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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을 활용하는 1000가지 방법-65화 (65/229)
  • 65화 개미굴(1)

    “진하, 정말 수고했어요.”

    에어리스는 유진하와 조커의 대결을 지켜보며 손에서 땀이 나고 있었다.

    찰나에 갈리는 승부였고 지켜보는 자는 그만큼 애간장이 탔다.

    “계획대로 됐어.”

    오히려 유진하가 덤덤했다.

    조커는 첫 상대에 불과했고 알카트로스는 아직 개미 동굴 안에 많이 있었다.

    “녀석은……?”

    바닥에 쓰러진 조커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제아무리 회피의 달인이라 해도 번개에서 빛으로 이어지는 연계 공격을 피할 재간은 없었다.

    “이제 가자.”

    그때였다.

    동굴 저편에서 불길한 그림자가 살그머니 다가오고 있었다.

    “잠깐만요.”

    에어리스의 눈은 보통 인간의 수십 배에 달하는 시력을 가지고 있었다.

    어두운 동굴에서 횃불만 든 환경에서도 숨어드는 그림자를 정확히 찾아냈다.

    가느다랗고 희미하게 움직이는 실.

    그 실이 목을 휘감으려는 듯이 매섭게 다가왔다.

    “위험해요.”

    에어리스는 대검을 휘둘러 실을 막아냈다.

    실은 한 가닥이 아니었다.

    하나씩 늘어나는 실은 전부 다섯 가닥이 되었고, 채찍처럼 빈틈없이 몰아쳤다.

    “아앗!”

    에어리스의 어깨에 실이 스치면서 지나쳤다.

    그림자 속에 숨은 적은 날카로운 실을 사용하는 강자였다.

    하나하나의 실이 정교하게 파고들어 급소를 노렸다.

    카앙!

    대검으로 막아내던 에어리스는 반사적으로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양손에 잡은 대검을 등 뒤로 크게 돌렸다.

    “하압!”

    모든 실을 다 막아낼 순 없으니.

    에어리스는 대검을 강하게 휘둘러서 풍압을 일으켰다.

    검의 바람으로 몰아쳐서 실을 몰아버리려는 계획이었고, 검풍에 밀려 실은 어지러이 움직이다 서로 뒤엉켜 버렸다.

    엉킨 실은 도로 그림자 너머로 물러났다.

    “놓치지 않겠어요.”

    실이 스르륵 물러나는 방향으로 에어리스가 내달렸다.

    한 걸음. 두 걸음.

    실의 고수에게로 향했다.

    “당신은?”

    가면에 그려진 문양은 하트였다.

    알카트로스의 하트가 숨어 있었다.

    “당신이 에어리스죠?”

    딱 한마디만 남긴 하트는 여유로운 자세로 가볍게 뒤로 물러섰다.

    통통거리듯이 경쾌한 스텝이었다.

    “어라? 실이 언제?”

    그 순간, 에어리스의 대검에는 실이 감겨 있었다.

    하트는 왼손을 내밀었다.

    손가락마다 실이 하나씩 연결된 상태였다.

    “오른손과 왼손에 10개의 실이 있거든요.”

    아까는 오른손의 실을 사용해서 공격했고, 지금은 왼손의 실로 대검을 휘감은 거였다.

    “지금은 물러나겠어요.”

    하트는 알카트로스 중에서도 침착하게 대응하는 편이었다.

    절대 무리하지 않았다.

    “일단은 동료만 회수하겠습니다.”

    하트는 쓰러진 조커의 몸에 실을 휘감았다.

    동시에 에어리스가 추격하지 못하도록 나머지 실로 동굴 천장을 쳐서 무너뜨렸다.

    쿠구궁.

    “아!”

    천장이 무너져서 바위 더미로 막히자 에어리스는 더 추격하지 못하고 뒤로 물러났다.

    “진하, 한 명이 더 있었어요.”

