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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을 활용하는 1000가지 방법-59화 (59/229)

59화 마스터(2)

공간의 주인.

정부 요원들의 정점.

반드시 지켜야 하는 대상.

그런 존재가 푸른 머릿결을 가진 동안의 여자로 찾아왔다.

공간의 주인과 만난 유진하, 에어리스, 이소민은 놀랐으면서도 조금씩 이해하고 있었다.

저번에 탑의 주인이 했던 얘기가 떠올랐다.

우리 공간에도 주인이 있다는 말.

‘마스터.’

그녀는 마스터라 불리고 있었다.

“세상은 무수히 많은 공간이 생겨나고 소멸하기를 반복합니다. 저는 이곳에 정착했죠.”

마스터의 손가락이 ‘이곳’을 가리키듯이 밑을 향했다.

“여기에 정착인가요?”

유진하가 조심스레 되물었다.

“그래요. 어차피 어디든 시작은 같으니까요. 텅 빈 곳이거든요.”

마스터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

아주 먼 기억의 서랍 속에서 예전 편지를 하나하나 꺼내 읽듯이 묘한 감상에 빠져 미소를 지었다.

“목표 의식이 있었어요. 혼자서 이곳에 살 수 없으니 같이 있을 생명체가 필요했거든요. 모두가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했어요.”

삶의 터전을 만들었다고 했다.

유진하와 에어리스, 이소민은 마치 창세 신화를 듣는 아이처럼 귀를 기울였다.

“초반엔 튜토리얼처럼 환경 설정이 가능합니다. 마음에 안 들면 리셋을 할 수도 있고요. 꽤 많은 시행착오를 거쳐서 생명체가 살기 좋은 환경을 만들었네요.”

에어리스와 이소민은 가만히 숨죽여 듣고만 있었다.

가져온 차를 살짝 마시곤 하면서 눈망울은 빛나고 있었다.

마스터의 이야기가 그만큼 신기하게 들렸다.

“어느 정도 환경이 조성된 후에는 생명체가 생성될 시간이 필요했죠. 스스로 진화하게 놔두었는데 굉장히 오랜 시간이 걸렸어요.”

가볍게 쿡 웃은 다음에 말을 이어갔다.

“공간의 주인에게 영원한 생명과 젊음이 없었다면 지금의 세상을 못 볼 뻔했네요.”

마스터는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수많은 시간을 기다림으로 보냈다는 말.

궁금해진 유진하가 더 자세하게 물어봤다.

“설마 수십억 년인가요?”

“뭐, 그쯤…….”

“우와!”

에어리스와 이소민의 입에서 감탄사가 튀어나왔는데, 조건 반사처럼 터진 바람에 미처 수습하지 못했다.

“아, 너무 긴 시간이었나요?”

마스터는 얼떨떨한 미소를 짓더니 이내 차분하게 표정을 가다듬었다.

왠지 민망한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 긴 세월 동안 마스터는 혼자서 버텼다.

“차원문을 여실 수도 있나요?”

“가능해요. 공간의 주인은 열 수 있습니다.”

유진하는 차를 한 모금 마시려다가 빈 잔인 걸 깨닫고는 도로 탁자에 내려놓았다.

“그럼 오랫동안 기다리지 말고 다른 방법도 있는데요. 예를 들면, 다른 공간에서 살아 있는 생명체를 데려오든가요.”

“그런 방법도 있긴 한데요. 그게 사실 위험성이 있어요.”

마스터는 알기 쉽게 알려줬다.

공간의 주인답게 이 분야는 전문이었다.

나이도 상식을 넘어서 너무 많이 먹은 수준이었고.

“차원문을 열고 넘어가면 다른 공간과 접촉하게 되거든요. 그럼 우리 공간의 위치가 알려지죠.”

“우리 공간이 알려지면요?”

에어리스가 반문했다.

밝게 웃은 마스터가 친절하게 알려줬다.

“우리 공간이 많이 알려지거나 노출될수록 침입당할 확률도 높아지겠죠.”

“공격을 받을 수 있다는 건가요? 공략전처럼…….”

이소민은 빠르게 이해했다.

정답이었다.

다른 공간에 침입하려고 차원문을 열면 흔적이 남는다.

눈 위에 발자국이 남는 원리와 비슷했다.

그 자국을 따라가면 우리 공간의 위치가 노출된다.

“다른 공간에서 뭔가를 가져오면 빠르게 발전할 수 있지만, 그만큼 위험해진다는 이야기네요.”

진화된 생명체.

진화된 기술.

다른 공간에서 이런 획기적인 존재를 가져오면 단숨에 발전할 수 있다.

기존의 몇 단계를 뛰어넘는 발전을 이루는 것이다.

하지만 역으로 우리 공간의 위치가 알려진다는 단점이 생긴다.

