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화 개미굴(2)
개미굴의 2번 방.
G는 돌문을 부수고 난입했다.
알카트로스의 킹은 격의 창을 든 채로 기다리고 있었다.
“뭐야, 우리가 올 줄 알았나?”
육체파 G는 망치를 어깨에 멘 채로 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두뇌가 떨어져도 감각은 뛰어난 편이라 의외로 예민한 성격이었다.
전투는 찰나의 판단으로 승부가 갈린다.
목숨이 걸린 대결에서 판단 하나만 실수해도 상대의 칼이 내 목을 베어버린다.
0.1초.
그보다 더 짧은 시간에 반응해야 한다.
그 싸움에서 이긴 사람만이 계속 살아남는다.
간부까지 성장한 G는 숱한 찰나의 대결에서 모두 이겨내고 여기까지 왔다.
“알카트로스의 킹. 혼자인가?”
킹은 가면을 만지작거리더니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퀸이 숨어 있다.”
“야!”
갑작스러운 킹의 고백(?)에 구석의 돌무더기에 숨어 있던 퀸이 빼액 소리를 내질렀다.
“야! 뭐 하는 거야! 내가 숨은 걸 왜 말해?”
“기습하는 건 내 취향이 아니야. 비겁한 승부는 재미가 없지.”
“비겁? 이건 작전이라고!”
퀸은 황당하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보랏빛 긴 머리를 쓸어 넘기더니 이내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웃었다.
“무슨 개뼈다귀 같은 소리야. 승부에 비겁이 어딨어.”
“그건 맞다.”
킹도 순순히 인정했다.
녀석도 G처럼 근육질이었고 운동에 목숨 건 스타일이었다.
“작전은 아는데… 호적수를 이런 식으로 이기면 평생 기분이 개떡 같겠지.”
“이런, 어처구니가 없네.”
퀸은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는 뒤로 물러섰다.
이미 근육질의 두 사내, 킹과 G는 일대일 승부만을 원했다.
“하하하하, 유일하게 맘에 드는 녀석이다.”
G도 호탕하게 웃었다.
작전에서 성공도 좋지만, 정면 대결을 원하는 취향이 정말 똑같았다.
“좋다. 결판을 내보자.”
킹도 ‘격의 창’을 움켜쥐며 자세를 갖췄다.
“누가 위인지 보여주지.”
G와 킹.
힘에 전부를 걸은 두 사내가 정면으로 부딪쳤다.
다른 사람은 지켜보는 수밖에 없어서 M은 물론 퀸도 물러났다.
‘유진하, 이것도 알고 있었나?’
M은 속으로 한탄했다.
어쩐지 유진하는 구체적인 목적을 함구했다.
2번 방에 가라는 말만 해줬는데 아마 이 상황을 예견한 듯했다.
‘덕분에 킹과 퀸을 우리가 묶어두게 되었어.’
유진하의 목표는 여왕개미의 방이었다.
리더 에이스를 잡아야 알카트로스 소탕전은 성공한다.
여기서 조직원의 발을 붙잡아둔다면 작전은 한결 순조로울 터였다.
‘그래, 이쪽은 네가 원하는 대로 하겠다.’
M은 순순히 받아들였다.
유진하의 작전이 순조롭게 흘러가도록 최선을 다해 역할을 수행할 생각이었다.
문득 그런 생각도 들었다.
‘괜히 어젯밤에 전력 분석하느라 쓸데없이 힘만 빼버렸군.’
유진하는 한 차원 높은 곳에 서서 밑을 내려다보듯이 전황을 바라봤다.
작전이 전혀 다른 방향으로 이어지자 통상적인 분석은 의미가 없었다.
적재적소에 최적의 멤버를 배치했다.
‘쳇, 나는 보조였나.’
M은 자신의 역할을 깨달았다.
한창 힘겨루기를 하는 G와 킹.
2번 방은 격렬한 투지와 피와 땀의 맞대결이 벌어지고 있었다.
* * *
개미굴의 통로를 따라 두 명의 여성 요원팀이 움직이고 있었다.
