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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을 활용하는 1000가지 방법-58화 (58/229)

58화 마스터(1)

모처럼 한가한 주말이었다.

창가에 쏟아지는 햇볕이 눈가를 간지럽혔다.

늦잠을 자던 유진하는 뒤늦게 깨어나서 부스스한 머리를 한 채로 방에서 나왔다.

“이 냄새는?”

코를 자극하는 냄새가 났다.

낯익은 요리였다.

“좋아. 그렇게 하는 거야.”

부엌에는 이소민과 에어리스가 한창 요리에 전념하고 있었다.

오늘의 요리는 카레였다.

감자, 양파, 당근을 썰어서 카레 가루와 함께 푼다.

카레 자체가 강한 향신료 맛을 가지고 있어서 간편하게 만들 수 있는 요리였다.

“요리사 자격증을 받고 싶어요.”

에어리스의 새로운 꿈이었다.

카레 요리를 식탁에 놓으면 에어리스는 눈망울을 밝게 반짝였다.

“아, 그래.”

유진하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식탁에 놓인 카레를 바라봤다.

에어리스의 버킷 리스트는 여전히 많았는데 요리사도 그중 하나였다.

“카레를 만들었구나.”

노란 카레와 야들한 밥.

감자와 양파, 당근이 조화를 이루었다.

겉보기에는 그럴듯했다.

요리를 함께해 준 이소민이 식탁에 앉아서 한숨을 내쉬었다.

“대검은 그렇게 잘 휘두르는데 요리할 때는 식칼 하나를 제대로 못 쓰더라.”

사실 이소민도 요리에 능숙한 편은 아니었다.

자취할 적에 요리가 귀찮아서 편의점 도시락으로 대신했다.

지금은 에어리스가 요리해 보고 싶다기에 대충 동영상을 찾아서 쉬운 요리를 선택해 줬다.

“카레가 제일 쉬워.”

카레는 향신료가 강해서 따로 간을 안 맞춰도 된다.

요리법도 간단한 편이었다.

“진하, 한번 먹어봐요.”

에어리스가 기대에 찬 눈빛으로 어서 맛을 보라고 권유했다.

“으음.”

한 숟갈을 뜬 유진하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이내 입에 넣었다.

진한 카레 향이 확 들어왔다.

“오, 맛있는데.”

기대를 전혀 안 했는데 의외로 괜찮았다.

합격점을 받자 에어리스의 표정은 한없이 밝아졌다.

“좋아요. 요리 성공했어요.”

에어리스는 두 손을 불끈 쥐면서 어깨를 들썩였다.

어쩌면 전투만큼이나 긴장되는 순간 같았다.

처음으로 요리에 성공하자 정말 기뻐했다.

“다 먹었어.”

유진하는 깨끗하게 한 톨도 남김없이 먹었다.

“진하, 더 먹을래요?”

“응?”

더 먹으라고?

카레가 많이 남았나?

“한 솥에 가득 끓였거든요.”

조리대에는 카레가 한 솥이나 담겨있었다.

엄청난 양이었다.

“저게 전부 카레야?”

“모두 마음껏 먹을 수 있도록 가득 만들었어요.”

일주일은 꼬박 먹을 양이었다.

카레가 입에 배길 만큼 먹어치워야 했다.

이소민은 옆에서 이미 한 그릇을 더 받아 꾸역꾸역 먹고 있었다.

“진하여, 어서 먹자.”

“하아.”

한숨을 내쉬며 유진하는 카레 한 그릇을 더 받았다.

에어리스는 항상 의욕적으로 움직였다.

문제는 과하다는 사실이었다.

열심히 카레를 입에 넣을 무렵.

에어리스는 다음 목표를 밝혔다.

“다음에는 빵을 가득 만들어 보고 싶어요.”

“…….”

유진하와 이소민은 둘 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빵 가게 수준으로 많은 양을 만들어 버리려나?

불안한 시선만 서로 교환했다.

요란했던 아침 식사가 어느덧 끝나고 각자 자유 시간을 가졌다.

“전 방에서 카드를 살펴볼게요.”

유진하는 요즘 새로 얻은 카드에 신경이 쓰였다.

빛의 카드.

중력의 카드.

초레어 카드 2장으로 많은 실험을 해 보는 중이었다.

전략을 미리 준비해야 했다.

“하압!”

에어리스는 마당에서 대검술 수련에 집중했다.

