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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을 활용하는 1000가지 방법-82화 (82/229)
  • 82화 섬멸전(5)

    성장한 열매가 결실을 맺듯이.

    기생의 나무에는 부화 직전의 알이 잔뜩 매달려 있었다.

    저 수천수만 개가 넘는 알이 유충으로 더 태어나면 도시는 패러사이트의 부화장이 될 터였다.

    유진하는 절체절명의 순간에서 혼자 기생의 나무 최정상에 있었다.

    “패러사이트…….”

    건너편 나뭇가지에는 최초의 패러사이트가 기생의 나무를 지키고 있었다.

    마치 수호자처럼.

    기생충은 요원 C에게 기생한 채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었다.

    “가자.”

    유진하는 카드 100장을 준비하고 결전을 맞이했다.

    상대는 최초의 패러사이트였다.

    녀석은 이미 온몸에 불길한 오오라로 무장하고 있었다.

    그 눈빛은 점점 깊어지는 심해의 바다처럼 어두워졌다.

    “위치 지정.”

    유진하가 먼저 움직였다.

    양손에 있는 100장의 카드를 모두 보내서 패러사이트의 전후좌우 사방을 포위했다.

    “카드인가?”

    패러사이트는 금발의 요원 C에게 기생한 존재였다.

    원래 정부의 간부라서 최정상 실력자였고, 기생충에게 조종당하는 바람에 육체의 한계까지 넘어설 수 있었다.

    선수필승.

    유진하는 먼저 승부수를 걸었다.

    “파이어.”

    유진하는 전언 카드를 이용해서 원격으로 카드에 명령을 내렸다.

    화염 카드가 일제히 발동했다.

    “같은 수법?”

    패러사이트는 유진하의 카드술을 이미 확인했다.

    그때도 전부 파훼했던 기술이었다.

    날아드는 카드는 파리처럼 귀찮을 따름이었다.

    “어?”

    이번에는 달랐다.

    불길을 내뿜는 카드 속에서 돌격하는 자가 있었다.

    카앙!

    단검을 휘두르는 유진하였다.

    “후우.”

    카드에서 쏟아지는 화염은 모든 곳에서 쏟아지는 위력이 아니었다.

    전방위가 아니라 한쪽 입구를 열어놨는데 그쪽으로 유진하가 파고 들어왔다.

    “승부를 걸겠어.”

    유진하가 새롭게 변경한 전략이었다.

    원래는 카드만으로 전방위 포위 공격을 하는 기술이었다.

    그것만으로는 패러사이트를 상대할 수 없었다.

    카드만의 연계로 부족하다면…….

    그래서 방식을 변경했다.

    “연계.”

    유진하도 같이 합류하기로 했다.

    화르르르.

    화염은 설계한 각도대로 발휘됐다.

    유진하는 카드의 위치를 전부 알았고, 호신용 단검을 가지고 과감하게 몰아붙일 수 있다.

    형에게 비상용으로 배운 단검술이었다.

    카드와 사람의 연계술.

    “라이트닝.”

    불에 이어 번개를 발휘했다.

    이어서 얼음까지 사용했다.

    카드의 힘과 유진하가 함께 휘두르는 단검은 시너지를 발휘하듯이 호흡을 절묘하게 이뤘다.

    몰아치는 카드술.

    근접에서 베어버리는 단검술.

    유진하는 육체와 정신을 동시에 사용하는 최대의 기술을 발휘했다.

    휘몰아치는 폭풍처럼.

    단검에 모든 힘을 실었다.

    파아아!

    마침내 단도가 패러사이트의 육체를 베었다.

    카드만이었다면 저번처럼 쉽게 피했을 터였다.

    유진하는 카드와 단검술 두 가지가 혼용된 새로운 스타일로 승부했다.

    최종 연계였다.

    “이야아아!”

    유진하의 단검은 보통의 아이템이 아니었다.

    초레어.

    오베르의 단검.

    -휘두르면 단검에서 파동을 발산한다.

    파동은 충격파처럼 발휘됐다.

    연속 베기마다 파동도 같은 궤도로 쏟아졌다.

    카드에서 나오는 불, 얼음, 번개.

    그 안에서 단검을 휘두르는 유진하.

    모든 것이 어울린 한 편의 무대와 같은 종합 기술이었다.

    쿠구구구!

    최종 연계는 패러사이트에게 작렬했다.

    녀석은 모든 공격을 맞고 물러났다.

    “허억. 허억.”

    유진하는 턱 끝까지 차오르는 숨을 거칠게 토해냈다.

    정신력과 체력을 크게 소모하는 기술이라서 당장 손가락조차 움직이기 힘들 만큼 기력을 소진했다.

    “…다 한 거냐?”

    섬뜩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패러사이트는 낮은 톤으로 말을 툭 내뱉었다.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는 듯이 베인 부위를 툭툭 털어냈다.

