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화 기습전(2)
도시는 전쟁터처럼 되었다.
알카트로스 퀸, 킹, 스페이드는 유진하의 집으로 향했다.
목표는 에어리스였다.
카앙!
묵직한 대검의 대결이 시작됐다.
에어리스와 스페이드는 자신의 대검을 휘둘렀다.
검의 승부였다.
금속이 마주치는 파열음.
마치 바람처럼 대검의 속력이 매섭게 올라갔다.
태풍의 눈처럼 몰아치는 공방 속으로 두 사람은 점점 빠져들고 있었다.
‘강하다.’
에어리스는 이를 악물었다.
톱날 대검을 든 스페이드의 검술은 대단했다.
묵직한 타격감이 느껴지는 위력부터 매서웠다.
쾌속의 검날이 몸을 노렸다.
찰나의 순간에 승부가 결정 난다.
‘이기겠어.’
에어리스는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한편, 근방에서도 매서운 대결이 벌어지고 있었다.
검은 긴 생머리의 냉정한 미녀, 간부 D는 얇고 긴 태도의 검으로 상대를 몰아붙였다.
“그 간결한 검술은 여전한가.”
상대는 알카트로스의 킹이었다.
‘격의 창’이라는 무기로 유진하의 집을 날려버린 장본인이었다.
“당신은 내가 제압할 상대에 불과합니다.”
D는 차갑게 내뱉었다.
흩날리는 검은 머리카락 속에서 차가운 눈빛으로 적을 노려봤다.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다.
“가겠습니다.”
태도의 베어버리기는 깊이가 달랐다.
찌르기가 무섭도록 급소만 노리며 파고들었다.
“쳇.”
얇고 긴 장검이 들어오자 킹은 창으로 방어에 집중했다.
‘저 검술과는 상성이 좋지 않아.’
킹은 표정이 좋지 않았다.
킹의 창술이 무게감 위주라면 D의 검술은 속도감 위주였다.
위력이 더 강하더라도 D는 상당히 날렵했다.
‘젠장. 저 검술.’
D의 움직임은 마치 잡기 힘든 그림자 같았다.
손아귀에 잡을 수 없었다.
‘신속함. 그리고 결단력.’
D는 필요한 말만 냉정하게 머릿속으로 입력했다.
빠르다는 말은 간결하다는 소리와 같았고 간략함이 곧 속력이었다.
생각을 하나로 집중시켜서 최고 속력을 의식했다.
‘기동력이 중요한 법입니다.’
전투에서 빠른 기동력은 유리한 점이 많았다.
한 발 더 움직일 수 있고 한 번 더 공격할 수 있다.
“젠장할.”
격의 창을 든 킹은 D의 속도에 밀려 방어만 하다가 밀려났다.
D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섬광의 태도.
검을 휘두르는 궤적이 3분 동안 잔상으로 남는다.
궤적의 잔상은 사용자의 눈에만 보이며 상대가 닿으면 검에 닿은 듯이 날카롭게 베인다.
“잡아두겠습니다.”
궤적의 잔상이 아까부터 검의 흐름을 따라가면서 남았다.
상대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D는 그 힘으로 킹의 주변을 검기의 궤적으로 메워 버렸다.
“칫!”
킹도 대략 눈치채고 있었다.
섬광의 태도는 꽤 유명하게 알려진 기술이었고, D를 상대한 적은 여러 번이라 알고 있었다.
“으랴앗!”
D는 일부러 격의 창을 땅에 쾅 찍었다.
사방이 검기의 궤적에 막혔으니 땅에 구멍을 뚫어서 도망갈 생각이었다.
“놓치지 않겠습니다.”
조금 전, 땅에서 튕겨 나온 파편이 사방에서 날아왔다.
D가 매섭게 태도를 휘둘렀다.
“참격.”
날카로운 태도가 움직였다.
한 번에 하나씩 파편을 갈라버리고 가루로 만들었다.
“후후. 아무래도 작전은 무리인 거 같네.”
부숴버린 땅 밑으로 내려온 킹은 불리함을 깨달았다.
이제는 일반 요원들까지 사방에서 몰려들자 더 싸우기에는 무리였다.
“다음에 결판을 내도록 하지.”
킹은 순간 이동 카드를 꺼냈다.
알카트로스 멤버들은 필수로 탈출용 카드를 하나씩 가지고 있었다.
파밧!
킹이 사라졌다.
퀸과 스페이드도 순간 이동 카드를 사용했다.
“곧 다시 만나게 될 거야.”
알카트로스의 세 사람은 일제히 퇴각했다.
“도망간 거야?”
