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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을 활용하는 1000가지 방법-75화 (75/229)
  • 75화 패러사이트(1)

    “특별 채용?”

    갑자기 나타난 마스터는 뜬금없는 제안을 했다.

    “너희 모두를 특별히 고용하고 싶다는 거야.”

    양 갈래 푸른 머리의 귀여운 여성인 마스터의 외모는 언제나처럼 어리게 보였다.

    순진하게 웃고 있으나 태초에 우리가 사는 이 공간을 만든 ‘주인’이니 까마득히 오래된 사람이었다.

    마스터는 어쩌면 지구보다 더 오래된 생명일 수도 있다.

    “얘들아, 우리도 많이 만났으니 서로 편하게 지내자.”

    “아, 그래요.”

    유진하는 떨떠름한 표정이 되어 대충 얼버무렸다.

    마스터는 여전히 신기루처럼 알 수 없는 존재였다.

    공간의 주인.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유일무이한 자였다.

    ‘인간’이라는 표현으로 담을 수 없어서 ‘생명체’라는 단어가 더 적절했다.

    “그런데 마스터는 몇 살이에요?”

    “어? 그건 왜?”

    “아니, 우리가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고 하길래……. 엄청 오래 산 거 같아서요.”

    “흐음. 나이는 함부로 물어보는 게 아니야.”

    마스터는 손가락을 휘휘 내저으며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비밀이야.

    그런 느낌을 주었다.

    “그냥 굉장히 많다고 하자.”

    “40억 살… 이려나요?”

    유진하가 대충 숫자를 날리며 반응을 슬쩍 떠봤다.

    정곡을 찔렸는지 마스터는 마치 화살을 맞은 사람처럼 행동이 멈춰 버렸다.

    “에이, 50억 살 아냐?”

    이소민은 은근슬쩍 10억 년을 더 보탰다.

    옆에서 잠시 고민하던 에어리스도 슬쩍 의견을 덧붙였다.

    “제가 보기에는 60억 살은 될 것 같아요. 혹시… 아닌가요?”

    “그만해, 이것들아.”

    새하얗게 표정이 질려버린 마스터가 흘러내리는 식은땀을 닦으며 정색했다.

    마스터는 내심 뜨끔했다.

    자신의 진짜 나이가 저 중에 하나였기 때문이었다.

    “얘들아, 다시 본론으로 돌아오자. 난 너희들을 내 근처에 두고 싶어.”

    제안은 간단했다.

    마스터와 ‘고용 관계’가 되자는 소리였다.

    유진하는 이 부분에 대해서는 일찍부터 선을 그은 적이 있었다.

    “난 요원은 별로고, 프리랜서가 좋은데요.”

    “요원이라고 안 했어. 다른 거야.”

    마스터는 다른 꿍꿍이가 있었다.

    정부 기관의 요원이 아닌 다른 독립된 기구를 생각하고 있었다.

    “요원들 말고 너희를 위해서 새로운 기관을 만들 거야. 당연히 지금처럼 자유를 보장해 줄 거고.”

    자신감 넘치는 자세로 어깨를 들썩이더니 진짜 조건을 내밀었다.

    “세계 독립 기관. 이게 새로운 기구의 이름이야.”

    세계 독립 기관?

    특이한 명칭이었다.

    다른 사람이 들으면 무엇에서 독립하겠다는 건지 도통 모를 이름이었다.

    “억압과 압제에 대한 독립인가?”

    이소민의 뜬금없는 한마디가 마스터의 머리를 강타했다.

    마스터는 당연히 정색했다.

    “야, 이것아. 그럼 내가 억압과 압제를 한다는 소리냐. 솔직히 그건 아니잖아.”

    “하하.”

    이소민과 마스터는 서로 아웅다웅했고 유진하는 웃음을 참다가 고개를 돌렸다.

    에어리스도 입가를 손으로 막고 쿡 웃는 모습이 보였다.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고 배시시 웃는 미소가 얼굴에 번져갔다.

    “하여튼 너희들도 참 대단하다. 그래도 나름 내가 마스터인데 쉽게 생각하고.”