노력파에 가까운 터라 매일 아침마다 수련을 빼먹지 않았다.

강해지려면 부지런히 연습해야 한다고 믿었다.

“하아압!”

크게 휘두르는 대검에서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

에어리스의 금발 머릿결은 쏟아지는 햇빛에 반사되었고, 세차게 불어오는 바람에 휘날렸다.

“저건 평생 못 하겠다.”

마당에 앉은 이소민은 에어리스의 연습 장면을 바라보다가 혀를 내둘렀다.

“에어리스는 실력도 좋고, 근성도 대단하고. 유진하는 머리가 잘 돌아가고.”

두 사람은 확실한 무기가 있었다.

이소민은 내세울 점이 없었다.

“나만의 방법이 필요하겠어.”

적어도 한 사람의 몫을 제대로 해내기를 원했다.

두 사람처럼.

자신의 힘으로 헤쳐나갈 수 있기를 바랐다.

“어쩌면 가능할 수도…….”

그리고 지금.

한 가지 방법이 떠올랐다.

이소민은 오랫동안 고민했고 가능성을 발견했다.

“이걸로 해 보는 거야.”

거실에다 모든 장비를 펼쳐 놨다.

빙룡의 가방부터 지금까지 얻은 무기와 장비를 전부 꺼냈다.

부엌에서 수건 하나를 가져오더니 이소민은 물품을 하나하나 닦기 시작했다.

“내가 가장 잘하는 것. 해낼 수 있는 것은 이거야.”

장비를 잘 갖추는 것.

이소민은 자신의 길을 서서히 결정하고 있었다.

셋이 각자 발전의 시간을 가질 무렵이었다.

딩동.

손님이 찾아왔다.

“잘 지내셨습니까?”

간부 E였다.

포마드를 진하게 머리에 바르고 은테 안경을 쓴 E가 서류 가방을 든 채로 찾아왔다.

“카레 냄새가 나는군요.”

“아침에 먹었거든요.”

유진하는 그를 거실로 안내했다.

둘 사이에는 냉랭한 기운이 남아 있었다.

E와 산장에서 치열한 대결을 벌이던 때가 불과 엊그제였다.

“카레 냄새가 좋군요.”

E는 아무렇지 않은 척 태연한 얼굴로 말을 걸었다.

에어리스와 이소민도 불편한 손님을 맞았는지 어정쩡한 자세로 그를 맞이했다.

에어리스는 특히나 E를 불편하게 기억했다.

‘이 사람은 날 닮은 그 여자를 데려갔어.’

정부 요원의 간부.

그와 대결하면서 숲에 치솟았던 화염이 눈가에 아른거렸다.

그날의 기억은 여전히 앙금처럼 자리했고 E와의 관계는 애매했다.

경계감이 남아 있었다.

이소민이 슬쩍 예의상 그에게 식사를 권유했다.

“카레는 많이 해 놨거든요. 원하시면 좀 드실래요?”

“괜찮습니다. 폐를 끼치고 싶지는 않아서요.”

E는 은테 안경을 만지작거리며 소파에 앉았다.

거실 내부를 쭉 훑어보더니 용건을 밝혔다.

“세 분의 신분은 원래대로 복귀시켜 드렸죠.”

“알고 있어요.”

유진하가 모두를 대신해서 E를 상대했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

그날의 긴장감이 남아 있었다.

“상황이 변했거든요. 누군가 에어리스 양을 닮은 그녀를 데려갔기 때문입니다.”

“역시 알카트로스인가요?”

유진하가 냉철하게 반응했다.

E는 가방에서 서류 하나를 꺼내 내밀었다.

“그녀에 대한 정보는 하나도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말을 한 마디도 하지 않았죠.”

E는 솔직하게 알려 줬다.

숨겨진 비밀 벙커에서 그녀를 심문했지만 아무 정보도 얻지 못했다.

“이번 습격으로 누가 데려갔는지는 알아냈습니다. 알카트로스. 유명한 범죄 조직이죠.”

유진하는 생각에 잠겼다.

세계에 알려진 유명 범죄 집단.

그들이 본격적으로 움직였는데 의외로 목표는 에어리스를 닮은 그녀였다.

“그건 알겠어요. 그런데…….”

유진하는 E를 똑바로 쳐다봤다.

“당신은 누구죠?”

“네?”

유진하의 말이 의표를 찔렀다.

당황한 E는 순간적으로 말을 헛디뎠다.

