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을 활용하는 1000가지 방법-56화 (56/229)

56화 매복전(1)

숲에는 정예 요원들이 곳곳에 매복하고 있었다.

코드명 R은 높은 산 정상 쪽에 위치했다.

길리 슈트로 주변 환경과 똑같게 몸을 감추고 망원경으로 숲 전경을 주시했다.

관찰력이 굉장히 뛰어나서 맡은 역할이었다.

‘매복은 이틀째…….’

목표물인 유진하 일행은 겨우 셋이었고 그에 반해 숲에는 많은 수의 요원들이 매복 중이었다.

R의 역할은 목표물이 오면 신호를 주는 정탐 역할이었다.

한창 긴장된 얼굴로 망원경을 살피던 중에 멀리서 이상하게 움직이는 징조를 찾았다.

“거긴가.”

숲이 이상하게 움직였다.

R은 유심히 그쪽을 집중해서 바라봤다.

흔들리던 수풀이 잠잠해지다가 다시 비정상적으로 흔들렸다.

산짐승은 아니었다.

사람이었다.

‘유진하…….’

기다리던 목표물이 나타났다.

체포할 수도 있고, 여기서 직접 저격할 수도 있었다.

총기도 준비했다.

‘…보인다.’

공략전에서는 인간이 만든 무기를 가져갈 수 없다.

다른 공간에서 얻은 물건만 가져갈 수 있었다.

하지만 여기는 지구.

인간들이 사는 곳이다.

던전의 아이템 말고도 인간들이 만든 무기도 사용할 수 있다.

당연히 총기도 가능하다.

“…….”

R은 총기의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었으나 아직 발사하지는 않았다.

총기류는 소리가 크다는 단점이 있어서 은밀하고 조용하게 일을 처리하기 어려웠다.

‘두 명이 없다.’

에어리스와 이소민도 목표 대상이었는데 이들이 아직 보이지 않았다.

꼭 총기를 쓰지 않아도 사로잡을 방법은 있었다.

카드를 사용하는 것이다.

“…….”

장거리 저격에 사용할 카드는 얼마든지 가지고 있었다.

“…후우.”

산 정상에 매복한 R은 보고부터 하기로 했다.

먼저 리더에게 알릴 생각이었다.

유진하를 찾았다는 정찰 보고를 막 하려던 참이었다.

“움직이지 마.”

낯선 목소리가 R의 뒤에서 들렸다.

누구지?

R은 배후를 잡혔다.

그것도 완벽하게 은신한 요원의 뒤를 잡힌 거였다.

“이소민이에요. 저항하면 나도 가만있지는 않을 거고.”

이소민?

유진하의 동료?

은신한 자신을 어떻게 정확히 찾아냈는지 궁금했다.

생각할 틈도 없이 낯설고 차가운 물건이 등을 겨냥했다.

섬뜩한 느낌이 온몸으로 전해졌다.

‘칼? 총?’

무슨 무기인지는 모르나 저항할 틈도 주지 않고 이소민이 빠르게 R을 결박했다.

밧줄을 사용해서 손과 발을 뒤로 묶었다.

R은 완전히 제압당했다.

가지고 있던 카드와 무기, 무전기까지 전부 무장해제당했다.

“됐다.”

이소민이 숨을 내쉬었다.

상황이 종료되자 그녀가 긴장을 풀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제야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녀의 손에 칼이 아니라 작은 철판이 들려 있다는 사실을…….

‘속았구나.’

칼로 겨냥하는 척.

철판으로 위협한 거였다.

단순한 속임수에 요원이 쉽게 잡히고 말았다.

“칼은 진짜 쓸 때가 아니면 꺼내지 않거든요.”

이소민은 슬쩍 자리에 앉았다.

다양한 무기 활용에 능숙한 편이었고 거대 몬스터와도 맞서며 산전수전 경험도 있었다.

어떤 일을 맡겨도 본인 몫은 충분하게 해낼 만큼 믿음직하게 성장해 가는 중이었다.

“어떻게 내가 숨은 위치를 알아냈지?”

“에어리스가 알려 줬어요. 망원경은 빛에 반사되거든요.”

아!

R은 실수를 깨닫고 움찔했다.

지금은 대낮이라 태양빛이 강하게 내리쬐었다.

망원경의 렌즈는 빛을 반사시키는 단점이 존재했다.

