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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을 활용하는 1000가지 방법-73화 (73/229)

73화 펜트하우스(4)

알카트로스의 리더 에이스는 항상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면서 자세도 흐트러트리지 않았다.

요원으로 있던 시절.

마스터를 노렸던 단도가 요원 B를 찔렀을 때도 그랬다.

“왜……?”

B는 은발의 여성 요원이었다.

아름답고 강한 실력을 겸비한 간부였으나 희생되었다.

복부에 피를 흘리던 그녀는 A의 품에 안기어 쓰러졌다.

숨을 헐떡이던 B는 물어봤다.

“왜… 배신했죠?”

신뢰를 배반당하자 B는 마지막 순간까지 확인하고 싶어 했다.

A의 입으로 답을 듣고 싶었다.

그 물음은 마지막 말이었다.

하지만…….

A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이제 A가 아니라 알카트로스의 에이스이기에.

조직의 리더였기에.

요원들의 적이 되었기에.

오페라 극장에서 벌어진 사건은 그렇게 B의 죽음으로 막을 내렸다.

마스터를 노린 암살 시도의 전말이었다.

“지금도…….”

B의 마지막 말이 에이스의 귓가에 남아 있었다.

“그 싸움은 계속되고 있어.”

에이스는 이번 계획에서 완전한 마무리를 원했다.

마스터를 잡아서 ‘공간의 주인’ 자리를 넘겨받을 계획이었다.

사람들이 살아가고 고대부터 현대까지 화려한 문명이 피어난 이 공간의 새로운 주인이 되고 싶었다.

“…오늘 끝낸다.”

마스터를 제압하고 새로운 마스터가 되겠다.

에이스는 원대한 계획을 꿈꿨다.

칼에 맞아 죽어가던 B가 마지막으로 했던 말이 여전히 에이스의 귓가에 맴돌았다.

왜 배신했나.

에이스의 생각은 달랐다.

“배반이 아니라 변혁이다.”

계획은 최종 단계에 도달했다.

마스터는 눈앞에 있었다.

오페라 극장 사건에서 B가 죽은 후로 이렇게 가까이 마스터에게 다가간 적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런데…….

한 명이 앞을 막고 있었다.

“유진하…….”

마스터에게로 가는 마지막 길에 녀석이 있었다.

“제가 당신을 막아내죠. 지금 이 자리에서…….”

유진하는 단검 하나만 들었다.

마술사라 불리는 그였으나 지금은 카드 한 장도 없었다.

에이스가 가진 능력 때문이었다.

‘변형 단도와 고대의 페이퍼…….’

이 두 개만 있다면 어떤 대결에서도 이길 수 있었다.

장애물이 가로막는다면 전부 치워버릴 힘이 있었다.

에이스는 승리를 장담했다.

“모습이 변하는 단도…….”

유진하는 입을 열었다.

조용한 눈빛으로 두 개의 물건을 전부 바라봤다.

“뭔가를 적으면 발동하는 종이…….”

유진하는 대략 저 물건들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에이스의 무기를 하나하나 간파하기 시작했다.

“변형하는 단도는 원하는 모습으로 바뀔 거고. 대신 제한은 있는 거 같네요.”

추론이었다.

물체는 펜에서 단도, 단도에서 펜으로 변했다.

작은 물체에서 작은 물체로 변형한 거였다.

“큰 물체로는 안 되는 거죠.”

“…….”

에이스는 대답하지 않았다.

발언하는 순간에 눈치 빠른 유진하가 알아차릴 수 있기 때문이었다.

심리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최대로 커져 봐야 한손검도 안 되는 거겠죠.”

무기로 단도를 선택한 이유.

유진하는 빠르게 에이스의 변형 단도의 비밀을 알아차렸다.

다음은 종이였다.

“그 종이에 적은 내용대로 실현되는 건가요?”

고대 종이는 대단한 능력이 있었는데, 펜으로 적은 사연이 실현되는 힘이 있었다.

물론 제한은 있었는데, 유진하는 단 한 번 보자마자 기능을 알아차렸다.

“일단 반경에 제한이 있네요. 100미터 정도가 한계고요.”

유진하의 짐작은 정확했다.

에이스는 가면 속에 표정을 감추었으나 일순간 입술이 꿈틀거렸다.

‘꼬투리를 잡는 녀석 같군…….’

