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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을 활용하는 1000가지 방법-70화 (70/229)
  • 70화 펜트하우스(1)

    100층 빌딩의 최고층 펜트하우스.

    커다란 거실의 통유리 너머로 도시의 야경이 내려다보였다.

    “항상 볼 때마다 아름다워.”

    눈부신 조명이 도시 곳곳에서 작은 등대처럼 빛나고 있었다.

    “알카트로스 소탕전은 잘 진행되고 있으려나?”

    푸른빛의 양 갈래머리의 여자는 귀여운 외모가 앳되어 보였다.

    글라스 한 잔을 한 모금 마시면서 밤의 도시를 바라봤다.

    한창 야경을 즐기던 즈음에 현관 쪽에서 낯선 그림자가 나타났다.

    “손님을 초대한 적이 없는데…….”

    여자는 글라스를 입가에서 떼어낸 후에 고개를 돌렸다.

    검은 망토를 쓴 자였다.

    회색 고급 양복을 입은 그는 백가면을 썼다.

    트럼프 카드의 A 문양이 새겨진 가면이었다.

    “알카트로스의 리더 에이스…….”

    ‘에이스’라 불린 남자는 한 손으로 자신의 가면을 매만졌다.

    가면 속에 보이는 눈동자에는 차가운 눈매가 살며시 드러났다.

    “좋은 집이야. 마스터가 혼자 살기에는 조금 넓을 수도 있겠어.”

    푸른 머리의 앳된 여자는 ‘마스터’라 불렸다.

    정부 요원의 지휘관이자 이 공간의 주인인 마스터였다.

    “다시 보고 싶지는 않았는데, 그래도 오랜만이다.”

    마스터는 살짝 웃으면서도 경계하는 눈빛을 담아 보냈다.

    경계심을 내비친 건 에이스 역시 마찬가지였다.

    우두커니 서서 상대를 지켜보고 있었다.

    정부와 알카트로스.

    양 조직의 리더는 이렇게 밤에 단독으로 회동하게 되었다.

    마스터는 탁자에 있는 병을 잡아서 내밀었다.

    “한 잔 마실래?”

    “너는 술을 하나도 못 마시잖아. 그건 물인가.”

    “기억하고 있네?”

    “어쨌든 네 옆에서 가장 오래 있었던 요원은 나였으니까 말이야.”

    마스터는 병을 도로 탁자에 내려놨다.

    이번에는 손에 든 잔을 들어 건너편의 에이스를 비추었다.

    흔들거리는 물잔의 흐름을 따라 그의 형체도 이리저리 움직였다.

    “예전에 네가 요원 A였던 때가 생각난다. 진짜 일 잘했잖아.”

    “…마스터 밑에서 많이 배웠지.”

    리더 에이스는 옛 추억을 떠올리듯이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그때 배운 기술로 지금까지 살아남았다. 이제는 너를 제압하러 여기까지 왔고.”

    “그거 고약한 소리네.”

    마스터는 입술을 삐죽 내밀면서 정색했다.

    두 사람은 과거에 동료 사이였고 지금은 적이 되었다.

    “너의 에이스 칭호는 요원들의 에이스라는 뜻이었어.”

    “…예전 이야기지.”

    알카트로스의 리더 에이스는 원래 정부 요원이었다.

    간부 중에 최고 코드명인 A를 받은 자였다.

    항상 마스터의 곁을 보좌하는 책임까지 맡은 자리였다.

    “네가 배신할 줄은 몰랐어. 정말이야.”

    “…속아 넘어간 사람들은 항상 그렇지.”

    에이스는 감정을 담지 않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믿음을 이용하는 거다.”

    “고약한 줄 알았는데 이제 보니 지독한 거였구나.”

    과거는 추억이 아니었다.

    믿음이 배신으로.

    배신이 적의로.

    에이스는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 마스터의 신뢰를 이용했다.

    “B는 왜 죽였어?”

    “원래는 마스터, 너를 노린 거다. B는 너 대신 죽은 거지.”

    A는 동료 B를 죽이고 달아났다.

    그 사건은 정부 요원 자리를 버리고 범죄 조직 알카트로스로 들어가는 계기가 되었다.

    “동료를 죽인 건 너야.”

    “B는 내 동료가 아니다.”

    요원 A는 없었다.

    녀석은 알카트로스의 리더 에이스였고 둘의 악연은 오늘 밤까지 이어졌다.

    어두운 밤하늘 아래.

    최고층 펜트하우스에서 대결의 마지막이 시작되고 있었다.

    “개미굴 본거지는 유인이었어? 알카트로스 소탕전은 이미 알고 있었나 보네.”

    “너희들의 작전을 역이용했다.”

    에이스는 순순히 인정했다.

    “요원들이 올 줄 미리 알았지. 개미굴 본거지에 집중하는 동안, 역으로 너를 칠 생각이었다.”

    “네가 심어놓은 스파이가 알려줬나 보네.”

    “…….”

    마스터는 금방 상황을 이해했다.

    에이스가 심어놓은 스파이가 이 구도를 만들어낸 거였다.

