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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을 활용하는 1000가지 방법-83화 (83/229)
  • 83화 섬멸전(6)

    패러사이트 C와 격전을 벌이던 유진하는 이제 단 한 장의 카드만이 남았다.

    빛의 카드.

    탑의 주인에게서 받은 초레어 카드였다.

    긴장감이 사무치듯이 느껴졌다.

    흑도를 쥔 패러사이트는 강렬한 오오라를 발휘하고 있었다.

    녀석의 눈동자는 죽음의 신호를 보내듯이 냉철했다.

    “유진하…….”

    패러사이트가 이름을 불러줬다.

    녀석은 그저 인간 중에서 자신과 끝까지 맞서려는 존재에 흥미가 생긴 듯했다.

    “두뇌가 뛰어나고 별명이 마술사라고?”

    “…….”

    패러사이트는 유진하에 대해 알아보려는 듯이 중얼거렸다.

    기생충의 관심을 받으니 기분이 묘했다.

    쓸 만한 숙주라고 인정받은 걸까.

    유진하는 씁쓸한 미소를 머금은 채로 녀석을 노려봤다.

    “왜? 나한테 숙주로 기생하려고?”

    “그럴지도…….”

    “나한테 기생하기는 불가능할 거야.”

    “숙주의 의견 따위는 중요하지 않아.”

    패러사이트는 천천히 다가왔다.

    기생의 나무에는 알이 잔뜩 열렸고 그중에 일부가 툭 떨어졌다.

    페러사이트는 수십 개의 알을 받더니 모든 알을 하나에 흡수시켰다.

    “이거다.”

    패러사이트는 수십 개의 알을 자양분으로 삼아 유충 하나를 부화시켰다.

    세상에 갓 태어난 기생충이었다.

    “이 녀석이 너한테 기생할 거야.”

    유진하는 이를 악물었다.

    패러사이트는 유충을 하나를 꺼내서 유진하의 육체에 기생시키려 했다.

    녀석은 쓸 만한 숙주를 지배하기를 원했고 번식 본능에 충실했다.

    인간 대 패러사이트.

    결판의 시간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빛의 카드…….”

    유진하는 이 카드만이 남았다.

    햇볕이 쏟아지는 환한 대낮이라 빛을 모으기에 유리한 환경이었다.

    내리쬐는 빛을 모아서 최후의 승부를 걸 수 있었다.

    ‘패러사이트 녀석에게 통하지 않는다면?’

    빛으로 덤벼들어도 이기리란 확신이 들지 않았다.

    패러사이트는 흑도를 가지고 있었다.

    저 흑도에 닿은 범위는 공간조차 갈라진다.

    ‘공간이 잘리면 빛도 거기서 막힐 거야.’

    빛은 시공간에서 존재한다.

    시공간 자체가 사라지면 빛도 그 안에서 소멸한다.

    패러사이트는 아까 중력장조차 공간을 잘라서 봉쇄했다.

    빛이어도 결과는 같을 터였다.

    예정된 패배였다.

    “…그것밖에 없겠지.”

    유진하는 오래전부터 하나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초레어 카드의 뒷면에는 각각 문장이 있었다.

    중력 카드의 문양은 땅에 꽂힌 검이 그려졌고, 빛의 카드는 사방으로 뻗어나가는 태양이 새겨졌다.

    “문양이라…….”

    에어리스의 손등에도 문양이 있었다.

    검과 방패가 교차된 모습이었다.

    “문양을 하나 줄게.”

    저번에 상점 주인은 새로 얻은 문양을 보여줬다.

    쌍검이 그려진 문양이었는데 에어리스의 대검에 각인했다.

    “문양이 새겨지면 힘을 받을 수 있을까…….”

    상점 주인은 문양의 특별한 힘을 알려줬다.

    무기를 강화시키거나 새로운 능력을 부여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문장을 육체에 새기면 어떨까?”

    에어리스의 손등에 있는 문장처럼 카드를 몸에 새기는 방법이 있었다.

    “…카드를 ‘내재화’하겠어.”

    유진하는 결심했다.

    빛의 카드를 자신의 몸에 ‘내재화’시켜 새겨 버리겠다고.

    대가도 물론 있었다.

    ‘카드에게 내 몸의 에너지를 줘야한다.’

    부작용으로 내재화된 카드가 육체를 연료처럼 소모할 수도 있었다.

