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화 알카트로스 소탕전(2)
으슥한 밤.
태평양 앞바다가 넘실거리며 파도 소리를 낼 무렵.
작전은 시작됐다.
“여기예요.”
유진하는 섬 모래밭에 도착해서 바다 쪽을 바라봤다.
밤바다는 어두웠고 검푸른 파도 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
“야간 기습이 좋지.”
M은 밤하늘을 바라봤다.
어차피 어두운 밤에는 하늘과 바다가 비슷하게 보였다.
“달도 안 보이는 밤이야. 어둠의 장막을 씌우면 세상은 다 검게 변하지.”
세상을 바꾸는 사건은 밤에 일어나곤 한다.
지금이 그랬다.
“작전은 계획대로 시작할게요.”
유진하는 시선을 돌려서 모두를 바라봤다.
원정대에 참가한 사람들을 서서히 시선에 담아두었다.
항상 옆에 있는 에어리스, 이소민.
요원 D와 J 자매.
분석가 M과 근육질의 간부 G.
“여기까지 와줘서 고마워요.”
지금까지와는 다른 마음이었다.
혼자서 던전을 다니던 시절에는 몰랐으나 이제는 어엿한 리더였고 작전에 책임을 져야 했다.
“모두를 위하는 방식이 최우선이에요. 지금도 그렇게 하도록 해요.”
유진하의 리더십은 확실히 달랐다.
J가 활발하게 팀원들의 분위기를 끌어올린다면 유진하는 완벽한 작전과 명확한 목표로 신뢰감을 주는 스타일이었다.
“작전 계획은 알려드린 대로 2인 1조로 가겠습니다.”
알카트로스의 본거지는 섬의 지하에 있었다.
무인도에 파두어 만든 은신처였는데 마치 개미굴이 연상되는 구조였다.
깊이 안쪽으로 파고드는 지옥의 동굴과도 비슷했다.
“출입구는 세 곳이에요.”
마스터는 알카트로스에 스파이를 심어두었다고 했다.
그에게 넘겨받은 첩보 내용은 정확했다.
알려준 방향에 나무와 수풀로 숨겨둔 입구가 세 곳이 있었다.
“세 조로 나뉘어서 들어가죠.”
1조는 유진하와 에어리스였다.
태도(太刀)의 D는 동생 J와 2조가 되었다.
M과 G는 3조였다.
“나는 뭐냐?”
혼자 팀이 없는 이소민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투덜거렸다.
“유진하, 왜 나만 팀원이 없어?”
발끈한 이소민이 유진하의 어깨를 툭툭 건드렸다.
사실 이곳에 오기 전에 작전 계획을 설명해 주긴 했는데 역시나 불만에 찬 듯했다.
안 되겠다 싶었는지 유진하가 한마디를 덧붙였다.
“이소민 누나는 혼자서 할 일이 있어요.”
“그게 뭔데?”
“지금은 알려드릴 수 없어요. 하지만…….”
이내 회심의 말을 던졌다.
“누나는 히든카드거든요.”
“히든카드?”
비장의 무기라는 표현이 마음에 들었는지 이소민의 입꼬리가 순간 올라가다가 이내 다시 내려갔다.
“너, 저번에도 말만 그렇게 하고 실제로는 아무것도 안 시켰잖아.”
에이, 들켰다.
이소민의 눈치가 제법 좋아진 모양이었다.
유진하는 짐짓 모른 체하다가 일부러 딴청을 부렸다.
“이번에는 아니라고요. 가장 결정적인 순간에 누나가 맡을 역할이 있어요.”
“…정말이지?”
“속고만 사셨나. 진짜라고요.”
이소민은 히든카드라는 말이 마음에 들었는지 못 이기는 척 넙죽 받아들였다.
“처음에는 기다리고 있으면 되는 거지?”
“결정적인 상황이 오면 제가 연락할게요.”
유진하는 카드 한 장을 몇 차례 흔들더니 이소민에게 날려서 보냈다.
바람처럼 흔들거리며 날아간 검은 카드에는 간단한 메시지가 담겨 있었다.
“시계?”
멈춘 시계가 그려진 카드였다.
유진하는 의사소통을 카드로 할 수 있도록 몇 가지 신호 체계를 만들었다.
시계는 대기하라는 의미였다.
“알았다고. 일단은 기다릴 테니까 꼭 불러라.”
이소민은 잔뜩 기대감을 머금은 채로 혼자 대기했다.
…즉, 바깥에 남았다.
3팀은 하나씩 입구를 찾아서 알카트로스의 본거지에 잠입을 시작했다.
유진하, 에어리스는 동쪽.
