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을 활용하는 1000가지 방법-77화 (77/229)
  • 77화 패러사이트(3)

    C는 정장을 입고 말끔한 차림으로 있었다.

    정신과 육체가 패러사이트 기생충에게 지배당한 터라, 겉은 멀쩡해도 속은 뭉개진 상태였다.

    새로 태어난 후손 기생충은 D를 숙주로 삼았다.

    그들의 목표는 ‘마스터’였다.

    “유진하와 에어리스. 두 명에게서 마스터의 위치를 알아낸다.”

    패러사이트 C는 빌딩 옥상에서 밑을 내려다봤다.

    유진하, 에어리스, 이소민이 시내를 걸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에어리스는 잠시 당황하는 모습을 보이더니 이내 상점으로 되돌아갔다.

    뭔가를 놓고 온 듯이 다급하게 달렸다.

    “기회가 왔다.”

    C는 일행에서 떨어진 에어리스에 주목했다.

    유진하와 에어리스가 목표였는데 둘이 흩어졌으니 하나씩 잡을 기회가 생겼다.

    “잡으러 가자.”

    C는 결정을 내렸다.

    패러사이트가 빌딩에서 막 내려가려는 즈음이었다.

    누군가 높이 점프해서 옥상에 착지했다.

    “당신들은 누구죠?”

    바람에 휘날리는 금발.

    연약해 보이는 외모를 가졌으나 등에는 커다란 대검을 멘 여자.

    에어리스였다.

    “누군데 우리를 지켜보는 건가요?”

    옥상은 칠흑처럼 캄캄했다.

    에어리스는 옥상에 두 명이 있다는 건 알았지만 상대가 누군지는 몰랐다.

    다만, 그들의 육체에서 느껴지는 기운은 정상이 아니었다.

    에어리스의 눈동자에는 상대의 몸에 자리 잡은 이상한 빛이 보였다.

    마치 그들의 육체 내부에 거미줄처럼 작은 실이 마구잡이로 뻗은 듯했다.

    “대체 당신들은?”

    먹구름 속에 파묻혀 있던 달빛이 살짝 고개를 내밀자 옥상이 잠시나마 환해졌다.

    “아…….”

    에어리스는 그제야 상대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양복을 입은 두 사람 중에서 한 명은 확실히 알았다.

    D였다.

    검은 생머리를 휘날리는 태도(太刀)의 달인이 확실했다.

    “당신이 왜?”

    “…….”

    D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의 몸에 서린 하얀 실은 두뇌와 심장에 얽혀 있었다.

    매우 얇아서 에어리스가 아닌 보통 사람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에어리스!”

    유진하는 바람의 카드를 사용해서 옥상까지 날아 올라왔다.

    “진하, 왔군요.”

    “바람 카드를 처음 사용해 보는데 그럭저럭 괜찮네.”

    바람 카드로 이동하는 기술은 J의 전매특허 기술이었다.

    바람의 힘을 잘 활용하면 빠른 움직임이나 높은 곳으로 이동할 수 있으나, 잘못 쓰면 벽에 부딪쳐서 크게 다칠 수도 있었다.

    “노하우를 배운 덕분이야. 균형 감각을 잘 유지하는 방법을 직접 배웠거든.”

    J는 바람 카드의 활용에 대해서 기술적 조언을 아낌없이 해주었다.

    흔들리는 바람 속에서 몸의 자세를 유지하는 방법이 노하우의 핵심이었다.

    넘어지고 쓰러지기를 끝없이 반복한 끝에 직선적인 움직임까지는 터득했다.

    J처럼 바람 변속이나 회전 궤도까지는 무리이지만 옥상까지 날아오르는 단계는 충분히 가능했다.

    “누가 우리를 노리나 했더니…….”

    유진하는 누군가 위에서 살펴본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뛰어난 관찰력으로 주변의 반경을 항상 꼼꼼히 살펴보는 버릇이 있던 덕분이었다.

    다음 대처는 간단했다.

    귓속말로 몰래 에어리스에게 알려주고는 상점 뒷문으로 넘어가서 곧바로 옥상을 가라고 시켰다.

    “진하, 뭔가 이상해요. 저 사람들한테 얇은 실 같은 게 연결되었어요. 머리와 심장이에요.”

    “실이 연결되었다고?”

    유진하의 눈에는 보이지 않았다.

    아마 에어리스에게만 보일 만큼 매우 작은 실체라고 여겼다.

    심장과 머리에 연결된 실이라니.

    불길한 징조처럼 느껴졌다.

    절그럭. 절그럭.

    빌딩의 벽을 타고 오르는 거친 쇠 발굽 소리가 들렸다.

    쾌속의 사바톤 부츠를 신은 이소민이었다.

    “후아, 내가 가장 늦었네.”

    이소민은 고속 부츠에 이어 물리 대미지 면역 방어구를 착용한 채로 나타났다.

    “유진하, 상대는 둘인 거지?”