    “요원들이 나를 노리듯이 우리도 마스터를 노리는 거다. 핵심 요원들이 자리를 비운 틈이 기회지.”

    에이스는 검은 망토를 살짝 손으로 부여잡았다.

    흔들리는 망토의 자락 속에서 그는 계획의 마지막을 준비했다.

    “이 대결은 누가 먼저 상대의 머리를 치느냐. 그 승부이다.”

    에이스는 손에서 물건을 꺼냈다.

    검은 단도였다.

    “그래서? 여기까지 온 네가 이겼다고 생각하겠다고?”

    마스터는 글라스에 담긴 물을 모두 마셨다.

    이제는 빈 잔이 된 글라스는 거실의 조명을 영롱하게 반사했다.

    “누구 맘대로.”

    마스터는 빈 글라스를 바닥에 툭 던졌다.

    동시에 무기 하나를 꺼냈다.

    금빛 단도였다.

    카앙!

    거실의 대리석 바닥에 떨어진 글라스는 산산조각이 나서 사방으로 조각이 튀었다.

    부서진 유리 조각에는 두 사람의 움직임이 비쳤다.

    마스터 대 에이스.

    금빛 단도와 검은 단도.

    수평선처럼 서로를 향해 맹렬한 기세로 달려들었다.

    카앙!

    두 명이 부딪치는 순간에 충격파가 발산되었다.

    거실 통유리가 그 파동을 버티지 못하고 부서졌다.

    글라스 조각과 통유리 조각이 산산이 흩어지는 와중에 마스터와 에이스는 서로를 노려봤다.

    과거부터 이어진 숙적.

    리더 간의 대결이 벌어졌다.

    “지금이다.”

    단검이 맞닿은 순간.

    에이스는 알 수 없는 명령을 내렸다.

    녀석의 귀에는 이어폰이 꽂혔는데, 무전 기능까지 탑재된 모델이었다.

    파앗!

    명령을 수신받은 자는 순식간에 마스터의 후방에 나타났다.

    에이스의 그림자 같은 자였다.

    “뒤를 잡았다.”

    애초에 에이스는 혼자가 아니었다.

    알카트로스의 멤버도 같이 데려왔는데, 스페이드와 함께했다.

    “이 녀석들이……?”

    마스터는 배후를 잡혔다.

    에이스가 정면으로 맞서는 순간에 뒤를 노린 기습이라 완전히 등을 내주고 말았다.

    스페이드는 톱날 대검을 들었다.

    그대로 마스터에게 휘둘렀고 피할 수 없는 순간이었다.

    카앙!

    스페이드의 참격을 무언가가 가로막았다.

    “이건?”

    갑자기 나타난 거대한 대검이 마스터의 배후를 보호했다.

    이 대검의 주인은 단 한 명이었다.

    스페이드가 아는 사람이었다.

    “에어리스?”

    에어리스는 당당한 자세로 대검으로 스페이드의 일격을 막아냈다.

    “어떻게 이곳에?”

    스페이드에 이어 에이스 앞에도 다른 사람이 나타났다.

    절대 이곳에 없을, 아니, 없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사람이었다.

    “유진하……?”

    차분한 눈매와 명석한 두뇌를 가진 사람.

    첩자였던 조커가 가장 주의할 인물로 꼽았던 자였다.

    개미굴 본거지로 유인하는 작전에 걸려들었다면 유진하는 분명 그곳에 있어야 했다.

    “대체 왜 네가 여기 있는 거냐?”

    유진하는 살짝 웃었다.

    두뇌 싸움에서 우위에 있다는 자신감의 표시였다.

    “알고 싶어요?”

    마스터의 앞뒤에는 유진하와 에어리스가 나타났다.

    두 사람은 마치 호위무사처럼 마스터를 보호했다.

    이 상황은 에이스의 계산에서 처음으로 어긋나는 부분이었다.

    “에이스, 당신의 작전은 짐작하고 있었거든요.”

    유진하는 카드 한 장을 들었다.

    순간 이동 카드였다.

    도착 위치까지 지정할 수 있는 초레어 물품이었는데 마스터가 전용으로 가진 귀한 물건이었다.

    마스터는 살짝 웃었다.

    “이번에 특별히 빌려준 거야.”

    에이스는 뒤로 한발 물러났다.

    흔들리는 망토 속에서 냉철하게 사태를 분석하기 시작했다.

    “…그걸로 왔군.”

    에이스는 완전 범죄를 추구하는 리더답게 변화에 민감했다.

    유진하와 에어리스의 등장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고 작전의 변수가 되었다.

    “당신이 마스터를 노리려고 일부러 본거지를 노출했다고 생각했죠.”

    사실이었다.

    리더 에이스도 알카트로스에 정부의 첩자가 있다는 사실을 간파했다.

    정체를 모르는 스파이가 있었으나 오히려 역정보를 흘려서 이용하기로 했다.

    -첩자에게 가짜 정보를 흘린다.

    개미굴에 요원들을 끌어들이고 자신은 그 틈에 마스터를 노리겠다는 작전이었다.

    “전부 간파당한 건가?”

    유진하의 눈빛은 조용했다.

    사실 그것만 안 것은 아니었다.

