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화 펜트하우스(3)
“허억. 허억.”
에어리스는 숨을 힘겹게 몰아쉬었다.
격렬했던 승부의 후유증이 욱신욱신 전해지는 바람에 완전히 주저앉고 말았다.
고통과 피로감이 가득해서 일어설 기운조차 잃었다.
“…….”
에어리스는 문득 고개를 돌렸다.
상대인 스페이드도 완전히 뻗어 쓰러져 있었다.
“강했어… 정말로…….”
알카트로스의 스페이드는 버거운 상대였고 에어리스는 치열했던 대결의 여파를 받았다.
녹아버린 대검이 남았고 모든 기력을 상실했다.
“진하…….”
유진하는 리더 에이스를 상대하고 있을 터였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생각하기도 전에 육체는 한계 신호를 보냈다.
힘이 되어주고 싶었으나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부탁… 할게요.”
마지막 승부처에서 도와줄 기력이 남아 있지 않았다.
눈꺼풀이 스르르 닫혀가는 지금.
완전히 깨진 거실의 창에서 문득 바람이 불어왔다.
시원하게 불어오는 밤바람 속에서 유리 조각과 가루들이 마치 신기루처럼 산산이 부서지고 흩어졌다.
“하아…….”
부서진 유리 조각이 고개마저 숙인 에어리스에게 쏟아지고 있었다.
달빛이 반사되어 비치는 유리 조각은 마치 별빛처럼 반짝였다.
그렇게 에어리스의 사투는 밤빛 아래에서 조용히 마무리되었다.
* * *
달이 깊어지는 밤.
펜트하우스의 최상층에는 부서진 파편이 몰아치고 있었다.
마스터를 노리는 에이스.
그를 막으려는 유진하.
셋은 한자리에 있었다.
“제가 맡죠.”
유진하는 일대일로 리더 에이스를 상대할 작정이었다.
마스터를 지키느냐 마느냐의 싸움이라 승부에서 마스터는 한발 물러난 상태였다.
결국 유진하 대 에이스.
알카트로스 소탕전의 대미는 리더 간의 승부로 결정될 터였다.
“겨뤄보자.”
리더 에이스도 결심을 굳혔다.
어차피 양측의 성패는 여기서 판가름이 난다.
승부를 피할 이유가 없었다.
“작전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마무리를 어떻게 하느냐이다.”
검은 망토를 입은 에이스가 손을 옆으로 뻗었다.
손에 든 검은 단도가 갑자기 비틀어지며 변형하기 시작했다.
“시작이 좋아도 마지막에 어그러지면 실패한다. 마지막에 성공하느냐 마느냐가 작전의 성패를 좌우하지.”
“동의해요.”
유진하는 차분한 눈빛을 머금으며 집중했다.
손에는 100장의 카드가 있었다.
“너에 대해 들었다. 카드술이 주특기라지?”
“…….”
“마술사 별명도 안다.”
유진하는 순간 멈칫했다.
아, 그 별명은 좀…….
남들이 그렇게 일컫긴 했지만 알카트로스의 리더가 직접 불러주니 왠지 쑥스러웠다.
“과찬의 별명이죠.”
“…칭찬한 거 아니다.”
에이스는 정색하더니 가면을 손으로 다시 만졌다.
그 순간 리더 에이스의 시선은 유진하가 손에 든 100장의 카드에 꽂히고 있었다.
카드의 마술사.
에이스는 상대의 무기가 무엇인지 빠르게 체크하고 있었다.
“그럼 시작하지.”
끼릭끼릭.
아까부터 이리저리 변형되던 단도는 어느새 형태를 완전히 바꾸었다.
이런 도구는 처음 보는 물체였다.
더 강한 무기가 나올 수도 있어서 긴장했는데 실제로는 전혀 예상치 못한 물건이 나타났다.
“펜?”
광택이 빛나는 검은 펜이었다.
천사와 악마가 최후의 날에 서로 싸우는 듯한 장식이 새겨진 펜이었는데 고풍스러운 유물 같은 분위기가 났다.
에이스는 그 펜을 잡아서 높이 쳐들었다.
마치 하늘을 향한 듯이 섬세한 손짓이었다.
“기록을 적어내겠다.”
펜은 문장을 적어내는 도구이다.
허공에서 글은 존재할 수 없다.
받아낼 물체가 필요했고 에이스는 그걸 가지고 있었다.
오랜 시간이 흘러 변색된 검은빛의 종이였다.
“펜과 종이?”
유진하는 이 조합을 굉장히 위험하게 받아들였다.
