, 그건 난로에서 불을 피우다가 타버린 거라서요.”

    “알아. 앞으로 불조심하라는 거야.”

    고참과 신참이 옥신각신하면서 계속 순찰을 다녔다.

    어두운 밤거리에 두 개의 손전등이 흔들거리면서 앞을 비추었다.

    툭.

    아까 고양이가 나왔던 사건 현장에서 다른 소리가 들려왔다.

    “또? 이번에는 달라…….”

    자세히 집중하면서 들으니 조심스러운 발걸음이 분명했다.

    살금살금.

    한 사람의 발소리였다.

    “붉은 문이 열리는 소리는 아닐까요.”

    “너 한 번만 더 그런 소리 하면 쫓아낼 거야.”

    신참에게 으름장을 놓은 레나는 손전등으로 골목으로 비추었다.

    정말 괴소문처럼 붉은 문이 열린다면?

    나도 빨아당기는 건 아닐까.

    ‘아니야. 유령은 없어.’

    공포심을 억누르며 레나는 허리춤에서 권총을 꺼냈다.

    ‘이 야밤에 사건 현장을 몰래 찾는 사람이라…….’

    범인일까?

    레나 경관은 발걸음을 죽이고 걸어갔다.

    골목 끝에는 다행히 붉은 기운은 보이지 않았다.

    사람의 그림자가 있었다.

    조심스레 다가간 레나 경관은 곧바로 총을 겨누었다.

    “꼼짝 마!”

    “어?”

    검은 그림자는 멈칫하더니 이내 꼼짝없이 두 손을 들었다.

    “신참, 어서 수갑 채워.”

    “아, 네.”

    겁쟁이 신참 경관은 수갑을 꺼내다가 실수로 바닥에 떨어뜨렸다.

    “…됐어. 그냥 내가 할게.”

    레나는 한숨을 내쉬더니 자기 수갑을 꺼내 수상한 용의자를 현장에서 체포했다.

    “저는 수상한 사람이 아니에요.”

    수갑이 채워진 용의자는 자신이 범인이 아니라고 항변했다.

    물론 레나는 믿지 않았다.

    “제 이름은 유진하라고 해요.”

    수상한 용의자가 자신의 이름을 선뜻 밝혔다.

    손전등을 비추자 갈색 코트를 입은 어린 외모의 청년이 있었다.

    “어려 보이는데? 몇 살이야?”

    유진하는 17살에 형과 함께 처음으로 공략전에 참가했다.

    지금은 2년이 지난 즈음이었고 무수한 사투를 거쳤다.

    아직 20살이 안 되었지만 말이다.

    “유진하라고 하는데요. 멀리 한국에서 왔어요.”

    “혼자서 왔어?”

    “네.”

    레나 경관은 아리송한 표정을 지으며 방금 체포한 친구에게서 수상한 점을 찾아봤다.

    어리둥절한 눈동자.

    평범한 외모.

    특출함은 안 보이지만 경계심도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왜 여기에 있어? 수상하게 말이야.”

    “사건 의뢰를 받았거든요. 여기 일을 해결해 달라고요.”

    “너한테 사건을 의뢰했다고?”

    깜짝 놀란 레나는 순간 웃음이 터져 나왔다.

    이 어려 보이는 친구한테 경찰이 사건을 맡겼을 리가 없다.

    “정말이에요. 배지도 있어요.”

    유진하는 품에서 은제 배지를 꺼내 내밀었다.

    “국가 공인 탐정?”

    얼마 전에 들어본 적이 있었다.

    최근에 만들어진 수사 단체인데 미제 사건이나 괴이한 사건을 주로 추적하는 인터폴 같은 국제기관이었다.

    “이거 진짜야?”

    “연락해 보세요.”

    레나는 완전히 의심을 풀지 않고 일단 경찰서에 신원 조회를 요청했다.

    곧 답변이 돌아왔다.

    -그 사람이 맞습니다.

    아!

    레나는 그제야 자신이 실수했음을 깨닫고 유진하에게 사과했다.

    “미안. 나는 살인범인 줄 알았어.”

    “하하, 제가 오인받을 줄은 몰랐네요.”

    “빨리 수갑 풀어줄게.”

    “괜찮아요.”

    유진하는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빈 수갑을 내밀었다.

    “벌써 풀었거든요.”

    “뭐?”

    레나와 신참 경관 둘 다 깜짝 놀랐다.