검은 긴 머리의 D.
붉은 머리의 쾌활한 J.
두 요원은 자매 사이인데도 아무 대화도 없이 작전 수행에 집중했다.
“…….”
대화조차 사라진 둘이었다.
J는 항상 분위기를 주도하며 일행의 긴장감을 밝게 풀어주었으나 이번에는 예외였다.
‘왜 하필 이렇게 팀이야?’
언니 D와 껄끄러운 관계라서 다른 팀으로 배치해 달라고 미리 유진하에게 부탁 겸 청탁했지만 깔끔하게 거절당해 버렸다.
“두 분이 잘하실 거라 믿어요.”
돌아온 녀석의 답변은 약 올리는 말 수준이었다.
그 말이 계속 머릿속에 맴돌았으나 리더의 결정을 따라야 했다.
‘후우.’
답답한 정적이 계속됐다.
어렸을 때부터 연년생 자매인 D와 J는 이런 분위기 속에 살았다.
둘은 자매임에도 항상 경쟁자였다.
성적부터 운동까지 모든 면에서 사사건건 비교당했다.
원래 운동부터 공부까지 전국 최상위권에서 출중하게 겨뤘다.
사람들은 알게 모르게 자매를 비교하기 시작했다.
- 누가 더 뛰어날까?
- 언니? 아니면 동생?
자매의 생각과는 상관없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세상 누구보다 친한 자매라도 비교되는 순간에는 남보다 못한 사이가 된다.
자매간에 벌어진 경쟁은 필연적으로 치열한 승부로 변질되었다.
두뇌와 운동.
그리고 검술.
자매의 승부는 성장하는 내내 계속되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체육관에서 서로 대련을 벌였다.
‘언니를 넘어서겠어.’
‘동생한테 지지 않아.’
“하압!”
달이 뜨는 밤마다 빈 체육관에서는 자주 검술 대련이 벌어졌다.
차가운 밤공기가 지나가는 순간에 경쟁심으로 뜨거워졌다.
숨 가쁜 호흡.
흩날리는 땀방울.
둘의 대결은 마치 생존 경쟁처럼 치열했다.
그렇게 10년이 넘게 흘렀다.
요원이 된 지금에도 자매 둘의 사이는 여전히 경쟁 관계였다.
“도착했어.”
검은 생머리를 휘날리며 앞장선 D는 개미굴의 3번 방에 다다랐다.
“우리가 맡을 곳이야.”
미리 유진하에게 들은 목표가 3번 방이었다.
닫힌 문 앞에서 J는 긴장한 낯빛을 숨기고 안의 동향에 귀를 기울였다.
두꺼운 돌문이라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안에 있어.”
눈을 감은 D는 가만히 집중했다.
검술의 대가답게 예민한 감각으로 흘러나오는 살기를 느낀 듯했다.
“준비해.”
살포시 눈꺼풀을 올린 D는 얇고 긴 태도(太刀)를 꺼내어 전투태세로 들어갔다.
“알았어. 신호는?”
J도 한손검과 바람 카드를 꺼냈다.
검과 바람 카드를 동시에 활용하면서 절정의 실력을 발휘하는 전투 패턴은 그녀만의 고유 기술이었다.
“…….”
약간의 침묵이 지나간 후.
D는 수신호로 3초를 세었다.
“돌입.”
태도의 검이 순식간에 돌문을 산산조각을 내며 갈라 버렸다.
동시에 자매는 2번 방에 진입했다.
“너희는?”
안에는 두 명의 알카트로스 조직원이 있었다.
붉은 다이아몬드 문양이 새겨진 백가면을 쓴 여자는 키가 크고 몸이 말라서 날씬한 형태였다.
옆에는 붉은 하트 문양의 백가면을 쓴 여자가 있었는데 키가 작고 말랐다.
“다이아몬드. 하트.”
J는 이들을 잘 알고 있었다.
다이아몬드와 하트는 알카트로스 중에서 가장 호흡이 좋은 멤버였다.