    자욱한 먼지가 깔리고 파편이 쏟아졌다.

    무너진 갱단처럼 앞이 막혔다.

    “어떡하죠? 다 잡았는데 놓쳐 버렸어요.”

    “괜찮아.”

    유진하는 의외로 침착했다.

    바위로 막아놨어도 얼마든지 치울 수 있었다.

    “위치 지정.”

    무너진 쪽을 바라보더니 위치 지정 카드를 사용하여 바위들을 조종했다.

    돌멩이들이 치워지면서 천천히 길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알카트로스는 2인 1조로 행동한다고 했는데.”

    “2인 1조요?”

    마스터는 알카트로스에 관한 사건 파일을 건네주었다.

    덕분에 유진하는 녀석들의 행동 패턴과 대응 방식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평소에는 아니지만 작전에서는 반드시 그랬지.”

    “지금은 조커와 하트가 같은 팀이었군요.”

    “맞아. 우리도 2명씩 팀을 이룬 이유가 그거야.”

    에어리스는 순간 멈칫했다.

    알카트로스가 2명씩 움직인다는 걸 유진하도 알았다면?

    “그럼 조커 옆에 누군가 있을 거라는 것도…….”

    “알고 있었어.”

    유진하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회심의 미소와 함께.

    “일부러 놔준 거야.”

    “네?”

    아리송한 표정의 에어리스를 두고 유진하는 가만히 손을 들었다.

    아까 사용했던 카드들이 전부 유진하의 손으로 차라락 돌아왔다.

    화려한 솜씨의 마술사처럼 카드들을 손에 집결시켰다.

    “알카트로스를 제압하려면 전략이 필요해.”

    유진하는 카드 한 장을 손에 들며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었다.

    “녀석들에게 내가 준비한 씨앗을 심어뒀어.”

    개미굴에 모인 자.

    알카트로스는 본거지에 숨은 자들이었다.

    유진하의 노림수는 그것에 있었다.

    “개미들은 먹이를 물고 나르지. 알카트로스 녀석들도 개미처럼 내가 던진 미끼를 물어 나를 거야.”

    말을 나누는 동안 길을 막았던 모든 바위가 치워졌다.

    통로가 다시 만들어졌다.

    “알카트로스 소탕전 시작이야.”

    유진하는 먼저 앞서갔고 에어리스는 그 뒷모습을 묵묵히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유진하의 생각과 행동이 어딘가 조금씩 바뀌어 가는 느낌을 받았다.

    책임감을 받으면서 변해 가는 걸까.

    ‘리더로서? 아니면 성장하는 사람으로서?’

    에어리스가 과거의 기억을 되찾으며 성장한다면, 유진하는 현재의 위기를 넘어서면서 성장하는 걸까.

    “에어리스, 뭐 해?”

    앞서가던 유진하가 발걸음을 멈추고 손을 흔들었다.

    아까 조커를 상대할 때와는 달리 편안한 얼굴이었다.

    평소 집에서 보였던 그 미소였다.

    “진하, 지금 가요.”

    에어리스는 서둘러 달려갔다.

    지금의 유진하를 믿었다.

    ‘항상 그럴 거야. 어떤 모습으로 성장하더라도 진하는 항상 옆에 있을 테니까.’

    에어리스는 유진하의 옆으로 가서 나란히 걸어갔다.

    개미굴처럼 얽힌 이 길의 끝에서 두 사람은 새로운 변화를 맞으리라는 기대감을 가졌다.

    지금은 작전 중.

    개미굴의 더 깊은 밑바닥으로 향하고 있었다.

    “목표는 여왕개미가 있는 곳.”

    유진하는 단호하게 선언했다.

    목표물은 결국 그 녀석이었다.

    리더를 잡아야만 알카트로스를 소탕할 수 있고, 에어리스를 닮은 그녀까지 찾아낼 수 있었다.

    “알카트로스의 에이스를 잡겠어.”