    기생충에게 에너지를 쪽쪽 빨리고 버려지는 ‘숙주’와 다를 게 없었다.

    모든 에너지를 잃고 죽는다.

    자신의 목숨을 대가로 거는 기술이었다.

    “하아.”

    패러사이트와의 전투였다.

    그들은 생명체와 공간에 기생하여 에너지만 빨아먹고 버린다.

    모든 걸 먹어 치우고 껍데기만 남은 곳은 버리고, 다른 공간으로 또 기생하러 간다.

    “무한의 굴레처럼 패러사이트는 계속 가겠지.”

    여기서 패배하면 모든 인간은 숙주화되어 죽는다.

    지구 역시 소멸당해 없어진다.

    반드시 막아야 했다.

    ‘죽어야 이길 수 있다면… 그렇게 하겠어.’

    빛의 카드를 든 유진하는 최후의 순간을 직감했다.

    불길한 오오라를 머금은 패러사이트는 유충을 내밀며 위협했다.

    “인간을 지배할 유충이다.”

    기생의 나무에 자라난 유충의 알이 무수히 빛을 내고 있었다.

    그 아래 최정상 부근.

    유진하와 패러사이트는 마지막 승부를 준비했다.

    “…하겠어.”

    유진하는 마지막으로 호흡을 가다듬었다.

    서서히 빛의 카드를 심장으로 가져갔다.

    초레어 카드의 내재화.

    카드가 심장에 닿는 순간…….

    뜨거운 열기가 심장에 느껴지더니, 심장의 박동이 차츰 잦아들기 시작했다.

    시야가 점점 흐려졌다.

    숨을 쉬는 것조차 고통스러워지면서 이내 심장이 정지했다.

    쿵.

    실이 끊어지듯이 단절됐다.

    마치 낭떠러지 밑으로 끝없이 추락하는 기분이었다.

    “…….”

    심장이 잿더미가 되는 기분이었다.

    버텨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막대한 충격이 오자 정신을 잃어갔다.

    온몸에서 연기가 나오는 듯했다.

    “크으으윽!”

    카드는 점점 심장으로 파고들었다.

    내재화가 되어갔다.

    온몸이 하얗게 변해 가더니 고통 속에서 죽어가는 기분을 느꼈다.

    “으아아아아!”

    고통에서 벗어나려 아우성쳤다.

    심장으로 스며들던 빛의 카드는 마침내 사라졌다.

    온몸에서 연기가 나오던 유진하는 문득 고개를 떨구었다.

    그 상태로 잠시 있었다.

    다리가 풀리고 상체는 쓰러지기 직전이었으나 끝까지 버텨냈다.

    “하아. 하아.”

    정신은 서서히 온전해졌다.

    고통이 끝나자 한결 마음이 편안해졌다.

    온몸에서 나오는 연기는 어느새 기운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하얀 기운이 오오라처럼 발산되었고, 건너편에 있는 패러사이트의 검은 오오라와 대비되었다.

    “이건?”

    패러사이트는 유진하를 보고 멈칫했다.

    심장에다 카드를 박다니.

    “네 에너지가 전부 카드에 소모될 거다. 심장이 터져 버리겠지.”

    평생 남에게 기생해서 에너지를 빨아먹던 패러사이트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광경이었다.

    스스로 숙주가 된다?

    그것도 카드에게?

    자살 행위에 해당했다.

    “…알아.”

    유진하는 미소와 냉소가 뒤섞인 표정을 지었다.

    몸 안에서 뜨거우면서도 차가운, 좀처럼 알 수 없는 감정을 받았다.

    하얀 오오라를 머금은 유진하가 자신의 손등을 바라봤다.

    붉은빛이 발산되는 손등에는 ‘태양의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빛의 카드를 상징했다.

    “에어리스의 문양처럼…….”

    에어리스의 손등에는 검과 방패가 교차된 문양이 있었다.

    “…그랬구나.”

    이제야 유진하는 문장의 의미를 깨달았다.

    손등에서 밝게 빛나는 태양의 문양을 한동안 바라보며 고개를 들었다.

    진짜 태양은 저 하늘 높이 있었다.

    “…밝다.”

    하늘에서 쏟아지는 햇살을 마음껏 받았다.

    빛의 카드를 심장에 내재한 지금.

    햇살은 유진하에게 모여드는 에너지가 되었다.

    “빛이여.”