손발이 잘 맞는 짝꿍과도 같았다.
“어서 오십시오.”
다이아몬드는 부드럽지만 단호한 말투로 응답했다.
양복 차림에 사무적인 자세가 비서에 어울리듯이 차분했다.
키가 작은 하트는 훨씬 부드러웠는데 목소리부터 귀여웠다.
“역시 올 줄 알았어. 아까 저쪽에서 이미 상대했거든요.”
“누구를?”
J도 기세에 밀리기 싫어서 아무렇지 않은 듯이 대꾸했다.
알카트로스는 범죄를 대범하게 벌이는 집단이라 긴장감이 없는 편이었다.
일반적인 사람들과 확실히 달랐다.
“유진하, 에어리스 쪽을 만났어요.”
“두 사람을 만났다고?”
“뭐, 약간만이지만요.”
하트는 마치 웃는 듯이 백가면 아래의 입가를 가리며 키득거렸다.
“잠깐 길만 막아놨어요. 개미굴은 그게 좋거든요.”
“…….”
J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개미굴은 갱도와 같았고, 무너질 위험이 항상 존재했다.
하트가 길을 막는 작전을 취해서 유진하 쪽이 막혔다면 골치 아픈 문제였다.
‘유진하는 이번 작전의 리더인데… 여기서 발이 묶인다면 어려워져.’
조급한 마음이 들었으나 더 중요한 사실은 따로 있었다.
‘정보가 샜나?’
알카트로스 소탕전은 기밀이었다.
이런 작전이 새어나갔다는 건, 정부 내에 배신자가 있다는 증거였다.
‘요원 중에 알카트로스에 협력하는 배신자가 있다고?’
사실 유진하는 이중간첩의 정체를 알고 있었으나 일부러 다른 원정대 멤버들에게 알려주지 않았다.
누설했다가는 작전의 틀이 흔들릴 수 있다고 염려한 탓이었다.
트로이의 목마이자 배신자 유다.
알카트로스의 ‘조커’이자 요원 E.
물론 지금의 J는 그걸 몰랐다.
‘쉽지 않겠어.’
상황이 녹록치 않음을 직감적으로 깨달은 J는 긴장한 얼굴이 되어 검을 들었다.
알카트로스가 우리가 올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면 개미굴은 녀석들이 원하는 전장이라는 소리였다.
이곳 자체가 ‘함정’일 수 있었다.
‘개미굴이 아니라 개미지옥이 되려나.’
적막이 잠시 흘렀다.
짧은 침묵이 지나갔으나 긴 시간처럼 느껴졌다.
옆에서 지켜보던 D가 긴 생머리를 휘날리며 태도의 검을 꺼냈다.
“상관없어. 어차피 알카트로스 소탕전은 오늘 끝낼 생각이니까.”
날카롭게 긴 장검이 하트와 다이아몬드를 겨누었다.
D의 눈동자는 이미 적의 심장을 겨누고 있었다.
‘항상 저랬지…….’
J와 D는 지는 것을 매우 싫어했고 서로 경쟁자로 기억했다.
질투가 없었다면 거짓말이다.
“준비해.”
각자 무기를 준비하고 전투태세에 들어갔다.
여기는 2 대 2.
자매 대 다이아몬드, 하트.
마침내 정면 승부가 벌어졌다.
* * *
한편, 2번 방의 승부는 격렬했다.
근육질 G와 육중한 킹은 한 치의 물러섬이 없이 격돌했다.
힘 대 힘.
근육 대 근육.
일대일 자존심 대결이 벌어졌고 한 치의 양보도 없었다.
“흐아아아아!”
서로가 내미는 기합 소리.
힘의 향연처럼 꿈틀거리는 근육의 움직임이 막대한 에너지로 발휘됐다.
끼기긱.
G와 킹은 서로의 힘을 시험했다.
‘누가 강한가.’
‘원초적으로 누구의 힘이 더 강한가.’
남자의 자존심 대결이었다.
해머와 창은 그들의 완력에 서서히 비틀리며 압력을 감당하지 못하기 시작했다.