    * * *

    “일단은 조용하군.”

    두 번째 통로로 들어간 M은 동굴을 탐사하듯이 살펴봤다.

    원래 분석에 탁월한 터라 이 부분은 최고 수준이었다.

    관찰력도 뛰어났다.

    “아직도 그 버릇은 여전하군.”

    앞서가던 간부 G가 뒤처진 M을 의식했다.

    근육질의 육체파 요원.

    G는 원체 전투력과 힘에서 두각을 드러낸 괴력의 소유자였다.

    오로지 그것만으로 간부까지 되었다고 하기에 부족하지 않았다.

    “뒤로 쳐지면 버리고 간다.”

    M은 자꾸 서두르는 G를 말렸다.

    “섣부르게 먼저 가지 마라. 알카트로스 본거지는 뭔가가 있어.”

    정보는 나름 받았으나 작전은 변수가 존재한다.

    항상 주의해야 했다.

    “늦으면 작전은 실패한다고. 이 느림보 녀석아.”

    G는 다부지게 가슴을 툭 두드리면서 자신감을 드러냈다.

    “그따위 알카트로스 녀석들은 한 주먹거리도 안 돼. 만나기만 하면 한 방에 뭉개 주지.”

    “…괜히 유진하가 날 이 녀석에게 붙인 게 아니군.”

    M은 한탄하듯이 중얼거렸다.

    유진하는 2인 1조로 팀을 구성하면서 나름의 규칙을 세웠다.

    한 명은 힘, 나머지는 두뇌를 맡는 식이었다.

    “유진하가 두뇌를 맡고 에어리스는 힘을 맡았지. 이쪽은 내가 두뇌이고 저 덩치 녀석이 힘인가?”

    분석은 정확했다.

    사실 어제도 M은 어두운 밤에 혼자 책상 앞에 앉아 작전 계획을 계속 검토하고 있었다.

    “후우. 전력 분석이랑 변수 계산은 해도 끝이 없군.”

    분석가는 집착하는 버릇이 있었다.

    작전이 시작할 때까지 계획을 하나하나 검토하고 따지곤 했다.

    M은 팀의 전력을 분석했다.

    -원정대 전력 분석.

    지력 : SSS

    (유진하가 빠지면 S로 하락.)

    전투력 : U+

    (D, G 간부 핵심 라인과 에어리스까지 주력.)

    민첩 : S

    (전체적으로 속력이 뛰어난 멤버는 없으나 J가 바람 카드로 스피드를 담당한다.)

    정신력 : S+

    (D와 J 자매. 이소민이 있어서 투지와 의지력이 좋은 편이다.)

    체력 : S+

    (에어리스와 G가 가장 뛰어나다. 간부 라인도 체력은 좋은 편이다.)

    팀워크 : B

    (유진하가 처음으로 원정대 리더를 맡았다. 요원들과 멤버들 간의 호흡은 미지수. 불안 요소이다.)

    “전체적으로 팀의 전력은 상당한 수준이긴 한데.”

    간부 라인과 에어리스의 실력은 확실히 검증된 항목이었다.

    “에어리스와 간부들은 거대 몬스터와도 1대1이 가능한 실력자들이지. 알카트로스를 상대해도 전투력에서는 밀리지 않을 거야.”

    처음 리더를 맡은 유진하에게도 기대감이 있었다.

    옆에서 멤버들이 잘 보좌해 준다면 지력과 통솔에서 좋은 활약을 기대할 수 있었다.

    “문제는 알카트로스의 전력이지.”

    알카트로스는 세계 최대의 범죄 조직이었다.

    클로버 가면의 남자를 잡았으나 녀석은 침묵으로 비밀을 지켰다.

    그들만의 룰이었다.

    지금까지 숱한 범죄 현장에서 녀석들과 마주친 경험들로 알카트로스의 전력을 추측해 볼 따름이었다.

