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화 알카트로스 소탕전(1)
유진하는 알카트로스와의 전면전에 앞서 최고 수준의 전력으로 맞설 태세를 갖추기 시작했다.
“이 멤버로 가겠어요.”
원정대가 한자리에 모였다.
유진하, 에어리스, 이소민.
간부 D, G.
요원 M, J.
전체 7명이 이번 소탕전의 멤버가 되었다.
“이렇게 모이고 보니 대단하군.”
M은 전력 분석에 들어갔다.
요원 중에서도 M은 직업병처럼 끝없이 메모하고 분석하는 버릇이 있었다.
“대부분… 실력은 확실하긴 해.”
대부분?
M의 평가는 왜 ‘모두’가 아니라 ‘대부분’이 되었을까.
미묘한 평가를 듣자 모인 사람들은 일제히 한 사람에게 시선을 보냈다.
이소민이었다.
“아이. 너무 무시하시네. 나도 제 몫은 한다고요.”
이소민이 어깨를 으쓱거리면서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어쩌라고.
그런 말이 들릴 것 같았다.
쟁쟁한 실력자들 앞에서도 전혀 기죽지 않는 이소민의 뻔뻔함은 확실히 별종이었다.
“이소민 누나도 준비를 많이 했어요. 분명 나아졌을 거예요.”
유진하가 살짝 편을 들어줬다.
이번 소탕전에서 이소민이 맡을 역할로 따로 준비해 둔 부분이 있었다.
물론 본인에게는 말해주지 못하고 있지만…….
“전력은 좋아. 문제는 팀의 호흡이다.”
사실 M은 팀워크를 걱정했다.
실전에서 팀에게 가장 중요한 존재였기 때문이다.
개인 기량이 탁월해도 서로 간에 소통과 협력이 부족하면 전투에서 무너지게 마련이었다.
수없는 반복 훈련과 의사소통을 통해 팀워크가 완성된다.
“팀워크를 올릴 시간이 없어. 당장 내일모레 가야 하는데.”
상대 조직인 알카트로스는 이미 멤버들끼리 수없이 함께 범죄를 저지르며 손발을 맞춘 사이였다.
그들은 완전 범죄를 추구했다.
범죄 조직답지 않게 끈끈한 팀워크가 모든 범죄를 완벽으로 마무리시켰다.
“확실히 팀워크는 부담이 있어요.”
유진하도 취약한 부분이라고 순순히 인정했다.
“녀석들만큼은 안 되겠지만 그래도 최대한 맞춰서 팀을 구성했어요.”
원정대의 대다수는 정부 요원들이었다.
같은 교육과 수업, 작전 이행을 하던 요원들이니 호흡은 금방 맞출 수 있었다.
“그랬군.”
M은 고개를 끄덕였다.
실제로 팀을 구성할 적에 사설 용병을 데려올 수도 있었다.
제이슨 같은 실력자들도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러지 않았다.
“확실히 팀워크는 알카트로스가 더 강하지만 이쪽도 요원들 중심이라 해볼 만해요.”
이어서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단기간에 팀원들의 호흡을 끌어올릴 방법은 있어요. 리더가 잘 이끌면 가능하고요.”
“리더라…….”
일순간 다들 조용해졌다.
이번 원정대의 리더는 유진하였다.
마스터가 특별 지시로 임명한 자리였다.
리더가 잘 이끌면 단기간에도 팀워크를 끌어낼 수 있다는 유진하의 말.
분석가 M도 그 점에 동의했다.
‘리더마다 특성이 있다. 자신이 직접 강하게 이끄는 타입이 우선이지.’
칭기즈칸. 알렉산더.
천재성을 가진 위대한 정복자들이 그런 타입에 해당한다.
‘뛰어난 전략과 운영 능력으로 이끄는 타입도 있지.’
제갈량 같은 명재상들은 비범한 지략과 탁월한 지휘력을 발휘했다.
유진하는 어느 쪽에 해당할까?
예전에는 전략에 치중하는 경향이 많았으나 지금은 사뭇 달랐다.
‘전투를 무조건 피하는 스타일이었는데, 지금은 지키기 위해서라면 싸움을 감수한다.’
에어리스와 이소민처럼 좋은 동료들과 만나면서 유진하는 서서히 바뀌고 있었다.
‘이전에 본 적이 없던 리더 스타일이 될 수도 있어.’