에이스가 가진 힘은 예측불허였다.
요원들이 한 번도 잡을 수 없던 그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능력을 지녔다.
완전 범죄를 가능케 하는 힘.
알카트로스의 리더 에이스가 가진 진짜 실력에서 비롯된 거였다.
“지휘를 시작하지.”
허공을 휘젓는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처럼 에이스의 손짓이 휘어청 흔들렸다.
마치 악보를 그리듯이 물결처럼 스르륵 흘러내렸다.
펜은 글귀를 차례차례 적어 내려갔고, 펜 끝에서 나온 글자는 희미한 빛을 발산했다.
검은 펜과 검은 종이.
하얀빛의 글자가 서서히 새겨졌다.
‘위험하다…….’
유진하는 본능적으로 위기감을 받았다.
정확한 능력까지는 모르나 저 글이 완성되면 위험해질 거라고 느꼈다.
“이거…….”
머뭇거릴 틈도 없이 하나의 카드를 꺼내 들었다.
현재 가진 카드 중에 초레어는 두 장이었다.
빛의 카드와 중력 카드.
그중 하나를 사용했다.
“그라비티.”
단숨에 6배의 중력을 발휘했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생명체는 중력의 영향 아래에 있다.
에이스 역시 세상의 법칙을 벗어날 수 없다.
“큭!”
6배의 중력이 단숨에 가해지자 에이스는 순식간에 자세가 무너졌다.
어마어마한 압력이었다.
육체는 똑바로 설 수가 없고 팔다리는 바닥으로 강하게 끌어 당겨졌다.
실이 끊어진 인형처럼 늘어지고 말았다.
“됐나?”
유진하는 중력의 힘으로 에이스를 구속하려 했으나 육체만 그랬을 뿐.
여전히 펜은 움직이고 있었다.
스걱스걱.
‘멈추지 않는다.’
마치 유령이 적듯이 허공에서 펜은 스스로 글을 적고 있었다.
“중력은 입을 막을 수 없지.”
펜은 직접 손으로 적지 않아도 사용자가 말하는 대로 글을 적을 수 있었다.
“…….”
주변에 들리지 않도록.
에이스가 작게 중얼거렸다.
그 음성은 마치 사이비 교주의 저주 같았다.
뭐라고 하는지는 몰랐으나 남을 현혹하는 듯이 이목을 집중시키는 목소리였다.
파앗!
중력에서 벗어난 펜은 계속 뭔가를 적어 내려갔다.
“…됐어.”
중력에 짓눌리던 에이스는 힘겹게 고개를 치켜들더니 우두커니 앞을 바라봤다.
백가면 속에 감춰진 그 눈빛은 호수처럼 고요했다.
펜이 적은 글은 옅은 빛을 발산하더니 이윽고 공간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이건?!”
종이에서 별안간 푸르고 검은 그림자가 발산되더니, 반경 안에 있는 모든 존재를 자신의 영역 안으로 끌어들이기 시작했다.
빨아들이는 힘이었다.
“아차!”
유진하와 마스터는 그 흐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깊은 바다에 침식되듯이 빨려들었고 심해 속에 들어온 듯했다.
그때, 유진하는 자신의 손이 허전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손에 들고 있던 100장의 카드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여긴 만들어진 공간 같아.”
“그렇다.”
에이스는 옷을 툭툭 털어내며 정돈하더니 일어났다.
중력에서 벗어나더니 한결 여유를 되찾은 모습이었다.
“설계된 공간이다.”
오래된 종이는 공간이 만들어지면서 사라졌고 펜만 공중에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에이스는 검은빛의 망토를 휘날리며 펜을 다시 손에 쥐었다.
유진하는 신비한 힘을 가진 펜을 유심히 바라봤다.
“종이에 쓴 게 이건가요?”
“상대의 강점을 무력화시키는 공간이지.”
에이스는 손에 든 펜을 들어 빙글빙글 돌렸다.
등에 멘 검은 망토까지 휘날리자 마치 세상을 떠도는 방랑 시인처럼 분위기를 잡았다.
“카드는 없지?”
에이스는 유진하의 양손이 비었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중요한 카드가 사라지고 말았다.
“하여튼 이 능력은 미스터리야.”
마스터가 한숨을 내쉬었다.
유진하와 같이 공간으로 빨려 들어온 마스터의 상황은 같았다.
소유했던 카드가 모조리 사라졌다.
“봐도 봐도 모르겠어.”
마스터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더니 한숨을 내쉬었다.