    손을 들어 태양을 향해 가리켰다.

    손등에 있는 붉은 태양이 진짜 태양을 가려버렸다.

    그 순간.

    유진하는 온몸으로 쏟아지는 햇살을 더욱 강하게 느꼈다.

    파아아!

    따사로운 햇살이 몸에 들어오자 따뜻하면서도 포근했다.

    긴장했던 마음조차 녹아내릴 정도로 빛은 온몸을 가득 채웠다.

    육체는 스며들어온 빛을 머금었고, 프리즘처럼 반사되는 빛깔은 무지개처럼 찬란하게 빛났다.

    “이제 됐어.”

    오색찬란한 빛마저 머금은 유진하는 고요한 눈빛으로 상대를 응시했다.

    분노와 번뇌를 초월한 듯이.

    초월적인 힘으로 바라보는 듯했다.

    “재밌군.”

    패러사이트는 흑도를 쥐고 더 강하게 검은 오오라를 발산했다.

    마치 대지를 꿰뚫으려는 듯이 하늘과 땅 위아래로 막대한 기운을 발산했다.

    “승부를 내자.”

    패러사이트는 매섭게 달려들었다.

    시공간을 갈라버리는 흑도가 긴 궤적을 그어가며 나아갔다.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 유진하는 가만히 눈꺼풀을 내리고 있었다.

    “베어버리겠다.”

    패러사이트는 무서운 기세로 흑도를 휘둘렀다.

    검은 오오라까지 머금어 일격에 갈라버리겠다는 듯이 베었다.

    충격파가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그때였다.

    유진하가 사라졌다.

    “어디?”

    패러사이트는 시야에서 유진하를 놓쳤다.

    지금까지 상대한 적들에게서 이런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놓쳤다?’

    순간적으로 당황해서 주변을 돌아보다가 뒤에서 낯선 느낌을 받았다.

    따스한 빛의 기운이 다가왔다.

    빛을 머금은 유진하는 패러사이트의 뒤에 있었다.

    조용히 한 마디를 남겼다.

    “그만.”

    작은 손이 나왔다.

    유진하가 패러사이트의 가슴을 겨누었다.

    응축된 빛의 기운이 마치 덩어리처럼 뭉쳐서 발휘되었다.

    충격파처럼 발휘되어 패러사이트를 한 방에 날려버렸다.

    “크억!”

    빛의 파동을 정통으로 맞는 순간.

    패러사이트는 손에 들었던 갓 태어난 유충을 놓쳤다.

    빙글빙글 떨어지는 유충을 보면서 패러사이트는 자신의 육체가 저 멀리 날아가는 걸 알게 되었다.

    자신의 의지와는 다르게 충격파를 맞아서 반동으로 지평선 너머를 향해서 직선처럼 쭉 나아갔다.

    초음속에 가까운 속도였다.

    “…아직이야.”

    저 멀리 나아가던 패러사이트를 보면서 유진하는 호흡을 가다듬었다.

    허공에서 떨어지는 유충 하나가 느리게 보였다.

    툭!

    유충은 바닥에 한 번 튕겼다가 다시 누웠다.

    유진하의 발 근처에서 빌빌거리는 유충이 보였다.

    “패러사이트 유충…….”

    방금 태어났음에도 유충은 최선을 다해 애벌레처럼 기었다.

    바들바들.

    유충은 숙주를 찾고 있었다.

    “생존하기 위해서 움직이는구나.”

    서로가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는 생명체였다.

    기생충은 숙주를 원했고 인간은 자유로운 생활을 원했다.

    살아남기 위해서 싸워야 했다.

    팍!

    유진하는 유충을 발로 짓밟았다.

    서로가 함께 살아갈 수 없는 존재였다.

    이것은 전쟁이었다.

    인간을 먹잇감으로 여기는 기생충 앞에선 여유조차 사치였다.

    “하아.”

    유진하는 숨을 쉬는 느낌이 나지 않았다.

    무호흡의 숨결.

    몸에서 나오는 빛이 마치 호흡에 이끌려 입속에 다시 들어갔다 나오는 느낌을 주었다.

    마치 빛이 순환하듯이 온몸에 감돌았다.

    “후우.”

    호흡을 다시 가다듬었다.

    빛의 흐름에 적응이 될 무렵.

    유진하는 고개를 들어 저 멀리 날아가는 패러사이트를 바라봤다.

