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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을 활용하는 1000가지 방법-76화 (76/229)
  • 76화 패러사이트(2)

    어두운 밤.

    빌딩의 옥상에는 두 명의 요원이 있었다.

    크게 불어오는 바람 속에서 요원 D는 검은 생머리를 휘날리며 태도(太刀)의 검을 들고 옥상에 있었다.

    “오늘 일은 끝났어.”

    옆에 있던 동생 J 역시 바람결에 흐트러지는 붉은 머리카락을 정돈했다.

    D와 J 자매 요원은 서로 여전히 냉랭한 기운이 남아 있었다.

    “마무리됐으면 돌아가도 될까?”

    J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언니와 동생 사이인데도 평생을 경쟁하던 사이였다.

    심지어 두 사람은 성격도 정반대였다.

    말수가 적고 침묵하는 언니 D.

    사람 만나기를 좋아해서 활달한 동생 J.

    최근 알카트로스 소탕전에서 환상적인 호흡을 보여줬으나 그날뿐이었다.

    엇갈린 감정은 쉽게 이어지지 않는 법이었다.

    “돌아가도 돼. 어차피 오늘 할 일은 끝났으니까.”

    “…알았어.”

    두 사람에게는 마음을 풀어놓을 시간이 더 필요했다.

    ‘유진하, 이 녀석.’

    J는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어색한 언니와 굳이 같은 팀으로 배치받은 이유는 유진하가 건의한 탓이었다.

    ‘D와 J는 한동안 같이 일하게 해주세요.’

    마스터는 그 의견을 곧바로 받아들였다.

    하루 업무 시간에 무조건 자매가 같이 있게 되었다.

    지금도 내내 함께 일하다가 겨우 퇴근하는 길이었다.

    “그럼 나 먼저 간다.”

    “…….”

    J는 예의상 인사를 남기고 먼저 돌아갔다.

    옥상에 혼자 남은 D는 잠시 밤의 야경을 바라봤다.

    검을 손에 쥔 채로 한동안 혼자만의 시간을 가졌다.

    “…쓸데없는 감상이겠지.”

    D는 사색의 시간을 중요하게 여겼다.

    고된 요원의 업무 속에서 하루를 버티기 위해 휴식이 필요했다.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혼자 있을 수 있는 곳을 좋아했다.

    옥상의 야경은 최적의 장소였다.

    “동생이랑 온 건 처음이었어.”

    D는 얼핏 쓴웃음을 짓다가 이내 무뚝뚝한 표정으로 돌아왔다.

    동생 J와는 어색한 사이였고 단번에 해소될 문제는 아니었다.

    오늘도 자신만의 휴식 장소에 동생을 데려왔지만 더 얘기를 나누지는 않았다.

    아직은…….

    동생과 어려웠다.

    “언젠가 나아지겠지.”

    바람에 휘날리는 긴 머리카락이 자꾸 시야를 가렸다.

    D의 눈동자는 머리카락에 가려졌다가 나타나기를 반복했다.

    옥상에서 야경을 보며 세상을 지켜봤다.

    그때였다.

    “누구?”

    낯선 사람의 등장에 D는 경계심을 내비쳤다.

    손에 쥔 태도의 검을 움켜잡았다.

    “나야.”

    “당신은……?”

    나타난 사람은 C였다.

    ‘크로우’라는 별명으로도 유명한 최고 실력의 간부였다.

    D와는 동기였고 가장 의지하는 동료 요원이기도 했다.

    “잘 있었어?”

    금발의 C는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고 있었다.

    아는 사람이 나타나자 D는 경계심을 풀었다.

    “역시 D는 여기 있을 줄 알았지.”

    “웬일이야. 날 찾아오는 일은 자주 없잖아.”

    속으로 기뻤으나 D는 차분한 표정을 유지했다.

    D가 혼자서만 즐기는 장소였고 몇몇 사람들만 이곳을 알고 있었다.

    동생 J와 동기 C.

    두 사람뿐이었다.

    “C도 쉬려고 온 거야?”

    “그럴지도…….”

    고개를 돌린 C가 저 멀리 야경을 바라봤다.

    감상에 잠긴 얼굴은 아니었다.

    무의미한 표정에 차분한 눈빛으로 일관했다.

    D는 평소와 다른 느낌을 받았다.

    “…왜 왔어?”

    원래 C는 장난도 가끔 치는 미남 요원이었다.