푸른 머리에 동안의 외모를 가져서 유진하 또래로 보이는 소녀인데 성격은 활발했다.
카드를 모두 잃은 지금.
최대의 위기일 터인데도 눈빛은 빛나고 있었다.
“카드가 없는데 혹시 다른 거는 준비한 거 없어?”
유진하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허리춤을 주섬주섬 뒤졌다.
단검을 하나 꺼냈다.
“보고서에는 카드를 주로 쓴다고 했었는데, 너도 무기를 쓰냐?”
“호신용이지. 비상용으로 이거 하나만 가지고 다녀요.”
마스터와 만난 적이 있어서 그런지 한결 서로 말이 편해졌다.
붙임성이 좋은 마스터 덕분에 낯가림이 있는 유진하와도 편하게 지내게 되었다.
“단검이라…….”
흥미를 드러낸 쪽은 상대도 마찬가지였다.
에이스는 펜으로 변한 물건을 다시 변형시켜서 단검으로 바꾸었다.
“단검으로 승부를 볼까?”
단검술에 자신이 있는지 에이스가 검은 단도를 들고 천천히 앞으로 나섰다.
유진하도 물러설 생각은 없었다.
“피하지 않죠.”
서로 리더로서 모든 작전을 구상한 맞수였다.
원정대의 리더 유진하.
알카트로스의 리더 에이스.
두 사람은 각각 자신의 단도를 가지고 전투에 들어갈 채비를 갖췄다.
유진하에게 있어 두뇌전에서 벗어난 최초의 육탄전이었다.
“확실히 당신은 강해요. 두뇌만으로 상대를 완전히 제압할 수 없을 만큼 기술도 지력도 대단하죠.”
“상대를 칭찬하는 성향이 있나?”
“아니요. 당신을 인정하는 겁니다.”
유진하는 단검을 굳게 쥔 채로 전투 자세를 잡았다.
선호하지 않는 전투술이었으나 이번에는 정면 승부를 벌여야 했다.
“전투는 항상 변수가 있어요. 아무리 약자라도 강자를 쓰러뜨릴 기회가 있으니까요.”
“그렇게 생각하나?”
에이스 역시 검은 단도를 움켜쥐고 맞서려고 다가왔다.
칼날에는 예리한 빛이 감돌았다.
“전투는 상황을 반전시킬 수 있어요. 완벽함을 추구한다면 어떤 작전이든 전투로 뒤집을 수 있죠.”
유진하는 핀잔을 주듯이 내뱉었다.
마치 알카트로스의 에이스에게 정면으로 도발하는 뉘앙스까지 주었다.
“이번에는 다를 거라고 보나?”
“전투는 100%가 없으니까요. 그렇다면 당신에게도 해당하는 겁니다.”
유진하의 결론은 명쾌했다.
숱한 던전에서 살아 돌아온 경험에서 우러나온 판단이었다.
어떤 강자라도 목숨을 건 승부에서는 항상 죽음의 확률 싸움을 하는 거였다.
“99.9% 이길 수 있으면 이길까요? 질 확률이 0.01%가 존재하기 때문에 결국 언젠가 당하고 맙니다.”
“나는 그 0.01%를 실력으로 채워왔다.”
“그렇게 착각하는 거죠. 지금까지는 이겨왔으니까요.”
유진하는 자신감이 있었다.
알카트로스의 리더 에이스를 앞에 두고도 자신의 판단을 믿었다.
“두뇌전으로 제압해야만 100% 승산을 유지합니다. 전투는 변수의 대결이에요.”
“흥미로운 생각이다. 인정하지.”
에이스는 굳이 부정하기보다는 재미로 받아들였다.
“네 말대로라면 지금도 승산이 있겠어. 이번에는 누가 더 승률이 높을까?”
“…….”
“누가 강자이고 누가 약자인가?”
유진하는 잠시 대답하지 않았다.
두뇌전이 아닌 격투전.
알카트로스를 완전 범죄의 조직으로 이끈 에이스가 최후의 상대였다.
“승률은 100%입니다. 물론 내가 이기는 쪽으로요.”
마침내 유진하가 입을 열었다.
자신감을 넘은 확신이었다.
“지금은 격투전이 아니라 두뇌전이거든요. 당신은 아직도 그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뭐라고?”
유진하는 두뇌전으로 상대를 제압하면 승률이 항상 100%라고 단언했다.
그 선언은 지금도 유효했다.
유진하는 마지막으로 선언했다.
“제가 당신을 막아내죠. 지금 이 자리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