“당신은 E가 아니잖아요. 그 사람처럼 변장한 거죠.”

옆에서 커피 한 잔을 마시던 이소민이 깜짝 놀라서 입에 있던 커피를 푹 뿜었다.

“뭐? 다른 사람이라고?”

유진하는 매서운 관찰력과 직관력, 뛰어난 지력을 가지고 있었다.

중요한 판단은 항상 적중했다.

“E는 만난 적이 있어서 알아요. 제법 잘 따라 하긴 했는데 미묘한 차이가 있어요.”

“그런가요?”

가짜 E는 묘한 미소를 지었다.

확실히 아까와는 분명히 다른 분위기로 바뀌고 있었다.

“어떤 차이죠?”

가짜는 솔직하게 인정했다.

알아차렸다면 굳이 부정할 생각은 없는 모양이었다.

“제가 봤던 E는 조금 더 재수가 없는 타입이거든요. 말투도 훨씬 그렇고요.”

“하하하하.”

가짜 E는 입을 가리며 혼자 크게 웃었다.

“미안해요. 너무 웃겨서. 과연, 확실히 대단하네요. 잘 숨겼다고 생각했는데.”

가짜 E는 손에서 카드 한 장을 꺼냈다.

레어 등급의 변장 카드였다.

-원하는 대상으로 모습을 바꿀 수 있다.

“제대로 인사할게요.”

변신 능력을 해제하자 진짜 모습이 드러났다.

하얀 블라우스와 미니스커트를 입은 여자였다.

콧날은 날렵하고 미인형인데 외모는 동안으로 어려 보였다.

푸른빛의 머리카락, 귀여운 눈매.

전체적으로 귀여운 외모가 매력적으로 보였다.

“반가워요. 다들 센스가 있네요.”

정체를 밝힌 여자는 변장하고 있던 E보다 훨씬 밝고 긍정의 기운을 지녔다.

“여러분을 시험할 생각은 아니었어요. 그냥 평소에도 저 자신을 보호하려고 위장을 하거든요.”

“위장인가요?”

에어리스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귀엽게 생긴 이 여자가 왜 위장까지 해야 할까?

“이번엔 봐줘요. 알았죠?”

쾌활한 성격의 그녀는 조금 전 변장했을 때와는 완전히 달라졌다.

어느새 분위기를 주도하고 있었다.

“유진하, 맞죠? 소식은 들었어요.”

“그런가요.”

유진하는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그 떨떠름한 반응을 보자 그녀도 뭔가를 알아차렸다.

“그쪽은 내가 누군지 아는 거 같은데요?”

“…….”

유진하는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옆에서 지켜보던 에어리스와 이소민은 순간 멍해졌다.

저 여자가 변장했는지도 전혀 몰랐는데, 유진하는 그녀의 정체까지 알아냈다고 그랬다.

대체 어디까지 보는지.

궁금할 따름이었다.

“당신은 굳이 E로 변해서 접근했어요. 이걸 보면, 최근 사건을 잘 아는 사람이라는 거겠죠.”

“생각해 보니 그러네.”

여자는 수긍했다.

“정부 요원의 일을 잘 아는 데다가 간부인 E로 변해도 뒤탈이 없는 사람이겠죠.”

“아, 그것도 그러네.”

짧은 시간을 두었다.

약간의 침묵 끝에 유진하는 결론을 밝혔다.

“간부 이상의 존재라면 요원들을 지휘하는 사람밖에 없겠죠.”

여자는 활짝 웃으면서 손가락을 내밀었다.

“정답이야. 정말 대단하네요.”

그녀는 순순히 인정했다.

자신이 요원을 지휘하는 사람이라고 확인해 줬다.

“저는 요원들의 지휘를 맡았어요. ‘마스터’라고 불리죠.”

깜짝 놀란 이소민이 여자를 다시 똑바로 바라봤다.

“마스터라고요?”

마스터라고 자신을 소개한 여자는 가슴에 손을 올렸다.

“다들 그렇게 불러요. 저는 딱히 상관은 없거든요.”

마스터는 자신감 넘치는 표정으로 자신을 소개했다.

정부 최고위.

요원들의 지휘관.

비밀리에 움직이는 존재였고 소문만 무성했던 사람이었다.

“아시겠지만 저는 외부 활동을 극도로 피했어요. 간부들이 아니면 만난 사람도 없고 철저히 정체를 숨겼거든요.”

마스터는 어색하게 웃더니 이내 어깨를 활짝 폈다.