    격의가 없을 만큼 가장 친한 사이였는데 지금은 어색함이 있었다.

    미묘했다.

    “마스터를 만나고 싶어.”

    “마스터?”

    D는 말끝을 줄였다.

    표정에는 어떤 감정도 담지 않았으나 속으로는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C가 한 말…….

    그것은 결코 쉽게 넘길 수 없는 말이었다.

    “…너 누구지?”

    D는 곧바로 검을 빼서 겨누었다.

    금발의 C를 향해 녀석의 심장을 검 끝으로 정확하게 가리켰다.

    “요원들은 절대 마스터의 위치를 묻지 않아. 너 정체가 뭐지?”

    암묵적인 룰이었다.

    요원들은 절대 마스터에 대해서는 묻지 않는다.

    진짜 C라면 그걸 모를 리 없었다.

    “마스터를 빨리 찾기는 역시 어려운 건가.”

    C는 부정하지 않았다.

    그의 심장과 머리는 이미 패러사이트 기생충에 지배당한 상태였다.

    패러사이트는 자신이 기생한 숙주의 기억도 읽을 수 있다.

    ‘마스터.’

    기억을 본 덕분에, 이 공간의 주인이 마스터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요원들끼리 마스터의 정보를 공유하지 않는다는 규칙은 물론 알고 있었다.

    다만, 마스터를 빨리 찾고 싶어서 일부러 물어본 거였다.

    “누구냐.”

    D는 얕은 계략에 넘어갈 만큼 만만한 요원이 아니었다.

    “대체 넌 누구지?”

    “나는 C다.”

    패러사이트는 일부러 C의 흉내를 내면서 마스터의 위치를 계속 알아내려 들었다.

    기생한 숙주를 이용해서 녀석처럼 말을 하고 흉내 냈다.

    영리한 위장술을 펼칠 만큼 패러사이트는 이성적인 존재였다.

    “마스터의 위치를 모른다면 다른 녀석에게 가보도록 하지.”

    “뭐라고?”

    C는 흑도를 꺼내더니 강한 살기를 발산했다.

    강한 위협을 받은 D는 지금 상황 자체가 너무나 혼란스러웠다.

    아무리 봐도 눈앞의 저 사람은 분명 C였다.

    바람에 흔들리는 금발과 하늘처럼 푸른 눈빛, 날렵한 콧날로 이어지는 미남형의 외모까지 판박이였다.

    검은빛의 검.

    흑도 역시 진품이었다.

    ‘분명 C가 맞는데. 아니라면 대체 누구지?’

    D는 혼란에 빠져 고민했다.

    배신일까?

    아니면 누군가의 변장일까?

    정답은 알 수 없었다.

    지금은 이 정체불명의 자를 제압하는 일을 최우선이라 판단했다.

    “움직이면 베어버리겠어.”

    D는 얇고 가느다란 태도를 양손에 쥐었다.

    경고를 날린 후에 곧바로 전투태세에 들어갔다.

    “와라.”

    미동조차 하지 않던 C가 흑도를 겨누더니 기운을 발휘했다.

    긴장한 눈빛의 D가 한 걸음을 앞으로 내디뎠다.

    ‘정말 C가 상대라면…….’

    승산이 많지 않았다.

    녀석은 현재 요원 중에서 최고의 실력자에 속했다.

    물론 D도 만만치 않은 강자였으나 C의 능력은 그보다 한 수 위였다.

    승부를 보려면 초반에 전력을 쏟아부어 결판을 지어야 했다.

    발도술 일섬.

    승부는 찰나였다.

    이마의 식은땀이 한 줄기 흘러 볼을 타고 흘렀다.

    D는 결심을 굳히고 선제적으로 나섰다.

    모든 힘을 실은 일격을 준비했다.

    땀방울이 땅바닥에 닿기도 전에 D가 앞으로 치달았다.

    카앙!

    엄청난 파열음이 발생했다.

    전광석화 같은 돌격이었다.

    발도술 일섬은 치명적인 일격을 내뿜었다.

    바람마저 갈라버리는 위력이었다.

    “대단한 위력이야.”

    C는 차분하게 대답했다.

    전력으로 날린 D의 일섬을 겨우 손가락 하나로 가볍게 받아냈다.

    믿을 수 없는 결과였다.

    “이렇게 쉽게 막혔다고?”