실제로 과거의 스나이퍼들 중에는 렌즈에 반사되는 빛으로 자신의 위치가 들통날까 염려해 망원렌즈 대신에 맨눈으로 임무를 수행한 전설적인 스나이퍼도 있었다.

그렇다 해도 거리가 상당했을 테고 거기다 R의 망원경은 그러한 점을 고려해 렌즈 반사를 많이 줄인 제품이었다.

‘이게 보였다고?’

에어리스의 눈썰미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수준이었다.

“유진하는 유인이었나? 일부러 내가 그쪽을 보게 하려고?”

“미끼를 보고 있어야 신경이 그쪽으로 팔리죠. 지금처럼 완전히 등을 내줄 때까지 뒤에 접근하는지도 모르고.”

이소민은 당연하다는 듯이 툭 내뱉었다.

숲에 요원들이 매복하리라는 사실은 당연히 알고 있었다.

정예 요원들이 은신해서 그물망 포위를 전개하리라 예측했고, 유진하 일행은 당연히 그걸 깨는 작전을 준비했다.

숲에서 벌어지는 진검승부.

숨 막히는 대결은 이미 시작되었다.

“유진하, 이쪽은 해결했어.”

이소민은 무전기로 유진하와 연락을 취했다.

요원 R을 제압하고 산 정상을 차지했고 전체 전경을 볼 수 있도록 유리한 지점을 차지했다.

이소민은 여기 남아서 숲의 상황을 무전으로 알려 주었다.

-매복이 안 보여. 더 안쪽에 있는 거 같아.

유진하는 예리하게 숲을 관찰했다.

우거진 풀과 나무 속에 요원들이 은신했다.

완벽에 가까웠다.

‘어딘가 있다.’

숨소리조차 죽였다.

긴장된 상황이 계속됐다.

먼저 빈틈을 보이면 당하는 게임이었다.

지루한 눈치싸움.

소강상태가 이어질 수 있었다.

이소민의 무전이 왔다.

-부비트랩이 있어.

요원들이 함정을 설치해 놨다는 정보였다.

‘열심히 준비했네.’

유진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매복과 함정은 숲에서 정석적인 대응법이었다.

기발한 부비트랩일수록 위력은 더 좋았다.

유진하는 고심 끝에 한 가지 묘안을 궁리했다.

“아앗!”

비명이 터져 나왔다.

고요한 숲의 정적을 깨버리는 소리였다.

유진하였다.

마치 전신에 감전이 된 것처럼 부들거리면서 자리에 풀썩 쓰러졌다.

전기 함정.

유진하는 함정에 걸려 전기 충격을 받고 바닥에 쓰러졌다.

완전히 감전되었는지 손가락이나 몸을 부들거렸다.

엎드린 상태로 입에서는 거품까지 흘러내렸다.

“으으.”

짧은 비명이 지나가자 고요가 흘렀다.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렇게 몇 분의 시간이 흘렀다.

“진하…….”

먼저 움직인 쪽은 에어리스였다.

에어리스는 주변을 경계하면서 유진하의 상태를 확인하러 다가갔다.

그때, 에어리스의 발에 줄이 탁 걸렸다.

함정이 또 발동했다.

바닥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밧줄이 에어리스의 온몸을 순식간에 휘감았다.

“아앗!”

에어리스는 삽시간에 제압당해서 그대로 쓰러졌다.

유진하와 에어리스 두 사람은 완전히 제압된 채로 쓰러지고 말았다.

부비트랩은 성공적으로 발동했다.

“작전 성공…….”

매복한 요원들은 달콤한 기회를 잡았다.

이틀 동안 인간의 한계를 시험할 정도로 움직이지 않은 채 자취를 숨긴 전문가들이었다.

“가서 확인해라.”

현장의 요원들은 무전 연락을 주고받았다.

풀숲에 숨어 은신했던 Y가 몸을 일으켰다.

확인은 신입 요원들의 몫이었다.

“제가 가겠습니다.”

Y는 혹시나 몰라 잔뜩 경계하면서 조심스레 걸어갔다.

다른 요원들은 매서운 눈으로 Y가 가는 방향을 살폈다.

엄호할 생각이었다.

“유진하, 에어리스. 확인.”

Y는 조심스레 상태를 살펴봤다.