    “허억. 허억.”

    유진하의 눈앞에서 상대는 멀쩡하게 일어섰다.

    정통으로 위력을 맞아서 패러사이트의 상체에는 분명 부상이 있었다.

    문제는 녀석이 기생충이라는 사실이었다.

    “숙주가 맞은 거지.”

    기생충은 다치지 않았다.

    숙주가 된 C의 육체만 망가졌을 따름이었다.

    “완전히 당하면 다른 생명체로 갈아탈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아직 이 육체가 맘에 드는군. 실력이 있어.”

    패러사이트는 명령을 내려서 숙주의 손을 서서히 들었다.

    그 손짓을 신호로 받자 기생의 나무에 매달린 유충의 알들이 일제히 반응했다.

    수확의 시기가 아니었음에도 유충의 알은 10여 개가 스르륵 밑으로 내려왔다.

    “저건?”

    패러사이트는 유충의 알을 받았다.

    천천히 입을 벌려 그 알을 씹어 먹기 시작했다.

    아그작. 아그작.

    소름이 돋는 소리였다.

    “번식하려고 낳은 알마저도 영양분으로 삼은 건가?”

    패러사이트는 유충의 알을 먹으면서 체력과 부상을 회복했다.

    쓸 만한 숙주라면 이렇게 수명을 연장시켰다.

    패러사이트는 끝까지 남에게 의존하면서 살아가는 존재였다.

    “숙주에는 기생하고 유충은 번식시키거나 자신의 먹이로 삼을 영양분…….”

    유진하는 다리가 후들거렸다.

    100장의 카드를 소모한 뒤에 체력마저 거의 바닥이었다.

    손에 든 단검마저 천근만근 무겁게 느껴졌다.

    “후우…….”

    패러사이트는 유충의 알을 모조리 먹어치웠다.

    숙주 C의 배가 살짝 튀어나올 만큼 포식했고, 온몸에 다시 불길한 오오라가 감돌았다.

    “끝난 거냐?”

    기생의 나무에 열린 유충의 알은 여전히 많았다.

    수확의 시간이 가까웠다.

    도시 곳곳에 자라난 기생의 나무는 수십 그루가 넘었고, 알이 전부 ‘개화’한다면 세상은 끝이었다.

    “허억. 허억.”

    유진하는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이제 남은 카드는 세 장이었다.

    몬스터 맹호를 봉인한 카드.

    빛의 카드와 중력의 카드.

    마지막 전부였다.

    “…….”

    유진하는 고민 끝에 맹호를 소환하려다가 그만두었다.

    패러사이트는 각성에 가까운 힘을 발휘하니, 맹호가 나오더라도 승산이 없었다.

    괜한 희생만 늘릴 뿐이었다.

    “가능성… 일까?”

    초레어 카드는 두 장이 남았다.

    빛의 카드와 중력의 카드였고, 두 개 중에 하나만 골라야 했다.

    “그라비티.”

    유진하는 중력의 카드를 선택했다.

    이 힘을 활용할 다음 작전을 빠르게 구상했다.

    “6G.”

    6배의 중력이었다.

    다만, 이전과 다른 방식을 사용했는데 중력을 상대에게 발산하지 않았다.

    오히려 유진하는 양손에 중력을 발동시켰다.

    마치 손아귀에서 휘어 감기듯이 중력의 힘이 양손에 모여 갔다.

    “중력장?”

    패러사이트는 서서히 모이는 중력의 파장을 눈치챘다.

    중력은 기본적으로 서로 간에 미치는 힘을 의미하는데, 중력장은 그 파장이 공간까지 확장된 영역을 의미했다.

    ‘중력장을 모아서 공간을 일그러뜨릴 수도 있어.’

    중력파는 시공간을 왜곡하는 힘이 있었다.

    유진하는 중력을 발생시켜서 압력을 수십 배에서 수백 배로 폭증시켰다.

    다행히 중력 카드의 사용자는 중력에 영향을 받지 않았다.

    그래서 이런 힘이 가능했다.

    콰과과과!

    중력장이 겹겹이 모이면서 중첩되기 시작했다.

    수백 배에서 수천 배를 넘어선 위력이 양손에 모였다.

    “해 보자.”

    유진하는 양손에 모인 중력장을 하나로 모으기 시작했다.

    막강한 중력의 힘이 모이면서 시공간을 휘어버리는 파괴력을 발휘했다.

    승부수였다.

    “으으으윽!”

    양손에서 모인 중력장이 서로 부딪치고 엄청난 파열음과 함께 강렬한 에너지가 서서히 치솟았다.

    중력장 파동.

    유진하는 천천히 양손을 내밀었다.

    중력장이 충돌하며 발생하는 모든 에너지가 패러사이트 쪽으로 향했다.