    크게 벌어진 D의 눈동자가 서서히 절망감을 담기 시작했다.

    “대체 누구야, 너!”

    C는 강자였으나 D도 만만치 않은 실력자였다.

    대련에서 막상막하의 치열한 승부를 치를 정도는 되었다.

    그런데 지금은 무기조차 쓰지 않았다.

    겨우 손가락 하나로 막다니 이렇게 극적인 실력 차이는 아니었다.

    “지배하면 숙주의 한계를 풀어버릴 수 있다.”

    C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기계음처럼 껄끄럽고 소름이 끼치는 음성.

    패러사이트의 것이었다.

    “육체와 정신의 제한을 풀어버리면 10배는 더 강해지지.”

    믿기지 않는 차이였다.

    C는 거의 괴물과 같았다.

    순식간에 D의 뒤로 가더니 손날을 날렸다.

    목을 맞자 D는 정신이 아득해졌다.

    “아!”

    짧은 비명이 터져 나왔고 눈동자가 핑 돌았다.

    순식간에 에너지를 전부 잃은 듯이 모든 것이 무너져 내렸다.

    그 순간.

    D의 머릿속에는 하나의 생각이 떠올랐다.

    ‘동생이… 이 자리에 없어서 다행이야.’

    J가 떠올랐다.

    동생의 붉은 머릿결조차 싫어하는 줄 알았는데.

    ‘왜 마지막에 동생이 떠올랐을까.’

    정신을 잃어가며 D는 바닥에 풀썩 쓰러졌다.

    완벽하게 제압당했다.

    “…강자가 이 정도인가.”

    패러사이트는 쓰러진 D를 아무렇지 않게 내려다봤다.

    녀석은 무심한 눈빛을 지었다.

    “혼자서는 많은 일을 할 수 없어. 이제부터 동료를 늘려야겠어.”

    기생충은 생존 욕구에 이어 번식 욕구가 있었다.

    종족을 유지하려는 의지였다.

    기생한 존재의 에너지를 소모시켜서 자신의 후손인 기생충을 더 만들어낼 수 있었다.

    ‘번식’이었다.

    파아.

    C의 손에서 하나의 빛이 발현되자 새롭게 기생충 유충 하나가 태어났다.

    지구에서 처음 태어난 패러사이트 후손이었다.

    “자, 가라.”

    C는 손에서 털어내듯이 애벌레처럼 생긴 유충을 밑으로 떨어뜨렸다.

    새로운 패러사이트 유충은 쓰러진 D의 어깨에 내려앉자마자 곧바로 육체 내부로 스며들었다.

    “새로운 숙주이다.”

    쓰러진 D는 정신을 잃고 기절한 상태였다.

    잠시 후.

    갑자기 눈을 크게 뜨더니 초점 잃은 표정으로 몸을 일으켰다.

    “…….”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D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인형처럼 무뚝뚝하고 담담했다.

    이제 그녀는 D가 아니었다.

    기생충의 숙주에 불과했다.

    “공간의 주인을 찾아야 한다. 녀석을 빼앗아서 이곳을 내 차지로 만들어야지.”

    패러사이트는 숙주를 지배했다.

    도시의 야경 아래에서는 점점 불온한 움직임이 커지고 있었다.

    두 명의 패러사이트는 본격적으로 새로운 목표를 떠올렸다.

    “마스터와 가장 잘 아는 자에게 가면 된다.”

    패러사이트 C가 중얼거렸다.

    이제는 숙주가 된 D도 기억을 되짚으며 다음 탐색 대상을 떠올렸다.

    “유진하, 에어리스. 이들에게 가면 알 수 있어.”

    패러사이트들은 도시의 지평선 너머를 바라봤다.

    다음 목표는 저곳에 있었다.

    밤의 장막 너머에서 새로운 위협이 서서히 피어오르고 있었다.

    * * *

    “오랜만에 재밌게 봤어요.”

    에어리스는 밝은 얼굴로 영화관에서 나왔다.

    로맨스보다는 액션 영화를 좋아했는데 마침 기대작이 나왔다.

    “정말 재밌었어요. 주인공이 휙휙 움직이는 모습이 많은 도움이 됐어요.”

    에어리스는 영화 주인공이 선보이는 액션신을 특히 좋아했다.

    영웅들의 화려한 전투를 참고해서 전투에서 활용하려고 맹연습을 하기도 했다.