감전되어 기절한 유진하.

꽁꽁 묶인 에어리스.

두 사람은 완전히 제압됐다.

포획을 확인하고 무전기로 상황을 알리려는 즈음이었다.

그때였다.

멀리서 날아온 한 발.

Y는 뭔가를 맞더니 멈칫했다.

눈치챈 사람은 공격을 맞은 Y 본인뿐이었다.

“으윽!”

그 위력은 바로 발동했다.

순식간에 몸이 뻣뻣해지더니 모든 충격이 전신으로 뻗어나갔다.

저격한 사람은 이소민이었다.

멀리 산 정상에서 카드를 하나 발동시킨 거였다.

-감전 카드: 대상에 강력한 전기 충격을 준다.

-저격 카드: 대상을 3초간 겨냥하면 명중시킨다.

이소민은 두 장의 카드를 동시에 사용했다.

완벽한 저격으로 노출된 요원 Y를 명중시켰다.

“정지. 저격이 있다.”

요원들이 당황했다.

상황은 급변하기 시작했다.

당연히 유진하는 아까 함정에 걸린 척을 한 거였다.

입에 거품까지 물고 열연을 펼쳐서 속였다.

놀라운 연기력이었다.

“주의하라.”

사실 요원들도 완전히 믿지는 않았으나 결국 유진하의 상태를 확인해야 했다.

정석적인 대처였으나 그게 약점이었다.

유진하는 그 점을 역이용했다.

유진하와 에어리스가 미끼.

이소민이 저격으로 마무리.

간단하면서 위력적인 작전이었다.

“자, 그럼 잡아 볼까.”

바닥에 누웠던 유진하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카드 하나를 쥐었다.

탐색 카드였다.

-소리 탐색: 반경 10㎞에 있는 소리의 위치를 잡아낼 수 있다.

요원들의 실수는 하나 더 있었다.

서로 연락하느라 통신을 사용한 탓에 다른 요원들의 이어폰에서 소리가 새어나왔다.

음파를 감지할 기회가 생겼다.

“찾았다.”

이것으로 소리가 발생한 위치를 전부 파악한 덕분에 매복한 요원의 위치를 알아냈다.

“에어리스, 지금이야.”

유진하가 소리쳤다.

밧줄에 묶인 척 위장했던 에어리스는 갑자기 힘을 발휘해서 단숨에 끊어냈다.

“하압!”

이제 반격할 차례였다.

유진하는 카드를 뿌렸다.

사방으로 날아간 카드가 순식간에 요원 U가 매복한 곳을 포위했다.

“라이트닝.”

벼락이 내리쳤다.

“크아아악!”

요원 U를 제압하자 다른 요원들은 이내 자신의 위치가 발각되었음을 깨달았다.

“쳇!”

세 명의 요원이 모습을 드러냈다.

검과 창, 총.

각자 무기를 꺼내어 바로 전투태세를 갖췄다.

빠른 상황 변화에 대처하는 적응력이 돋보였다.

코드명을 가진 정예 요원다웠다.

“하압!”

에어리스는 전매특허인 대검을 꺼내어 매섭게 돌격했다.

요원들은 훈련받은 대로 대응했다.

진형을 갖추고 대응하는 프로다운 모습이었다.

하지만 이건 실수였다.

퇴각이 더 현명한 판단이었다.

파악!

대검이 번쩍였다.

에어리스는 차원이 다른 대검술을 발휘하며 요원들의 무기를 날려버렸다.

요원들은 당황하며 대응이 무너졌다.

“크윽!”

마지막 한 명이 허리춤에서 권총을 꺼냈으나 에어리스의 대검이 총구를 갈라 버렸다.

갈라진 권총이 바닥에 힘없이 떨어졌다.

승부는 결판이 났다.

“끝났어요. 이제 더 싸울 필요는 없어요.”

에어리스는 태연한 얼굴로 대검을 도로 거두었다.

정부 요원들은 망연자실한 얼굴이 되어 돌처럼 굳어 버렸다.

“…졌다.”

무기를 잃은 요원들은 순순히 패배를 인정했다.

유진하가 다가가서 그들을 밧줄로 묶고 제압했다.

“잠깐만 이러고 있어요. 나중에 풀어줄게요.”

치열한 심리전과 대결이 벌어졌던 숲은 다시 조용한 침묵으로 빠져들었다.