    -알카트로스 조직 분석.

    -조직원 9명.

    리더 에이스.

    스페이드, 다이아몬드, 하트, 클로버(체포).

    잭, 퀸, 킹. 조커.

    -특이점.

    백가면을 쓰고 정체를 감춘다.

    조직원끼리도 서로 진짜 얼굴을 모를 정도로 보안에 신경 쓴다.

    그럼에도 서로에 대한 유대감이 강해서 배신하지 않는다.

    일반적인 범죄 조직과 가장 큰 차이는 서로 간의 신뢰성이다.

    -전력 예상 수치.

    지력 : U

    (완전 범죄를 추구한다. 이번에 유진하가 클로버를 잡은 게 유일한 성공 사례였다.)

    전투력 : U+

    (간부 요원과도 밀리지 않는 막강한 실력자들이다.)

    민첩 : SSS

    (범죄 현장에서 잡힌 적이 없다.)

    정신력 : S

    (위기 상황을 맞은 적이 없어서 정확한 판단이 불가.)

    체력 : S+

    (전세계를 무대로 하는 조직답게 활동력이 넓다.)

    팀워크 : SS

    (완전 범죄는 호흡이 완벽해야만 가능하다. 오랜 기간 다져온 팀워크는 최상이다.)

    리더 에이스는 조직을 진두지휘하는 자였다.

    완벽한 설계와 냉철한 실행력은 전부 그의 두뇌에서 나왔다.

    “두뇌전인가.”

    유진하 대 에이스.

    리더 간의 대결이 승패를 가를 거라고 예상했다.

    “리더의 역량이 최대 변수라…….”

    M은 거듭 고민하고 있었다.

    이 소탕전.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책상에 너저분한 자료 파일들이 잔뜩 있었고, 불안과 초조함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때, 무언가 천천히 날아왔다.

    “이건?”

    열어놓은 창가에서 정체불명의 종이가 날아 들어왔다.

    카드였다.

    -내일은 최고의 컨디션으로 가야 해요. 밤에 고민만 하지 말고요.

    “유진하, 이 녀석.”

    M은 크게 웃었다.

    유진하는 카드를 보내서 메시지를 보내는 연습을 하고 있었다.

    아마 멤버들이 무엇을 하는지도 전부 아는 듯했다.

    “알았다. 그만하고 쉬도록 하지.”

    M은 전날 밤을 마무리했다.

    그리고 지금.

    간부 G와 팀이 되어 작전에 돌입했다.

    하필이면 힘만 믿는 G와 같은 조가 되어서 말이다.

    “어이, M.”

    근육질의 G가 손가락으로 앞을 가리켰다.

    개미굴의 긴 통로를 따라가니 어느새 문이 있었다.

    “문이 있군.”

    개미굴은 통로와 방이 계속 이어지는 구조였다.

    방이 있다는 소리는 여기에 알카트로스 조직원이 있다는 소리와도 같았다.

    “누가 있다.”

    M은 조용히 문 쪽으로 향했다.

    2번 방이라는 팻말이 보였다.

    문을 연다면 안에 있는 녀석도 알아차릴 터였다.

    “그냥 한 방에 뭉개줄 테니 단숨에 들어가자.”

    G는 거대한 망치를 꺼내어 자신의 손에 툭 올려놨다.

    “뭘 하려는 거야?”

    M이 만류할 틈도 없었다.

    이미 G는 행동에 들어간 뒤였다.

    “뭐긴 뭐야. 문이 있으면 부수고 들어가면 되는 거지.”

    콰아앙!

    거대한 망치가 돌문을 후려쳤다.

    강력한 파괴력이 앞을 가로막는 모든 것을 단숨에 부숴 버릴 기세로 나아갔다.

    “여어.”

    무너진 벽 안에는 한 명의 존재가 있었다.

    왕의 문양이 새겨진 백가면이었다.

    알카트로스의 창술 대가.

    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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