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화 개미굴(3)
알카트로스의 다이아몬드와 하트는 개미굴의 3번 방을 지키고 있었다.
붉은 다이아와 붉은 하트라는 별칭이 있을 만큼 조직의 초창기부터 함께한 동기와도 같았다.
“단숨에 가지요.”
키가 크고 날씬한 다이아몬드는 단호하고 말수가 적었다.
철두철미한 일 처리는 항상 간결하고 단칼에 처리했다.
사람을 베는 일조차 주저함이 없었다.
“나는 천천히 즐겨도 되는데…….”
반면에 작고 귀여운 스타일의 하트는 부드러운 느낌이었다.
보이지 않을 만큼 가느다란 실을 사용하는데, 임무 중에도 여흥을 즐기는 경향이 심해서 무엇이라도 가지고 놀았다.
물건이든 사람이든.
제한을 두지 않고 실오라기에 걸린 존재를 마구잡이로 가지고 노는 바람에 하트에게 놀아난 요원들도 수두룩했다.
“얼마나 재밌게 놀아줄 거야?”
하트는 잔뜩 기대감에 찬 채로 손가락 마디 전부에서 10개의 실을 꺼냈다.
실이 마치 거미줄처럼 사방으로 퍼져나가려던 즈음이었다.
D가 앞장섰다.
“내가 나설게.”
D는 가느다란 태도(太刀)를 들고 다이아와 하트를 둘 다 노려보더니 이내 돌격했다.
옆에 있던 동생 J가 말릴 틈도 주지 않았다.
둘을 동시에 제압하려고 과감하게 돌격하려는 시도였다.
“일섬.”
태도의 검이 지평선을 가로지르듯이 나아갔다.
깔끔하고 섬세한 일격이었다.
키이잉.
정적을 베어버릴 듯한 굉음까지 발산되었다.
“와, 그 검은 여전하네?”
사방에 깔아둔 실이 깔끔하게 잘리자 하트는 놀란 동시에 솔직하게 감탄했다.
순수한 의도에서 나온 칭찬이었다.
D의 검술은 빠르고 경쾌한 속도감을 생명처럼 여겼고 단 일격만으로도 상대를 제압할 수 있는 깊이마저 있었다.
쾌속의 검이었다.
“너무 쉽게 실이 잘렸어.”
실이 끊어지자 하트는 뒤로 물러났고 이어서 다이아몬드가 채찍을 들고 나섰다.
촤라락.
바람을 감으려는 듯이 채찍이 말아 올라갔다.
다이아몬드의 채찍은 보통의 긴 줄을 가진 형태와 달랐는데 철 조각끼리 연결된 무기였다.
덕분에 강력한 검의 베기도 철의 채찍으로 막아낼 수 있었다.
카앙!
경쾌한 마찰음이 퍼졌다.
다이아몬드도 속력에는 일가견이 있는지라 철 채찍을 눈에 보이지 않을 속력으로 매섭게 휘몰아쳤다.
채찍의 범위에 닿는 모든 것을 찢어버릴 만큼 파괴력이 막강했다.
“철편 채찍…….”
D도 이미 알고 있었다.
다이아몬드는 마치 검날처럼 채찍을 휘둘렀는데 저 사정거리 안에서는 무적과도 같았다.
태도의 검술은 일격에 승부를 거는 방식이라 막히면 전략적으로 물러서는 편이 나았다.
‘후우.’
D는 다시 태도의 검을 검집에 넣었다.
일섬의 위력을 올리려면 검집에 넣었다가 다시 뽑아야 했다.
‘문제는 저 철편 채찍의 사정거리가 길다는 거야.’
채찍은 검보다 사정거리가 길었다.
‘일섬’을 적중시키려면 결국 저 거리 안에 파고들어서 명중시켜야 했다.
맨몸으로 돌격하는 방법뿐이었다.
쾌속의 태도를 가진 D는 이 상황을 예견하고 있었다.
‘저 가증스러운 자에게서 이기고 싶어.’
D의 목표는 알카트로스 그 자체였다.
그녀는 지금까지 항상 일등을 놓치지 않고 엘리트 코스를 밟아오는 길을 걸었다.
뭐든지 원하는 바는 이루어냈다.
항상 불가능이란 없다는 생각으로 하나씩 해냈고 동생과의 경쟁에서도 우위에서 이겨냈다.
‘정부의 최고 간부 자리까지 올라왔어. 그때까지는 좋았지.’
