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화 펜트하우스(2)
고층 빌딩 100층의 펜트하우스에서 치열한 접전이 벌어졌다.
유진하 대 에이스.
에어리스 대 스페이드.
알카트로스 소탕전의 대미를 장식하는 대결이었다.
“하압!”
에어리스는 최선을 다해 대검을 휘둘렀다.
상대는 알카트로스의 스페이드.
톱날 형태의 대검을 휘두르는 강적이었다.
‘알카트로스…….’
지금까지 에어리스는 여러 적을 상대했다.
지금까지 상대해 왔던 적들은 각자 나름대로의 기술로 맞섰다.
미노타우로스 같은 황소 괴물은 원초적이고 야성적인 힘으로 몰아붙이는 스타일이었다.
‘개성이라고 할 수 있을까.’
전투 스타일에는 각자의 성격이 담겨 있었다.
살인마 나주신은 살의.
푸른 갑옷의 기사 시리안은 철벽.
알카트로스는 전혀 달랐다.
‘가면 속의 사람…….’
알카트로스는 백가면을 쓰고 겉으로는 양복을 말끔하게 차려입었다.
그들은 무엇을 감추고 싶어 가면을 쓰는 걸까.
얼굴일까.
아니면 본성일까.
“하압!”
에어리스는 기합 소리와 함께 온 힘을 다해 휘둘렀다.
스페이드 역시 특이한 톱날 형태처럼 만들어진 대검으로 맞섰다.
칼날이 서로 부딪치자 날카로운 파열음이 들렸다.
“큭!”
에어리스는 지금까지 맞선 알카트로스에게서 다른 감정을 받았다.
그들은 가면 속에 감정을 숨겼다.
사람이 아닌 냉철함.
하지만 정말 모든 것을 가면 속에 숨길 수 있을까.
“내 임무는 마스터 제압…….”
스페이드는 그림자 같았다.
오로지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전력을 다하고 있었다.
카앙!
부딪치는 대검.
번뜩이는 칼날.
에어리스와 스페이드는 수십 차례 검으로 합을 나눴다.
“허억. 허억.”
에어리스의 숨이 조금씩 가빠지고 있었다.
반면에 스페이드는 태평하게 가만히 에어리스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의 검은 주저하지 않았다.
냉철하면서도 군더더기 없는 흐름은 빈틈조차 없었다.
‘강하다.’
에어리스는 대검을 움켜쥐고 다시 상대를 응시했다.
스페이드는 힘을 뺀 듯이 어깨를 내렸는데도 허술한 자세가 아니었다.
묘한 오오라와 기운이 느껴지는 모습이었다.
‘어디로 공격해야…….’
쉽게 다가서기 힘들었다.
전후좌우 사방에서 몰아쳐도 무너지지 않을 상대였다.
백가면에 새겨진 스페이드 마크는 싸우면 싸울수록 더 크게 느껴졌다.
마치 거대한 벽을 마주한 듯했다.
“이제 알았다.”
스페이드는 혼잣말하듯이 중얼거렸다.
동시에 그가 공격해 들어왔다.
지금까지는 에어리스가 먼저 공격하고 스페이드가 받아내는 식이었는데 이제 공수가 바뀌었다.
“으윽!”
거침없이 몰아붙였다.
이제는 에어리스의 스타일을 알아차렸다는 듯이 대응했다.
“아!”
스페이드는 대검으로 몰아친 후에 육박전처럼 달려들었다.
그 기세에 벽까지 밀린 에어리스는 정신을 차릴 틈도 없이 기습적인 무릎 차기에 복부를 맞았다.
“아아악!”
에어리스는 복부를 걷어차이고 벽까지 무너지면서 옆방으로 날아가 버렸다.
벽의 파편이 쏟아졌다.
“허억.”
에어리스의 입가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스페이드는 대검만이 아니라 육박전까지 감행하는 실력자였다.
“아직이에요.”
에어리스는 비틀거리면서 대검을 지팡이 삼아 힘겹게 일어섰다.
스페이드의 실력은 강했다.
대검을 극한으로 활용하는 기술은 섬세하면서도 강인했다.
“임무가 우선이니 이제 결판을 내겠다.”
스페이드는 톱날 대검을 양손에 쥐고 오오라를 집중시켰다.
이제는 완전한 기술로 압살하겠다는 의도였다.