매복전은 유진하의 완승으로 끝났다.

“에어리스, 수고했어.”

유진하는 에어리스를 격려했다.

상황이 끝났다는 연락도 무전으로 이소민에게 알려줬다.

매복한 요원들은 이들이 전부였다.

“에어리스와 계속 갈게요.”

남은 목적지는 산장이었다.

간부 E를 만나기로 약속한 최종 장소였다.

-산장에선 아직 특별한 움직임은 없어.

산 정상에 있던 이소민은 망원경으로 계속 산장을 살펴봤다.

숲의 높다란 나무들에 뒤덮인 산장은 조용하고 으슥했다.

고요함이 감돌수록 긴장감은 더 깊어졌다.

“이제 마지막이야.”

간부 E는 막강한 실력자였다.

압도적인 전투력에 특유의 회피력을 겸비했다.

맨손으로 유진하의 카드를 모조리 잡아내거나 에어리스의 대검을 쉽게 받아냈다.

인간을 초월한 괴수 같았다.

“다 왔어요.”

에어리스 역시 마음을 다잡았다.

한 달 전의 그때와는 달랐다.

E의 실력을 알았고 얼마나 강한지도 기억했다.

지금은…….

어떤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되찾을 사람이 있었다.

에어리스를 닮은 그녀.

시간을 벌어준 M과 J.

이들을 모두 구해내려면 정부 요원들을 넘어서야 했다.

‘여기까지 왔다.’

유진하는 이번 계획의 최대 난적을 맞이하게 되었다.

산장은 낡고 평범했다.

나무로 만들어 운치를 머금었으나 산장 자체가 오래되어 기둥이나 벽이 구석구석 갈라지고 비틀렸다.

끼익.

걸을 때마다 발소리가 나왔다.

아마 안에 있는 E도 알아차렸을 터였다.

창문 너머 얼핏 보이는 불길.

연기도 느껴졌다.

‘불을 피웠나?’

E가 저 안에 있을까.

유진하는 조심스레 문고리를 부여잡았다.

떨리는 심장 박동이 쉴 새 없이 고동쳤다.

점점 달아오르는 용광로처럼 심장의 피가 강하게 샘솟는 느낌이었다.

“…당신이군요. 유진하.”

E가 먼저 입을 열었다.

역시 그가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E.”

유진하와 E는 마침내 산장에서 만났다.

악연에 가까운 사이였다.

물러설 수 없는 자리였다.

“유진하, 에어리스. 둘 다 오랜만이군요.”

“한 달 만이네요.”

E는 낡은 소파에서 일어났다.

유진하도 물러서지 않았다.

이 자리에 오기 전까지 많은 준비를 했다.

“에어리스를 닮은 그 사람은 어디에 있죠?”

“잘 있습니다. 안전한 곳에 있죠.”

E는 포마드를 바른 머리를 살짝 가다듬더니 손에 든 땔감 하나를 벽난로 속에 마저 집어넣었다.

따스한 불길이 계속 나왔다.

“당신들도 안전하게 될 겁니다. 정부의 관리를 받겠죠.”

“관리가 아니라 감금이죠.”

치열한 기 싸움이 벌어졌다.

서로의 목적은 달랐다.

절대로 메워지지 않는 간격이 존재했다.

E는 은테 안경을 만지면서 마지막 회유를 제시했다.

“협조하면 다치지 않게 대우하겠습니다.”

“M과 J는 문제가 있어서 잡아 둔 건가요?”

“…….”

E는 멈칫했다.

직속 부하였던 M과 J의 얘기가 그의 자존심을 건드렸다.

“두 사람은 좋은 부하였습니다. 실력도 뛰어나고 재능도 좋았죠. 아마 이대로 갔다면 탄탄대로였을 겁니다. 간부까지 올라갔겠죠.”

타협은 없었다.

유진하는 선전포고했다.

“당신을 이기고 그들을 구해 내겠어요.”

말속에서 느껴지는 긴장감.

E는 벽난로를 바라보다가 천천히 유진하를 바라봤다.

은테 안경 속에 보이는 그 눈빛은 강렬했다.

승부는 시작되었다.

“이긴다는 가정은 그걸 해내고 나서 말씀하십시오. 불가능한 목표라는 걸 똑똑히 알려드리겠습니다.”

0