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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을 활용하는 1000가지 방법-80화 (80/229)
  • 80화 섬멸전(3)

    거대화된 대검은 D의 일섬에 의해 반으로 조각이 나버렸다.

    부러진 검을 떨어뜨린 M과 J는 패배 직전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남았다.

    “에어리스…….”

    대검을 든 그녀가 충격파를 막아줬다.

    검은 머릿결을 휘날리던 D는 태도의 검을 든 채로 에어리스를 바라봤다.

    “D…….”

    에어리스는 가냘프게 뜬 눈빛으로 상대를 바라봤다.

    D는 기생충의 숙주가 되었다.

    두뇌와 심장에 연결된 하얀 실이 숙주를 지배하는 장치였다.

    한계를 넘어선 저 움직임은 패러사이트 기생충의 짓이었다.

    “기생충은 숙주의 모든 에너지를 사용한다고 진하가 알려줬어요.”

    “녀석들의 습성이라고 우리도 듣긴 했다.”

    M은 바닥에 떨어진 중절모를 들어서 다시 눌러썼다.

    “숙주로 지배당하면 한계를 넘어설 정도로 에너지를 전부 사용한다. 그런 소리였지.”

    “맞아요.”

    에어리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패러사이트는 모든 생명체를 지배할 작정이었다.

    D는 희생자였다.

    패러사이트가 모든 에너지가 빨아 먹을 때까지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는 몸이 되었다.

    “언니…….”

    J는 온몸이 떨리는 감정을 받았다.

    움직임조차 낯선 언니 D의 모습이 공포에 가까웠다.

    하지만…….

    포기할 수 없었다.

    “아직 살아 있어.”

    심장이 뛰고 살아 있다면…….

    언니를 되찾을 희망이 있다고 믿었다.

    “유진하는? 이소민과 같이 있나?”

    “네, 지금 가고 있어요.”

    M은 침착하게 상황부터 확인했다.

    충격파를 막느라 온몸이 만신창이가 되었고 다리가 살짝 부러진 상태였다.

    사실 자리에 서기도 무리였다.

    “진하가 이곳에 있으라고 했어요. 요원들이 올 수 있다고 그랬는데 정말 그랬어요.”

    유진하의 예측은 정확했다.

    만약 에어리스가 이곳에 있지 않았다면 M과 J는 무사하지 못했을 터였다.

    “…시작됐어.”

    건너편에 있는 D가 중얼거렸다.

    도시에는 중대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어둑해진 틈에 저 멀리 기생의 나무가 마침내 만개했다.

    “드디어 열렸어.”

    도시에 뿌리를 뻗은 지금.

    불과 4시간 만에 기생충은 자신의 터전을 완성시켰다.

    기생의 나무에 매달렸던 유충의 알이 전부 개화했다.

    “번식의 시대야.”

    숙주 D는 붉은 눈을 번뜩였다.

    소름이 끼치는 눈빛으로 기생의 나무가 새롭게 여는 세상을 바라봤다.

    기생충의 번식 본능이 본격적으로 발현됐다.

    알에서 깨어난 어린 기생충은 강렬한 갈증부터 느꼈고 목마름을 해소하려면 숙주가 필요했다.

    숙주가 가진 에너지가 기생충이 좋아하는 음료수와 같았다.

    “우리가 늦었나?”

    M은 현실을 직시했다.

    이제는 절망의 시간이었다.

    도시에 남은 인간은 이제 기생충의 먹잇감으로 전락했다.

    하늘에서 퍼져나가는 패러사이트 유충은 마치 솜털처럼 바람에 실려 날아갔다.

    눈송이처럼 보이나 실제로는 악마의 솜털이었다.

    “아직이에요. 개화했을 뿐이지 모두에게 기생한 건 아니잖아요.”

    에어리스가 소리쳤다.

    패러사이트 유충은 갓 개방해서 먹잇감을 찾아가는 중이었다.

    M은 문득 한 가지를 깨달았다.

    “녀석들은 기생하는 존재야. 장점일 수도 있지만 단점이 될 수도 있겠지.”

    에어리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진하는 같은 부분을 지적하더니 먼저 갔어요.”

    기생체는 숙주에게 기생한다.