이소민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에어리스는 스페이드와 벌였던 전투의 여파가 남았는지 대검을 도로 거두면서도 아까의 대결을 생각했다.
“그 사람이 스페이드…….”
알카트로스의 스페이드.
톱날 대검을 가지고 매서운 검술을 보였던 상대였다.
파편과 잔해만 남은 현장에는 충격만이 남아 있었다.
“일단은 끝난 건가?”
형체조차 없이 날아간 집은 폐허처럼 덩그러니 남았다.
다른 집도 비슷한 피해를 입은 상태였고 도시는 비상사태였다.
유진하는 잠시 상황을 되짚었다.
승부는 일단락되었으나 피해는 생각보다 컸다.
“알카트로스는 에어리스를 목표라고 밝혔어.”
그들은 선제적으로 기습했다.
알카트로스와의 승부는 피할 수 없었다.
“요원들에게 구조 작업을 지시하겠습니다.”
D는 곧바로 부하 요원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소방관과 경찰들이 구조와 복구 작업에 참가했고 다행히 인명 피해는 없었다.
“하아, 대출금도 남은 집이었는데.”
식은땀을 흘리던 유진하가 한숨을 내쉬었다.
이소민은 대충 위로하려는지 유진하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진하야, 괜찮아. 정부에서 복구해 주겠지.”
“마스터가 지원해 준다고 했으니까요. 집이 포함되는지는 모르겠네요.”
마스터랑 협상해서 복구비를 받으면 얼추 해결될 사안이었다.
유진하는 한숨을 거두고 조금 전의 알카트로스의 기습을 떠올렸다.
검은 생머리의 태도(太刀) 검술의 달인 D가 다가왔다.
“녀석들은 물러간 것 같으니 염려하지 않아도 됩니다. 놓치고 말았습니다만 상황을 지켜보죠.”
D는 검을 검집에 넣고 경계 태세를 유지한 채로 빠르게 나갔다.
D가 나가는 뒷모습을 보면서 에어리스는 아까 보여준 D의 검술을 떠올리고 감탄했다.
“대단한 검술이었어요.”
에어리스는 언뜻 봤던 D의 검술에 강한 인상을 받았다.
그동안 봤던 상대들과는 달랐다.
지금까지 묵직한 검만 상대했는데, 쾌속의 간결한 검술은 처음이었다.
“우리도 남아서 지켜보도록 하죠.”
포마드를 바른 머리를 빗으로 정돈한 E는 가벼운 눈인사와 목례만 전했다.
거대한 망치를 가진 G와 함께 물러났다.
두 사람은 동시에 사라졌다.
“요원들도 개성이 다른 거 같아.”
이소민은 간부 요원들을 떠올렸다.
차가운 D.
단정한 E.
터프한 G.
마스터는 이들을 지휘했다.
“정말 세상은 복잡하면서 어떻게 보면 간단한 걸까나.”
고민하는 이소민과 달리 유진하는 이미 마음의 각오를 한 상태였다.
바닥에 떨어진 잔해 조각 하나를 손으로 들어 올렸다.
사진 조각이었다.
“형의 집이었는데…….”
이 집은 오랫동안 형과 같이 살던 보금자리였다.
처음으로 구한 집이었고 에어리스와 같이 있던 집이기도 했다.
그 소중한 거처가 날아갔다.
“녀석들은 선전포고를 했어.”
알카트로스는 목적을 이룰 때까지 절대 끝내지 않는다.
그들은 한계를 두지 않고 에어리스를 노릴 터였다.
부서진 집은 폐허처럼 되었다.
“벗어날 수 없고 이쪽에서도 물러설 생각은 없어.”
공격을 받은 유진하 역시 빚을 지고 살 생각은 없었다.
크게 숨을 한 번 들이쉰 후에 이소민과 에어리스를 차례로 바라봤다.
그리고 선언했다.
“알카트로스를 소탕하겠어.”
* * *
며칠 뒤.
호텔 옥상이었다.
마스터는 혼자 도시의 야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밤의 도시가 펼쳐진 풍경 속에서 첫 느낌은 사뭇 달랐다.
“아, 춥다.”
아무도 없는 밤.
홀로 있으려니 찬바람이 너무 불어서 몸이 오들오들 떨렸다.
마스터는 여기서 만나기로 약속한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오래 기다렸어요?”
으슥한 곳에서 다가오는 사람이 있었다.
마스터는 고개를 돌리더니 약속한 자와 만났다.
“정보는요?”
“…….”
남자는 종이 하나를 내밀었다.
중요한 정보가 담긴 쪽지였다.