    “가자.”

    빛은 광속이었다.

    아무리 빨리 날아가도 상대를 따라잡을 수 있었다.

    빠르게 튕겨가는 패러사이트에게로 나아갔다.

    아주 짧은 순간.

    섬광처럼 나아가는 빛이 되었다.

    “더 빠르게.”

    유진하는 빛의 속도로 패러사이트를 전후좌우에서 몰아쳤다.

    마치 번개가 사방에서 연속으로 몰아치는 광경과 같았다.

    끝없이 이어지는 연계였다.

    “크아아악!”

    패러사이트는 몰아치는 빛을 무수히 온몸으로 받았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빛이었다.

    유진하가 빛이었다.

    ‘이 녀석은…….’

    패러사이트는 처음으로 두려운 감정을 느꼈다.

    지금까지 만난 생명체는 항상 숙주로만 여겼고 탐스러운 먹잇감으로만 생각했다.

    이번에는 달랐다.

    ‘내가 먹힌다?’

    약육강식의 논리.

    유진하는 천적이었다.

    기생하고 지배할 존재라고 여겼던 인간에게 완벽하게 당하고 있었다.

    유진하.

    인간 하나에게 무력하게 맞았다.

    “크억!”

    공중에서 빛으로 몰아치던 유진하는 마지막으로 하늘에 솟구쳤다.

    공중으로 높이 치솟은 빛줄기가 나타났다.

    잠시 후.

    전광석화처럼 한 줄기의 빛이 그대로 내리쳤다.

    콰앙!

    섬광.

    내리꽂히는 빛줄기 속에는 유진하가 있었다.

    유진하는 일격으로 패러사이트의 상체를 손으로 누르며 번개처럼 내리쳤다.

    지면에서 지하까지 처박았다.

    “마지막이야.”

    땅에서 퍼지는 충격파가 진동하고 무수한 파편과 잔해가 퍼져나갔다.

    패러사이트는 축 늘어진 채로 뻗어버렸다.

    “후우.”

    호흡을 가다듬은 유진하는 쓰러진 상대를 바라봤다.

    패러사이트는 간부 C를 숙주로 삼았고 지금 쓰러진 사람도 당연히 C였다.

    키이익.

    괴이한 소리와 함께 패러사이트가 숙주에게서 빠져나왔다.

    녀석이었다.

    이 모든 일의 원흉인 최초의 패러사이트는 바로 이 작은 애벌레였다.

    키익.

    패러사이트 본체는 기이한 소리를 내면서 부들거렸다.

    유진하는 처음으로 녀석의 실체를 대면했다.

    패러사이트 애벌레는 우는 걸까.

    아니면 다른 걸 원하는 걸까.

    캬아아악!

    녀석은 포기하지 않았고 마지막 기력을 다해서 유진하에게 달려들었다.

    기생하겠다.

    의미 없는 저항이었다.

    콰앙.

    유진하는 최초의 패러사이트를 아까의 유충처럼 짓밟았다.

    패러사이트는 죽은 벌레처럼 땅에 짓이겨졌다.

    기생충은 그렇게 죽었다.

    “…끝났어.”

    패러사이트와 치열했던 대결은 마무리되었다.

    힘겨운 승부였으나 모든 것이 끝난 건 아니었다.

    “아직이야.”

    기생의 나무는 도시에 수십 그루가 남았다.

    수천수만의 유충의 알은 부화를 앞두고 있었다.

    최초의 패러사이트가 낳은 후손이었다.

    이 싸움은 종족 간의 처절한 생존 경쟁이었다.

    “허억. 허억.”

    유진하는 이제 기력조차 없었다.

    카드를 내재화하면서 모든 에너지를 소모했고, 몸에 모였던 빛은 서서히 빠져나갔다.

    찬란했던 빛이 사라지자 차가운 한기마저 느껴졌다.

    풀썩.

    무릎이 꺾였다.

    유진하는 모든 에너지를 잃고 그 자리에 쓰러졌다.

    목숨을 대가로 발휘한 힘이었다.

    빛은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하아. 하아.”

    따스함이 사라지자 몸이 차갑게 식어가는 육체.

    멈춰가는 심장과 서서히 감기는 눈동자에 저 멀리 기생의 나무가 만개하는 광경이 보였다.

    그렇게 유진하는 쓰러졌다.

    이 전투에서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끝내고 장렬하게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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