    다르게 보면 숙주가 없으면 기생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번식할 대상이 없으면 무력하다.

    그것이 유진하가 발견한 패러사이트의 결정적인 단점이었다.

    M은 같은 생각에 도달했으나 여전히 문제가 남아 있었다.

    “이론은 그럴듯한데 대책이 있나?”

    “…….”

    에어리스는 잠시 고민했다.

    아무리 유진하라 해도 짧은 시간에 저 많은 기생충의 번식을 막아내기는 무리였다.

    하지만.

    “진하는 저들에게 두 번째 단점도 있다고 했어요.”

    “두 번째 단점?”

    이번에는 J가 되물었다.

    부상의 여파가 남아서 입에서 헛구역질이 나올 것만 같았는데 간신히 참는 중이었다.

    흐트러져가는 머릿속에서 간신히 집중력을 유지하고 있었다.

    에어리스는 J에게 다가가 살짝 부축해 줬다.

    “기생 다음은 번식. 이성적인 생명체라면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 약하다고 그랬어요.”

    “그게 뭐야?”

    “정신이에요.”

    에어리스는 고개를 들어 건너편의 D를 바라봤다.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생명체.

    지배당한 숙주들은 고통도 슬픔도 감정 하나 내비치지 않는다.

    패러사이트는 감정이 없다는 소리와 같았다.

    “서로 간에 감정이 없으니 그들에게는 동료란 요소가 없어요.”

    기생충은 혼자다.

    동료가 없다.

    필요에 의한 협력은 있어도 일시적인 수준에 불과했다.

    실제로도 우리 공간에 넘어온 최초의 기생충은 단독이었다.

    “방금 부화한 분량은 있지만 지금은 수백 개에 불과해요. 나머지 나무가 개화한 것도 아니고요.”

    “아직 희망은 있다는 거군.”

    M은 빠르게 이해했다.

    많은 경험을 가진 요원들답게 비상 상황에서도 적응력이 남달랐다.

    “저 정도면 전부 막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을 거예요. 사람들한테 기생하기 전에 없애는 편이 최우선이에요.”

    “그렇군.”

    “저들은 협력이 약하니까 각개격파를 할 수 있어요.”

    “하나씩 최대한 제압하지.”

    M과 J는 부상당한 몸으로 힘겹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친 부위 때문에 걷기도 힘들었으나 여기서 머뭇거릴 틈이 없었다.

    “D는…….”

    J가 중얼거렸다.

    여전히 남은 언니에 대한 걱정이 있었다.

    에어리스는 그 마음을 알고 있었다.

    “제가 맡을게요. 반드시 여기서 막아볼게요.”

    자매는 가족이었다.

    에어리스 역시 자신과 닮은 존재를 만난 후에 같은 마음을 받았기에 오롯이 전해지는 가족의 감정을 느꼈다.

    “…부탁할게.”

    J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자리를 떠났다.

    언니 D를 남겨두고 가는 발걸음이 무거웠으나 요원으로서의 임무가 막중했다.

    같은 상황이라면…….

    아마 언니도 같은 선택을 했으리라 믿었다.

    “후우.”

    에어리스는 다시 혼자 남았다.

    상대는 D.

    패러사이트 기생충에 지배당한 숙주였다.

    “여기서 막아내겠어요.”

    에어리스는 대검을 양손에 들어 전투 자세를 잡았다.

    D는 태도의 검을 들고 그저 묵묵히 있었다.

    마치 거대한 폭풍우가 다가오듯이 고요한 기운만 솟구치고 있었다.

    이 싸움.

    패러사이트는 압도적인 상대였다.

    “한계를 넘어선 자…….”

    기생충이 숙주의 에너지를 전부 끌어내는 통에 D는 인간의 능력을 넘어선 공격이 가능했다.

    각성 상태와도 비슷했다.

    “후우.”

    숙주 D는 한계 너머의 힘을 사용했다.

    그런 힘을 계속 사용하면 당연히 D의 육체와 정신은 서서히 망가질 터였다.

    스스로 자신의 모든 에너지를 소모하다가 결국 죽음에 이를 것이었다.

    “에너지를 쭉 빼앗기다가 마지막에는 버려진다고 그랬어요.”

    유진하가 해준 말이었다.