D와 J 자매는 서쪽.
M과 G는 북쪽.
12시 정각.
달이 저문 밤에 작전이 시작됐다.
* * *
바위 아래의 으슥한 틈에 동쪽 출입구가 있었다.
자세히 살피지 않으면 절대로 보이지 않도록 나무와 풀로 철저하게 위장된 곳이었다.
“…들어왔어.”
유진하는 에어리스와 함께 조심스레 내려왔다.
알카트로스의 본거지 개미굴에 첫 발자국을 남기는 순간이었다.
이제부터 안으로 들어가야 했다.
저 끝이 안 보이는 지하굴 속으로.
“진하.”
“응?”
에어리스가 뒤에서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간단한 횃불을 만들어서 앞장선 유진하는 긴장한 얼굴로 앞을 향하고 있었다.
“지금 잘 가는 건가요?”
“지도를 받아서 길을 알고 있어.”
“그런가요?”
마스터는 알카트로스에 심어둔 스파이한테 정보를 얻었다.
이번 소탕전이 가능했던 이유도 정보력에 있었다.
“트로이의 목마야.”
“트로이? 목마?”
“고대 트로이 전쟁을 벌였던 그리스 쪽의 전략이었어. 목마 속에 병사를 숨겨두고 성 내부로 보낸 거지. 그 전략으로 전쟁에서 이길 수 있었어.”
알카트로스에 심어둔 일명 ‘트로이의 목마’는 본거지 정보를 건네주었다.
이 정보 덕분에 알카트로스가 방심한 틈을 타 야간에 기습한다는 작전을 입안할 수 있었다.
“잠깐.”
돌멩이가 튀기듯이 굴러가는 소리가 들렸다.
높은 곳에서 툭툭 떨어지는 소리에 유진하와 에어리스는 순간적으로 걸음을 멈췄다.
“…….”
바로 숨을 참았다.
누군가 여기에 있는 게 분명했다.
알카트로스 멤버들에게 벌써 들켰다면 작전은 실패할 수도 있다.
“너는?”
멀리서 그림자 하나가 움직였다.
유진하는 횃불을 들어 그쪽을 비추었다.
백가면의 남자가 나타났다.
“알카트로스?”
남자의 백가면에는 특이한 문양이 새겨져 있었는데 삐에로 그림이었다.
“조커…….”
트럼프 카드의 조커였다.
무엇이든 될 수 있으나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은 존재.
조커는 그런 포지션이었다.
“진하, 물러서요.”
에어리스는 대검을 꺼내어 앞으로 나섰다.
개미굴 본거지에서 들켰다면 정면 승부를 감행할 생각이었다.
온몸에서 나오는 투지는 절대 물러서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에어리스, 내가 갈게.”
유진하가 먼저 앞으로 나왔다.
카드를 전부 꺼내서 사방으로 흩뿌리기 시작했다.
“후후.”
조커 역시 밀리지 않겠다는 듯이 앞으로 나왔다.
양손에 날카로운 단도를 하나씩 쥐고 거침없이 다가왔다.
“진하…….”
유진하 대 조커.
전장에서 마주친 기사들처럼 두 사람은 서로 기세를 올리며 강렬한 긴장감을 내비쳤다.
“같이 하겠어요.”
지켜보던 에어리스가 대검을 움켜쥐고 언제라도 뛰쳐나가려는 듯이 자세를 잡았다.
개미굴에서 벌어지는 첫 대결.
피할 수 없는 승부가 벌어지려는 순간이었다.
“…당신이구나.”
유진하는 숙였던 고개를 천천히 들며 똑바로 조커를 쳐다봤다.
조커 역시 그저 묵묵히 있을 뿐 특별한 반응을 보이진 않았다.
“마스터가 심어놓은 트로이의 목마가 당신이지?”
유진하는 한눈에 상대의 정체를 파악했다.
알카트로스의 정보를 넘긴 스파이.
그 사람이 조커였다.
“마스터에게 작전 계획을 들었으면 우리가 올 줄 알고 있었겠죠.”
“…….”
조커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스파이는 작전을 알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마스터가 심어놓은 ‘트로이의 목마’라는 사실을 순순히 인정했다.
“기다렸다.”
조커의 목소리는 기계음처럼 딱딱했다.
음성 변조하는 마이크를 가면에 단 거였다.
“이번 작전이 알카트로스 소탕전이라는 건 안다. 나는 그것을 지원하라는 지시를 받았지.”
조커는 손에 든 단도를 도로 집어넣었다.
저 날카로운 금속은 분명 허투루 꺼낸 건 아니었다.
“단도는 왜 꺼냈나요?”
“왜 그랬을까?”