자신만만했던 D의 모습을 가로막은 존재들이 있었다.
‘알카트로스…….’
이 범죄조직은 달랐다.
‘내가 잡아내지 못한 유일한 오점이 너희들이야.’
알카트로스가 수많은 범죄를 벌이는 동안에 단 한 명도 잡지 못했다.
그동안 쌓아왔던 D의 자부심을 여지없이 무너뜨린 괴물 같은 집단이었다.
‘반드시 잡겠어.’
D는 태도의 검 한 자루를 가지고 매섭게 휘몰아치는 철편 채찍의 사정거리를 공략할 생각이었다.
전략은 간단했다.
정면 돌파였다.
“후우.”
숨을 한 번 고르던 D가 이내 고개를 들어 매서운 눈빛으로 돌변했다.
한 걸음.
발이 사악 움직이더니 이내 뛰기 시작했다.
승부를 걸었다.
“어?”
D의 순간적인 기습이었다.
다이아몬드는 D가 이 맹렬한 채찍을 향해서 정면으로 쳐들어올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당연히 옆으로 돌아서 덤빌 줄 알았는데 정면 돌격이라니.
자살 행위에 가까웠다.
“아차.”
전속력으로 파고든 D의 움직임은 신기에 가까웠다.
휘몰아치는 채찍의 흐름을 피하는 건 불가능했다.
아무리 빨라도 그건 불가능했다.
‘설마…….’
그제야 다이아몬드는 한 가지 불길한 가능성을 떠올렸다.
채찍의 궤도는 어디까지나 반복 연습해서 터득한 기술이었다.
어떤 기술이든 사용자는 일종의 흐름을 내보인다.
버릇일 수도 있었다.
휘두르는 채찍의 각도와 타이밍이 존재한다.
‘이 녀석, 외운 거야?’
D는 명석한 두뇌를 가진 최고 수준의 요원이었다.
단순히 빠른 움직임만이 아니라 두뇌 회전에서도 엘리트 요원이었다.
다이아몬드의 철편 채찍술.
몇 번이나 봤던 저 기술의 궤도와 타이밍, 속도를 만약에 전부 외워버렸다면?
충분히 공략할 여지가 생긴다.
“말도 안 돼.”
무적이라 생각했던 채찍술이 완전히 공략당했다.
이를 악문 D의 집념은 채찍의 모든 궤도를 간파한 덕분에 완벽한 타이밍에 맞춰서 회피했다.
‘지금이야.’
경쾌한 발걸음과 과감한 전진이었다.
쾌속으로 움직이던 D는 채찍의 공격을 전부 피해내고 반격의 차례를 맞이했다.
검집에 넣은 검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한 번의 기회였다.
파앗!
완벽한 타이밍에서 발휘된 일섬은 마치 공기를 갈라버릴 듯이 깔끔한 위력을 발휘했다.
승부는 끝이었다.
“아니?!”
회심의 일섬은 허공을 갈랐다.
그럴 리가 없었다.
다이아몬드가 피할 여지조차 주지 않았던 기술이었다.
“후우, 다이아몬드가 당할 뻔했어.”
다이아몬드는 천장에 있었다.
천장에는 거미처럼 거꾸로 붙은 하트가 있었는데 실을 사용해서 다이아몬드를 공중으로 끌어올리고 있었다.
덕분에 D가 발휘한 일섬의 베기가 바람만 가르고 말았고, 다이아몬드는 가까스로 피할 수 있었다.
“덕분에 살았네요.”
차분하고 냉정했던 다이아몬드가 처음으로 당황했다.
하트가 도와주지 않았다면 저 일격에 반드시 패했을 터였다.
“조심해야 해. 요원들도 강하다고.”
“명심하죠.”
하트와 다이아몬드는 전력을 추스르려는 듯 살짝 뒤로 물러났다.
“아쉬워.”
D는 아쉬움에 살짝 한숨을 내쉬었다.
‘일대일이었으면 이겼는데.’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으나 이내 마음에서 떨쳐내려고 노력했다.
작전은 여전히 벌어지고 있었다.
“아쉬웠어.”
뒤에서 지켜보던 J가 다가왔다.
언니와 동생이 같은 적을 상대하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아직 끝난 건 아니니까 집중해야겠지.”
D는 동생을 쳐다보지도 않고 분한 기분을 억누르며 정면을 쳐다봤다.
간부 요원답게 흔들리지 않는 평정심을 겸비하고 있었다.