    “별로인가요?”

    “아니, 좋다는 소리야.”

    마스터는 웃음과 경탄이 섞인 표정을 짓더니 다시 하던 이야기를 이어갔다.

    “독립 기관이라고 해도 달라지는 건 없어. 그냥 너희들은 원래 하던 대로 해.”

    “하던 대로요?”

    “대우는 간부 이상으로 해줄게. 내가 가끔 제안하는 의뢰만 맡아주면 돼.”

    “그래요?”

    유진하는 탐탁지 않은 듯했다.

    제안을 무조건 맡는다는 건 자유롭지 않았다.

    눈치 빠른 마스터는 곧바로 알아차렸다.

    “깐깐하게 생각할 줄 알았어. 그냥 의견을 교환하는 정도로 하자는 거야.”

    마스터의 제안은 간단했다.

    일을 제안하되 유진하가 승낙할지 거절할지는 자유이다.

    다만, 긍정적으로 봐달라는 소리였다.

    이왕이면 마스터의 신변에 관한 일은 꼭 와달라는 ‘부탁’도 했다.

    “그 정도는 괜찮네요.”

    자세히 들어보니 나쁘지 않은 제안 같았다.

    선택권은 그대로이고.

    마스터와 관련된 중요한 의뢰를 맡을 수 있었다.

    “에어리스와 이소민 누나는 어때요?”

    유진하가 고개를 돌려서 살펴보니 두 사람도 나쁘지 않다는 반응을 내비쳤다.

    “어때? 맘에 들지?”

    다들 동의하는 눈치를 보이자 마스터가 기세를 이어가려는 듯이 제안을 이어갔다.

    “요원들과는 차별화된 기관이야. 너희들만 있는 특별한 조직이거든.”

    “세계 독립 기관…….”

    새로운 기관은 사실상 유진하, 에어리스, 이소민만을 위한 전용 조직이었다.

    “닉네임도 다르게 지어줄게.”

    마스터는 작정하고 준비했다.

    프레젠테이션을 열심히 준비한 회사원처럼 한창 의욕을 내고 열을 올렸다.

    “요원들 같은 알파벳 말고 너희들에게 어울리는 새 명칭으로 지어왔어.”

    마스터는 직접 만든 호칭을 하나씩 알려줬다.

    “유진하는 ‘마술사’라는 별명이 있는데 지적인 면이 더 뛰어난 거 같거든. 그래서 ‘탐정’이라고 붙였어.”

    “탐정이요?”

    떨떠름한 유진하를 뒤로하고 다음은 에어리스 차례였다.

    “에어리스는 대검을 자유자재로 휘두르잖아. 힘도 세고. 그러니까 ‘대검사’는 어때?”

    “아, 대검사인가요……. 정말요?”

    별칭을 듣자마자 에어리스는 난감하다는 듯이 고개를 푹 숙였다.

    마스터의 작명은 계속됐다.

    마지막은 이소민이었다.

    “의욕적이고 항상 긍정적인 이소민이잖아. 씩씩한 모습이 좋으니까…….”

    “잠깐.”

    불길한 예감이 들었는지 이소민은 바로 제지했다.

    “제발 좋은 이름으로 지어줘.”

    “당연하지. 나만 믿어.”

    마스터가 자신했다.

    “이소민은 이게 잘 어울릴 거 같아. 사람한테 꼭 필요한 요소가 있잖아.”

    모두가 쫑긋 귀를 기울인 채 마스터의 말에 집중했다.

    “‘비타민’. 그걸로 하자.”

    “뭐라고?”

    이소민은 머리를 망치로 얻어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다.

    비타민이라니.

    참을 수 없는 호칭이었다.

    “제가 보기엔 괜찮은 거 같아요. 비타민은 이소민 언니 이름이랑 비슷한 느낌도 있어서 잘 어울려요.”

    의외로 에어리스는 이소민의 비타민 별명을 마음에 들어 했다.

    물론 당사자 이소민의 생각은 전혀 달랐지만.

    “이소민 비타민 누나.”