에이스는 언제나 자신의 작전을 완전 범죄로 만들었다.

작품을 만들어내듯이 완벽하게 기획하고 실행하는 예술가였다.

유진하는 예술품의 흠을 찾아내는 비평가와 비슷했다.

“종이에 적으면 이뤄지는데 제한이 꽤 있네요. 예를 들면, 목숨을 뺏거나 상대 신변을 제압할 수는 없죠.”

불쾌해진 에이스는 똑바로 유진하를 노려봤다.

상대를 묶을 수 있다면 그런 명령을 적으면 된다.

마스터도 유진하도 글 하나만 적어서 제압할 수 있을 터였다.

하지만 에이스는 그러지 않았다.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생명체에게는 작용시킬 수 없는 거죠. 종이의 능력에도 제한이 있으니까요.”

“…재밌는 가설이군.”

“가설이 아니라 사실이죠.”

유진하의 눈빛은 단호했다.

종이가 가진 사기적인 능력은 뛰어나지만 제한이 있어서 공략할 틈이 존재했다.

“그래서 당신은 다른 명령을 쓸 수밖에 없던 겁니다. 이번에 적은 소원은 이런 거였죠?”

유진하는 에이스의 전략을 금세 눈치챘다.

“이 공간에 카드는 전부 사라진다. 어때요?”

“…….”

정답이었다.

종이에 글귀를 적으면 그대로 실현된다.

다만, 가능한 소원 범위 내에서 이뤄진다.

생명체에는 법칙을 적용할 수 없으니 차선책으로 물체를 적용시키면 되었다.

“내 주특기가 카드인 걸 알고서 그걸 없애는 주문을 적은 거죠.”

“주문이라…….”

“이건 추측이 아니에요. 펜이 움직이는 각도를 봤거든요.”

에이스의 눈동자가 커졌다.

펜이 움직이는 궤도를 보고 알아차렸다고?

유진하의 두뇌와 관찰력이 뛰어나다는 건 알고 있었으나, 펜의 움직임을 보고 글씨를 알아맞힌다니.

“한계점은 하나 더 있어요. 내 카드가 사라졌는데 당신 것은 어떤가요?”

이 싸움은 결국 두뇌전이었다.

지금 벌어지는 상황을 이해하고 대응하는 사람이 이긴다.

그렇기에 정확하게 아는 것이 중요했다.

유진하는 완벽하게 상황을 이해하고 있었다.

“종이에 적힌 내용은 여기 있는 모두에게 적용됩니다. 그럼 당신도 마찬가지죠.”

회심의 미소가 얼핏 지나갔다.

승부의 추가 서서히 유진하에게로 기우는 듯했다.

“에이스, 당신도 카드가 없어요. 그러니까 단도로 싸우려고 드는 거죠.”

“…….”

반박할 말이 없었다.

침착함을 유지하던 에이스는 자존감이 조금씩 허물어지는 기분을 맛보았다.

견고한 벽은 하나의 구멍만으로도 무너질 수 있다.

지금 유진하는 여러 개의 구멍을 뚫었다.

‘아직이다.’

침묵에 빠진 에이스는 스스로 되뇌면서 시간을 기다렸다.

에이스에게는 아직 최후의 수가 남아있었다.

계획을 결정지을 비장의 한 수가 있었다.

‘조금만 있으면 된다.’

손에 남은 단도를 다시 변형시켰다.

삐그덕. 삐그덕.

기묘하게 뒤틀리더니 서서히 다른 모습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지금이네요.”

유진하는 그것마저 알고 있었다.

뒤에서 지켜보던 마스터마저 기가 질릴 만큼 대단한 지력과 판단력이었다.

‘능력 보고서에 지력이 얼티밋이라고 그랬던가.’

M의 보고서에는 유진하가 두뇌에서 최고라는 평가를 내렸다.

그 보고서는 당연히 마스터도 전부 읽었는데 실제로 그 실력을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대단해. 에이스를 상대하면서 두뇌로 압도하는 모습도 그렇고. 저 기백도 멋지잖아.’

푸른 머리의 마스터는 유진하의 뒷모습을 차분히 바라봤다.

편안하면서도 듬직한 모습.

굉장히 믿음직스러웠다.

“에이스, 당신의 마지막 작전도 알고 있어요.”

“네가 안다고…?”

“지금 당신이 준비하는 거요.”