적의 침입을 받을 수도 있다.

양날의 검처럼 이득과 손해가 공존했다.

“저는 차원문을 연결하지 않았어요. 덕분에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했지만, 이렇게 우리 공간이 크게 성장할 수 있었네요.”

뭔가 뿌듯한 표정의 마스터가 본인을 자랑스러워했다.

초기에 텅 비어 버린 공간에서 시작해서 이만큼 성장시키려면 여간 고생이 아니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끝없는 인내와 집념의 시간이 필요했으리라.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우와, 정말 대단해.”

이소민도 놀라움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공간의 역사가 만들어진 유래를 처음으로 듣게 되었다.

창조 신화처럼 놀라웠다.

그런데 지금 중요한 문제는 따로 있었다.

“알카트로스는요?”

유진하는 범죄 집단에 대해 궁금증을 가졌다.

이들은 금품이나 노리는 수준이 아니라 공간의 주인인 마스터에 대적했다.

보통 사람들은 존재조차 모르는 공간의 주인을 목표로 한다는 것.

그건 보통 범죄 조직일 수 없었다.

“조직 이름은 계속 바뀌어 왔어요. 한때는 프리메이슨이라고도 불리기도 했죠.”

역사적으로 오래된 조직.

마스터에게는 두 명의 적이 있었다.

외부의 침입자와 내부의 적이었다.

“그들은 공간의 주인이 되길 원하고 있습니다. 제 자리를 뺏으려는 거죠.”

“…….”

알카트로스의 위협은 공간의 주인을 항상 노리고 있었다.

섬뜩한 칼날이 항상 마스터의 심장을 겨누는 상황이었다.

순간 모두가 숨을 죽였다.

고요한 적막이 감돌다가 이내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소민이 실수로 찻잔을 건드린 거였다.

“아, 죄송해요. 계속 얘기하세요.”

“주인의 자리는 얼마든지 넘길 수 있습니다. 위임도 할 수 있고요.”

마스터는 차분했다.

어떻게 보면 마치 처연한 느낌마저 들었다.

마치 초탈한 사람처럼 자리에 연연하지 않는 듯했다.

“다만, 아무에게나 쉽게 내줄 자리는 아니고요. 책임이 있는 자리니까요.”

공간의 주인은 무거운 책임감이 있었다.

자신의 의지와 판단에 따라 세상을 천국으로, 혹은 지옥으로 바꿀 수 있었다.

“알카트로스 같은 녀석들에게는 줄 수 없어요.”

마스터는 여러 번 다짐하듯이 중얼거렸다.

한 번을 말했음에도 마치 여러 번 반복해서 들려오듯이 그 소리는 짙은 감상을 남겼다.

“알카트로스는 목적을 위해서 수단을 가리지 않을 겁니다.”

알카트로스는 어떻게 주인 자리를 빼앗으려는 걸까.

지금까지 공간의 주인을 상대로는 전리품을 빼앗거나 해치워서 공간을 소멸시키는 것밖에는 해보지 않았기에 짐작이 잘 가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궁금해졌다.

“아, 그럼 전리품도 있나요? 혹시 뭔가요?”

이소민 역시 궁금했는지 먼저 물어봤다.

곤란한 질문을 받았는지 마스터는 처음으로 딴청을 부리다가 이내 목소리를 작게 줄였다.

“있긴 한데요. 다들 이렇게 부르더라고요.”

마스터는 쑥스럽다는 듯이 살짝 알려 줬다.

“‘성배’라고요.”

아, 성배.

수많은 영웅들의 모험담을 만들었던 성배의 전설.

어쩌면 진실의 문 앞에 선 사람처럼 긴장이 확 풀렸다.

‘성배’라 불리는 전리품은 대체 무엇일까.

“중요한 곳에 잘 보관되고 있다고만 말씀드릴게요.”

마스터는 어색한 웃음으로 대답을 회피했다.

성배의 소유주.

공간의 주인.

마스터.

모든 이야기가 호기심을 자극했다.

언젠가 풀릴 ‘미스터리’라고 생각하면서 지금은 잠시 서랍 속에 넣어두기로 했다.

“알았어요. 그럼 이제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나요?”

유진하는 본론으로 들어갔다.

지금까지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공간의 주인과 알카트로스 조직과의 대립.

얼마나 역사적으로 깊었는지도 들었다.

“알카트로스는 왜 에어리스를 닮은 그녀를 데려갔을까요?”

“그 이유는 저도 아직은 모르고 있어요.”

공간의 주인, 마스터가 처음으로 모르겠다는 말을 꺼냈다.

활발한 성격인 만큼 솔직한 편이었다.

“잘 모르지만 분명 목적은 있을 거예요.”

데려갈 만한 이유.

알카트로스 조직의 목적을 이루는 데에, 그 여자가 중대한 가치가 있는 건 아닐까.