    “네.”

    상대는 간부 C와 D였다.

    마스터의 지시를 받는 정부 요원들이 특별한 이유도 없이 유진하 일행을 뒤쫓을 리가 없었다.

    심지어 D와는 알카트로스 소탕전을 함께한 동료였다.

    “D, 괜찮으세요?”

    에어리스가 조심스레 물어봤다.

    D의 표정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원래도 침착한 자세를 유지하던 요원이었으나 지금은 느낌이 사뭇 달랐다.

    살아 있는 사람이라면 눈꺼풀이 움직이거나 작게 손짓이라도 움직이게 마련인데 미세한 떨림조차 없었다.

    마치 마네킹처럼 동작 자체가 굳어있었다.

    “D가 아닌 거 같아.”

    이소민도 강한 위화감을 받았다.

    패러사이트 C는 입을 열었다.

    “잘됐다. 어차피 너희를 찾으러 갈 생각이었는데 알아서 와줬어.”

    “우리를……?”

    유진하는 양손에 100장의 카드를 꺼냈다.

    가장 중요한 빛의 카드와 중력의 카드가 함께 있어서 승산이 있다고 판단했다.

    여차하면 선제적으로 사용할 작정이었다.

    “왜 우리 뒤를 밟은 거죠?”

    “마스터의 위치…….”

    유진하는 멈칫했다.

    C는 굳은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녀석이 어디 있는지 말해라.”

    상대는 정부의 간부 C와 D였다.

    그들이 마스터의 위치를 찾으려고 유진하를 뒤쫓는다?

    이해가 안 가는 상황이었다.

    “당신들 누구지?”

    유진하는 차가운 눈매로 노려봤다.

    아까 에어리스가 했던 얘기가 계속 머릿속에 맴돌았다.

    -심장과 머리에 작은 실이 연결되었다.

    그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고민하다가 하나의 가정을 떠올랐다.

    “C와 D를 조종하는 건가.”

    “네?”

    에어리스는 깜짝 놀라서 화급하게 고개를 돌렸다.

    얇은 실이 두 사람의 심장과 머리를 연결하고 있었다.

    심장은 육체.

    머리는 두뇌.

    이 두 개를 지배한다면 그 사람 자체를 가질 수 있었다.

    “기생충. 패러사이트.”

    유진하는 상대의 정체를 단숨에 알아차렸다.

    기생하는 존재.

    정체를 알 수 없는 패러사이트가 이곳에 나타났다.

    “유진하는 두뇌가 좋다더니 확실히 그렇구나.”

    패러사이트 C는 무표정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동공이 전혀 움직이지 않아서 플라스틱 인형처럼 딱딱한 자세를 유지했다.

    “마스터를 찾는 이유는 뭐지? 이 공간을 없애려는 건가.”

    “똑똑한 너라면 이미 알아차렸을 텐데?”

    C는 냉소적이었다.

    이 모든 계획의 주동자 패러사이트답게 자신만만했다.

    ‘기습?’

    만약 저 녀석이 마스터한테까지 ‘기생’한다면 대체 어떻게 될까.

    유진하는 최악의 가능성을 떠올리자 순간적으로 간담이 서늘해졌다.

    소름 끼치는 상상이었다.

    “설마…….”

    그 이상도 가능했다.

    녀석의 목적이 마스터라면 공간 전체에도 영향력을 끼치기를 원할 수도 있었다.

    최종 목적은 분명했다.

    [공간 자체에 기생한다.]

    “이제 알았나?”

    유진하는 마치 속마음을 들킨 듯이 소름이 확 들었다.

    정답이었다.

    “생명체 하나가 아니라 여기 모든 것에 기생하고 싶은 거라고?”

    “…….”

    패러사이트는 침묵으로 긍정했다.

    사실이었다.

    패러사이트에게 ‘기생’이라는 관념은 몇 단계를 거쳤다.

    첫 번째는 생명체.

    두 번째는 터전.

    세 번째는 공간의 모든 것.

    시작은 생명체에 기생했다가 점점 스케일을 키워 나간다.

    하나의 생명체가 아니라 공간 전체에 ‘기생’해서 쪽쪽 빨아먹기를 원했다.

    그 욕심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기생은 숙주가 필요해. 다 먹으면 껍데기만 버리는 거고.”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패러사이트는 우리 공간에 기생해서 모조리 빨아먹고 쓰레기처럼 버릴 계획이었다.

    공간의 패러사이트.

    녀석은 한계를 모르고 기생하는 존재였다.

    “마스터의 위치를 말해라.”

    “그건 아무도 몰라. 누구한테도 알려주지 않으니까.”

    마스터는 자신의 위치를 절대 알리지 않는다.

    항상 마스터 쪽에서 먼저 연락하고 찾아오곤 했다.

    급한 연락을 보내도 마스터가 확인한 후에야 답변할 뿐이었다.

    이쪽에서 불러도 절대 오지 않는다.