여전히 하트와 다이아몬드는 남아 있었다.
“재밌어졌어. 정말이야.”
하트는 기쁜 듯이 밝게 소리쳤다.
손에 엮인 실들이 사방으로 뻗어나가기 시작했다.
“역시 요원들은 우리 상대로 호적수라고 봐. 이제 2대2로 즐겨보자.”
제대로 나선 하트는 사방을 실로 가득 채웠다.
D와 J는 쏟아지는 실을 피해서 빠르게 움직였다.
“저기에 잡히면 끝이야.”
“알고 있어.”
마치 티격태격하듯이 서로에게 주의점을 알려줬다.
하트의 가느다란 실은 거의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얇았다.
덕분에 경찰이나 추적자들이 저 실의 트릭에 숱하게 걸려들고 말았다.
“거미줄에 걸린 나방이 되었으면 좋겠어.”
하트는 밝게 웃으면서 마음껏 실을 발산했다.
D는 아까처럼 검으로 쳐내고 싶었는데, 이번에 쏟아지는 실의 패턴이 달랐다.
‘방향이 바뀌었어?’
이전과 다르게 마지막에 한 번씩 방향을 비틀어서 파고들었다.
궤도를 바꾸고 들어오는 실의 움직임 탓에 D는 아까 같은 대응은 어려웠다.
덕분에 검으로 실을 잘라내지 못하고 차츰 뒤로 밀려나야 했다.
달라진 점은 하나 더 있었다.
“어?”
열 가닥의 실이 온 사방에 퍼지자, 다이아몬드는 그 실을 공중에서 밟으며 달려들었다.
“이건 보여준 적이 없죠.”
다이아몬드는 채찍을 하나 더 꺼냈다.
양손에 채찍을 들어 몰아치는 진짜 실력이었다.
“받아 보시겠나요?”
쌍채찍의 파괴력이 강렬하게 휘몰아쳤다.
D는 물러설 곳이 없었다.
사방에 설치된 실이 어느새 퇴로까지 막아버린 탓이었다.
“연계인가?”
하트와 다이아몬드는 훌륭하게 호흡을 맞추고 있었다.
실과 채찍으로 정교하게 이뤄진 연계였다.
“아차!”
두 개의 채찍은 D의 쾌속으로도 피할 수 없었다.
철편 채찍이 어깨를 스치고 지나쳤다.
붉은 피와 함께 뜨거운 아픔이 밀려들었다.
붉게 타오르는 핏빛 절망처럼 잔혹했다.
“아악!”
고통의 신음을 내면서 물러난 D는 어깨에 흘러내리는 피를 느꼈다.
J도 옆구리를 베였다.
몰아치는 두 개의 채찍은 D와 J 자매를 극한의 위기로 몰아넣었다.
“이대로는 당해…….”
거미줄에 갇힌 상황에서 채찍은 목숨을 노리고 들어왔다.
하트와 다이아몬드의 잘 만들어진 연계는 자매들과 격이 달랐다.
“이대로 질 거야?”
J가 분노한 얼굴로 속삭였다.
“우리가 얼마나 노력해서 경쟁했는데. 이러면 둘이 같이 지는 거잖아.”
D도 문득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
그 모든 노력이 여기서 물거품이 된다면 허무함만 밀려들 터였다.
‘이렇게 당할 수 없어.’
‘여기서 같이 죽으려고 온 게 아니야.’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D와 J는 일어섰다.
자매로서.
서로 의지하는 사람으로서.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전투를 준비했다.
“이번에는 내가 먼저야.”
온몸을 베인 통증을 참으며 J가 먼저 나섰다.
한손검과 카드를 들고 당당하게 걸어갔다.
거침없는 발걸음이었다.
“다 쓰러져가면서 뭘 하려고?”
하트는 패배 직전으로 내몰린 자매 요원들을 우습게 여겼다.
승부는 이미 결판이 난 거라 여겼고, 여유가 생기자 버릇이던 장난기가 발동됐다.
쉬릭.
네 가닥의 실이 움직였다.
J의 팔다리를 전부 실로 감아서 마리오네트 인형처럼 가지고 놀 생각이었다.
“살아 있는 마리오네트처럼 예쁘게 만들어 줄게.”
하트는 살아 있는 사람을 실로 가지고 놀면서 쾌감을 받았다.
대단한 악취미였다.
“너랑 놀아줄 생각은 없지.”