대검에 감도는 오오라는 서서히 일렁이며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저건……?”
강렬한 화염이 톱날 대검에 소용돌이처럼 휘감겼다.
활활 타오르는 붉은 빛이 마치 긴 띠처럼 이어졌다.
“화염의 뱀…….”
화염을 머금은 뱀처럼 강렬하게 꿈틀거렸다.
그 뱀은 마치 스페이드를 보호하듯이 감싸고 있었다.
“후우.”
에어리스도 이에 맞설 태세를 준비했다.
속성 부여 건틀릿 장갑이 있었다.
“빙결.”
얼음의 기운이 대검에 감돌았다.
이 빙결의 힘은 반경 범위를 얼음으로 채울 만한 위력을 가졌다.
화염 대 얼음.
에어리스는 상성의 우위를 앞세워 스페이드의 불길에 맞서기로 마음먹었다.
“하압!”
에어리스가 달려들었다.
빙결의 힘은 이미 사방을 얼리고 있었다.
차가운 얼음은 뜨거운 불을 압도한다.
에어리스는 그 생각으로 자신감 있게 대검을 휘둘렀다.
“아!”
화염의 뱀이 만든 세계는 얼음의 장벽을 단숨에 녹여버렸다.
얼음을 압도하는 화염이었다.
심지어 에어리스의 대검마저 녹여버렸다.
“이럴 수가…….”
지금까지 대검은 에어리스의 손에서 든든한 무기가 되었다.
유진하가 처음으로 사준 검이었고, 상점 주인이 장난스럽게 붙여준 명칭은 버스터 슬레이어였다.
“안 돼.”
대검은 용광로에 들어간 철광석처럼 녹아내렸다.
녹아버린 칼날은 반만 남아 휘청거리듯이 쇳물을 토해냈다.
“아아.”
에어리스는 반만 남은 대검을 손에서 절대 놓지 않았다.
이 검은 자신의 분신과도 같았다.
전장을 함께 헤쳐나간 동료와도 같은 감정이 있었다.
“내 임무는 마스터 제압. 그리고 에어리스의 확보.”
“나를 확보… 한다고요?”
에어리스의 눈동자가 크게 벌어졌다.
리더 에이스의 ‘그림자’.
스페이드는 리더의 영향력에 충실한 자였다.
확보한다는 의미는 리더의 뜻일 터였다.
“검은 사라졌다.”
화염의 뱀이 에어리스의 대검을 집어삼켰다.
이제 대검의 승부는 끝났다고 스페이드는 여기고 있었다.
“나는 당신들에게 가지 않아요.”
에어리스는 단호하게 거절했다.
쌍둥이처럼 닮은 그녀 역시 되찾으려는 열망으로 나선 거였다.
포기할 마음은 처음부터 없었다.
“검은 없다. 다른 검을 꺼낸다고 해도 달라질 것도 없지.”
화염을 몸에 감은 스페이드는 걸걸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승부는 이미 끝난 거였다.
“…아직 싸울 수 있어요.”
에어리스는 반 토막이 된 대검을 움켜쥐었다.
그 어느 때보다 더 강한 손아귀 힘이 모이고 있었다.
마지막 남은 힘이 있었다.
-충전식 목걸이.
전투 중에 에너지가 모인다.
모여든 에너지는 자신의 힘으로 활용하거나 기술로 발산시킬 수 있다.
“이 힘으로…….”
에어리스는 목걸이에 충전된 힘을 끌어냈다.
순간적으로 막대한 에너지가 전신에 흐르기 시작했다.
각성과도 같은 힘이었다.
“…당신과 맞서겠어요.”
흘러넘치는 기운이 서서히 대검에 들어갔다.
반으로 줄어든 대검은 기운을 흡수하여 검기를 발산했다.
검기의 대검.
에어리스는 새롭게 검기가 감도는 대검을 움켜쥐었다.
“새로운 검이라…….”
검기의 대검을 든 에어리스를 보고 스페이드는 대결이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에어리스의 전신에서 샘솟는 투쟁적인 기운 역시 막강했다.
끓어오르는 ‘투기’가 격렬하게 뿜어졌다.
“승부다.”
스페이드는 비로소 에어리스를 진정한 적으로 인식했다.
맞상대로 인정하고 진심으로 상대하겠다고 마음먹었다.