    “마스터를 찾지 못한다면 불러내는 것도 방법이지.”

    패러사이트는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렸다.

    녀석은 모두가 생각하는 그 이상을 계획하고 있었다.

    “내가 뿌린 씨앗이 있다.”

    패러사이트는 손을 뻗었다.

    살짝 쥐었던 손을 펴자 마치 민들레 씨앗처럼 작은 존재들이 바람을 타고 날아갔다.

    수백 개가 넘는 씨앗이 밤하늘을 나부끼는데 그중 하나가 이곳 옥상에 떨어졌다.

    “저건?!”

    바닥에 떨어진 씨앗은 순식간에 거대한 뿌리를 내렸다.

    어마어마해진 뿌리가 덤불처럼 빌딩을 뒤덮고 사방으로 뻗어나갔다.

    마치 생명의 나무처럼 세상을 뒤덮을 존재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번식인가?”

    유진하는 패러사이트의 계략을 깨달았다.

    패러사이트는 기생 욕구에 이어 번식 욕구도 상당했다.

    마스터를 잡지 않아도 이곳 전체를 뒤덮으면서 공간을 실질적으로 지배할 수 있었다.

    “막아내겠어요.”

    에어리스는 다른 씨앗이 퍼지는 걸 막으려고 재빨리 대검을 휘둘렀다.

    파앗!

    몇 개의 씨앗을 베어버렸으나 전체를 다 가르기에는 무리였다.

    “에어리스, 위험해.”

    순간적으로 패러사이트가 움직였다.

    숙주가 된 D는 태도의 검을 꺼내어 재빠르게 휘둘렀다.

    ‘저 기술은?’

    에어리스와 D는 한동안 연습을 계속한 사이였다.

    발도술에서 이어지는 D의 일섬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의 속도와 기세가 달랐다.

    이전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위력이었다.

    ‘막아야 할까. 피해야 할까.’

    에어리스는 순간적으로 몸을 돌려 밑으로 내려갔다.

    일섬.

    D의 베기가 발동했다.

    검의 위력은 가공할 수준이었다.

    콰아앙!

    단 한 번의 일격으로 옆 건물을 깨끗하게 갈라버렸다.

    마치 나무를 베듯이 건물을 단면으로 잘라서 무너뜨렸다.

    “뭐, 뭐야!”

    지켜보던 이소민은 깜짝 놀라 당황했다.

    절단면이 깔끔하게 남도록 건물을 베는 검술이라니.

    태어나서 처음 보는 경지였다.

    타악!

    공중에서 내려온 D는 고고한 자세로 옥상에 섰다.

    눈빛조차 흔들리지 않고 깔끔했다.

    지배당하는 숙주는 명령이 없으면 눈꺼풀조차 움직일 수 없었다.

    그게 운명이었다.

    “번식은 막을 수 없다.”

    퍼져나간 씨앗은 밤공기를 타고 이리저리 흩어졌다.

    서울 곳곳에 씨앗이 내려앉자마자 순식간에 뿌리를 틔웠다.

    건물과 도로 사이를 비집고 뻗어나간 뿌리는 서서히 뭉치더니 줄기가 되어 솟아올랐다.

    “이곳이 거점이 될 거다.”

    패러사이트.

    처음에는 녀석 혼자만 넘어왔다.

    기생충은 생명체에 기생하는 수준이 아니었다.

    세상 전체에 기생하기를 갈망했다.

    모든 존재에 빨대를 꽂고 쭉쭉 빨아먹은 후에 쭉정이처럼 빈 육체만 남기고 버린다.

    기생충의 삶이었다.

    ‘공간의 패러사이트’.

    한계를 모르고 기생하는 존재였다.

    유진하는 불현듯 깨닫고 있었다.

    ‘최대의 재앙을 맞이했어.’

    차원문을 열고 침입한 패러사이트.

    녀석은 기생의 나무를 심어서 번식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나무의 줄기 끝에는 벌써 희미한 열매가 매달렸다.

    “저건?”

    나뭇가지 끝에 대롱대롱 매달린 열매는 작은 사과처럼 빛나고 있었다.

    ‘유충의 알’이었다.

    “저게 부화하면 망하겠지?”

    항상 씩씩하던 이소민조차 도시 곳곳에 퍼져 버린 기생의 나무를 보고 소름이 돋았다.

    패러사이트의 번식력은 빨랐다.

    “세상이 부화장이 되겠어.”

    인간이 벗어나지 못할 부화장.

    저 많은 유충의 알이 깨어나면 절망 속의 사람들을 모조리 지배할 터였다.

    “패러사이트…….”

    유진하는 위급한 상황을 깨닫고 있었다.

    패러사이트와 인간은 생존을 위한 게임을 시작했다.

    지배하느냐. 지배당하느냐.

    서로의 생존을 건 대결이었다.

    이제는 방어전.

    모두의 명운을 건 승부를 맞이하고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