J의 눈빛이 번뜩이며 빛났다.
손에 든 카드가 일제히 발동했다.
“윈드.”
J의 주특기는 바람 카드였다.
항상 여분의 카드를 많이 지녔는데 그걸 전부 발동시켰다.
파아아!
엄청난 바람이 휘몰아치자 하트가 설치한 실이 살짝 흔들렸다.
“그걸로는 어림도 없어. 이번에는 완전히 벽에 고정해 놨거든.”
바람으로 실을 날려버릴 수 없도록 하트는 아예 실을 벽에 붙여놓은 뒤였다.
실은 자르지 않으면 그대로 남아 있다.
물론 다이아몬드가 쌍채찍을 휘두르며 막아버리니 실을 자를 기회는 없었다.
“그럴까?”
J가 모든 바람 카드를 사용하자 풍속이 점점 강해졌다.
하트의 말대로 고정된 실은 약간만 흔들렸고 잘 버티고 있었다.
“거봐. 무의미한 짓이잖아.”
하트는 투덜거리듯이 중얼거렸다.
세찬 바람이 눈가를 계속 거슬렀다.
“언니!”
바람이 몰아치는 와중에 J가 크게 소리쳤다.
지시를 받은 D가 검집에 넣은 태도의 검을 단숨에 뽑아냈다.
“준비됐어.”
D는 검을 꺼낸 동시에 빙글 돌면서 회전력을 부여했다.
적을 베어버리는 일섬의 변형 기술이었다.
“회연섬.”
지금은 바람이 몰아치는 중이었다.
쾌속의 일섬으로 회전력을 추가로 모으자 중구난방으로 흩어지던 바람이 검의 속력에 이끌렸다.
바람은 폭풍처럼.
검의 쾌속으로 폭발적인 세기를 늘려서 바람을 회전시켰다.
“아앗!”
하트가 벽에 연결한 실은 검술이 만든 폭풍우의 회전까지 버티지 못하고 전부 휘말려 들었다.
열 개의 실이 휘말리자 하트까지 빨려 들어갔다.
“아아아악!”
폭풍우에 휩쓸려 빙글 돌다가 이내 땅바닥으로 처박혔다.
완전히 나동그라진 하트가 신음을 토해내다가 이내 뻗어버렸다.
귀찮았던 실이 사라지자 이제 남은 사람은 다이아몬드였다.
“아…….”
다이아 역시 실 위에 있다가 바람에 휘말려 바닥으로 추락했다.
그래도 기력은 남았는지 쌍채찍을 든 채로 저항을 시작했다.
쌍채찍이 매섭게 휘몰아쳤다.
“아직이야.”
“그래? 우리도 그런데.”
검을 휘두른 D의 뒤에서 J가 나타났다.
다이아몬드가 채찍으로 덤벼들자 자매 요원들도 물러서지 않고 달려들었다.
연합이었다.
“아!”
D는 태도의 검을 뽑아서 단숨에 일섬을 날렸다.
J 역시 한손검에 바람의 힘을 실어서 신속의 검술을 활용했다.
자매 요원은 좌우에서 동시에 쾌속의 검술을 발휘했다.
같은 방향.
같은 속도.
같은 궤도.
두 개의 검 위력이 합쳐지자 채찍으로 받아낼 수 없는 위력이 발휘됐다.
철편 채찍은 부서지기 시작했다.
철 조각으로 나뉘어 채찍은 사방으로 튕겨 나갔고 다이아몬드는 무기를 잃자마자 완전히 무력화됐다.
“알카트로스, 너희들만 호흡이 좋은 줄 아나?”
아까 베인 옆구리를 부여잡은 J가 숨을 헐떡이며 중얼거렸다.
“너희는 고작 몇 년이잖아.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항상 호흡을 맞췄어.”
서로 싸우면서도 함께 해왔다.
자매는 매번 경쟁심으로 대련을 벌인 덕분에 서로의 호흡과 기술에 대해서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특별한 지시가 필요 없었다.
호흡은 완벽했다.
‘말하지 않아도 어떻게 할지. 자매는 알고 있기에…….’
J는 비로소 유진하가 생각했던 의도를 깨달았다.
‘유진하, 이 녀석. 일부러 우리 호흡을 맞춰주려고 그런 거였어.’
인생 내내 경쟁했어도 자매는 가족이었다.
그 둘의 호흡이 최고라고 여긴 리더의 정확한 판단력이 만들어낸 승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