파앗!
화염의 뱀을 머금은 스페이드.
투기와 검기의 에어리스.
순식간에 펼쳐지는 검술은 폭풍처럼 몰아쳤다.
정면 대결이었다.
“으아아아!”
스페이드는 기력을 발휘하고자 고함을 내질렀다.
침착함 속에 감춰진 열의.
스페이드는 항상 백가면 속에 감정을 담아두었다.
‘가면은 과거와의 단절을 의미한다.’
스페이드가 백가면을 쓰면서 들었던 말이었다.
‘가면을 쓰면 마음이 편해진다.’
리더는 그렇게 얘기해 줬다.
그 말은 사실이었다.
수년 전.
가족들에게 외면받고 버림받은 스페이드는 홀로 뒷골목 쓰레기통에 기대어 누워 있었다.
“하하하하.”
실없는 웃음소리만 내었다.
이미 가족에게 버려지고 집도 잃었으며 도둑질로 연명하는 삶이었다.
지치고 지친 상태였다.
슬럼가의 골목은 지옥과도 같았다.
세상에 절망한 사람들이 약에 취해 휘청거리는 그들만의 세계였다.
“하늘이 안 보여.”
고개를 들어도 절망 속에 사라진 공간이었다.
스페이드가 살아가는 곳은 그랬다.
그렇게 죽음에 점점 다가가고 있었다.
“너는 누구지?”
손을 내민 사람이 있었다.
말쑥한 양복 차림의 남자가 그의 앞에 있었다.
왜 내게 말을 걸었을까?
그런 생각을 할 기운조차 없을 만큼 심신이 지친 상태였다.
“이걸 가져라.”
남자는 뭔가를 내밀었다.
음식? 담배? 돈?
무엇이든 괜찮았다.
하지만 남자가 내민 물건은 전혀 뜻밖의 물건이었다.
“가면?”
백가면이었다.
스페이드 문양이 새겨진 가면을 주었다.
처음 받아보는 물건이었다.
“그걸 써봐라. 그리고 느낌을 말해라.”
무슨 말인지 모르겠으나 굳이 거부할 이유도 없었다.
순순히 가면을 쓴 후에 기분을 알려줬다.
“기분이 어떤가?”
가면 속에서 보이는 세상은 조금 달랐다.
뭔가 내 얼굴이 가려지자 알 수 없는 자신감이 생겨났다.
열등감에 사무치던 때와 기분이 달랐다.
“다시 살아난 거 같아.”
대답이 맘에 들었는지 남자는 그 가면을 그냥 주었다.
마지막으로 한마디를 남겼다.
“나는 가면을 쓰고 새로운 인생을 살아갈 사람을 모으고 있다. 너도 나를 따르겠나?”
“당신을 따르라?”
“나는 세계를 주름잡는 조직을 준비하고 있다. 가면이 꼭 필요한 사람이 내가 원하는 자야.”
남자는 손을 내밀었다.
그 손은 이상하게도 점점 커다랗게 보였다.
처음 내밀어준 손.
거절할 수 없었다.
“너는 스페이드다.”
남자는 가면에 이어서 이름까지 주었다.
그날 이후로 그는 ‘스페이드’가 되었다.
알카트로스의 스페이드.
리더 에이스의 그림자.
골목길의 부랑아에서 알카트로스의 스페이드로 새롭게 태어나는 순간이었다.
“이게 나의 길이다.”
스페이드는 화염의 뱀을 머금고 대검을 크게 휘둘렀다.
이에 맞서는 에어리스 역시 검기를 머금은 대검으로 맞섰다.
투지의 대결이었다.
“으아아아!”
“하아아압!”
휘어지는 검기.
무너지지 않는 결의.
새롭게 검기를 씌운 에어리스의 대검은 화염의 뱀과 정면으로 맞섰다.
검기와 화염이 사방으로 불꽃처럼 튀었다.
결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콰앙!
방은 부서지고 복도부터 몇 개의 방을 오가면서 대결이 이어졌다.
치열한 불길과 무수한 파편이 정신없이 휘날렸다.
“아아.”
팽팽했던 승부의 추는 조금씩 한쪽으로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에어리스의 대검은 검기로 버티는 힘이었고 반이 녹아버린 상태로 싸우는 거였다.