그렇다면…….

“에어리스도 노릴 수 있다?”

“그러네요.”

유진하와 마스터는 서로 같은 생각을 했다.

알카트로스가 에어리스를 닮은 존재를 데려갔다면 에어리스 본인도 노릴 수 있었다.

유진하는 문득 한 가지 생각을 떠올렸다.

“문제는 하나 더 있어요.”

예리하게 분석한 상황을 떠올렸다.

“녀석들은 정부의 비밀 은신처를 공격했어요. 거기에 목표물이 있다는 걸 정확히 알았던 거죠. 최우선 기밀이 유출되었어요.”

이 소리를 듣자 마스터는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정부에 배신자가 있네요.”

모두의 낯빛이 바뀌었다.

정부 요원 중에 배신자가 있다.

중요한 얘기였다.

“공간의 주인을 배신한 사람이라는 거네. 그럼 배신자 유다라고 해야 하나?”

가볍게 농담을 던진 이소민은 모두의 따가운 시선을 받자 딴청을 부리듯이 휘파람을 불었다.

“배신자 유다. 암호명으로 부르기 딱 좋네요.”

마스터는 의외로 좋게 받아들였다.

순진무구한 미소 속에 스스로 쾌활하게 행동하며 분위기를 바꾸었다.

“그래서 여러분에게 부탁하려는 거예요. 지금 요원 중에 누가 유다인지 알 수 없으니까요.”

“…알겠습니다.”

유진하는 받아들였다.

혼자 지냈던 마스터는 지금 누구보다 같은 편이 필요했다.

알카트로스가 에어리스와 닮은 그 여자를 납치한 이상, 유진하 일행 역시 그들과 적대하게 됐다.

때문에 마스터는 자신이 공간의 주인이라는 극비 사항을 털어놓으면서까지 도움을 구하는 것일 터였다.

믿었던 정부 요원들을 모두 의심해야 하는 처지라면 본인도 굉장히 슬프고 괴로운 심정이리라.

“대신 조건이 있어요.”

“뭔가요?”

“M과 J를 풀어 주세요. 그 사람들은 믿을 수 있거든요.”

두 사람은 현재 감옥에 갇힌 상태였다.

유진한 일행을 보호하기 위해서 간부 E와 싸우다가 명령 불복종 처분을 당한 거였다.

그들을 구해 줄 의무가 있었다.

“두 사람을 통해서 마스터와도 연락할 수 있고요. 반드시 필요해요.”

“그럴게요. 바로 조치하죠.”

마스터는 받아들였다.

대화는 비교적 짧은 시간 속에 계속되었다.

그 안에서 충분한 교감을 나눌 수 있었다.

“후우. 엄청난 이야기를 들은 거 같아.”

“저도 그러네요.”

그제야 이소민과 에어리스는 숨을 크게 내쉬더니 물 한 잔을 마셨다.

마치 거대한 소용돌이가 지나간 듯한 후유증이 느껴졌다.

“많은 걸 알았어요.”

에어리스가 도르륵 눈을 굴렸다.

서서히 세상의 실체를 깨달아 가는데, 오히려 자신의 존재에 대한 의구심이 점점 커졌다.

‘나는 누구일까요?’

깊은 생각이 들었다.

‘내가 과거를 찾는다면… 현재의 나도 혹시 달라지는 걸까요?’

사실 과거와 현재의 자신은 만나지 말아야 할 평행선 같은 사이가 아닐까.

수많은 고민이 들었다.

“에어리스…….”

“저는 괜찮아요. 어떤 결과가 오더라도 피하고 싶지 않아요.”

유진하는 에어리스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했다.

그녀는 자신이 누구인지 알고 싶어 했고 과거에 대해서 갈망했다.

“해 보겠어요.”

에어리스의 눈빛이 순수한 눈망울에서 결심이 서린 눈빛으로 바뀌었다.

어떤 말에도 흔들리지 않았고 누구보다 진지했다.

그렇게 마스터는 자리에서 떠나고, 유진하 일행이 집에서 각자 생각에 잠기던 즈음이었다.

유진하 집을 목표로 몰래 움직이는 자들이 있었다.

“도착했다.”

유진하의 집.

지붕에 세 사람이 나타났다.

전부 백가면을 쓴 자들이었다.

그들의 가면에는 선명한 마크가 새겨져 있다.

여왕의 문양, 퀸.

왕의 문양, 킹.

마지막은 스페이드.

“시작이다.”

트럼프 카드의 퀸.

킹. 스페이드.

알카트로스 조직이었다.

유진하의 집에 그림자처럼 몰래 스며든 그들은 분명한 목표가 있었다.

“마스터. 그리고 에어리스. 둘을 확보하는 거다.”

알카트로스의 기습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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