M은 흐뭇한 미소를 짓다가 유진하와 눈이 마주치자 짐짓 아닌 척 표정을 바꾸었다.
분석가는 재능 있는 자의 성장을 지켜보면서 최대의 기쁨을 받곤 한다.
전략가 리더 유진하.
전투의 에어리스.
이들의 성장을 지켜보는 보람이 있었다.
“유진하를 믿어 보도록 하죠.”
리더 자리에 대해 M이 그렇게 말하자 간부 요원 중에서 한 명이 앞으로 나섰다.
“마스터가 리더를 맡긴 건 알고 있어. 정말 요원들까지 지휘할 수 있을까?”
검고 긴 생머리의 여자.
차분한 눈빛의 D가 물어봤다.
“중요한 부분이야. 어때?”
D는 얇고 긴 태도를 주무기로 사용하는 최고의 검술가였다.
이번에도 알카트로스의 습격을 막아내면서 실력을 증명하기도 했다.
“마스터가 맡겼어도 우리는 실력을 제대로 본 적이 없어. 잘못된 판단 하나에 모두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지.”
요원들의 코드명은 직위 순서이기도 했다.
A가 가장 높은 직급이다.
현재 이곳에서는 D가 가장 높은 간부였다.
D는 한 번도 유진하의 실력을 직접 검증하지 못한 터라 의구심을 갖고 있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요원들의 신호, 전달, 암호까지 알고 있으니까요.”
“뭐라고?”
유진하의 말에 D는 깜짝 놀라서 눈만 동그랗게 떴다.
“여러 번 요원들이랑 공략전에 갔거든요. 요원들끼리 어떻게 신호를 주고받는지 어떤 방식으로 현장 지휘를 하는지 전부 봐서 알아요.”
“…….”
자신 있는 말투였다.
냉정함을 유지하던 D조차 당황할 만큼 유진하는 당당했다.
“정말이야?”
“시험해도 괜찮아요.”
계산이 섰는지 유진하가 몇 가지 시범을 보였다.
“요원들의 진형도 알고 있어요.”
유진하는 곧바로 수신호를 몇 개 선보였다.
손가락으로 하나를 가리켰다.
그걸 보자 에어리스와 이소민이 곧바로 움직여서 유진하의 좌우로 위치했다.
미리 연습한 형태였다.
“요원들의 돌파 진형이죠?”
D는 말문이 막혔다.
유진하는 정말로 요원들의 전법을 제대로 알고 있었다.
산개 진형.
방어 진형.
손가락을 펼칠 때마다 시범을 계속 선보였다.
여기에 하나 더 추가했다.
“신호 체계도 좋지만 저는 하나 새로운 걸 만들려고 해요.”
유진하는 카드를 촤라락 펼쳤다.
공중으로 솟구친 카드들이 일제히 사람들의 손에 하나씩 찾아갔다.
“이건?”
카드를 살펴본 D가 깜짝 놀랐다.
받아든 카드에는 메모가 적혀 있었다.
- 이게 새로운 연락법입니다.
카드를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유진하는 독자적으로 자신만의 연락 체계를 만들었다.
마술사처럼.
카드가 연락을 맡았다.
“자세한 지시는 이렇게 보내려고 하네요.”
유진하는 활짝 웃었다.
이미 새로운 리더로서의 가능성을 스스로 증명하고 있었다.
“이런 건 아무나 할 수 없어. 훌륭해.”
D는 순순히 수긍했다.
차분한 눈매의 그녀는 사실 지휘에는 자신이 없었다.
말수가 적고 전투에만 집중하는 타입이라 리더로서 모두를 지휘하는 데는 어울리지 않았다.
분석가 M도 그걸 알고 있었다.
‘마스터는 알고서 일부러 이렇게 구성한 거야.’
전투 재능이 더 특출난 D였다.
리더로서 모두를 아우르기보다는 쾌속의 태도 검술로 적을 압도하는 편이 더 어울렸다.
최전선에서 선봉을 맡거나 적진을 돌파하는 장수에 가까웠다.
‘D가 받아들였으니 G나 E도 받아들여야지. 하는 수 없어.’
요원 중에서 가장 직위가 높은 D가 받아들이면 지휘 체계는 유지된다.
마스터는 이렇게 하려고 가장 상급자인 D를 원정대에 추천한 거였다.
‘똑똑한 생각이야. 하긴 마스터의 지혜와 인내는 대단하지.’
M은 가만히 미소 지었다.