    유진하가 슬쩍 붙여서 불러봤다.

    이소민 비타민.

    호칭의 당사자인 이소민이 바로 째려보는 눈빛으로 쳐다봤다.

    당황한 유진하는 바로 고개를 돌려 매서운 눈초리를 피해 버렸다.

    “자, 다들 맘에 들지. 이건 양보 안 할 거야.”

    마스터의 입장은 확고했다.

    이상한 부분에 굳이 집착하는 버릇이 있는 모양이었다.

    “하여튼 앞으로 잘해보자.”

    하얀 햇살이 쏟아지던 날.

    마스터는 정부 요원에 이어 새로운 기구를 발족시켰다.

    -세계 독립 기구-

    탐정 유진하.

    대검사 에어리스.

    비타민 이소민.

    세 사람으로 시작한 기관이 마침내 첫 시작을 알렸다.

    유진하는 솔직한 소감을 남겼다.

    “새로운 출발이라면 나쁘지 않은 거 같네요.”

    불어오는 바람이 마치 뻥 뚫린 가슴에 신선한 기운을 넣어주는 듯했다.

    상쾌하고 깔끔한 느낌이 온몸에 가득했다.

    새로운 출발이었다.

    “첫 번째로 의뢰할 일이 있는데.”

    마스터는 밝은 표정으로 모두를 바라봤다.

    유진하와 에어리스, 이소민은 의욕이 넘치는 상태에서 첫 임무를 받게 되었다.

    “새로운 일이 있어.”

    * * *

    남미.

    밀림이 가득한 아마존 지역.

    흘러가는 물소리 말고는 쥐 죽은 듯이 고요한 곳이었다.

    기이잉.

    별안간 차원문이 열리더니 한동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기이잉.

    그렇게 시간이 흘러가고.

    마침내 반딧불처럼 작은 존재 하나가 차원문에서 나타났다.

    희미한 빛을 머금은 채로 등장한 그 물체는 작은 날갯짓을 하듯이 펄럭이며 날아갔다.

    조심스럽고 은밀한 비행이었다.

    지잉.

    차원문이 다시 닫혔다.

    작은 반딧불의 여행은 이제부터 혼자만의 길이 되었다.

    스르륵.

    날아가던 와중에 처음으로 어떤 생명체와 마주쳤다.

    이구아나였다.

    날름날름.

    나뭇가지에 매달린 나방을 노리던 이구아나는 혓바닥을 날름거렸다.

    그런 이구아나의 등에 갑자기 따스한 빛이 닿았다.

    차원문에서 들어온 존재였다.

    날개를 가진 요정 같은 생명체가 이구아나의 등에 내려앉았다.

    “…….”

    작은 침묵이 흘렀다.

    생명체는 스르륵 이구아나의 몸속으로 스며들었다.

    아무 소리도 하지 못하고 이구아나는 갑자기 눈동자에 모든 힘을 잃었다.

    이구아나의 몸에 들어간 빛의 생명체는 단숨에 육체의 제어권을 빼앗았다.

    그랬다.

    새로 나타난 존재는 기생충이었다.

    기생충.

    패러사이트.

    Parasite.

    이구아나를 지배한 패러사이트는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까 노리던 나방이 아니었다.

    녀석은 더 강한 존재에 기생하기를 원한다.

    지금보다 훨씬 막강한 생명체를 원했다.

    “여기인데.”

    먼발치에서 낯선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금발 머리에 잘생긴 외모와 훤칠 키를 가진 미남이었다.

    암호명은 C.

    그는 간부 요원 중에서 가장 패션이 뛰어난 사람으로 유명했다.

    항상 양복을 맵시가 살아 있게 입었고 선글라스까지 패션 아이템으로 챙겼다.

    물론 실력도 확실했다.

    알카트로스가 가장 피하고 싶었던 상대가 바로 C였다.

    C.

    크로우.

    까마귀라는 별명까지 붙을 만큼 강했고, 요원 중에서 한 수 위로 취급받는 최고수였다.

    “여기서 차원문이 열렸다는 첩보를 받았는데…….”

    C는 주변을 수색했다.