단검에서 다시 변해가는 물체는 분명한 목적이 있었다.

최종 단계.

단 한 번의 타이밍이 있었다.

“한 번 글귀를 실현시킨 종이가 지금은 사라졌어요. 당신의 손에도 없네요.”

“…….”

“그럼 한 가지 의문이 생기죠. 그 종이가 다시 나타난다면?”

유진하의 추리는 정확했다.

에이스가 만든 이 공간을 처음 봤을 때부터 모든 법칙을 깨달았다.

“그 종이. 다시 나타날 거예요.”

“…….”

에이스는 마른 침을 삼켰다.

가면 속에 얼굴을 숨겨놓지 않았으면 고스란히 유진하에게 들킬 뻔한 표정이 나왔다.

불쾌감과 긴장감이었다.

유진하의 생각은 정확했다.

‘종이는 3분 뒤에 나온다.’

한 번 사용한 종이는 리필되는 데 3분이 필요했다.

이미 유진하는 처음부터 속으로 시간을 재고 있었다.

‘어딘가에 나타난다.’

종이는 공간 어딘가에 무작위 형태로 나타나게 된다.

그걸 먼저 찾아서 글씨를 적어야만 새로운 명령을 내릴 수 있었다.

‘계획의 최종장은 그거다.’

에이스가 단검으로 위협만 한 것은 시간을 벌기 위해서였다.

지금 3분이 가까워졌다.

유진하는 때가 다가온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무작위로 등장하는 한 장의 종이.

누가 먼저 종이를 잡아서 글귀를 쓰느냐에 따라 승부는 결판이 난다.

‘3.’

카운트에 들어갔다.

‘2.’

‘1.’

지금.

마침내 종이가 나타났다.

모두의 시선이 허공을 맴돌았다.

에이스는 고개를 돌려 빠르게 찾아봤다.

어디에 있지?

대체 어디에…….

아무리 돌아봐도 종이는 도통 보이지 않았다.

“여기 있네요.”

유진하가 중얼거렸다.

갓 나타난 따끈따끈한 종이는 이미 새로운 주인을 찾았다.

유진하의 손에 들려 있었다.

“어떻게?”

“그야 알고 있었으니까요.”

사라진 종이는 3분 뒤에 나타난다.

다만 먼저 징조를 보이는데, 종이가 나타나기 전 아주 희미한 빛이 생성된다.

짙은 회색빛이라 주의 깊게 살피지 않으면 놓칠 만큼 작았다.

“지금 내가 있는 위치에 바로 나타났어요.”

마침 유진하와 에이스 사이에 그 빛이 등장했다.

에이스는 펜을 단검으로 다시 바꾸느라 시선을 그쪽으로 돌렸고, 그 틈에 유진하가 먼저 알아차렸다.

“먼저 위치를 발견하고 그쪽으로 천천히 움직였죠. 단검을 꺼내거나 대화를 걸면서 당신이 집중하지 못하도록 유도하면서요.”

완벽한 임기응변이었다.

유진하는 뛰어난 관찰력과 지력 못지않은 행동력이 있었다.

타이밍이 보이면 바로 시작했다.

분석가 M의 보고서에는 다음과 같은 글귀가 있었다.

-판단력과 실천력까지 겸비한 천재형 지략가.

유진하를 가장 정확하게 표현한 말이었다.

“아직이다.”

알카트로스의 리더 에이스도 결단력이 빨랐다.

리더다운 판단력이었다.

단숨에 단도로 다시 바꾸면서 유진하에게 돌격했다.

“확실히 지금이 승부처이죠.”

유진하는 손에 쥔 종이를 뒤로 건넸다.

항상 품에 가지고 다니던 펜과 함께 마스터에게 주었다.

“두뇌전이 아닌 격투전이라면… 당신에게도 가능성이 생기겠네요.”

유진하는 물러서지 않고 손에 쥔 단검을 휘둘렀다.

마스터 역시 검은빛의 단도를 내질렀다.

카앙!

두 개의 단도가 강하게 부딪쳤다.

엄청난 충격파가 퍼졌다.

유진하가 최초로 전투에 들어가서 무기를 사용한 순간이었다.

“에이스, 당신이 이길 확률이 조금 생겼네요.”

유진하와 마스터가 격돌했다.

서로의 단검은 한 차례 부딪친 후에 재차 상대를 노렸다.

두뇌전에서 격투전으로.