    콰드드드드.

    시공간이 비틀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 힘은 누구라도 정통으로 받아낼 수 없었다.

    패러사이트 역시 마찬가지였다.

    “커억!”

    중력장 파동이 시공간을 비틀었다.

    그 충격을 맞은 패러사이트가 송두리째 중력의 흐름에 휩쓸려갔다.

    공간이 뒤틀리는 위력을 사용하자 중력의 카드도 이제는 한계에 도달했다.

    카드가 일그러졌다.

    중력장 파동은 카드마저 망가지는 기술이었다.

    콰아아아아!

    마침내 공간이 뒤틀리는 흐름에 패러사이트를 가두었다.

    비틀린 공간의 흐름.

    빠져나올 수 없는 감옥이었다.

    “허억. 허억.”

    유진하는 더 큰 숨을 쏟아냈다.

    모든 기력이 완전히 빠져 지친 상태였다.

    두 다리가 후들거려 제대로 서서 버티기도 힘들었다.

    “…가뒀어.”

    중력장을 최대로 발휘하여 공간을 일그러뜨렸다.

    한 번 일그러진 공간은 절대 그 안에서 풀어버릴 수 없다.

    손에는 완전히 구겨진 중력의 카드가 남아 있었다.

    “…다했어.”

    중력의 카드는 비틀어진 나뭇가지처럼 구겨졌다.

    더 이상의 사용은 불가능했다.

    “허억. 허억.”

    숨조차 내쉬기 힘들 만큼 피로가 극심했다.

    카드와 근접전 단검술에 이어 중력장까지 활용했다.

    남은 기술을 모조리 투입한 전력이었다.

    콰드드드.

    그때였다.

    하늘이 찢어지는 듯한 굉음이 들려왔다.

    중력장은 공간을 비틀었으나 완전한 대처는 아니었다.

    ‘중력의 카드가 망가졌어.’

    한계를 넘어선 사용으로 카드가 망가졌으나 덕분에 패러사이트는 구겨진 공간 속에 가두었다.

    카드가 망가졌어도 한 번 휘어진 공간은 오랫동안 복구되지 않는다.

    유진하도 그 점은 알고 있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쿠구구구.”

    일그러졌던 공간이 빠르게 다시 펼쳐지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녀석이 보였다.

    패러사이트였다.

    녀석은 숙주로 삼은 C와 함께 온전한 채로 다시 나타났다.

    “뭐지?”

    유진하는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중력장으로 공간을 일그러뜨려서 가둬놨는데도 허무하게 다시 나와 버렸다.

    저 괴물이 가진 힘은 끝을 알 수 없었다.

    “검은 칼?”

    숙주가 된 C는 검은빛의 검을 손에 쥐고 있었다.

    ‘흑도’였다.

    “사용자의 반경에 무수한 궤적을 긋는다. 공간마저 벨 수 있지.”

    흑도는 사기적인 검이었다.

    검 자체의 능력만으로도 검날이 닿은 범위를 베어버릴 수 있었다.

    “허억. 허억.”

    유진하는 숨을 헐떡이면서도 눈빛에는 힘을 주었다.

    흑도의 능력을 알기에 선제적으로 공격을 퍼부었으나 패러사이트는 만만치 않은 괴물이었다.

    중력장 대 공간 베기.

    녀석은 공간의 비틀림을 흑도로 베어버렸다.

    덕분에 녀석은 그 안에 휘말리지도 않고 무사히 빠져나올 수 있었다.

    “후우.”

    한숨이 나오는 상황이었다.

    과연 현존 최강.

    마스터가 가장 강하다고 인정한 간부 요원다웠다.

    숙주가 된 C는 금발을 휘날리면서 흑도를 굳게 쥐었다.

    패러사이트가 가장 처음에 C를 만나 기생한 것은 녀석에게 최대의 행운이었다.

    “우리에게는 불행이지만…….”

    유진하는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최종 연계에 이어 중력장마저 실패했다.

    체력은 거의 바닥이었고, 손에는 빛의 카드만 남아 있었다.

    “남은 건 하나…….”

    마음이 차분해졌다.

    심해 속으로 서서히 가라앉듯이 몸이 천천히 내려가는 기분이었다.

    심장만이 박동하는 느낌만 받았다.

    ‘마지막…….’

    치명적인 패러사이트는 어떤 공격에서도 버텨냈다.

    ‘역시…….’

    유진하는 이 최초의 패러사이트를 이기려면 최후의 수단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목숨을 건 도박만이 남았다.

    ‘승리하거나 패배하거나.’

    결과는 둘 중 하나였고 대가가 필요했다.

    유진하는 마지막 승부의 가능성과 동시에 한계를 깨달았다.

    패러사이트를 없애려면…….

    자신도 목숨을 버려야 한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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