“지금은 상황이 바뀌었어요. 쉽게 말해 총력전까지 벌어질 위기가 되었다는 소리예요.”

“마스터까지 나설 정도요?”

유진하가 반문했다.

마스터는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그렇게 되었네요. 사실 여러분의 활약은 들어봤거든요. 따로 꼭 만나보고 싶었어요.”

마스터는 그동안 유진하 일행의 행적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다.

요원 M의 보고서에서 자세히 봤다고 알려줬다.

“그런데 유진하 씨는 전투 실력이 불명이라네요. 언제 우리 서로 싸워서 확인해 볼까요?”

“…사양하겠습니다.”

마스터는 장난이 많고 활달한 성격이었다.

분위기를 주도하는 터라 비슷하게 밝은 이소민조차 마스터의 언변에 휘말릴 정도였다.

“직접 만나니까 더 좋네요. 사실 저는 많이 쫓기고 있었거든요.”

갑자기 정적이 흘렀다.

마스터는 모두가 처음 듣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알카트로스는 원래 날 노리던 조직이에요. 정말 오래됐죠.”

“당신을 노렸다고요?”

“안타깝게도 역사 속에서 굉장히 오래된 일이네요.”

마스터는 어두운 이야기임에도 의외로 웃으면서 이야기했다.

자주 겪은 일처럼 덤덤했다.

“사실 차원문이 열리면서 여러 무기와 카드가 우리 세계로 넘어왔어요. 그걸 악용하는 사람들도 생겼고 덕분에 범죄 조직도 많이 늘어났어요.”

순간 이동이 대표적으로 범죄에 활용되었다.

도망가면 잡을 길이 없었다.

범죄에 악용될 물건이 많아서 실제로 능력을 발휘하는 특수 범죄가 꾸준히 증가했다.

요원들의 업무에 특수 범죄 해결이 추가된 때도 이즈음이었다.

“세계에서 유명한 조직은 3개가 있죠. 알카트로스, 아사신, 그리고 괴도단.”

차원문이 열린 후로 범죄가 늘어나며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3대 범죄 조직이 있었다.

정부는 그 범죄 조직들을 소탕하기 위해 노력했다.

정부 요원 대 범죄 조직.

세상은 두 세력이 맞붙고 있었다.

“지금은 알카트로스가 문제죠. 그들이 에어리스 씨를 닮은 그녀를 데려갔으니까요.”

“그녀가 대체 누구인지 아시나요?”

에어리스가 화급하게 소리쳤다.

자신을 닮은 그녀에 대해서 모든 것을 알고 싶었다.

마스터는 지그시 에어리스를 바라보더니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짐작하시겠지만 그녀는 보통의 사람이 아니에요. 공간의 주인을 넘어선 존재입니다.”

“공간의 주인을 넘어서는 존재라고?”

이소민이 깜짝 놀라서 반문했다.

“공간의 주인에 대해선 알고 있는 모양이군요.”

지난번 E가 찾아왔을 때, 유진하가 물었었다.

우리 공간에도 주인이 있냐고.

E는 극비사항이라며 대답을 회피했지만, 즉답을 피했기 때문에 유진하는 지구에도 공간의 주인이 있다는 걸 확신할 수 있었다.

“우리 또한 다른 공간이나 던전처럼 같은 법칙을 적용받는다는 걸, 많은 사람들이 모르죠.”

마스터가 여유롭게 팔짱을 끼고서 모두를 바라봤다.

“공간은 다 같아요. 우리만 특별할 리가 없잖아요.”

마스터는 당연한 소리라는 듯이 말했다.

우리 세계는 특별하지 않다.

다른 공간과 비슷하다.

마스터는 세상의 법칙을 소개하고 있었다.

“…당신이군요?”

유진하가 넌지시 한마디를 던졌다.

강한 확신에 찬 물음이었다.

그 질문에 대해서 마스터는 피하지 않았다.

“맞아요. 우리 공간에 있는 주인. 바로 나거든요.”

침묵이 흘렀다.

마스터는 자신을 ‘공간의 주인’이라고 소개했다.

인간들이 사는 공간.

이곳에도 주인이 있다는 게 확실해지는 순간이었다.

“뭐? 에이, 설마…….”

이소민은 손사래를 치며 웃었다.

말도 안 된다는 듯이 반사적으로 손을 크게 내저었다.

“진짜예요. 안 믿기겠지만 제가 이 공간의 주인이네요.”