    차원문이 열렸다면 뭔가 침입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뭔가 왔을 텐데.”

    선글라스를 낀 C의 눈빛이 매섭게 주변을 노려봤다.

    만약 괴생명체나 몬스터가 넘어왔다면 ‘방어전’을 치러야 했다.

    어떤 적이 넘어오든.

    요원들은 그 적을 확실하게 척살해야 했다.

    그것이 세계를 지키는 요원들의 임무였다.

    마스터를 보호하는 사명이었다.

    “느낌이 안 좋아…….”

    얼굴에 낀 선글라스까지 벗고 C는 긴장한 자세가 되었다.

    무기를 꺼내어 쥐었는데 새까만 칼날을 가진 흑도였다.

    검은빛의 칼날은 스산한 기운마저 담고 있었다.

    후두둑.

    그 순간.

    뭔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하늘로 날아가는 작은 날갯짓의 펄럭임이었다.

    “…새였나?”

    날아가는 새 무리를 보면서 C는 잠시 안도했다.

    위협은 없다고 느끼던 즈음이었다.

    그때였다.

    기생충에게 몸을 빼앗긴 이구아나가 위에서 떨어지듯이 달려들었다.

    나무 위에 숨었다가 기회를 포착하고 습격하는 거였다.

    파앗!

    순간 흑도에서 빛이 났다.

    흑도는 순식간에 작은 이구아나의 몸을 반 토막으로 갈라버렸다.

    스릉.

    일격을 날린 C는 흑도를 도로 검집에 집어넣었다.

    반으로 나뉜 이구아나는 땅바닥에 쓰레기처럼 나뒹굴었다.

    “이구아나?”

    흑도를 굳게 쥔 C가 의아한 듯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살기가 느껴졌는데…….”

    순간적으로 받았던 살기는 대단히 위협적이었다.

    사람을 죽이려는 기운.

    이구아나처럼 작은 동물은 인간을 위협할 만한 살기가 없다.

    “대체 뭐였지?”

    C가 혼란과 긴장을 느끼던 그 즈음에 흑도의 끝에는 작은 변화가 있었다.

    칼날에 작은 빛이 서리고 있었다.

    반딧불처럼 작은 기생충.

    패러사이트였다.

    “…….”

    이구아나가 당하자 기생충은 다시 밖으로 나온 거였다.

    흑도의 날에 있던 패러사이트는 조심스레 날개를 펼쳐 유유히 손잡이 끝까지 날아갔다.

    하늘하늘.

    작은 날갯짓으로 살기를 숨기고 유유히 날아올랐다.

    후욱.

    패러사이트는 이성이 있었다.

    아까처럼 살기를 드러내는 ‘실수’를 반복하지 않았다.

    착.

    우아한 날갯짓이 검 손잡이를 넘어 C의 어깨까지 날아가서 멈췄다.

    완벽한 착지였다.

    “…….”

    C는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패러사이트는 스르륵 C의 어깨 안으로 들어갔다.

    기생하는 존재는 더 강하고 뛰어난 숙주를 찾는 본성이 있었다.

    어떤 강자라도 정신을 지배할 수 있다.

    다시 제어의 시간이 되었다.

    “윽!”

    C는 뒤늦게 오감이 떨리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

    사지가 굳어버리고 자기 몸이 생각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아니, 내 의지와 다르게 몸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크으윽!”

    정신을 잃은 건 그 즈음이었다.

    단 한 번.

    패러사이트는 가벼운 접촉만으로 상대의 육체에 침입해서 두뇌를 지배한다.

    녀석은 가장 강한 생명체에 기생하는 습성이 있었다.

    본능이었다.

    ‘기억은…….’

    두뇌 자체를 지배할 수 있기에 숙주가 된 존재의 기억도 엿볼 수 있었다.

    ‘가장 강한 존재는 누구일까.’

    페러사이트는 C의 기억을 보다가 몇 사람을 주목했다.

    마스터를 비롯해 정부 요원들과 최상위 모험가들이 보였다.

    그중에는…….

    유진하와 에어리스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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