이에 반해 스페이드는 완벽한 검이었다.
“으윽!”
방어하던 에어리스가 뒤로 차츰 밀려났다.
벽면에 강하게 부딪치자 큰 충격파가 퍼졌다.
이미 그들이 싸우는 장소는 폐허처럼 변해 버렸다.
‘…막아낼 수가 없어.’
에어리스는 검기에서도 밀려나고 말았다.
최선을 다했으나 스페이드에게는 자신의 검이 닿지 않았다.
실력의 차이는 명백했다.
“하아. 하아.”
에어리스는 숨을 헐떡이면서 눈앞의 상대를 바라봤다.
화염의 뱀을 머금고 기세등등한 스페이드가 걸어오고 있었다.
그의 검술은 마치 두 명의 조합과도 같았다.
대검의 스페이드.
화염의 뱀이 휘감는 참격.
뒤섞인 연합 공격에 에어리스는 고전을 거듭했다.
“…….”
에어리스는 말할 기운조차 거의 사라지고 말았다.
검기마저 줄어들기 시작했고, 이제는 마지막 결착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상대는 두 개…….’
에어리스는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대검과 화염의 연계 공격은 단 하나의 대검으로는 맞서기 불가능했다.
지금의 녀석과 맞서기에 무리였다.
그렇다면…….
“후우.”
에어리스는 호흡을 가다듬었다.
검기로 만든 대검.
남은 힘을 모조리 쥐어짜서 다른 손에 모으면 어떻게 될까.
거기에도 비슷한 검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하아아압!”
에어리스는 마지막 남은 기운을 쥐어짜고 남은 손에 집중시켰다.
파아아.
손에서 검기가 치솟았다.
마치 빛이 발산되듯이 검기의 검이 하나 더 생성됐다.
녹아버린 대검에 서린 검기.
손에서 발산하는 검기의 검.
이렇게 두 개의 검이 만들어졌다.
에어리스는 양손에 검기의 대검을 하나씩 쥐게 되었다.
“대검이 두 개로?”
스페이드는 멈칫했다.
대검은 워낙 무거워서 하나도 제대로 다루기 힘든 무기였다.
두 개를 다루는 건 당연히 무리지만 검기의 대검은 무게가 없었다.
“…저건 달라.”
새로 나온 검기의 검은 기운으로 만든 거라 무게가 없었다.
제대로 사용만 한다면 쌍검의 대검술을 확장할 수도 있었다.
유례가 없는 새로운 검술이 탄생한다.
“하아아압!”
우렁찬 기합 소리와 함께 에어리스가 달려들었다.
쌍대검은 대단한 위용을 발휘했다.
에어리스가 가진 검사로서의 재능과 더불어 아침마다 반복했던 연습이 시너지를 발휘했다.
카앙!
에어리스의 공격은 변화무쌍했다.
쉴 새 없이 몰아치는 대검술에 스페이드는 서서히 밀려났다.
스페이드가 자랑하는 연계가 처음으로 밀리는 순간이었다.
카앙!
그때였다.
검기를 발휘한 에어리스는 화염의 뱀을 향해 휘둘렀다.
화염의 뱀은 목이 잘리듯이 베였고 형체도 없이 사라졌다.
“아아아아!”
에어리스가 남은 힘을 다해 스페이드의 검을 내리쳤다.
화염의 뱀이 사라진 톱날 대검은 엄청난 위력을 받아내지 못하고 반으로 갈라졌다.
“크억!”
부서진 검과 동시에 스페이드는 온전히 충격을 받았다.
리더가 준 가면도 망가졌다.
“허억. 허억.”
바닥에 쓰러진 스페이드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일어날 기력마저 전부 잃었다.
“끝났네요.”
기진맥진한 에어리스 역시 더는 버티지 못하고 뒷걸음질 치더니 이내 주저앉았다.
“이겼어.”
작은 소감이 흘러나왔다.
에어리스는 숨을 헐떡이면서 천천히 고개를 돌려 밖을 바라봤다.
부서진 창 너머로 시원한 밤바람이 불어왔다.
저 멀리 보이는 도시의 야경은 마치 별빛이 빛나는 듯이 아름다웠다.
“뒤는 맡길게요. 진하.”
승부의 마지막은 이제 두 사람에게 달렸다.
유진하와 에이스.
최종 결판이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