팀워크와 지휘 체계는 마무리되었다.
알카트로스 소탕전.
원정대의 리더는 유진하가 맡기로 확정됐다.
* * *
“하압!”
호텔 근처의 체육관에는 아침부터 기합 소리가 울려 퍼졌다.
매일 아침 에어리스는 검술 연습을 빼먹지 않았다.
이번에는 사뭇 달랐다.
처음으로 아침 연습에서 상대가 있었다.
“잘 부탁할게요!”
에어리스와 호흡을 맞추는 상대는 D였다.
“에어리스, 당신 얘기는 많이 들었습니다.”
“아, 저를요?”
눈만 말똥거리던 에어리스가 건너편의 D를 바라봤다.
손에 쥔 얇고 긴 태도처럼 입가는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단호한 눈매에 차분하고 냉정한 기품.
웃지 않는 미모의 검사이자 철의 여인 같았다.
빈틈은 없었다.
“간단한 대련으로 서로 호흡을 맞춰서 가다듬는 거죠.”
D가 침착하게 검을 살짝 겨누면서 자세를 잡았다.
“열심히 할게요.”
에어리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떤 검을 휘두르는지.
어떻게 움직이는지.
어떤 호흡으로 반응하는지.
마주치지 않고는 알기 어렵다.
카앙!
대련이 시작됐다.
에어리스는 확실히 달랐다.
파괴력과 속도가 받쳐주는 에어리스는 완성형의 검술로 가는 중이었다.
“아.”
D는 속도와 찌르기에 능숙했다.
쾌속의 검술과 매섭게 날아오는 찌르기는 차원이 다른 위력을 발휘했다.
“대단해요. 검을 피할 수가 없었어요.”
D의 검 끝은 항상 에어리스의 몸을 겨누었다.
강력한 찌르기.
태도(太刀)의 검술은 경지에 달했다.
“에어리스 씨도 훌륭해요.”
D는 검을 검집에 넣었다.
검을 쥔 손이 저리는 강한 감촉을 받았다.
‘저런 대검술은 처음이었어.’
에어리스는 엄청난 대검의 무게를 극복하면서 위력에다 속도까지 겸비했다.
저런 대검을 몇 차례 받아내니 D는 손목이 나갈 것 같았다.
‘더 강해질 거야.’
두 사람은 서로의 검술을 높게 평가했다.
남은 기간 열심히 연습한다면 호흡에서도 한결 발전하리라는 기대가 생겼다.
연습은 계속 이어졌다.
“후우.”
시간이 흐를수록 체력이 팔팔한 쪽은 에어리스였다.
‘강점이 많구나.’
지치지 않는 지구력에다 왕성한 의욕까지 보이는 에어리스가 D의 눈에는 경이롭게 느껴졌다.
“잠깐만 쉬었다 하겠습니다.”
D는 저리는 손목을 추스르며 잠깐 바람을 쐬러 체육관 밖으로 나갔다.
일부러 아무렇지 않은 척 나가려는데 에어리스가 따라 나왔다.
“저도 같이 가요.”
“네?”
D는 정색했다.
나가서 손목에 살짝 붕대라도 감을 생각이었는데 같이 나오면 다 들켜버릴 테니 극구 사양했다.
거절하려는데 에어리스의 고집이 만만찮았다.
“친해지고 싶어서요. 항상 같이 있어야 금방 친해진다고 들었거든요.”
에어리스는 이소민에게 빨리 친밀해지는 방법을 조언받았다.
물론 잘못된 충고였지만.
D는 몰래 한숨을 내쉬었다.
‘단점은 눈치가 없는 편?’
어쩔 수 없이 에어리스와 함께 체육관 밖으로 나왔다.
시원한 바람이 맞아주자 잠시나마 피로를 잊을 수 있었다.
“연습이 끝나고 불어오는 바람이 좋아요. 항상 시원해요.”
“그런가요?”
“검술 연습이 재밌어요. D는 정말 대단해요.”
“그쪽도요.”
두 사람은 계속 말을 이어갔다.
D는 말수가 적은 편이라서 전화 통화처럼 용건만 간단히 전달하고 마는 성격이었다.
활달한 에어리스와는 상반된 성격이었다.
“정말 대단한 검이었어요. 태도라고 하는 검이죠? 피하기 어렵게 정확한 타이밍에 들어오더라고요.”
“그런가요?”