    언제 수갑을 풀었는지 도통 알 수 없었다.

    “손재주가 있어서요. 제 코드명이 탐정 혹은 빛의 마술사거든요.”

    “빛의 마술사? 탐정?”

    레나는 이 상황이 너무나 당황스러웠다.

    미제 사건을 해결하도록 도와주러 온 사람이 이렇게 어린 청년인 것도 그렇고.

    무려 국가 공인 탐정이라니.

    영국에서 반대편에 있는 먼 나라 한국에서 왔다는 사실도 특이했다.

    “그러니까 빛의 탐정이라고?”

    “새로운 닉네임이네요. 그것도 마음에 들 것도 같네요.”

    유진하는 툭툭 바지를 털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결 여유롭게 두 명의 경관들을 마주했다.

    “수사권이 있어서 바로 현장에 온 거였어요. 그게 밤이었네요.”

    “…그러니.”

    떨떠름한 미소를 짓던 레나는 난데없이 나타난 이상한 국가 공인 탐정에 조금씩 호기심이 생겼다.

    “정말 수사할 수 있어?”

    “여기 오기 전에 벌써 10건은 처리했어요. 일주일 걸렸죠.”

    “일주일에 10건이나?”

    깜짝 놀란 레나는 손가락으로 세어봤다.

    하루에 1건보다 더 해결했다는 소리였다.

    “사건은 들었어요. 에든버러에서 실종 사건이 계속 벌어진다고요.”

    경관들이 놀라거나 말거나 유진하는 사건 현장에 집중했다.

    “시체도 없이 사람들이 사라진다는 거죠?”

    “붉은 문…….”

    신참 경관이 중얼거렸다.

    동그란 안경 속에 있는 눈동자는 계속 떨리고 있었다.

    “붉은 문에 들어가서 사람들이 사라진다고…….”

    “그 소문은 저도 들었어요.”

    유진하는 차분하게 생각했다.

    사람들을 삼키는 붉은 문.

    현장에는 그을음이 유일한 흔적으로 있었다.

    “그을음에 발자국이 남았네요.”

    레나도 바닥을 살펴봤다.

    사건 현장의 조사를 했을 적에 왔던 곳이었다.

    “전부 경찰이 조사하다 남긴 거죠. 현장 조사하다가 많이 생겼어요.”

    “세 군데 현장 조사에 두 경관님은 다 참여한 거죠?”

    유진하가 뜻밖의 질문을 던지자 레나는 그렇다고 답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겁쟁이 신참 경관 제너드도 쭈뼛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희 둘 다 현장에 왔었어요. 순찰을 주로 돌아다녀서 처음에 사건 현장을 발견한 적도 있고요.”

    레나가 추가적으로 설명했다.

    유진하는 곰곰이 생각에 잠기더니 단서를 하나하나 떠올렸다.

    붉은 문의 정체.

    그을음.

    발자국.

    세 가지가 하나로 이어지는 답은 단 하나였다.

    “붉은 문의 정체를 알았어요.”

    한마디로 정리했다.

    그것만으로 두 경관은 깜짝 놀랐다.

    특히나 유진하를 어리숙한 청년이라고 봤던 레나 경관이 화들짝 놀랐다.

    “벌써 알았다고?”

    “네, 붉은 문이 무엇인지 범인의 정체도 무엇인지 다 알아냈어요.”

    유진하의 눈빛은 단호했다.

    아까 레나 경관이 봤던 어색하고 당황하던 청년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어깨를 펴고 당당한 자세로 두 사람에게 자신의 추리를 얘기했다.

    “첫 번째 질문은 붉은 문이 왜 괴소문으로 나왔을까? 이거예요.”

    “소문이 왜 나왔냐고?”

    “이 소문, 붉은 문이라고 굉장히 구체적이잖아요. 혹시 범인이 흘렸을 가능성은 없을까요?”

    레나는 멈칫했다.

    사람들 사이에 퍼진 괴소문.

    범인이 일부러 냈으리라 생각한 적이 없었다.

    “이 소문은 무언가를 감추기 위한 거예요.”

    “감춘다고?”

    “네, 고의적인 거죠.”

    유진하는 팔짱을 낀 채로 가만히 사방을 둘러봤다.

    골목은 완전히 막힌 구석이었다.

    “범행 장소는 외딴 골목이고 붉은 문이 생긴다. 왜 노란 문도 아니고 검은 문도 아니고 하필이면 붉은 문일까요?”