“그럼 실례.”
마스터는 손가락으로 종이만 살짝 집어 들었다.
종이에 적힌 내용을 확인하더니 고개를 가만히 끄덕였다.
“알카트로스는 잘 있나 모르겠네.”
“…….”
마스터는 화염 카드를 꺼냈다.
불꽃을 사용해서 종이를 태워 버렸다.
불에 탄 잔해와 그을음이 공중에 흩어졌다.
“이제 그 일은 곧 끝나겠네요. 다음에 봐요.”
“…….”
정체를 숨긴 남자는 마스터에게 인사한 후에 몸을 돌렸다.
마스터는 사라지는 남자를 굳이 쳐다보진 않았다.
그가 심어놓은 스파이였다.
“트로이의 목마…….”
암호명은 트로이의 목마였다.
알카트로스의 정보를 빼내기 위해서 마스터가 그들한테 심어놓은 정보원이었다.
알카트로스가 배신자 유다를 심어놨듯이 마스터 역시 정보원을 역으로 넣었다.
“자, 배신자는 누구일까?”
배신자 유다와 트로이의 목마.
그들은 서로를 노리고 치열한 첩보전을 수행했다.
서로에게 심어놓은 스파이 게임이었다.
“이제 끝을 내야겠지.”
마침내 트로이의 목마는 마스터에게 최종 정보를 건넸다.
오랜 숙적인 알카트로스와의 결전을 위해서 모든 계획이 준비됐다.
“얼마 남지 않았어.”
푸른 단발머리에 귀여운 외모가 돋보였으나 마스터는 결코 만만한 사람이 아니었다.
두뇌와 전략에서 알카트로스의 리더 에이스와 치열한 승부를 벌이고 있었다.
알카트로스 소탕전은 이제 피할 수 없는 현실이 되었다.
* * *
똑똑.
노크 소리가 들렸다.
집이 무너진 후로 유진하 일행은 호텔에 묵었는데 손님이 찾아왔다.
붉은 머리의 여자가 있었다.
“다시 만나서 반가워.”
J가 반가움에 손을 흔들며 인사했는데 말끔한 정장을 입고 평소의 밝은 얼굴이 되어 찾아왔다.
“잘 있어서 다행이네요.”
유진하 일행을 대피시키느라 명령 불복종의 처벌을 받았던 J는 감금 상태에서도 치료를 받았다.
덕분에 건강 상태는 좋았고 컨디션은 최상에 가까웠다.
“너희가 풀어주라고 했다며?”
“당연히 그래야죠.”
유진하는 J를 반갑게 맞이했다.
이번 알카트로스 소탕전에서도 그녀의 실력은 반드시 필요했다.
“유진하, 리더는 네가 맡았다고?”
“네, 그렇게 되었네요. 원정대가 성공하려면 멤버들 구성이 중요하거든요.”
“그런 일은 원래 하던 거니까. 특별한 건 없네.”
J는 윙크까지 보이며 여유를 드러냈다.
이소민과 에어리스와도 반갑게 인사했다.
“유진하, 네 덕분에 나왔다.”
중절모를 눌러쓴 M이 이어서 안으로 들어왔다.
초반부터 공략전을 함께 진행했던 동료였고 매서운 분석력을 가진 요원이었다.
지금은 누구보다 유진하를 높이 평가해 주고 지원해 주었다.
“M, 무사해서 다행이에요.”
“내가 사람 보는 눈은 확실한 편이지. 잘 해낼 거라고 믿었다.”
M은 유진하의 어깨를 잡아주며 신뢰를 드러냈다.
어느새 둘은 신의로 뭉친 동료가 되었다.
유진하는 든든한 동료와 함께 성장하고 있었다.
“여기까지 5명이네요. 이제 2명 남았어요.”
알카트로스 소탕전은 최정예 팀으로 구성해야 했다.
훌륭한 팀원들이 있어야 승산이 있었다.
“D와 G가 있어요.”
간부 요원들이 작전에 참가한다.
유진하는 이번 소탕전에서 최고의 실력자들을 골라야 했다.
“아, 그때 사람들이구나.”
이소민은 두 사람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얇고 긴 태도의 검술가 D.
커다란 망치를 가진 G.
이들의 실력은 직접 봐서 검증된 강자들이었다.
“상대는 알카트로스 조직이다. 간부들이 참가한다면 승산이 있겠지.”
M은 분석가답게 상관인 간부들의 실력도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괴수에 가까운 실력자였다.
“작전은 이틀 뒤.”
유진하는 디데이를 선언했다.
남은 시간은 길지 않았다.
전면전이 눈앞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