“정말 대단했어요. 어떻게 그런 검술인지 궁금해요. 너무 배우고 싶어요.”
에어리스는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밝게 웃으면서 계속 물어봤다.
‘정말 놀라워!’라고 연신 감탄사를 말하다가 이윽고 주먹을 불끈 쥐더니 파이팅 넘치는 자세를 취했다.
밝은 에어리스를 보면서 D도 차분한 마음이 누그러졌다.
‘이상하게 같이 있을수록 말이 편해지네.’
에어리스는 호기심이 많았다.
장점일까? 단점일까?
저 긍정의 에너지가 힘의 원천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둘의 호흡은 어때요?”
그때 한 명의 요원이 다가왔다.
바람결 속에서 흔들리는 붉은 머릿결을 가진 여성 요원.
J였다.
“오랜만입니다.”
“그러네요.”
D는 차갑게 대답했다.
J도 마찬가지였다.
에어리스와 대화할 때보다 더 쌀쌀 맞은 느낌이었다.
D와 J 둘 사이에서 묘한 신경전이 느껴졌다.
에어리스도 직감적으로 어색한 기분을 알아차렸다.
“같은 요원이시니 아는 사이겠네요? 혹시 싸우신 건가요?”
“그건 아니야.”
J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딱히 말하고 싶지 않은 이유가 있는 모양이었다.
“그런 건 아니야. 지금은…….”
이상한 말이었다.
지금은 싸운 게 아니다.
그럼 예전에는 어땠을까?
알 수 없는 의문이 들 적에, 카드 하나가 바람을 타고 흔들흔들 에어리스에게 날아왔다.
“진하?”
카드에는 메시지가 있었다.
양손으로 카드를 받은 에어리스는 유진하가 보낸 메시지를 확인했다.
내용은 간단했다.
-두 사람은 자매야.
“자매라고요?”
에어리스는 깜짝 놀라서 D와 J를 번갈아서 바라봤다.
자세히 보니 눈매와 콧날이 비슷해서 닮은 부분이 있었다.
검은 머리의 차분한 D.
붉은 머리의 활달한 J.
물과 불처럼, 서로 머리 색이 다른 만큼 자매의 성격은 완전히 상반되었다.
전혀 다른 성격의 자매였다.
“J는 조금만 더 노력해야겠어. 그래야 간부가 될 수 있으니까.”
“그래, 언니보다 더 나아야겠지.”
자매끼리 경쟁심이 느껴졌다.
“자매가 같은 요원이었군요. 그런데 왜 아는 척을 안 했어요?”
에어리스가 궁금하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관심을 두었다.
J는 피식 웃으면서 대답했다.
“왠지 낯간지럽기도 하고.”
D도 팔짱을 끼었다.
“동생 소식은 따로 듣고 있으니 딱히 연락할 필요는 없습니다.”
다시 한 장의 카드가 날아왔다.
이번에는 카드를 받자마자 에어리스가 크게 소리쳤다.
“진하, 그냥 직접 여기 나와서 얘기해요.”
에어리스가 소리쳐 불렀으나 유진하의 대답은 없었다.
유진하는 몰래 카드 메모를 보내는 데에 재미를 붙인 모양이었다.
사실은 메시지 보내기 연습을 하는 중이지만 말이다.
이번 메시지는 장문이었다.
-사이가 안 좋은 게 아니야. 진짜 싸웠으면 아예 이 일을 받지도 않았을걸. 그냥 둘 다 프로 의식이 뛰어나서 그래. 일하면서 가족끼리 친한 모습을 남들에게 보이기 싫어서가 아닐까.
“그런가요?”
에어리스는 혼자였고 자매의 감정이란 느껴본 적이 없었다.
사라진 과거의 기억 속에서 어쩌면 가족이 있을 수도 있다.
어딘가 있을 나의 이야기를 찾고 싶었다.
‘나는 누구인가요?’
반드시 묻고 싶은 질문이었다.
햇살이 쏟아지는 아래에서 에어리스는 답을 찾고 있었다.
다음 날.
약속된 시간이 되자 알카트로스 소탕전이 개시됐다.
알카트로스는 자주 본거지를 옮겼는데 지금은 태평양의 외딴 섬에 있었다.
“무인도에 가요.”
마스터가 넘겨준 정보대로 알카트로스의 본거지를 향해서 유진하는 작전을 개시했다.
마침내 전장으로 갔다.
알카트로스 소탕전이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