“시험한 거 아닌가요.”
“시험?”
유진하는 조커의 의도를 추측했다.
“뻔하잖아요. 정말 알카트로스를 제압할 수 있을지 테스트하려는 거였죠. 굳이 리더인 나한테 온 것도 그런 이유일 테고요.”
조커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은 채로 침묵했다.
“눈치가 빠르다는 건 인정하지.”
조커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손에 든 단검은 도로 품에 넣었다.
검날이 구불구불하고 특이하게 생긴 단도였다.
저걸로 수많은 적을 척살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서두르도록 하지. 알카트로스는 전원 밑에 있다.”
“아직 내 얘기 안 끝났어요.”
조커가 앞장을 서려는데 유진하가 제지했다.
뒤에서 지켜보던 에어리스는 멍한 얼굴로 따라왔다.
“진하, 왜 그래요?”
“아직 저 사람을 완전히 믿을 수 없어.”
유진하의 경계를 받자 조커는 발걸음을 멈추고 뒤돌아섰다.
“마스터의 스파이라는 걸 알았는데도?”
“당신 이야기는 알겠어. 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거든.”
유진하는 눈빛을 빛내며 조커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그쪽이 먼저 시험했다면 이번에는 이쪽에서 할 차례였다.
“마스터는 당신에 대해서 모르는 게 있어.”
“무슨 소리지?”
조커는 처음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유진하의 말에 흥미를 느꼈는지 조금 앞으로 다가왔다.
“그게 뭐지?”
“마스터가 스파이를 심어놨듯이. 알카트로스도 마스터 주변에 배신자를 넣어놨어.”
“배신자 말인가?”
“그래.”
마스터와 알카트로스는 서로의 조직에 스파이를 침투시켰다.
첩보전에서 우위를 차지하려는 시도였다.
-양쪽에 심어둔 첩자를 잡아내라.
유진하가 받은 또 다른 과제였다.
“조커, 당신에게 하나만 물어보겠어.”
“뭐지?”
“알카트로스가 심은 첩자에 대해서 알고 있어?”
“…….”
조커는 침묵했다.
짧은 시간이 흐르자 서서히 말문을 열었다.
“모른다. 리더 에이스는 절대 그런 정보까지 동료에게 알려주지 않는다.”
“그래요?”
유진하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더니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말할 줄 알았어.”
“뭐?”
조커는 갑자기 말투가 바뀌었다.
유진하의 생각이 무엇인지 전혀 깨닫지 못하고 겉도는 느낌을 받은 탓이었다.
“당신은 첩보원의 정체를 알려줄 수 없어. 왜냐면 말이야.”
한 번 뜸을 들인 후에 유진하는 자신의 추리를 밝혔다.
충격적인 내용이었다.
“조커, 당신이 알카트로스가 심어둔 첩자이기도 하니까.”
분위기가 순식간에 변했다.
지켜보던 에어리스는 무슨 상황인지 이해를 못 해서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조커는 마스터의 ‘스파이’였다.
동시에 알카트로스의 ‘스파이’이기도 했다.
흔들리던 에어리스의 눈동자는 더 빠르게 움직였다.
“알카트로스의 조커. 하지만 정부에서는 다른 코드명을 받았겠죠?”
유진하는 손가락을 들어 똑바로 상대를 가리켰다.
“코드명 E. 그게 당신이 요원일 때 모습이죠.”
조커는 E라고 불렸다.
그는 얼어버린 사람처럼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저 사람이 E?”
깜짝 놀란 에어리스는 순간 심장이 멎는 듯한 놀라움을 받았다.
간부 E는 최정예 요원이었다.
유진하의 집에 찾아와서 에어리스의 대검을 맨손으로 잡았다.
순간 회피가 괴물 같은 강자였다.
불타는 숲에서 벌어진 대결에서도 E는 압도적인 실력을 발휘했다.
그런 그가 사실은 알카트로스의 조커였다니.
“내가 E라는 건가?”
조커는 딴청을 부리듯이 부정하려는 뉘앙스를 풍겼다.
유진하는 처음부터 조커의 진짜 정체를 알고 있었다.
이곳에 오기 전에 작전을 구상할 때부터 눈치챘다.
유진하가 눈빛을 번뜩이며 확신했다.
“당신은 조커이자 E가 확실해.”
올가미에 옭아매려는 듯이 추리를 이어나갔다.
마스터가 심은 조커.
알카트로스가 심은 E.
수많은 가능성 속에서 유진하는 항상 정답을 찾아냈다.
“조커. 그리고 E.”
완벽한 관찰력과 압도적인 지력.
이것만큼은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당신은 이중 첩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