    “저걸 또 따라서 하려나.”

    이소민은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서전트 점프와 벽 타기.

    에어리스는 액션 연습에 집중하면 동네를 모조리 헤집고 다녔다.

    의욕과 자신감이 넘쳤던 터라 활발하게 움직였다.

    “저번에도 그랬다가 신고랑 민원도 받고 정신이 하나도 없었잖아.”

    가끔 에어리스의 열정이 지나쳐 문제가 생길 때마다 이소민은 잔소리를 하곤 했다.

    끓어오르는 수증기를 한 번씩 빼주는 역할을 맡았는데 유진하는 딱히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다.

    “에어리스가 기죽은 모습보다는 낫잖아요. 연습하면 괜찮을 거예요.”

    크게 의미를 두지 않았다.

    에어리스의 액션 연습도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영화 속 액션을 따라 하는 수련법은 에어리스만이 소화할 수 있는 방식이었다.

    폭발과 해일처럼 다양한 위기 상황이 영화 안에 있었고, 저걸 따라서 대처하는 훈련을 한다면 도움이 되었다.

    영화가 재밌었던 것 말고도 에어리스가 오늘따라 기분이 더 좋은 이유가 하나 있었다.

    “진하, 오늘은 상점에 꼭 가봐야 해요.”

    에어리스는 수리 중인 자신의 대검을 떠올렸다.

    알카트로스 소탕전에서 대검이 반쯤 녹아버린 탓에 원상태로 고쳐야 했다.

    상점 주인은 일주일이면 수리할 수 있다고 얘기했고, 오늘이 찾아가는 날이었다.

    “아까 문자로 연락받았어. 다 고친 거 같아.”

    “정말 다행이에요.”

    영화를 본 후에 대검을 돌려받으러 가는 길이었다.

    유진하, 에어리스, 이소민 세 사람은 간만의 휴식과 장비 정리까지 끝내고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고 있었다.

    상점 주인은 새롭게 정비한 대검을 미리 꺼내놓고 있었다.

    “유진하, 잘 왔다. 여기 새롭게 준비한 대검이다.”

    대검 버스터 슬레이어.

    기존의 형태가 그대로 복구된 상태였다.

    한 가지 달라진 부분이 있었다.

    대검의 날에 새로운 문양이 박혀 있었다.

    쌍단검이 교차된 푸른빛의 무늬가 낙인처럼 새겨졌다.

    순간 에어리스는 자신이 알고 있는 문양이라고 착각했다. 하지만 자세히 보니 달랐다.

    ‘이건 내 손에 새겨진 것과는 다른데?’

    에어리스의 손등에 있는 문장은 검과 방패가 교차된 형태였다.

    쌍단검의 문장과는 확연히 달랐다.

    “검에 문양이 생겼네요?”

    “후후, 이번에 입수한 문장이지. 에어리스 양에게 주는 회심의 비밀 병기라고 할까?”

    상점 주인은 자신만만한 듯이 어깨를 들썩거렸다.

    “아주 비싸게 들어온 물건이라고. 원하는 무기에 새기면 새로운 힘이 부여된다는 거야.”

    문장이 새겨진 대검은 강화형이 되었다.

    강화 대검에는 상점 주인이 새로운 이름도 붙여줬다.

    “이른바 버스터 슬레이어Ⅱ.”

    “아, 네…….”

    에어리스의 대검은 수리된 동시에 새로운 힘을 부여받았다.

    쌍단검의 문장에서 나오는 푸른빛에서 에어리스는 묘한 동질감을 받았다.

    대체 저 문장의 의미는 무엇일까.

    에어리스는 대검의 문양과 자신의 손등 문양을 번갈아 보면서 마치 하나로 연결된 듯이 신비한 느낌을 받았다.

    “정말 비싼 문장이다. 너희들을 위해서 따로 챙겨둔 거야.”

    “고맙습니다. 잘 쓸게요.”

    세 사람은 상점 주인과 반갑게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

    무기도 챙겼으니 이제 집으로 돌아가면 오늘 일정은 끝난다.

    유진하, 에어리스, 이소민.

    평화로운 휴식을 즐기는 세 사람을 누군가 훔쳐보는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찾았다.”

    고층 빌딩의 옥상에는 그들이 자리했다.

    패러사이트였다.

    숙주로 지배당한 C와 D.

    그들이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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