    이번 작전에 연루된 모든 세력들의 생각을 전부 알아차렸다.

    “마스터는 알카트로스의 소탕을 원했어요. 반대로 알카트로스는 마스터를 원했죠. 문제는 이들과 생각이 다른 세력이 하나 더 있다는 사실이에요.”

    “그게 누구지?”

    에이스는 순순히 대답했다.

    이미 기습의 효과를 잃어버린 탓에 약간의 맥이 풀리긴 했다.

    완전한 계획은 실패했으나 전투는 아직 진행 중이었다.

    에이스는 유진하와 대화하면서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3번째 세력은 첩자죠.”

    “스파이를 말하는 건가……?”

    “네, 양쪽에서 보낸 스파이의 정체는 E와 조커였습니다. 둘은 같은 사람이었죠.”

    에이스는 흠칫 놀랐다.

    조커가 이중 첩자일 거라고는 예상치 못했기 때문이다.

    “…그랬나.”

    “당신들의 눈을 속이기 위해 여러 장치를 했을 거예요. 음흉하고 교활한 성격이니까 트릭을 썼겠죠.”

    유진하는 차분하게 용건을 전하면서 천천히 자신의 페이스로 상황을 이끌어갔다.

    리더 에이스.

    그는 만만찮은 실력과 지력을 가진 상대였고 녀석의 심리 흐름을 무너뜨리는 것이 중요했다.

    “조커, 그러니까 이중간첩은 정부와 알카트로스가 서로 싸우다가 자멸하기를 바란 겁니다.”

    “싸움을 붙였다는 거군.”

    “맞아요. 양측이 싸우면서 힘을 잃으면 자기가 마지막에 이득을 전부 챙길 계획이었죠.”

    조커의 전략도 알려줬다.

    이번 소탕전에서 유진하가 제일 먼저 조커를 유인해서 싸운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조커는 변수였다.

    예측불허의 종잡을 수 없는 행동으로 움직이면 유진하가 짜놓은 판세를 뒤흔들 수 있었다.

    “조커는 제가 막았으니 다시 본격적으로 나서기 어려울 거예요. 이제는 당신이죠. 알카트로스의 리더 에이스…….”

    “완벽한 작전이라고 생각했는데 제법이다.”

    에이스는 손으로 가면을 잡았다.

    그 손은 불쾌한 듯이 신경질적으로 움직였고 화난 감정이 온전히 드러났다.

    E와 조커.

    A와 에이스.

    마치 비슷하면서도 다른 두 사람은 이번 소탕전에서 정체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비열하고 음흉한 범죄자.

    그게 진짜 얼굴이었다.

    “내 전략을 다 알았으면 끝인가.”

    에이스는 큭큭거리면서 웃었다.

    “알카트로스가 완전 범죄를 어떻게 해냈는지. 혹시 알고 있나?”

    “…….”

    이번엔 유진하가 조용해졌다.

    부서진 펜트하우스에 모인 사람들은 적과 아군으로 구별된 관계였다.

    한때는 동료이기도 했으나 지금은 적이 된 사이였다.

    “완전 범죄는 완벽한 계획으로 이뤄지는 게 아니다. 변수가 생겼을 때 전부 깔끔하게 막아버리면 완벽한 계획이 되는 거지.”

    에이스는 검은 단검을 들어 앞을 겨누었다.

    “지금은 어떨까? 변수인 너를 제거하면 완전 범죄가 될 거 같은데.”

    자신만만한 에이스를 앞에 두고 유진하는 양손에 100장의 카드를 준비했다.

    두 사람의 정면 대결은 승부의 향방을 가르게 될 터였다.

    “할 수 있으면 해보시죠.”

    유진하는 기세에 눌리는 타입이 아니었다.

    유진하와 에이스.

    두 사람은 서로의 기량을 확인하며 서서히 오늘 밤의 결정적인 국면을 향해 나아갔다.

    “후우.”

    한편, 마스터를 지키던 에어리스는 호흡을 가다듬었다.

    상대는 스페이드였다.

    톱날 형태의 대검을 든 강적이었다.

    두 사람의 대검은 바닥에 떨어진 유리 조각처럼 예리한 빛을 번뜩였다.

    “나는 리더의 그림자…….”

    스페이드가 작게 중얼거렸다.

    목소리는 어둠을 삼킨 듯이 무겁고 근엄했다.

    “그림자처럼 움직이고 적을 처치한다. 그게 내 역할이지.”

    마치 기계음같이 껄끄러운 목소리가 들렸다.

    스페이드의 소름 끼치는 결의가 오롯이 전해졌다.

    “…….”

    적막함이 흐르는 동안 에어리스는 가면 속 상대의 눈을 바라봤다.

    가면에 감춰진 번뜩이는 눈매는 강렬한 적의를 담고 있었다.

    에어리스는 단단히 각오를 굳혔다.

    “당신은 제가 막겠어요.”

    물러설 수 없는 대결을 앞두고 에어리스는 지지 않겠다는 듯이 강한 기운을 발휘했다.

    깊어가는 밤.

    단 하나의 결말을 향해 전투는 흘러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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