    기생충은 숙주의 에너지를 다 먹어 치운 후에 다른 존재에게로 넘어간다고.

    “하아.”

    한계마저 초월한 위력은 에어리스조차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었다.

    D는 최대의 힘을 발휘하려는 듯이 태도의 검을 검집에 넣고 자세를 잡았다.

    상체를 숙인 채로 정면을 매섭게 노려봤다.

    언제라도 뽑을 듯이 매서운 기세였다.

    일섬.

    에어리스는 알고 있었다.

    단 한 번 결정적인 일격의 승부가 예정됐다.

    “해보겠어.”

    에어리스는 충전식 목걸이에서 에너지를 받았다.

    속성 부여 건틀릿에서는 번개의 힘을 부여했다.

    전신에 흐르는 에너지와 번개의 파동이 동시에 감돌기 시작했다.

    승부였다.

    이때 에어리스는 어렴풋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가는 느낌을 받았다.

    어쩌면 피하고 싶었던 감정일 수도 있었다.

    ‘죽음…….’

    죽음의 감정이란 알 수 없었다.

    공포? 두려움?

    어떤 것으로도 정의를 내리기가 힘들었다.

    살아 있음이 무엇이라 말하기 어렵듯이 죽음도 마찬가지였다.

    이 짧은 거리.

    D와 마주하는 지금.

    삶과 죽음이 교차되는 순간이었다.

    “하압!”

    에어리스는 힘을 최대한 끌어냈다.

    하지만 이전에도 그랬듯이 기력의 차이는 명백했다.

    D의 기운이 활활 타오르는 모닥불이라면 에어리스의 것은 겨우 작은 횃불에 불과했다.

    “하아아아!”

    에어리스는 필사적으로 모든 힘을 끌어 모았다.

    냉소적인 D는 표정 변화 없이 모든 에너지를 모았다.

    이대로는 이기지 못한다는 사실을 에어리스도 알고 있었다.

    “문장?”

    에어리스는 자신의 손등에 있는 문양을 바라봤다.

    검과 방패가 교차된 문장이었는데 희미하게 서리는 기운이 보였다.

    “어쩌면…….”

    예전에는 이 문양이 에어리스의 과거를 알려주는 ‘열쇠’라고 생각했다.

    어떤 가치가 있는지 몰랐다.

    그저 몸에 새겨진 문신으로만 여기고 있었다.

    “문양에서 빛이 난다면 혹시…….”

    지금은 사뭇 느낌이 달랐다.

    저 기운은 마치 힘의 원천으로 느껴졌다.

    ‘문장에도 힘이 있다.’

    상점 아저씨가 해준 말이었다.

    ‘이 문장은 비싸게 구한 거다. 대검에 붙여줄 테니 잘 써봐.’

    문장에 힘이 있다.

    심지어 에어리스의 손등과 비슷한 문양이 대검에 새겨진 상태였다.

    문양은 힘.

    그렇다면…….

    파앙!

    에어리스가 생각하는 동안 패러사이트 D는 전투태세를 갖췄다.

    강렬하게 발산하는 에너지가 초월적인 힘으로 발휘됐다.

    각성한 힘의 일격.

    일섬 최대치였다.

    콰앙!

    초음속의 속도가 터질 때처럼 막대한 굉음이 발생했다.

    광대한 충격파와 함께 D의 일격이 지평선을 베듯이 매섭게 나왔다.

    카아앙!

    검과 검이 맞서는 강렬한 충격.

    엄청난 파장이 몰아쳤다.

    “으윽!”

    에어리스는 이전 대결에서 일섬을 본 적이 있어서 간신히 대검으로 버텨내고 있었다.

    충격파의 엄청난 진동이 온몸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이번에는 상황이 달랐다.

    첫 번째 일격에 불과했다.

    이섬.

    곧바로 방향을 튼 두 번째 검이 다가왔다.

    각성에 달하는 최대화된 발도술은 일격이 아니었다.

    연속 베기였다.

    삼섬.

    사섬.

    순식간에 번개가 좌우로 몰아치듯이 계속 치고 갔다.

    오섬.

    육섬.

    칠섬.

    연계는 일곱 번이나 이어졌다.

    초음속에 가까운 속력으로 일곱 번을 지나치며 벤 것과 같았다.