마스터의 표정은 장난스러웠으나 저 말은 진심이었다.

유진하도 알고 있었다.

“공간의 주인이라면 혹시 뭔가 있는 건가요? 어떤 능력이 있나요?”

“흐음. 그 얘기까지 하면 좀 길어지는데…….”

마스터는 어색하게 웃다가 이내 결심한 듯이 똑바로 고개를 들었다.

“제일 먼저 공간의 주인은 기본적인 생태계 환경을 만들 수 있어요.”

“환경?”

“네, 생명체가 살아갈 터전을 만드는 거죠. 그게 제일 먼저 하는 일이죠. 물론 혹성처럼 만들어서 아예 혼자 살 수도 있고요.”

너무나 낯선 이야기였다.

환경을 조성한다는 말을 태연하게 하고 있지만, 사실 이건 천지창조와 맞먹는 소리였다.

“너무 쉽게 말씀하시네요? 그건 세상을 창조했다는 말처럼 들리는데요.

“환경 조절을 할 수 있거든요. 원한다면 여기만 비를 살짝 내릴 수도 있어요.”

마스터는 아무렇지 않게 손을 내밀었다.

손 언저리에 물방울처럼 작은 빛이 모이더니 이내 푸른빛의 화면이 생성됐다.

“운영창이라고 해요. 정확히는 공간이 현재 어떤 상태로 유지되는지 볼 수 있는 거죠.”

“와, 이게 뭐냐?”

이소민은 눈이 휘둥그레져서 푸른 창을 바라봤다.

공간의 운영창.

주인이 가진 권리였다.

“상태는 괜찮네요. 특별한 반응도 없고요. 그럼 이곳만 비를 한 번 내려 볼까요?”

마스터가 손가락으로 운영창을 건드리자 갑자기 밖이 이상해졌다.

먹구름이 몰려오더니 이내 천둥 번개와 함께 비가 쏟아졌다.

“대박이다. 진짜.”

너무나 놀라운 광경이었다.

공간의 주인은 터전을 만들고 환경을 조절할 수 있다.

자신의 공간에서 전지전능에 가까운 힘을 가지고 있었다.

“눈으로 바꿔 볼게요.”

갑자기 한기가 들더니 이내 빗방울이 눈송이로 바뀌었다.

모든 것이 분명해졌다.

“정말 이 공간의 주인이었군요.”

유진하는 한숨을 내쉬었다.

평온했던 심장이 긴장감을 받자 힘차게 박동하는 듯했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차원문이 생긴 이후로 정말 세상은 달라졌고 이제야 진실에 다가서게 되었다.

“다른 힘도 있어요?”

“환경을 조절하는 것 말고도, 공간의 주인은 자신이 만든 공간과 운명을 같이해요.”

물아일체.

실제로 그랬다.

지금까지의 공략전에서도 공간의 주인을 쓰러뜨리면 그 장소도 함께 소멸했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한다면?

방어전에 승리해서 공간이 소멸하지 않는다면.

그 얘기는 다시 말해…….

“공간이 유지되면 영원히 살아 있을 수 있다는 건가요? 영생도 가능하겠는데요.”

“정답입니다.”

마스터는 손가락으로 원을 동그랗게 그리며 장난스럽게 웃었다.

그랬다.

주인은 자신의 공간에서 영원히 존재할 수 있었다.

E는 우리 공간의 주인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었다.

-그분은 아무것도 아닐 수도 있지만, 모든 것일 수도 있죠.

주인이 곧 공간이고, 공간이 곧 주인이라는 말이었을 거다.

“알카트로스 조직도 알고 있어요. 오랫동안 저를 찾아내려는 이유가 그거였죠.”

유진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세상의 존재와 공간의 유지.

우리가 다녔던 던전처럼 우리 공간도 같은 체계였고 모든 법칙은 하나였다.

“알카트로스도 영원한 삶을 원하는 건가요?”

“맞아요. 주인의 자리는 다른 사람에게 ‘양도’할 수 있거든요. 저한테서 주인 자리를 억지로 뺏으려는 거죠. 영생의 삶을 살려고.”

알카트로스의 목적은 확실했다.

E는 공간의 주인에 대한 정보가 극비 사항이라고 하며 말해 주지 않으려고 했었다.

유진하는 이제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마스터, 당신이 목표군요.”

우리 공간의 주인.

알카트로스 범죄 조직의 최종 목표는 마스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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