    “그러고 보니 이상하네.”

    “붉은 문에서 중요한 건 색깔이었어요.”

    유진하는 ‘붉은색’을 지적했다.

    “현장에서 빨간빛이 발생한다면? 그걸 감추려고 낸 소문인 겁니다. 붉은 문이라고 속여서…….”

    “아.”

    레나 경관은 미처 몰랐던 사실을 깨닫자 당황했다.

    현장에서 발생하는 붉은빛.

    그걸 의식해서 범인이 일부러 붉은 문이 나타난다고 소문을 내서 숨겼다는 추리였다.

    “독특한 발상이야. 확실히 그럴 가능성이 있고.”

    레나는 순순히 받아들였다.

    유진하는 그 정도에 만족하지 않았다.

    “증거도 있습니다.”

    “그게 뭔데?”

    “바닥에 있는 그을음이요.”

    두 팔을 벌려 유진하는 골목길에 쫙 깔린 그을음을 가리켰다.

    “붉은빛이 나오는 현장. 사방에 깔린 흔적은 그을음.”

    “두 개가 연결되는 거라면…….”

    “붉은 문의 정체는 화염입니다.”

    불길.

    붉은빛은 타오르는 화염을 의미했다.

    “범인은 화염으로 사람을 태워 버린 거예요. 그래서 사방이 그을음으로 가득하고 바깥에는 붉은빛이 보였던 겁니다.”

    “아!”

    레나 경관은 짧은 탄성을 질렀다.

    사람을 불태워서 아예 시신조차 없애 버렸다는 소리였다.

    그렇다면 사람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을 테고 ‘실종’ 사건이 된다.

    “대단한 발상이야. 화염으로 사람을 태워버리다니.”

    유진하는 카드 한 장을 꺼냈다.

    “화염 카드가 있어요. 일반적인 불로는 어려워도 화염 카드라면 화력이 충분하죠.”

    마술사라는 별명답게 유진하는 손에서 카드를 빙글빙글 움직였다.

    마치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자유롭게 손가락 사이를 지나갔다.

    “제가 생각한 범인은 이렇게 됩니다. 하나씩 조각을 맞춰볼게요.”

    추리는 막바지로 치달았다.

    “첫 번째, 범인은 화염 카드를 가졌을 테고. 두 번째, 붉은 문의 괴소문을 항상 얘기하고 다녔을 겁니다.”

    퍼즐 조각이 하나씩 맞춰지듯이 이야기는 하나로 모여 갔다.

    “화염 카드를 사용하다가 실수를 하면 자주 옷을 태워 먹어요. 세 번째는 범인이 장갑을 자주 바꾼다거나 옷이 자꾸 탔겠죠.”

    범인의 정체가 하나씩 맞춰졌다.

    “그을음은 유일한 현장 증거였습니다. 이 범행에서는 그을음 때문에 발자국이 반드시 남을 수밖에 없거든요. 3건의 현장에서 발자국은 오직 경찰밖에 없었어요.”

    유진하의 눈빛이 빛났다.

    “그걸 알고 있던 범인은 빨리 와서 발자국을 남겼습니다. 경찰 중에 자기 발자국을 숨기려고 말입니다. 아마 현장에 자주 빨리 오는 경찰이 범인이겠네요. 그게 네 번째입니다.”

    마침내 퍼즐이 하나로 맞춰졌다.

    괴소문을 자주 얘기하는 사람.

    화염 카드를 쓰느라 장갑과 옷을 많이 태우는 사람.

    모든 현장에 온 사람.

    범행 현장에 경찰 발자국을 남겨서 자신의 발자국을 숨기려는 경찰.

    “이 모든 게 가능한 사람은 당신 한 명뿐이네요.”

    유진하가 카드를 휙 던지자, 범인이라 지목된 사람의 상체에 툭 맞고 바닥에 떨어졌다.

    “범인은 당신입니다. 신참 경관 제너드 데이먼드 씨.”

    범인은 초보 경관이었다.

    그의 순진한 척하는 가면 속에 살인마의 얼굴이 있었다.

    제너드 경관은 동그란 안경 속에서 매서운 눈매를 떠올렸다.

    “그 눈빛. 익숙하네요.”

    유진하가 숱하게 상대했던 연쇄 살인마 나주신.

    살인마 잭의 눈빛이 저랬다.

    유진하는 범인을 찾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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