에이스가 상황을 빠르게 전환시키려는 찰나였다.

“1% 정도……?”

유진하는 더 이상의 가능성을 주지 않았다.

단 한 번의 단검을 휘둘러서 에이스를 강하게 밀어냈다.

“큭!”

밀려난 에이스는 손에서 전해지는 묵직한 진동을 받았다.

유진하가 처음 선보인 일격이었는데, 깔끔한 위력이었다.

단순한 방어를 넘어 무기술에 가까웠다.

‘형에게 배운 호신술인데…….’

형은 최고 수준의 탐험가였고, 유진하에게 호신용으로 단검을 추천했다.

‘평소에 무기 하나는 배워두면 좋아. 가장 체득하기 쉬운 호신용 무기니까 무조건 연습해 둬.’

새벽부터 형은 강제로 유진하를 깨워 지옥 수련을 시작했다.

풀잎이 아침 이슬을 머금을 무렵부터 마당에서 불꽃 튀는 단검 대결을 매일 벌였다.

강한 트레이닝과 고된 훈련의 결과로 유진하의 단검 숙련도는 최상급으로 성장했다.

마스터에게 밀리지 않는 단검술을 지녔다.

“다 적었나요?”

유진하가 소리쳤다.

마스터는 펜을 높이 들었다.

유진하가 앞을 막는 동안 마스터는 종이에 새로운 명령을 적고 있었다.

종이에서 환한 빛이 뿜어졌다.

파아아!

곧이어 종이가 스르륵 사라졌다.

3분 뒤에 다시 나타날 터였다.

“다음은 없을 거야.”

마스터는 단호했다.

글귀 역시 간단한 내용이었다.

- 공간을 해제한다.

단 한 문장이었다.

검은 공간은 도로 사라지기 시작했다.

에이스가 구상한 완벽한 계획은 무너지고 있었다.

“밖으로 나왔네요.”

공간이 사라졌다.

세 사람은 다시 원래의 펜트하우스로 돌아왔고, 사라졌던 100장의 카드 역시 유진하의 손에 돌아왔다.

상황은 급변했고 마침내 역습의 차례가 찾아왔다.

“이제는 내 차례…….”

마술사 유진하.

별칭에 어울리듯이 모든 카드가 일제히 날아가더니 사방을 가득 메웠다.

깊은 밤.

깨어진 거실 창문 너머에서 유리 조각이 바람에 휘날려 날아왔다.

바람에 휘날리는 꽃잎처럼 유리 조각들은 카드 무리와 뒤섞여 회오리처럼 몰아쳤다.

“이건…….”

알카트로스의 리더 에이스는 카드와 유리 조각에 완벽하게 포위되어 폭풍의 눈에 갇힌 꼴이 되었다.

빠져나갈 수 없는 감옥이었다.

“끝났어요.”

유진하의 말이 귓가에 들려왔다.

에이스는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

손에는 변형 단검이 남았고, 자신도 카드를 돌려받은 상태였다.

‘기회가 온다면…….’

틈을 봐서 역습을 날릴 타이밍을 노리고 있었다.

그때였다.

매서운 일격이 다가왔다.

초음속처럼 굉음과 같은 위력의 베기였다.

단도를 휘두른 사람은 유진하였다.

“크윽!”

엄청난 일격의 베기였다.

강렬한 충격파까지 발휘하는 위력이라서 일반적으로는 절대 막을 수 없는 기술이었다.

에이스는 그 단검의 파동을 맞고 그대로 무너지듯이 쓰러졌다.

완패였다.

“끝났다고 했어요.”

유진하가 든 단도는 거울처럼 투명한 날이 번뜩였다.

-스나이프 대거

충격파 파동을 발휘할 수 있다.

형이 준 물건이었다.

일격을 맞은 리더 에이스는 쓰러졌고 그 앞에 선 유진하는 내려다보고 있었다.

최고층 빌딩에서 대결은 마무리되었고 정적이 흘러갔다.

부서진 잔해.

깨어진 유리 조각.

거실의 열린 창가에는 밤바람이 들어오고 있었다.

“…끝났어.”

유진하는 밤바다처럼 고요한 도시를 차분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그리고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작전 종료.”

끝없는 지평선처럼 이어지는 저 너머에서 이 싸움의 끝을 바라봤다.

마지막으로 선언했다.

“알카트로스 소탕전 클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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