콰득.
금속이 찢어지는 소리와 함께 무기는 결국 박살이 나버렸다.
산산이 부서지는 해머와 구부러지는 창은 파편이 되어 흩어졌다.
“역시 제법이다.”
“자네야말로.”
무기가 없어졌어도 G와 킹은 맨몸이 남았다.
승부를 그만둘 생각은 처음부터 없었다.
순수한 육체의 격돌이 시작됐다.
퍼억!
둔탁한 주먹질.
격투는 치열한 혈전이 되었다.
“큭.”
지켜보던 M과 퀸조차 오금이 저릴 정도로 피 튀기는 전투였다.
“정말 화끈하네.”
G는 뜨겁게 달아오르는 감정을 느끼며 아드레날린이 치솟기 시작했다.
상대인 킹도 마찬가지로 심장에서 솟구치는 열기를 느꼈다.
격정적인 흥분 상태로 치달았다.
퍽! 퍼억!
주먹이 오가는 승부는 서서히 가려지고 있었다.
둘 다 준비한 최후의 수가 있었다.
“이거다!”
서로 타격을 받으며 비틀거리는 순간에 빈틈을 보였다.
양측 모두 한 방을 준비했다.
온 힘을 다해 준비한 라이트훅.
퍼억!
G와 킹은 서로의 얼굴에 라이트훅을 작렬시켰다.
마치 시간이 멈춘 듯이 그들은 동시에 멈칫했다.
“으음.”
M은 순간 숨을 멈추고 가만히 지켜봤다.
결정타를 얻어맞고 자세가 먼저 무너진 쪽은 간부 요원 G였다.
쿠웅!
G는 육중한 소리와 함께 뻗어버렸다.
“후후.”
명승부를 펼친 킹도 흐뭇하게 웃더니 갑자기 무릎이 확 꺾였다.
녀석도 승자는 아니었다.
G와 킹은 둘 다 누워버렸다.
“누가 이긴 거지?”
지켜보는 M과 퀸은 정답을 알 수 없었다.
먼저 쓰러진 쪽이 진 걸까?
이건 스포츠가 아니라 진정한 승부였다.
그때였다.
“크윽!”
한 사람이 의지력을 발휘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 격렬한 주먹 대결에서 승패는 판가름이 났다.
“정말 간발의 차이였다.”
피투성이가 된 G가 우두커니 버텨냈다.
“하하, 진짜 이런 놈은 처음이다.”
원래 격투기 선수 출신이었던 G는 연전연승의 파이터였다.
그런 자신에게 정면으로 버텨낸 킹은 보통내기가 아니었다.
상대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간발의 차였나.”
먼저 주먹을 꽂은 덕분이었다.
“이겼으니 이건 가져가지.”
킹의 부서진 가면이 바닥에 떨어졌다.
G는 전리품을 챙기듯이 그 가면을 슬쩍 들었다.
“승부가 났군.”
관객처럼 물러나서 지켜보던 M이 문득 옆을 돌아봤다.
어느새 자욱해진 연기가 깔려 있었다.
같이 있었던 퀸은 담뱃대의 연기를 사용해서 벌써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이런, 달아났나.”
뒤늦게 퀸을 놓쳤다고 깨달은 M은 자신의 실책을 한탄했다.
보랏빛 머리의 퀸은 알카트로스 중에서도 연기를 다재다능하게 다루며 기만책을 사용했다.
가장 영악한 멤버였다.
“스모그를 쫙 깔아놨군.”
간신히 킹을 잡아냈으나 사방은 안개가 둘러싸고 있었다.
앞이 거의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전진은 불가능했다.
“무리했다가는 안개 속에서 기습을 맞을 수도 있지.”
알카트로스는 킹을 내줬으나 M과 G의 발은 묶여버렸다.
“더 가기는 어렵다는 건가.”
알카트로스의 개미굴.
그들의 본거지에서 여왕개미를 잡아야만 끝나는 싸움이었다.
리더 에이스는 개미지옥의 가장 마지막 방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