    그 파괴력은 하늘까지 치솟았고 검날이 만들어낸 하얀 빛의 충격파가 터져 나왔다.

    지잉.

    태도의 검이 이명처럼 진동했다.

    검에도 무리가 갈 정도의 파괴력인데도 결국은 견뎌냈다.

    확실히 명검이었다.

    “말살…….”

    D는 작게 중얼거렸다.

    베기가 지나간 자리는 마치 진공처럼 조용해졌다.

    D를 지배하는 패러사이트는 검을 휘두른 다음에 공백같이 흘러가는 시간이 맘에 들었다.

    아무도 없는 고요함.

    상대였던 에어리스 역시 흔적조차 남지 않았다.

    이제는 혼자였다.

    전투가 끝나고 홀로 남으면 승자의 시간만이 남는다.

    패자는 사라졌기에.

    “하압!”

    그때, 하늘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공중에 있던 D보다 더 위에서 터진 음성이었다.

    “어째서?”

    에어리스가 위에 있었다.

    하늘 높은 곳에 날아올랐다.

    ‘저 높이에 살아 있다?’

    그랬다.

    에어리스는 각성한 일섬의 베기에 익숙했다.

    7번으로 횟수가 늘어났어도 어차피 같은 기술의 연속일 따름이었다.

    ‘타이밍을 안다면 피할 수 있어.’

    일곱 번의 일섬 베기가 나올 때마다 에어리스는 매번 타이밍에 맞춰 뛰어올라 검날을 밟았다.

    그렇게 더 높이 치솟았다.

    한 번. 두 번. 세 번…….

    마지막 일곱 번까지.

    “그럴 수가…….”

    에어리스는 신속의 움직임을 보였다.

    ‘힘의 원천이 되는 문장.’

    대검에 붙은 쌍단검의 문장은 기력을 높여주는 능력을 보유했다.

    패러사이트가 숙주의 에너지를 끌어내듯이 에어리스도 문장에서 에너지를 끌어냈다.

    초월적인 기운.

    에어리스와 숙주 D는 서로가 그런 힘을 사용했다.

    그리고 지금.

    에어리스가 우위에 섰다.

    “하아아압!”

    손등의 문장에서도 빛이 발현됐다.

    대검에 새겨진 문장과 마치 공명하듯이 같은 빛을 발산했다.

    “지금.”

    에어리스는 하늘에서 일격을 내리쳤다.

    공중에서 D는 그 막강한 위력을 받아내지 못하고 그대로 땅에 직격했다.

    엄청난 위력이 작렬하고 충격파가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이겨내겠어요.”

    승부는 극적으로 뒤집혔다.

    숙주 D는 태도의 검을 놓쳤고 모든 힘을 잃었다.

    “허억. 허억.”

    움직이지 않는 D를 보면서 에어리스는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찰나의 대결이었다.

    한계 너머의 극한에 도달한 전투를 벌인 탓에 에어리스는 온몸에 격렬한 고통을 받았다.

    아직은 자주 사용하기에 무리라는 걸 깨달았다.

    “D…….”

    에어리스가 그녀의 상태를 걱정하며 자세를 숙일 즈음이었다.

    쓰러졌던 D가 갑자기 눈을 번뜩 떴다.

    파앗!

    D의 육체에서 기생했던 패러사이트 기생충이 몸에서 빠져나와 정체를 드러냈다.

    기습이었다.

    기생충이 에어리스에게 확 달려들었다.

    “아!”

    D의 육체가 괴멸 상태가 되자 이제는 에어리스에게 기생하려고 시도했다.

    기생은 더 강한 자를 원한다.

    패러사이트의 본능이었다.

    파악!

    에어리스는 얌전히 숙주가 될 생각이 없었다.

    달려드는 기생충을 향해서 대검을 휘둘렀다.

    일격을 맞은 패러사이트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진하가 이미 경고했어요.”

    패러사이트가 숙주에게 달려드는 습성은 유진하한테 경고를 받았다.

    마지막에는 기습적으로 덤빌 테니 반드시 대비하라고 했다.

    “이겼어요, 진하.”

    그제야 에어리스는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D는 다행히 숨을 쉬고 있었다.

    에어리스는 극적으로 승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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